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산업, 무엇이 문제인가①] 턱없이 부족한 사업예산, 중소SW기업에 부담 전가

SW가치 저평가 여전…저가낙찰 방지, 기술평가 강화 필요

2021-05-20     정종길 기자

[아이티데일리] 4차 산업혁명 시대에도 국내 소프트웨어(SW) 기업들은 SW의 가치를 제대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며 불만의 목소리가 높다. 벌써 수십 년 묵은 이야기지만 해결이 요원하다. 정부도 적극적으로 제도를 개선하고자 노력하고는 있지만 뿌리 깊은 구조적 문제라 쉽사리 해결이 어려워 보인다.

문제는 SW 사업이 단순한 용역 수준이 아니라 지식 기반의 고부가가치 산업임에도 결과물을 단순 제품 취급한다는 데 있다. 한정된 예산 속에서 결과물을 만들어내야 하는 정부 공공기관들은 “SW산업 발전의 마중물이 되어달라”는 업계의 요청에도 결과적으로 오늘날 SW산업의 잘못된 생태계를 만드는 데 일조해왔다. 차츰 개선되고는 있다지만 아직도 갈 길이 멀다.

결국 SW 생태계를 바로잡기 위해서는 뿌리박힌 인식을 개선하는 것이 우선돼야 한다. 올바른 시장 질서 확립, 대중소기업 상생 도모, 기술에 대한 공정한 평가 등 문화적으로 해결해야 할 과제들이 산적해 있다. 결국 생태계를 구성하는 사람들의 생각부터 변해야 한다. 그래야 진정한 SW강국으로 자리할 수 있다.

1부 - “제값 받기 강화로 SW산업 발전 초석 쌓는다”
2부 – SW가치 저평가 여전…저가낙찰 방지, 기술평가 강화 필요
            [SW산업, 무엇이 문제인가①] 턱없이 부족한 사업예산, 중소SW기업에 부담 전가
            [SW산업, 무엇이 문제인가②] 변별력 없는 기술평가, 차등점수제 도입 기대
3부 – 적정대가 지급, 유지보수요율 현실화 (가제)
4부 – 상용SW 분리발주 강화 (가제)
5부 – 원격지 개발 및 SW 산출물 반출 허용 (가제)

처음부터 저평가되는 공공 SW사업 예산

국내 소프트웨어(SW) 업계는 지난 수십 년간 ‘SW의 가치’를 제대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음을 성토해왔다. SW는 4차 산업혁명의 핵심 기술을 실현하는 기반이며, 대한민국의 미래 성장 동력이라고 평가받고 있는 2021년이다. 그럼에도 아직까지 SW기업들은 “SW의 가치가 저평가돼 있고 수익성을 담보하기 어려운 사업 환경이 수십 년째 개선되지 않고 있다”고 입을 모은다.

올해 초 본지가 진행한 ‘SW 제값 받기’ 관련 설문 조사에서 국내 중소 SW기업들은 “SW 가치 보장에 모범을 보여야 할 공공부문조차 예산 절감을 이유로 SW 가치를 깎아내리고 있는 게 현실”이라고 성토했다. 즉, 공공 부문 SW 사업이 발주 단계에서부터 SW의 가치를 제대로 산정하지 않고 턱없이 부족한 예산 규모로 사업을 설계, 발주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는 공공 SW 사업 담당자가 사업에 드는 예산을 어느 정도 정확하게 측정할 만큼 전문성을 갖추지 못하고 있는 데서 비롯되는 문제인 것으로 분석된다. 이 부분은 2020년 개정된 ‘SW사업 대가산정 가이드’를 통해 기능점수(FP) 기반의 단가 산정으로 한층 개선을 기대하고는 있지만, 아직까지 현실이 기대를 충족하지 못하고 있다는 평가다.

처음 산정된 규모에서 추가로 예산을 줄여도 그동안 어떻게든 사업이 진행돼왔다는 점 역시 문제로 작용한다. 이에 그치지 않고 예산 절감을 이유로 관행적으로 다시 한번 사업 금액 삭감을 요구하는 경우 역시 비일비재한 것이 현실이다.

SW기업 A사 대표는 “최초 예산을 100%라고 놓고 본다면 기획재정부가 20~30% 삭감된 금액으로 사업을 진행하도록 만드는 것이 관행이 됐다”고 토로했다. 발주기관이 제시한 예산은 기재부를 거치면 90%로 줄어들고, 예정가격(예가) 제도를 통해 80% 수준이 된다. 이는 정부의 사업 예산을 어떻게든 절감하는 것이 국민의 세금을 절약하는 ‘올바른 일’로 평가받는 공직사회 분위기상 당연하게 고착돼온 현상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실제로 사업에 참여하는 국내SW 기업들은 애초에 적은 예산이 재차, 삼차 깎이는 가운데 작은 매출이라도 가져가기 위해 입찰 과정에서의 출혈경쟁을 감행, 결국 원래 예산의 70% 수준까지 떨어진 가격으로 사업을 수주하고 있는 실정이다.

