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터 인증③] 정부, 스마트홈 시장 활성화 위해 지원 정책 확대
개발 인프라 제공, 사전 컨설팅 등 국내 업체 경쟁력 확보 뒷받침
[아이티데일리] 다른 공급업체 간 사물인터넷(IoT) 호환성 문제는 완전한 스마트홈을 구현하는 데 걸림돌이었다. 이에 글로벌 빅테크가 속한 ‘CSA(Connectivity Standards Alliance)’는 스마트홈 생태계 활성화를 위해 통합 연결 표준 ‘매터(Matter)’를 개발하고 관련 인증제를 내놓았다. 제품의 호환성과 상호운용성을 보장하고, 민감 정보를 탈취하는 불법적 접근을 차단하는 보안성을 제공한다는 목표다.
해외에서는 여러 제품에 탑재된 매터였으나, 우리나라의 경우 인증을 위해 해외 업체를 이용해야 하는 애로사항으로 확산이 어려웠다. 지난해 한국정보통신기술협회(TTA)가 매터 국제 공인시험인증소를 개소하고, 드림시큐리티가 매터 기기 증명 최상위 인증기관 자격을 취득함에 따라 국내에서도 간편히 매터 제품을 출시하는 길이 열렸다. 매터 인증이 무엇인지 그리고 현재 국내외 시장 상황은 어떠한지 들여다본다.
보기 드문 국내 ‘매터’ 제품…문제는 ‘접근성’
CSA는 매터 1.0 버전 출시 7개월여 만인 2023년 5월 기준, 인증을 받은 제품 수가 1,135개에 이른다고 발표했다. 반면 우리나라 제품의 인증 취득은 2024년 3월까지 22회에 그쳤다. 이 같은 매터 인증의 더딘 국내 성장세를 두고 기업들은 떨어지는 접근성을 지적했다.
CSA는 매터 표준에 부합하는 제품을 업체에서 만들 수 있도록 공식 홈페이지를 통해 인증 버전, 제품 종류별로 기술 문서를 제공하고 있다. 하지만 많게는 170여 페이지에 이르는 문서들이 모두 영문으로 쓰여 있다는 점이 문제다. 업체들은 인증에 적합한 제품 연구개발을 위해 사양을 세세히 살펴봐야 하는데, 외국어 문서는 그 시작 단계부터 어렵게 만든다.
솔리티 문현준 팀장은 “CSA에서 공개한 매터 기술 문서는 모두 영문으로 작성된 데다 표현도 모호한 구석이 있어 내용을 해석하고 제품 연구에 적용하는 과정이 지난했다. 가령 도어록 기능 정의가 한두 문장으로 단순하게 쓰여 있다. 개발자들은 이를 어떻게 풀이해 제품에 적용해야 할지를 두고 혼선을 빚지 않을 수 없었다”고 어려움을 토로했다.
국내 기업들이 도움을 구할 만한 곳도 마땅치 않았다. 2023년까지만 해도 우리나라에는 매터를 위한 공인시험소도, 인증서 발급 기관도 존재하지 않았기에 국내에서 매터 인증을 알아볼 수 있는 뾰족한 수가 없었다. 외부로 눈을 돌린다 한들 CSA가 우리나라에 별도 지사를 두고 있지 않은 관계로 시차가 존재하는 해외 사무소에 연락하는 번거로움을 겪어야 했다.
이와 대조적으로 CSA는 중국 기업이 편리하게 매터 인증에 접근할 수 있도록 돕고 있었다. 매터 1.3버전까지 중국어 가이드라인을 제공했으며 중국 기업이 매터를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중국어 영상을 공식 유튜브 채널에 게재하기도 했다. 게다가 중국 내 CSA 회원사들로 구성된 CMGC(Connectivity Standards Alliance Member Group China)에서 컨퍼런스, 세미나 등 여러 활동을 활발히 이어가고 있다. 중국과 한국 간 매터 인증 제품 차이가 현격히 벌어질 수밖에 없는 실정이다.
