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오닉 등 의수 전문업체, 휴머노이드 로봇 핵심 ‘다재다능 손’으로 업종 전환

2025-06-24     조민수 기자
사이오닉이 제작한 손을 장착한 휴머노이드 로봇이 작업을 수행하고 있는 모습. 사진=사이오닉

[아이티데일리] 미국 휴스턴에 본사를 둔 휴머노이드 로봇 스타트업 페르소나AI(Persona AI)의 수석 엔지니어 매트 커니는 당초 로봇 분야에 몸담을 생각은 아니었다. 매사추세츠 공과대학교(MIT)에서 기계공학과 바이오메카트로닉스를 연구했던 그는 팔다리를 잃은 사람들을 돕기 위한 바이오닉 의족 개발에 몰두하고 있었다. 커니는 근육에서 나오는 신호를 감지해 반응하거나 자율적으로 움직여 자연스러운 동작을 구현하는 ‘인간을 위한 로봇 다리’를 만들고자 했다.

그러나 그런 ‘바이오닉스’라고 불리는 로봇을 개발하는 회사에 투자를 유치하기 위해 벤처캐피털과 이야기를 나누면서, 커니는 시장이 원하는 것은 인간의 팔다리를 대체하는 로봇이 아니라 ‘인간 그 자체를 대체하는 로봇’이라는 현실에 직면했다. 시장의 관심은 AI가 결합된 휴머노이드 로봇이었던 것.

커니는 방향을 틀어 페르소나AI의 수석 엔지니어로 취임했다. 페르소나AI는 휴머노이드 로봇 분야에서 보스턴 다이내믹스, 파운데이션 로보틱스, 피규어AI 등과 경쟁하고 있다.

샌디에이고에 본사를 둔 사이오닉(Psyonic)은 2021년 의수 제조사로 설립되어 방수 기능과 촉각 센서가 탑재된 로봇 손을 개발했다. 이 회사의 의수는 미국 의료 보험 제도인 메디케어의 혜택 대상으로 선정돼 환자들이 보험을 적용해 구매할 수 있다.

그러나 설립 직후, 사이오닉의 창업자 겸 CEO인 아딜 악타르는 자사의 의수에 새로운 시장이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메타의 인공지능(AI) 프로젝트에 제품을 공급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2023년, 휴머노이드 로봇 열풍이 불면서 수요가 급증했다. 현재 사이오닉의 사업 대부분은 앱트로닉(Apptronik) 등 로보틱스 기업을 위한 고성능 로봇 손의 공급에 집중돼 있다.

의수 개발 업체들이 휴머노이드 로봇 분야로 전환하는 데는 장점이 많다. 이 분야에 수억 달러의 자금이 투입되면서, 휴머노이드 로봇과 바이오닉 의수 모두에 필수적인 핵심 기술, 즉, 액추에이터, 센서, 제어 시스템 등의 비용이 낮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악타르는 “이러한 흐름 덕분에 의수 기술 개발이 가속화되고, 가격도 낮아질 수 있었다”고 말한다.

텍사스주 샌안토니오에 본사를 둔 알트바이오닉스(Alt-Bionics)의 창업자 겸 CEO 라이언 사베드라는 암벽등반 중 손을 다친 경험을 계기로 저렴한 의수 개발을 목표로 삼았다. 현재 이 회사는 사람에게 부착하는 의수보다 앱트로닉 등 휴머노이드 로봇 대기업에 더 많은 로봇 손을 공급하고 있다.

영국 리즈에 본사를 둔 코비(COVVI)도 손가락을 각각 움직일 수 있는 의수를 만들어 왔는데, 최근에는 휴머노이드 로봇 전용 로봇 손을 출시했다.

의수 전문 기업들의 휴머노이드 로봇 분야로의 전환은 ‘현명한 판단’처럼 보이기도 한다. 골드만삭스가 2024년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휴머노이드 로봇 시장 규모는 2035년까지 380억 달러에 달할 것으로 보인다. 반면 미국의 경우 사지 절단 또는 결손 환자의 수는 약 560만 명으로 시장 규모가 제한적이다. 게다가 이 시장은 미국 의료 제도를 통해서만 접근할 수 있고, 고급 제품의 FDA(미 식품의약국) 승인에는 수년의 시간과 막대한 자금이 소요된다.

물론 로봇용 의수를 만드는 사업이라고 해서 무조건 성공이 보장되는 것은 아니다. 로보틱스 기업 앰비 로보틱스(Ambi Robotics)와 자코비 로보틱스(Jacobi Robotics)의 공동 창업자이자 UC 버클리 캠퍼스 교수인 켄 골드버그는 포브스와의 인터뷰에서 “휴머노이드 로봇의 발전은 장기적으로 가능하겠지만, 현재의 일정과 열광은 다소 과장된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휴머노이드 로봇의 능력을 보여주는 영상은 종종 오해를 불러일으키며, 그 이면에는 항상 ‘마법사’가 있다는 것이다.

골드버그는 “요즘 로봇은 걷고 움직이는 데 상당한 수준에 도달했지만, 걷는 모습이 인간 같다고 해서 그것이 인간과 같다는 뜻은 아니다. 진짜 어려운 것은 손의 동작이다”라고 골드버그는 지적했다. 그래서 그의 회사는 물건을 집어 정리하는 데 특화된 로봇이나 물류 현장에서 팔레트를 들어 올리는 데 특화된 로봇을 개발하고 있다.

상자를 손으로 접거나, 옷을 개는 것처럼 손재주가 필요한 작업은 로봇으로서는 매우 어려운 작업이다. 그렇기 때문에 휴머노이드 로봇 기업들이 이 분야에서 바이오닉 의수 기술에 주목하고 있는 것이다. 골드버그는 “이런 작업을 진정으로 자동화하기까지는 아직 갈 길이 멀다. 로봇에게 손재주를 부여하는 건 대단히 높은 난이도다”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