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txt] ‘EU AI법’ 반면교사로 삼아야
규제와 산업 발전 모두 고려하는 현명한 판단 필요할 때
[아이티데일리] 생성형 인공지능(AI)이 모든 산업 분야에 적용되기 시작하면서 그에 따른 부작용도 심심찮게 나타나고 있다. 세계 각국은 이러한 부작용을 막기 위해 AI 관련 법 마련에 나서고 있다. 첫 스타트는 유럽연합(EU)이 끊었다. EU는 2021년 4월 집행위원회 제안 이후, 2년여간 법안 협의 및 수정을 거쳐 지난 3월 13일 의회 승인 절차를 거쳤다. EU AI법은 조만간 정식 발효될 것으로 보인다.
EU AI법은 AI에 대한 거버넌스를 확립한 첫 사례라는 점에서 긍정적인 평가를 받고 있다. 하지만 지나치게 포괄적이어서 또 다른 부작용을 불러올 수 있다는 비판도 있다.
서울대학교 인공지능정책 이니셔티브가 2021년 발표한 ‘유럽연합 인공지능법안의 개요 및 대응’에서 참여한 교수들은 “발생 가능한 모든 이슈를 상정한 후 관련 규제를 한꺼번에 획일적으로 규제하는 방식을 채택했다”며 “일괄적인 규제는 또 다른 부작용을 불러올 가능성이 높다”고 평가했다. 또한 거의 모든 산업 활동이 포섭될 수 있어 전 산업적 규제로 귀착될 수 있다고 우려를 표했다.
이 같은 문제는 올해 가결된 법안에서도 그대로 나타나고 있다. 승강기, 장난감 등 AI를 안전검증 등에만 활용해도 규제 대상에 포함된다. 또한 너무 방대한 내용이 담겨 법에 대한 정확한 적용 범위를 파악하기 어렵다는 지적도 있다.
현재 국내에서는 인공지능책임및규제법안 발의안, 통칭 ‘AI 기본법’을 비롯해 약 9개의 AI 관련 제정 또는 개정 법안이 국회에 계류돼 있으나 AI 관련 법을 처리한다는 소식은 들리지 않고 있다. “AI 기본법을 빨리 통과시켜야 한다”는 EU AI법 가결에 자극받은 일부 전문가들의 목소리만 들릴 뿐이다.
EU가 선제적으로 법안을 마련했지만, 모든 국가가 이 같은 방향을 따르는 것은 아니다. 미국이 발표한 AI 행정명령은 가이드라인 제시와 레드팀을 통한 시스템 결함 발견 제안 등 법률 준수를 강조하면서도 기업의 자율규제를 지향하고 있다.
AI 관련 법이 규제를 통해 산업 발전을 가로 막아서도, 그렇다고 산업 발전을 촉진하기 위해 규제를 무작정 풀어서도 안 된다. 모든 분야에서 항상 겪는 일이지만 AI 관련 법은 특히 여러 산업군에 막대한 영향을 끼친다는 점에서 신중해야 한다. 법안을 빨리 만드는 것보다 잘 만들어야 하는 이유이다. 그렇다고 마냥 늦출 수만은 없다. 여기저기서 AI에 대한 부작용이 나타나고 있기 때문이다.
다만 법은 한 번 제정되면 변화에 빠르게 대응하기 어렵다는 문제가 있다. 수많은 AI 모델과 기술의 개발로 하루가 다르게 바뀌고 있는 AI 시장을 법으로 해결하는 것은 한계가 있기 마련이다. 업계에서 법안 마련에 신중해야 한다는 의견이 나오는 이유다.
생성형 AI 시장은 본격적으로 떠오른 지 채 2년이 지나지 않았다. 법은 초기 단계의 시장을 뒷받침하는 토대가 될 수 있지만, 한편으로는 아직 정확히 자리 잡지 않은 시장을 섣부르게 판단한 결과물로 남을 수도 있다. 규제와 산업 발전 사이 균형을 찾기 위해서는 정부 부처와 산업, 학계 전문가들의 끊임없는 논의가 무엇보다 중요한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