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 ‘인터배터리 2025’, “반도체 잇는 한국의 차세대 간판은 배터리”

LG에너지솔루션, 삼성SDI, SK온 등 배터리 3사, 원통형 등 차세대 제품 대거 전시 통상 압박 극복·기술 차별화 위한 정책적 지원 절실

2025-03-10     조민수 기자
인터배터리 2025 전시장 전경. 사진=조민수 기자(이하 사진 동일)

[아이티데일리] 코엑스에서 열린 '인터배터리 2025'는 한국의 배터리 산업이 세계 최고 수준임을 다시금 일깨워 준 행사였다. 국내라는 지역적인 한계에도 불구하고 전시 규모는 글로벌 최대급이라는 평가를 받을 만했다.

한국을 비롯해 전 세계 배터리 시장을 이끄는 미국, 중국, 일본, 영국, 네덜란드 등 13개국에서 688개 업체가 2330개 부스를 꾸며 참가했다. 참관 인원은 7만 7000명. 이 역시 역대급이다. 배터리 강국 중국에서 BYD 등 80개에 달하는 업체가 참가한 것은 의미가 컸다. 미국과 기술 전쟁 중인 중국이 대처 방법으로 한국과의 전략적 협력을 타진하는 것 아니냐는 해석도 가능한 대목이다.

행사에 첫 참가한 중국 BYD 부스 .

전시와 동시에 열린 '더 배터리 컨퍼런스'는 선두 3사가 이끌었으며, 이들의 입에 1000명 이상이 몰려 귀를 기울였다. 동시에 열린 ‘배터리 잡페어’에도 취준생들이 대거 몰리면서 배터리 산업에 대한 이들의 인기를 실감케 했다.

영국과 네덜란드가 대규모의 독자관을 운영하고, 한국과의 협업을 꾀한 것은 LG에너지솔루션, 삼성SDI, SK온 등 세계 최상위권에 포진한 배터리 3사의 역량을 간접적으로 보여주는 모습이었다. 세계 시장을 이끄는 선두 주자의 중요성이 이번 전시회에서 분명하게 드러난 것으로 해석된다. 첨단 전기·전자 분야에서 한국은 반도체와 스마트폰 외에 크게 부각할 아이템이 없었지만, 이번 전시회는 배터리가 그 뒤를 이은 효자 품목이 될 수 있음을 보여 주었다.

영국을 비롯한 여러 외국 기관과 회사들이 전시회에 참가했다.

최근 배터리 업계에 불어닥친 어려움이 엿보이기도 했다. 전기차 판매가 주춤해지면서 배터리 수요가 둔화된 때문일 것이다. 여기에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전기차 지원 삭감 및 화석연료 산업 지원 조치도 큰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반도체가 ‘산업의 쌀’로 불렸던 것처럼 배터리 역시 차세대 산업에서 뺄 수 없는 ‘약방의 감초’이기 때문에, 뜨거운 열기와 관심이 전시회를 통해 나타났음은 부인할 수 없다.

한국 배터리 3사는 이를 인지한 탓인지 앞으로의 개발 방향과 신제품, 시장에서의 대응 방침을 현장 또는 보도자료를 통해 밝히면서 앞으로의 행보를 암시해 주었다.

태양광으로 작동하는 LG에너지솔루션의 ‘앱테라 모터스’ 차세대 모빌리티 차량.

LG에너지솔루션은 지금까지 공개하지 않았던 차세대 원통형 46시리즈 배터리를 전시했다. 회사의 기존 배터리에 비해 5배 정도의 출력을 자랑한다. 원통형 배터리는 앞으로 시장의 주력 제품으로 평가받고 있다. 기존 제품보다 더 가볍고 성능은 뛰어나면서 부품 개수는 줄어든 '셀투팩'(CTP) 기술도 선보였다. 셀투팩은 배터리를 생산할 때 중간 단계 공정인 모듈을 제거하고, 대신 셀을 배터리 팩 내부에 직접 조립하는 첨단 기술이다. 이를 적용한 솔루션이 이번 전시장에서도 큰 관심을 받았다.

여기에 더해 셀 어레이(CAS, Cell Array Structure), 바이폴라, 나트륨 이온, 전고체 배터리도 선보였다. 태양광으로 작동하는 ‘앱테라 모터스’ 모빌리티 차량은 이 자리에서도 최고의 인기를 끌며 관람객들의 시선을 집중시켰다. 이 차량은 올 초 CES에 전시해 주목받기도 했다.