SW기업 B사 대표는 “전년도에 책정된 국가 예산을 절감하려 하기보다는 예산을 최대한 활용해줘야 한다. 그래야 공공 SW사업에 참여한 기업들이 이익을 남기고, 이를 연구개발에 재투자해 이를 기반으로 실력 있는 SW기업이 성장하고 활성화될 수 있다. 그래야 국내 SW산업이 발전하고, 국가 경쟁력에도 이익이 될 것”이라는 의견을 내놨다.

중소SW기업들에 부담 전가되는 구조도 문제

SW기업들이 예산을 ‘팍팍’ 쓰지 않는 정부를 탓하고만 있는 것은 아니다. 출혈경쟁에 대해서는 분명히 기업들의 잘못이 있음을 인정하고 있다. 손해를 보더라도 레퍼런스 확보를 위해 우선 사업을 따내고 보려는 잘못된 경쟁이 계속되면서 현재의 분위기를 만들었다는 것을 자성하고 있다. 실제로 여러 협회 차원에서 산업계에 악영향을 주는 저가 출혈경쟁을 지양하도록 회원사들에게 권고하고, 모니터링도 강화하는 등 자정 노력을 해왔다.

하지만 결국 중소 SW기업들의 노력만으로는 문제가 해결될 수 없는 게 사실이다. 공공 SW사업의 큰 파이를 시스템통합(SI) 방식이 차지하고 있고, SI를 수행하는 대기업 및 중견기업들이 그간 협력사인 중소SW 기업들에게 부족하거나 삭감된 사업비로 인한 부담을 전가해왔기 때문이다.

SW기업 C사 대표는 “대형 SI사들이 가격경쟁을 하면서 원가를 낮추기 위해 가장 손쉽게 압박할 수 있는 것이 국산SW 기업이다. 하드웨어도 원가 절감이 한정적이고 인건비 역시 변동 폭이 거의 없으니 SW를 사정없이 후려친다. 솔직히 말하면 아주 야비한 수준”이라고 토로했다. 이어 “예를 들어 3개 업체에서 견적을 각각 받으면서 자신들이 원하는 가격대까지 낮추려고 서로의 가격 수준을 3개사에 살짝 흘린다. 각사에게 최저 수준으로 가격을 맞춰 오라고 이야기하고, 원하는 가격이 안 나오면 나올 때까지 계속 다른 기업들의 가격을 흘리면서 겨우 인건비만 맞출 수 있는 수준까지 4~5차례 유도한다”면서, “그게 아니면 아예 ‘이번에 사례(레퍼런스)를 만들어야 할 것 아니냐’면서 가격을 마음대로 책정해놓고 참여하라고 한다. 문제는 신생업체들이나 사례가 필요한 업체들이 여기에 덤벼든다는 것이다. 결국에는 가격과 품질 모두 떨어지는 결과가 나오고, 악순환이 된다”고 안타까워했다.

대기업 및 중견 SI 업체들은 이러한 소위 ‘후려치기’ 부분에 대해서는 즉답을 피했다. 다만 “부족하다고 느껴질 수 있겠지만 나름대로 중소SW기업들과 상생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하고 있다”면서, “결국 근본 문제는 사업 예산이 적기 때문에 벌어지는 일이다. 충분한 사업비가 책정된다면 그러한 구조 역시 많이 개선될 것으로 생각한다”는 의견을 내놨다.

결국 중소SW기업들이 충분히 SW의 가치를 인정받기 위해서는 적은 예산으로 어떻게든 SW를 ‘만들어내는’ 구축형 SI 사업 위주보다는 전문SW기업들이 연구개발을 통해 만든 상용SW를 발주기관이 우선적으로 구매해 활용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즉 중소 SW개발 기업에게 부담을 전가해 개발자의 임금조차 제대로 지급할 수 없을 정도의 저가로 사업을 수주하도록 하는 SI 사업을 우선시할 것이 아니라, 제값을 주고 상용SW를 구매하고, 유지보수비까지 충분히 책정해 안정적으로 SW기업들이 성장할 수 있는 발판을 만들어 줘야 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상용SW의 분리발주, 그리고 유지보수요율 상향에 관한 문제가 자연스럽게 풀어야 할 숙제가 된다. 이와 관련한 내용은 앞으로 이어질 기사를 통해 좀 더 자세히 다룰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