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석] 트럼프 관세 정책, 미국 제조업을 되살릴 수 있을까…“다수가 회의적”
[아이티데일리]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미국 제조업에 대한 광범위한 투자를 유도하는 효과적인 수단으로 관세를 누차 강조해 왔다. 과연 트럼프의 지적은 맞을까. CNBC, 뉴욕타임스 등 다양한 매체에 보도된 내용을 검토해 미리 답하자면 전문가들의 반응은 ‘회의적’이다.
트럼프가 매번 강조하는 바는 관세로 국내는 물론 해외 기업들의 미국 내 투자가 크게 일어날 것이며, 이로 인해 대규모 일자리 창출은 물론 국내 기술 역량 향상으로 이어질 것이라고 역설했다. 신중론자들은 이로 인해 오히려 인플레이션이 심화될 것이며 경기가 침체될 것이라고 우려했지만 트럼프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제롬 파월 연준 의장과의 불협화음도 그 맥락의 연장이다. 트럼프는 신중론자에 대해 단기적인 고통은 일시적일 뿐이라고 공격했다.
현대자동차와 대만 TSMC는 수천억 달러 규모의 미국 내 투자 계획을 발표하며 트럼프 정책에 화답했다. 투자 이유로 관세를 직접 언급하지는 않았지만 이를 의식한 것은 분명해 보인다. 트럼프도 지난달 현대차의 투자 발표 당시 “관세 정책이 효과를 발휘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중소기업들이 불확실한 무역 정책 속에서 대규모 투자를 감행할지는 회의적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시각이라고 매뉴팩처링다이브는 전한다.
컨설팅 회사 웨스트 먼로의 공급망 전문가 제레미 탠크레디는 매뉴팩처링다이브가 개최한 최근 행사에서 “정책이 명확하게 정착되기 전까지는 기업들이 공급망을 급격히 바꾸는 등 과도한 결정을 내리지 말아야 한다”고 조언했다. “지금은 좋은 해결책처럼 보이는 결정이 정책 변화에 따라 미래에는 적절하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이다.
스콧 베센트 미 재무장관은 당연히 트럼프의 관세 정책을 강력히 지지하고 있다. 그는 이달 초 투자은행 제퍼리스와의 대담에서 관세가 연간 3000억~6000억 달러의 수익을 창출하고, 불공정한 글로벌 관행으로부터 미국 산업을 보호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폭스 뉴스 ‘터커 칼슨 쇼’에서 그는 관세가 “미국의 산업 복원을 위한 첫걸음”이라며, 보조금을 통해 산업을 지원하는 중국 경제 시스템에 대한 반격이라고도 말했다.
트럼프 행정부는 특히 관세 정책을 통한 반도체 산업의 국내 생산 확대에 열심이다. 바이든 전 대통령도 같은 정책을 폈지만, 수단이 달랐다. 바이든은 직접적인 보조금 지급을 통한 글로벌 반도체 기업의 국내 유치였다.
이 정책은 일부 성과를 거두고 있다. TSMC와 삼성전자가 미국에서의 생산 확대를 꾀하고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반도체 부문에서 최근 글로벌 톱의 위치까지 부상한 엔비디아가 미국 내에서 AI 칩 등을 대량 생산하기 위해 수천억 달러를 투자하겠다고 공언하기도 했다.
국제경제연구소의 게리 클라이드 허프바우어 선임연구원은 그러나 현재 한국과 대만, 일본, 중국 등 동아시아 지역에서 주도하고 있는 반도체 산업을 미국이 되찾아 올 가능성에 대해서는 높게 평가하지 않는다. 미국이 한국 수준으로 생산 비용을 낮추기는 어렵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게다가 반도체 산업을 제외하면 일반 대다수 기업들은 관세 정책의 불확실성으로 인해 투자를 유보하는 쪽을 선택할 가능성이 높다는 분석이다.
CNBC는 선진국 경제에서 제조업이 차지하는 비중 자체가 지속적으로 줄어들고 있는 마당에 관세 정책을 통한 제조업 부활은 산업의 전반적인 추세에 역행하고 있다고 전했다. 이 역시 틀리지 않은 지적이다.
미 통계청 발표에 따르면 GDP에서 제조업이 차지하는 비중은 지난 20년 동안 꾸준히 하락했다. 예컨대 1997년 전체 산업 가운데 제조업 비중은 16%였으나 2021년에는 11%로 줄어들었고, 지난해 3분기에는 약 10%까지 감소했다. 네트워크 서비스를 중심으로 하는 빅테크들이나 아마존과 같은 거대한 온라인 유통 기업의 사례만 보아도 그 추세가 드러난다. 월마트 등 오프라인 유통기업들도 온라인으로 전환하는 과정에 있다.
생산 비용을 감안하면 선진국의 임금 구조는 이미 제조업 경쟁력을 상실한 상황이다. 애플이 미국에서 아이폰을 생산하지 않고 대만과 인도, 중국 등지에 생산 기지를 구축한 이유도 그 때문이다. 트럼프 관세 정책이 시행되기 전인 며칠 전, 애플이 인도에서 수십억 달러 규모의 아이폰을 서둘러 본국으로 실어나르는 해프닝이 벌어진 것은 눈여겨 볼 대목이다.
그렇다면 트럼프가 주장하는 일자리 증가는 실효성이 있을까. 이 역시 긍정적이지 않다. CNBC에 따르면 미국의 일자리는 지난 3월 22만 8000개 늘어났다. 그러나 이는 관세 시행 전이다. 게다가 제조업 분야에서는 3월에 고작 1000개의 일자리가 증가했을 뿐이다. CNBC는 TSMC 등의 대규모 투자로 일자리가 수천 개 창출되겠지만, 실업률은 올해 말까지 4.7%까지 오를 가능성이 있으며 현재는 4.2% 수준이라고 전했다. 제조업 일자리는 수십년 동안 꾸준히 줄어들고 있는 게 현실이다.
전문가들의 지적은 현재의 관세 정책이 미국 제조업을 살릴 해법은 아니라는 것이다. 무역에 초점을 맞춘 해법보다는 미국 내 수요에 맞춘 경제 정책을 설계해야 한다는 지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