액침냉각, 차세대 무선 BMS, S팩 플러스 등 세 가지 안전기술이 적용된 SK온의 전기차 하부 모습.

SK온은 회사의 주력 제품인 파우치형·각형·원통형 배터리를 모두 전시하고 시장의 다양한 요구에 부응할 수 있는 기술력을 강조했다. 특히 실물 크기로 만들어진 모형 46파이 원통형 배터리는 관계자들의 주목을 끌기에 충분했다. 원통형 배터리는 현재 파일럿 라인을 가동 중이며, 현재 상용화를 위한 최적화가 진행되고 있다.

이와 함께 무선 배터리 관리 시스템(BMS)과 이 기술이 접목된 'S팩 플러스‘ 솔루션을 대중에게 공개했다. 회사 측은 고분자 산화물 복합 배터리를 올해 개발하고 2028년 상용화할 방침임을 밝혔다.

삼성SDI의 레벨-4 자율주행셔틀 로이.

삼성SDI는 파트너사와 공동으로 로봇과 자율주행차 등 미래형 제품을 전시하고 배터리의 미래 가능성을 보였다. 전시 부스에서는 현대기아차와 공동 마케팅의 일환으로 로보틱스랩의 로봇 달이(DAL-e)와 모베드(MobED)를 배치해 참관객들을 맞았다.

서비스 로봇인 달이는 환영 인사와 함께 삼성SDI의 배터리에 대해 소개하는 등 실제 시연을 통해 참관객들과 소통했다. 모베드는 납작한 직육면체 모양의 바디에 독립적인 기능성 바퀴 네 개가 달려있어 불규칙한 노면이나 장애물이 있는 곳에서도 안정적으로 빠르게 주행이 가능하다고 한다. 레벨-4(운전자 없는 자율주행 기준) 자율주행셔틀 '로이(ROii)'도 전시했다. 모두 배터리로 작동하는 로봇과 셔틀이다.

불규칙한 노면이나 장애물이 있는 곳에서도 주행이 가능한 모베드 로봇.

삼성SDI는 또한 차세대 46파이(지름 46mm) 원통형 배터리의 라인업을 전격 공개했다. 46파이 배터리는 기존의 21700(지름 21mm, 높이 70mm) 원통형 배터리보다 에너지밀도와 출력 등을 대폭 향상시킨 것으로, 향후 원통형 배터리 시장을 주도할 것이라고 회사는 밝혔다.

전시 품목을 보면 원통형 배터리를 둘러싼 3사의 2라운드 경쟁이 본격적으로 펼쳐질 것으로 보인다.

앤비젼 검사장비.

소재와 장비 개발 기업들의 전시도 눈길을 끌었다. 에코프로는 인도네시아 통합 양극재 법인, 전고체용 신소재 개발 등 미래 성장동력을 밝혔다. 인도네시아 술라웨시주에 통합 양극재 법인을 연내 설립하고 제련-전구체-양극재로 이어지는 밸류체인을 구성하겠다는 계획을 공개한 것. 포스코퓨처엠은 LMR(리튬망간리치) 양극재를 선보였는데, 이 제품은 LFP 배터리에 비해 가성비가 뛰어나다.

배터리 산업은 전시회에 참가한 13개국을 중심으로 치열한 각축전이 펼쳐지게 된다. 특히 중국은 세계 시장 1위 CATL을 정점으로 부품과 소재를 망라하는 수직 계열화를 꾀하고 있다. 중국의 배터리 기술은 이미 미국을 앞서 있다. 일본도 테슬라에 배터리를 공급하고 있는 파나소닉을 비롯해 다수 업체가 뛰어들고 있다. 소재와 장비 기술은 세계 최고로 꼽힌다.

에코프로 전시 부스.

이에 따라 배터리 산업에 대한 정책적 지원의 필요성도 강하게 제기됐다. 특히 올해는 트럼프 2기 행정부의 정책에 대응한 미국과의 교섭이 산업 활성화를 위한 가장 중요한 난제이자 반드시 해결해야 할 우선순위로 꼽혔다. 이는 정부와 정치권이 풀어 주어야 할 몫이다.

관세를 무기로 한 미국의 통상 압박이 지속될 경우, 미국 현지에서의 생산이 최선이겠지만, 다른 배터리 선진국 및 기업과의 긴밀한 협력을 통한 대응도 가능한 대안이 될 수 있다는 권고다. 이번 행사에 참가한 외국 기업들이 한국 기업과의 협력을 희망하고 있는 만큼 이를 기회로 활용해야 할 것이라는 지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