지난해 문 연 국내 공인시험소…진입장벽 완화 기대
중국 업체들은 매터 인증 제품을 필두로 전 세계에 영향력을 넓혀가고 있다. IDC는 ‘글로벌 스마트홈 분기별 추적 보고서’를 통해 2025년 전 세계 스마트홈 기기 출하량이 9억 3,100만대, 그중 중국은 2억 8,100만 대를 기록할 것으로 예상했다.
클리오 김태환 이사는 “스마트홈 시장에서 활약 중인 많은 중국 업체가 수준 높은 기술을 보유한 데다 가격 측면에서도 경쟁력을 갖췄다. 한국 기업들이 중국과 경쟁을 벌일 수 있을지 확신이 들지 않는다”며 “정부 차원에서 스마트홈 시장에 관심을 가지고 매터 인증을 비롯한 관련 기술 및 제도를 확산할 수 있도록 선제적으로 나서야 한다”고 말했다.
국내에서도 과학기술정보통신부를 중심으로 매터 인증 확보를 통한 경쟁력 강화에 나서는 모양새다. 과기정통부는 지난 2023년 8월 국내 스마트홈 시장을 활성화하고 국민 삶의 질을 높인다는 목표로 ‘지능형 홈(AI@Home) 구축·확산 방안’을 발표했다. 이 같은 전략의 일환으로 기업들이 국내에서 매터 인증을 받을 수 있도록 TTA와 협력해 국제공인시험소 유치를 추진했다. 그 결과 2024년 3월 경기도 성남시 판교 기업지원허브에 소재한 TTA ‘글로벌 IoT 시험인증센터’에 매터 국제 공인시험인증소가 문을 열었다.
지난해부터 매터 인증서를 발급하는 기기 증명 최상위 인증기관(PAA)도 국내에 마련됐다. 인증 보안 전문기업 드림시큐리티는 2023년 12월 국내에서 처음으로 PAA 지위를 획득했으며, 지난해 3월부터 본격적인 매터 정품 인증서(DAC) 발급 서비스를 개시했다.
특히 드림시큐리티는 ‘논-VID 스콥드 PAA(Non-VID Scoped PAA)’ 자격을 획득했다. PAA는 자사 제품에 인증서를 발급하는 ‘VID 스콥드 PAA(VID Scoped PAA)’와 복수 회사 제품에 인증서를 발급할 수 있는 ‘논-VID 스콥드 PAA’ 두 종류가 있다. 전자는 제조사에서 직접 PAA 자격을 얻을 경우가, 후자는 인증서 발급을 제공하는 외부 서비스가 해당한다.
제조사는 연간 발급 수량과 운영 비용을 PAA 종류를 선택할 수 있다. 하지만 대부분 논-VID 방식을 이용하는 편이다. PAA는 매터 제품 간 보안에서 핵심을 담당하기에 CSA의 엄격한 규정을 준수해 시스템을 마련해야 한다. 개별 업체가 조건에 부합하는 체계를 구성하고 이를 운영하는 데 드는 비용을 감수하기엔 어려움이 따른다. 대부분 제조사는 논-VID PAA를 통해 인증서를 취득한다. 현재 전 세계에 논-VID 스콥드 PAA는 13곳이 있으며 국내 기업으로는 드림시큐리티가 유일하다.
국내에서 공인시험소와 정품 인증서 발급 서비스를 모두 이용할 수 있게 됨에 따라 매터 인증이 확산하는 밑바탕이 만들어졌다. 이는 우리나라 기업이 겪어온 접근성 문제를 해소하는 데 도움이 될 전망이다.
원활한 인증 절차 위한 인프라, 컨설팅 제공
인프라 차원의 해결책뿐 아니라 구체적 지원 방안도 나타나고 있다. TTA는 매터 인증을 준비하는 업체들에 초기 계획 단계부터 상용화 전까지를 아우르는 지원을 제공하고 있다. 초기 단계에는 스마트홈 시장 현황, 최신 기술 규격 등 주요 정보를 안내하며, 그다음으로 △시험·검증 인프라 사용 △신뢰성·성능 시험 △제품 장애 빈도 등 안전성 검증 △분야별 기능 및 데이터 시험 장비 등 기업이 원활히 매터 인증 절차를 마무리할 수 있도록 돕고 있다.
