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단] 40억 이상 공공SW사업, 전문평가 강화...수시과업변경 등 문제 해결될까

전문 평가 통해 대규모 사업 원활한 진행 기대되지만 수요기관 전문성 제고 및 평가 방법 구체화는 숙제

2024-11-30     나호정 기자
조달청이 지난 9월 27일 서울지방조달청에서 소프트웨어 기업을 대상으로 ‘조달청 협상에 의한 계약 제안서평가 세부기준’에 대한 설명회를 진행한 모습. (사진=조달청)

[아이티데일리] 최근 정부가 40억 원 이상의 공공 소프트웨어(SW) 사업에 대한 전문 평가를 강화하기로 결정했다. 그동안 공공 SW 사업에서 제기돼 온 전문성 부족, 수시 과업 변경으로 인한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한 조치로 해석된다. 이번 조치가 실제로 이러한 문제들을 해결할 수 있을지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다만 일부 개정된 내용 중 몇몇은 보다 구체적으로 보완해 평가에 포함해야 한다는 필요성도 제기되고 있다.

개정 배경에는 ‘행정망 마비 사태’

개정은 지난 2023년 11월에 발생한 ‘행정망 마비 사태’에 기인한 것으로, 이에 대한 후속조치의 일환으로 풀이된다. 특히 대규모 SW 사업에 있어 가장 중요한 부분이 바로 예산에 맞춘 적절한 규모를 정하는 것인데, 행정전산망 장애 사태가 발생한 뒤부터 점차적으로 공공 SW 시장에 대한 개선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결국 올해 FP(기능점수) 단가 인상과 더불어 관계 기관에서는 공공 SW 사업에서 수시 과업 변경 문제 해결에 대한 연구도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 등 관련 기관의 경우 공공 SW 사업에서 발생하는 과업변경과 관련해 구체적인 기준을 마련하고 예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연구가 이뤄졌다. 공공 SW사업에서 가장 문제가 되는 것이 수요기관의 불명확한 요구사항으로 인해 잦은 변동이 일어나는 데, 이에 대한 구체적 판단 기준을 마련하기 위해 요구사항 명세서(RFP) 분석, 사례 분석, SW 공학 방법론 적용, 전문가 집단 인터뷰(FGI) 등을 추진한 것으로 나타났다.

앞서 업계에서는 개선 방향으로 과업분할구조(WBS)를 중심으로 한 과업상세화, 발주 시 FP 공개, 과업변경 판단 기준의 명확화 방안 등을 언급하기도 했다. 과업변경이 이뤄질 때 추가 예산 확보가 어려운 것도 문제로 지적됐다. 예산 부족과 예산 삭감, 예비비 부재, 적은 낙찰차 금액 등이 주요 문제로 나타났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연구팀은 SW 예비비 예산 반영, 업무범위 조정에 따른 예비비 확보, 낙찰차액 활용 방안 등을 제시하기도 했다.

또 빈번한 과업변경으로 인해 예산이 부족할 경우, 필요한 기능 개발 및 개선이 어려운 상황이다. 연구에서는 예산 제도 분석과 SW 공학 방법론을 적용해 과업 우선순위 설정 및 프로젝트 진행 중 과업변경에 따른 예산 사용 모니터링, 우선순위가 낮은 업무의 조정 방안 등을 제시했다.

사업자와 발주자 간의 분쟁, 불명확한 책임 소재 문제 역시 공공 SW사업에서 자주 발생하는 이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연구팀은 분쟁 사례를 분석하고 SW 특성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발주자, 사업자, 사용자 등 각 주체의 책임과 역할을 명확히 정의하고 발주담당자에게 인센티브를 제공하는 방안이 지속적으로 등장했다.

또 과업심의위원회가 형식적으로 운영되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제3기관에 과업심의를 위탁하는 방안도 논의됐다. 현재 운영 방식의 장단점을 분석하고, 전문성과 객관성, 공정성을 고려한 제3기관 과업심의위원회 운영 및 과업심의 업무 개선 방안이 언급되기도 했다.

조달청 협상 계약 평가…“기업 부담 낮추고 공정성 높인다”

조달청에 따르면, ‘조달청 협상에 의한 계약 제안서평가 세부기준’을 개정해 올해 9월부터 시행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번 개정은 대규모 중요 소프트웨어사업 평가의 전문성을 높이고 수의계약 제안서 적합성 평가 대행으로 수요기관의 전문성을 보완해 공정한 경쟁을 유도하기 위해 마련됐다.

개정된 제안서 평가 세분 기준은 중소기업의 과도한 제안서 발표 비용 부담을 경감하고, 기술용역에 협상계약을 적용하는 것이 핵심이다.

첫째로 대형 소프트웨어사업에 전문평가제도를 도입해 기술력과 역량 있는 사업자가 선정될 수 있도록 한다. 정보기술개발·정보보호·데이터구축·디지털기술 등 4개 전문영역은 심층평가가 필요한 경우 관련 분야의 전문가들이 전담해 평가하게 된다.

