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txt] 이미 밀린 AI 패권 경쟁, ‘한국 특화 AI 진흥 전략’ 고심할 때
AI 모델 토대로 중동 및 아시아 국가 연대…‘AI 개발국’ 인식 확대해야
[아이티데일리] 인공지능(AI)이 국가 기술 경쟁력을 대변하는 시대다. 전통적인 산업 경제의 기반이 디지털 경제로 변화하고 있다. 또 디지털 경제 패권을 잡고자 각국은 핵심 전략 기술로 AI를 선정, 법·제도를 마련하고 전략적인 투자를 단행하며 동분서주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우리나라의 AI 전략을 보면, 과거 ‘인터넷 강국’이라는 명성이 초라해 보일 정도로 미약하고 성급하다는 느낌이 든다.
1,998조 7,000억 원, 143조 3,290억 원, 3조 7,559억 원, 5,166억 원. 중국, 미국, 프랑스, 우리나라 순으로 2024년 각 정부가 AI 산업을 위해 투자하겠다고 발표한 금액이다. LLM(거대언어모델) 자체 개발 기업을 보유한 나라인 미국과 중국, 프랑스와 비교해 보면 우리나라의 AI 산업 투자가 상당히 부족함을 보여준다.
AI 진흥 법·제도의 경우에도 미국은 ‘국가인공지능이니셔티브 법’, ‘정부인공지능법’, ‘미국 인공지능진흥법’, ‘인공지능 교육법’, ‘바이든 행정부의 AI 관련 행정명령 제14110호’ 등 6가지 법안을 제정하며 산업 활성화에 힘쓰고 있다. 중국은 ‘차세대인공지능발전계획’을 발표했고, ‘생성형 인공지능서비스 관리 잠정방법’을 공포하며 국가 중심의 AI 기술 및 산업 활성화에 많은 관심을 쏟고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 2019년 ‘인공지능 국가전략’을 수립하고 2023년 ‘전 국민 AI 일상화 실행계획’을 통해 진흥을 꾀하고 있다. 하지만 로드맵의 주요 내용과 지원 방향이 분산적이고 이용자와 소규모 기업, 정부 업무 개선에만 초점이 맞춰졌을 뿐, AI 산업의 핵심인 거대 AI 모델 개발은 담기지 않았다.
특히 우리는 EU의 ‘AI 액트’를 차용한 AI 기본법을 제정, 가이드라인이나 자율규제와 같은 유연한 접근 방식이 아닌 법률을 통한 강력한 규제를 지향하고 있다. 이는 AI 시스템을 영향력에 따라 분류하고, 높은 영향력을 가진 시스템에 대해서는 엄격한 규제를 적용하기에 AI 산업 진흥과는 비교적 거리가 멀다. 이에 대해 한 AI 기업 관계자는 “EU AI 액트는 산업, 학계는 물론 유럽연합 내 각국의 논의를 거쳐 합의과정이 담겼다. 하지만 한국은 신속한 대응과 규제 공백 해소에만 초점이 맞춰졌고 충분한 검토 없이 졸속으로 추진됐다. 정부의 각 부처도 데이터, 생성물, 개인정보와 관련한 규제를 개별적으로 추진하고 있어 AI 기업들의 도전과 혁신을 저해하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고 꼬집었다.
각국이 직면한 경제적·정치적 상황이 다르기에 한국의 AI 전략과 투자가 미약한 것을 무조건 비판할 수는 없다. 하지만 적어도 AI 패권 경쟁 안에서 한국이 취할 수 있는 전략을 고민하려는 노력조차 없다는 점은 비판받아 마땅하다.
미국, 중국, 프랑스에 이어 우리나라도 생성형 AI 자체 모델을 보유한 기업이 있다. 이를 살려 중동이나 아시아 국가들과의 연대를 통해 생성형 AI 기반 소버린 AI(Sovereign AI) 기술과 산업, 생태계를 구축하며 ‘AI 개발국’으로서 자리매김하는 등의 전략을 펼칠 수 있다. 정부는 국내 AI 산업의 현안과 강점을 진단하고 민간 기업들의 기술 개발과 글로벌 진출을 지원하는 정책을 체계적으로 마련해 혁신 성과를 도출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고자 노력해야 한다.
AI 패권 경쟁에서 한국은 뒤처지기 시작했다. 이제라도 우리나라가 가진 강점을 살린 ‘AI 진흥 전략’을 펼쳐야 할 시점이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