제품 개발 과정에서 빚어지는 시행착오를 최소화하기 위한 컨설팅 서비스도 제공한다. TTA에서는 매터 제품·서비스 설계에 필요한 기술 요소와 인증 절차에 대한 표준 자문을 지원한다. 기업들은 와이파이(Wi-Fi), 스레드(Thread), 블루투스(Bluetooth) 등 다양한 통신 기술을 사용하는 스마트홈 기기 간 상호연동성을 검증하는 테스트나 기술 관련 애로사항을 해결하는 방안에 대해 전문적 도움을 받을 수 있다. 이 외에 스마트홈 전시회 부스 지원, 수출 지원사업 연계로 인증 제품을 시장에 확산하는 기회까지 제공된다.
접근성 못지않게 비용 문제 역시 기업들이 매터 인증을 확보하는 데 걸림돌로 작용한다. CSA 홈페이지 기준으로 매터 인증에 필요한 ‘어답터(Adopter)’ 회원으로 가입하기 위해선 연간 7천 달러(약 1,026만 원)를 내야 한다. CSA 연회비 외에도 시험 검증, 인증서 발급에 이르는 과정을 거치며 기업들은 많은 돈을 소모하게 된다. 매터 인증이 해외 시장 진출을 고려한 포석임을 고려해도 이 정도 비용 소모는 규모가 작은 중소기업에 적잖은 부담으로 다가온다.
이 같은 비용 문제를 해결할 수 있도록 TTA는 매터 인증 취득 과정에서 드는 비용 지원 제도를 운영 중에 있다. 현재 과기정통부 지원을 받아 ‘지능형 홈 시험인증 기반 구축’ 사업을 수행 중이며, 해당 사업의 일환으로 매터 무료 개발 지원, 시험인증 수수료 할인 등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TTA 지능형IoT팀 장영재 팀장은 “지난해 공인시험소를 유치한 이후 홍보를 이어오고 있으며 올해 들어 조명, 도어록, 센서 등 다양한 분야의 기업들로부터 받는 문의가 늘고 있다”면서 “시장을 더욱 활성화하기 위해 기업들로부터 매터 인증을 비롯해 스마트홈 사업에 있어 애로사항은 무엇인지 청취하고 있으며, 의견을 모아 주관 부처인 과기정통부에 전달하고 함께 해결 방안을 모색 중이다”라고 밝혔다.
Q. 클리오는 어떤 회사인가.
클리오는 2004년 설립된 기업으로 스마트홈 관련 장치를 개발 및 납품하고 있다. 주로 대우건설, 현대건설 등 건설사 신축 아파트에 조명 스위치, 대기 전력 자동 차단 콘센트를 비롯한 홈 네트워크 연동 제품을 공급해 왔다. 홈 네트워크와 연계하기 위해선 아파트 내 설치된 월패드를 거쳐야 하는데, 자사 제품은 코맥스, 코콤, 현대통신 등 여러 업체 제품과 호환성을 갖추고 있다.
주요 사업 분야는 배선 기구, 홈 네트워크, 플랫폼 등 크게 세 가지로 나뉜다. 우선 배선기구사업부는 일상에서 흔히 접하는 텀블러 스위치, 콘센트, 통합 전기 제어 부품을 담당한다. 홈 네트워크 사업부에서는 유무선 통신을 통해 원격으로 제어, 모니터링이 가능한 제품을 개발하며, 플랫폼 사업부는 센서로 연결된 IoT 제품을 모바일, PC에서 관리할 수 있는 서비스를 만들고 있다.