최종 평가는 공통평가(60%) 및 전문평가(40%)를 각각 제안서 평가방식에 따라 평가하고 평가점수를 산출해 합산한다. 또 사업금액이 40억 원 이상인 소프트웨어사업(단, 유지관리사업은 100억 원 이상)에 적용한다.

둘째로 수요기관이 수행하는 수의계약 적합성 평가를 조달청이 대행할 수 있는 근거를 마련했다. 수요기관이 수의계약 제안서 적합성 평가를 요청하는 경우, 조달청이 정성평가를 대행해 수요기관의 부족한 전문성을 보완해 평가 관련 갈등 소지를 선제적으로 차단한다.

셋째로 제안서의 허위 내용 판단 절차를 명확히 하고 타 업체에 대한 비방 내용을 제안서 등에 기재 또는 발표할 시에는 불이익을 부여할 수 있도록 개선한다. 허위내용에 대해서는 내부 심의를 통해 허위 내용과 입찰 결과에 미치는 영향도에 대해 판단한다. 이와 더불어 평가위원의 타사 비방 여부 평가를 통해 기술능력평가 감점(0.1점) 등의 패널티를 부여한다.

제안서 또는 발표 자료에 허위 내용, 타업체 비방 내용이 포함된 경우 소송 제기 등에 따른 행정력 낭비, 장기간 계약체결 지연 등 수요기관의 사업추진에 차질이 발생하는 것을 제도적으로 보완해 입찰 분쟁을 예방하고 공정한 경쟁환경을 조성한다.

넷째로는 온라인 평가 시 제안서 발표 기준금액을 ‘고시금액(2.2억 원)’에서 ‘5억 원 이상’으로 상향, 제안서 발표 없이 입찰에 참여할 수 있는 대상 사업을 확대했다. 그동안 일부 역량이 부족한 중소기업들은 제안서 작성을 전문업체에 의뢰해 추가 비용이 발생했지만 이번 개정으로 매년 4천여 개의 기업들이 약 195억 원의 입찰 비용을 절감할 것으로 조달청 측은 예상하고 있다.

조달청 관계자는 “대규모 사업에서는 평가 전문성 제고와 공정경쟁 환경을 강화하고 소규모 사업에서는 입찰비용 부담을 낮춤으로써 보다 기술력 있는 업체를 선정할 수 있게 됐다”고 하면서 “앞으로도 대형 소프트웨어 사업, 기술용역 사업 등이 성공적으로 수행될 수 있도록 현장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며 지속적으로 제도를 개선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사업 착수 전 명확한 과업 범위 지정 기대

수요기관의 요구나 환경 변화에 따라 과업이 자주 변경되면 사업의 범위가 불명확해지고, 이에 따라 비용과 일정이 크게 영향을 받을 수 있다. 이러한 문제는 사업자의 예측 가능성을 저해하고, 사업 진행의 차질을 빚게 하는 주요 원인 중 하나였다.

때문에 공공 SW 사업과 관련해 과업변경에 대한 대가를 받지 못해 발주기관을 상대로 수주 업체들의 소송이 발생하고 있다. 공공사업에 참여한 업체들은 그동안 부당한 대우를 받아도 다음 사업을 위해 감수할 수밖에 없었지만 상황이 변하고 있다. 더 이상 손해를 감수할 수 없다는 분위기가 소프트웨어 업계에서 퍼지면서 소송으로 이어지고 있다.

올해 1월 CJ올리브네트웍스(이하 CJ)와 KCC정보통신(이하 KCC)이 국방부에 제기한 부당이익금 반환 소송 1심에서 법원은 수주처의 손을 들어줬다. 국방부는 CJ에 약 250억 원, KCC정보통신에 약 240억 원 정도를 지급하게 됐다.

또 LG CNS 컨소시엄은 보건복지부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다. 컨소시엄 측은 추가 과업으로 인한 수익성 하락을 이유로 들면서 지난해 초 사업 중도하차를 통보했다. 대규모 공공 SW 사업에서는 이례적인 일로 1년여 만에 결국 소송으로 이어졌다.

이런 가운데 개정안에서 수시 과업 변경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전문 평가와 수요기관의 전문성 보완을 강화하는 것은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전문 평가가 강화되면서 사업 초기 단계에서의 요구 사항 분석과 기술적 검토가 보다 철저하게 이뤄질 수 있다는 분석이다. 과업 변경의 빈도를 줄이고, 과업 변경이 필요한 경우에도 그 이유와 필요성을 명확히 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해줄 것으로 보인다.

