日 미쓰비시 전기, OT 보안에 1조 원 투자…韓 산업계는 ‘남일’

글로벌 사이버 보안 시장은 대규모 M&A 러시…국내 보안 기업들은 저평가

2025-09-11     정종길 기자

[아이티데일리] 일본 미쓰비시 전기가 최근 미국 OT(운영기술) 보안 전문업체 노조미 네트웍스를 8억 8,300만 달러(한화 약 1조 3천억 원)의 현금을 투입해 인수한다고 발표했다. 이는 미쓰비시 전기 역사상 최대 규모의 인수다. 

이번 인수는 산업 기술 분야에서 100년 이상의 경험을 가진 미쓰비시 전기가 인공지능(AI) 기반의 사이버 보안 역량을 확보하기 위한 행보로, 자사의 사이버 보안 수준 강화뿐만 아니라 향후 글로벌 중요 인프라와 산업 조직 전체의 디지털 전환을 가속화하겠다는 의지를 보여준 것으로 평가된다.

일반적으로 일본은 아날로그를 선호하며, IT 분야는 우리나라보다 뒤처져 있는 것으로 인식된다. 하지만 일본에 진출해본 경험이 있는 국내 IT 기업 대표이사 및 임원들은 “최근 일본 기업들의 행보를 보면 그것도 옛말이다. 절대 우리보다 일본이 IT 분야에서 뒤처졌다고 자만해서는 안 된다”고 말한다. 이들은 오히려 “IT 분야는 아직까지 고군분투하고 있지만, 국내 산업계는 확실히 최신 트렌드를 받아들이는 데 있어 일본보다 뒤처지고 있다”고 진단한다. 그리고 미쓰비시 전기의 이번 노조미 네트웍스 인수 소식은 최근 일본 산업계의 인식 변화를 보여주는 단적인 예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이미지=AI 생성)

반면 국내 산업계 대기업들은 보안 업체를 인수하기는커녕 보안 솔루션 도입에도 소극적이라는 점에서 비교된다. 한국 대기업들은 막대한 자본력을 바탕으로 산업 전 분야에 가지를 뻗치며 수익을 빨아들이고 있다. IT 분야 역시 내부 시스템통합(SI) 사업 및 IT 솔루션 유통을 위해 그룹 내 자회사를 운영하는 경우가 상당히 많다. 하지만 이들은 IT 솔루션을 유통·공급하기만 하고 특정 목적을 위한 SI성 개발 사업에만 몰두할 뿐, 자체 브랜드를 단 소프트웨어 개발은 대다수가 등한시하고 있다. 사이버 보안 소프트웨어 역시 마찬가지다.

보안 업계 한 관계자는 “소프트웨어 분야 중에서도 특히 사이버 보안 분야는 인식이 최하위 수준이다. 당장 투자하지 않아도 되는 추가적 비용 지출처 취급을 받거나, 귀찮은 절차가 늘어나는 것이라는 정도의 인식에 머물러 있기 때문이다. 현실이 이러니 산업계 대기업들의 사이버 보안 기업에 대한 M&A나 투자 역시 거의 없는 실정”이라고 말했다.

최근 글로벌 보안 시장에서는 팔로알토 네트웍스가 사이버아크를 250억 달러(한화 약 35조 원)에 인수하고, 구글 모회사 알파벳은 클라우드 보안 스타트업 위즈를 320억 달러(한화 약 44조 원) 규모로 인수하는 등 초대형 거래가 연이어 성사되고 있다. 시스코 시스템즈도 스플렁크를 280억 달러(한화 약 38조 원)에 인수했다. 이처럼 해외 보안 업계는 스타트업들도 수천억 원에서 수조 원에 달하는 가치를 인정받아 인수합병의 대상이 되는 추세에 있다.

규모 면에서 큰 차이가 있지만 국내 보안 시장에서도 M&A가 이뤄지고는 있다. 올해 7월 모니터랩은 위협 헌팅 기반 EDR 전문업체 쏘마를 인수했으며, 지난해 파수도 OT 보안 전문업체 파로스네트웍스를 인수하고 OT 보안 시장에 본격 진출했다. 지니언스는 지난 2023년 클라이온 지분 27.23%를 약 30억 원을 들여 인수했다. 하지만 이는 모두 보안업계 내부의 움직임일 뿐 주요 대기업들의 M&A를 포함한 대규모 보안 투자 사례는 전무한 상황이다.

이에 대해 한 국내 사이버 보안 업체 대표는 “보안 투자와 관련해 해외와 국내는 분위기가 그야말로 하늘과 땅 차이”라고 씁쓸해하며 “해외 주요 기업들이 사이버 보안 기업에 수십조 원 규모의 투자를 하거나 심지어 인수에 나서는 것과 달리, 국내 대다수 기업들은 보안을 여전히 비용으로만 인식하고 있는 게 사실이다. 특히 이번에 인수된 노조미 네트웍스가 개척하던 OT 보안 분야의 경우, 국내 제조업체들은 중요성에 대한 인식 자체가 부족한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노조미 네트웍스는 2016년 설립돼 OT 및 IoT 보안 분야에서만큼은 글로벌 선도기업으로 평가받고 있다. 2024년 7,469만 달러(한화 약 1,036억 원)의 매출을 기록하며 2022년부터 2024년까지 평균 33%의 매출 성장률을 보였다. 미쓰비시 전기는 이런 행보에 주목해 앞서 2024년 3월 노조미 네트웍스에 1억 달러 규모의 시리즈E 투자 라운드에 참여했고, 양사 간 기술 혁신과 시장 진출을 위한 협력관계를 구축해왔다. 이번 M&A는 노조미 네트웍스가 가진 OT 보안 기술력의 성장 가능성에 대한 확신 아래에서 이뤄졌다고 볼 수 있다.

한 국내 사이버 보안 업체 대표는 “세계에서 미국, 중국, 영국, 러시아, 이스라엘 정도를 제외하면 자체적으로 사이버 보안 기술력을 갖춘 나라는 우리나라밖에 없다는 사실을 강조하고 싶다. 이번 미쓰비시 전기의 1조 원 규모 OT 보안업체 인수 소식을 국내 산업계도 관심을 갖고 지켜봤으면 하는 바람이다”라면서 “글로벌 경쟁력 확보를 위해서는 기술 개발을 넘어 그 기술을 보호할 수 있는 보안 역량 강화에 대한 전략적 투자가 필수적이라는 것을 국내 산업계도 인식해야 한다. 국내 사이버 보안 업계인 중 한사람으로서, 이번 미쓰비시 전기와 같은 적극적인 보안 투자 소식이 국내에서도 들리기를 희망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