Q. 매터 인증을 취득하게 된 계기는.
가스 타이머, 제어 플러그, 감지 센서 등 홈 네트워크 제품을 연계함으로써 가정 내 스마트홈 생태계를 구성할 수 있는 플랫폼 ‘홈트리’를 모바일 애플리케이션으로 개발해 제공하고 있다. 하지만 열심히 준비한 사업이었으나 운영하는 데 한계를 느끼는 지점이 많았다. 제품 마케팅도 쉽지 않았고 이미 시장에 대기업들이 영향력을 펼치고 있어 중소기업 규모로는 설 자리가 부족하다고 느꼈다. 플랫폼 사업을 어떻게 이끌어 갈지 고민하는 과정에서 매터 인증을 대안으로 선택했다.
매터가 가진 가장 큰 장점은 상호운용성이다. 과거에는 대기업 플랫폼별로 다르게 요구하는 통신 방식에 맞게 제품을 별도로 생산해야 했다. 이는 제품 제작에 공수도 많이 들고 효율까지 떨어지는 방법이었다. 매터 인증은 한 제품만 만들어도 여러 플랫폼에 호환이 가능하기에 시장 확대와 생산 효율성 제고라는 두 가지 긍정적 효과를 거둘 수 있는 선택지다.
Q. 인증 취득 과정에서 어려웠던 점은.
2019~2020년경에 매터 표준을 접하고 내부적으로 제품 연구개발을 조금씩 이어왔다. 일찌감치 준비에 나섰기에 기술력은 빠르게 갖출 수 있었는데 문제는 인증 제도였다. 어떤 과정을 거쳐서 인증을 취득하는지 알 수 있는 방법이 마땅히 없었다. 2023년 9월께 매터 제품 개발을 마쳤는데 그 시점에서야 인증 취득을 위해 CSA 회원사로 가입해야 한다는 사실을 알았다. 그뿐이 아녔다. 당시 국내에 공인시험소가 없는 관계로 해외를 거쳐야 했는데, 이 과정에서 꽤 큰 비용을 치를 수밖에 없었다. 우여곡절 끝에 시험을 마치고 인증을 획득한 것으로 모든 일이 끝난 줄 알았는데 그렇지 않았다. 뒤늦게 인증서를 제품에 부착해야 한다는 사실을 알게 됐고 이를 위한 과정을 또 거쳐야만 했다.
다행히도 그 무렵 드림시큐리티가 정품 인증서 발급 서비스를 시작했다. 클리오는 드림시큐리티와 업무협약(MOU)을 체결하고 매터 인증서와 관련된 절차를 진행하는 데 도움을 받았다. 이를 통해 발급하는 데 드는 비용을 절감했으며, 공정 중 인증서를 부착하는 과정에서 겪는 애로사항도 함께 해결하고자 노력하고 있다.
아울러 과기정통부와 정보통신산업진흥원(NIPA)에서 추진한 ‘2024년도 지능형 홈 서비스 실증·확산 사업’에 선정돼 개발 지원금을 받았다. 이와 함께 TTA로부터 시험 과정과 비용에 대한 도움을 받아 조금이나마 수월하게 매터 인증 절차를 거칠 수 있었다.
Q. 매터 인증이 확산하기 위해 개선돼야 할 점은.
중국에서는 많은 업체가 매터 인증을 취득하고 이를 발판 삼아 전 세계 시장으로 영향력을 넓히고 있다. 매터 인증은 스마트홈 생태계에 참여하고자 하는 중소기업에 필요한 요소인데, 정작 규모가 작은 기업이 접근하기에는 기술이나 비용 측면에서 어려움이 많다. 클리오는 일찍이 기술 연구에 착수해 제품 개발을 마무리한 덕분에 조금 상황이 나았지만, 다른 기업이 제품 개발에서부터 시작해 협회 가입, 시험 검증, 인증서 발급까지 모든 과정을 거치기엔 힘들 것이다.
매터 인증을 확산함으로써 국내 스마트홈 시장을 활성화하기 위해선 정부가 적극적으로 나서서 주도해야 한다. 경쟁 시장인 중국에 뒤처지지 않게끔 지원 제도를 마련한다면, 기업들도 개발 과정에서 시행착오를 줄일 수 있으며 이를 통한 비용 절감 효과도 기대할 수 있다. 정부가 마중물 역할을 하며 시장의 물꼬를 틔운다면 많은 기업이 참여하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