계속 언급되는 내용이지만 업계는 “변동과업이 생길 때마다 그에 따른 보상 방안을 마련하든지, 변동과업 자체가 생기지 않도록 사업 시작 전부터 규모와 예산을 적절하게 편성해야 한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이런 가운데 수요기관의 수의계약 적합성 평가를 조달청이 대행할 수 있는 근거를 마련함으로써, 수요기관의 전문성 부족으로 인한 불명확한 과업 변경 요청을 줄이는 데 기여할 전망이다. 수요기관이 기술적 지식이 부족해 과업 변경을 자주 요청하는 경우가 많았는데, 조달청이 이러한 평가를 대행함으로써 보다 체계적이고 명확한 기준을 바탕으로 과업 변경 여부를 판단할 수 있게 될 것으로 보인다.

특히 사업 초기부터 관련 분야 전문가들이 참여해 요구사항을 철저히 분석하고 이를 바탕으로 명확한 과업 범위를 설정함으로써 사업이 진행되는 동안 수시로 변경되는 요구사항을 최소화할 수 있다. 사업자의 예측 가능성을 높이고, 사업의 일정과 비용을 보다 안정적으로 관리할 수 있도록 돕는 긍정적인 효과를 가져올 것이라는 평가도 존재한다.

타사 비방 패널티 및 수요기관 전문성 보완 되짚어 봐야

다만, 앞서 새롭게 개정된 제안서 평가 세부 기준에서 등장한 타사 ‘비방에 대한 패널티’와 관련해 이러한 규정은 공정한 경쟁을 위해 필수적일 수 있지만, 문제는 이 패널티의 적용 기준을 보다 명확히 정의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한 업계 관계자는 “타사 비방의 기준이 명확하지 않다면 어떤 발언이나 내용이 비방에 해당하는지에 대해 주관적 판단이 개입될 가능성이 높다”며 “평가 과정에서 불필요한 논쟁을 초래할 수 있으며, 감점이 적용되는 경우 해당 기업은 불공정하다고 느낄 수 있다”고 말했다. 덧붙여 그는 “타사 비방에 대한 모호한 기준으로 인해 정당한 비판조차 비방으로 간주될 가능성이 있어, 평가의 공정성을 오히려 저해할 수 있다”는 의견이다.

평가 기준의 명확성은 평가의 일관성과 신뢰성을 담보하는 중요한 요소다. 타사 비방에 대한 패널티 부여가 실효성을 가지기 위해서는 비방과 정당한 비판의 경계를 명확히 해야 하며, 이를 평가위원들이 일관되게 적용할 수 있는 기준을 제시할 필요가 있다. 이를 위해 내부 심의나 관련 전문가의 자문을 통해 명확한 평가 기준을 마련하는 것이 중요할 것으로 보인다.

또 수요기관의 전문성을 보완하기 위해 조달청이 수의계약 제안서의 적합성 평가를 대행하는 부분은 장기적인 측면에서 볼 때 과연 수요기관의 전문성 강화를 위한 효과적인 방안인지에 대해서는 의문이 있다. 조달청이 대행함으로써 일시적인 해결책은 될 수 있지만, 수요기관이 스스로 평가 역량을 강화하지 못하면 결국 조달청의 의존도가 높아지고, 반복적으로 대행이 필요한 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 따라서 수요기관의 전문성을 지속적으로 향상시킬 수 있는 교육 프로그램이나 컨설팅 지원 같은 제도적 보완책이 필요해 보인다.

대형 사업과 소형 사업의 불균형 문제 고려해야

무엇보다 개정된 제도는 대형 사업과 소규모 사업에 대한 차별화된 접근을 취하고 있다. 대형 사업에서는 전문성을 높이고, 소규모 사업에서는 비용 부담을 경감하려는 방향성을 지니고 있다. 이러한 차별화가 실제로 모든 사업자에게 공평하게 적용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특히 대형 사업에서 높은 전문성을 요구하는 과정에서 중소기업이 소외되거나, 소규모 사업에서 비용 부담 경감이 충분하지 않은 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

또 제안서 발표 기준금액을 ‘고시금액(2.2억 원)’에서 ‘5억 원 이상’으로 상향 조정한 부분은 중소기업의 부담을 줄이기 위한 방안이지만, 반대로 이러한 상향 조정이 과연 모든 중소기업에게 긍정적인 효과를 미칠지에 대한 검토도 다시 짚어볼 필요성이 있다. 발표 없이 입찰에 참여할 수 있는 대상 사업이 확대된다는 것은 일부 중소기업에게는 진입 장벽을 낮추는 장점이 있지만, 동시에 경쟁이 치열해져 일부 역량이 약한 기업들은 여전히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는 분석이다. 또 발표를 통한 기술적 역량을 충분히 설명할 기회가 줄어들면, 기술력이 있는 기업이 적절히 평가받지 못하는 문제가 발생할 수도 있다.

제도 개선의 목표는 모든 사업자가 공정한 환경에서 경쟁할 수 있게 하고 합당한 보상과 그에 따른 부작용을 최소화 하는 데 있다. 그리고 그러한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중요한 것은 균형점을 찾는 것이다. 조달청의 세심한 보완책이 필요한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