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컴퓨터산업史의 첫 장을 장식한 KCC정보통신이 설립 40주년을 맞이했다. 이 회사를 바라보노라면 새삼 기업의 존재가치에 대해 만감이 교차한다.

기업의 가치는 그 기업이 보유하고 있는 재화에 따라 평가되는 게 보편적이다. 그 성장과정이야 어떻든 지금 이 순간 얼마만큼의 재화를 쌓아놓고 있느냐가 기업평가의 절대적인 잣대라는 것이다. 여기에 지속적인 수익창출의 가능성과 성장잠재력을 덧붙이면 기업가치에 대한 평가는 완결된다. 기업은 수익이 최우선이며, 올해도 부자고 내년에도 부자여야 하기 때문이다.

경제주체의 핵심적 실체인 기업은 고수익을 올림으로써 제 임무를 다했다고 볼 수 있다. 돈을 많이 번 기업만이 그 재화를 폭넓게 운용할 수 있고, 그것이 견실한 사회경제구조를 순환시켜주고 지탱해준다. '돈을 벌고 돈을 쓰는 행위'만으로도 기업은 그 존재가치를 충분히 인정받는다는 것이다.

불행하게도 우리사회는 이러한 기업의 기본가치에 대해 아직은 평가절하 하는 분위기이다. 아무래도 정경유착이라는 악습을 오랫동안 진저리치게 경험한 때문일 것이다. 지난 반세기 이상 동안 정경유착의 악취나는 고리에 기업의 성장열쇠가 매달려온 것을 보아온 국민들로서는 그 피해의식을 쉽사리 지울 수가 없을 터이다. 우리사회가 일찌감치 기업의 도덕성과 사회적 책임을 유독 강조해온 것도 이런 연유에서 비롯됐다고 보여진다.

최근들어 기업에 대한 평가가 보다 다각도에서 이뤄지고 있다. 수익성 측면은 물론이고, 얼마전까지만 해도 우리나라 기업에겐 생경한 단어들이었던 도덕성과 사회적 책임에 대해서도 비중있게 다뤄지고 있다. 현재의 수익성 보다는 미래의 잠재적 가치를, 단순한 부의 재분배 차원이 아닌 투자개념의 사회적 책임 수행 등을 글로벌 기업경쟁력의 필수 요건으로 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추세는 기업의 사회적 지위가 그만큼 격상되었음을 의미하는 동시에 이제는 천박한 장삿속으로는 알량한 잇속도 챙기기 어려운 기업환경이 도래했음을 말해준다. 이를 달리 분석하면 이 시대는 철저한 기업가 정신을 소유한 자들이 창업을 하고, 그 정신에 입각하여 경제행위를 수행하는 격조있는 경제주체를 요구하고 있다는 점을 역설하고 있는 것이다.

선구자적 창업정신의 성공은 '살아있는 유산'
우리나라에서 이러한 기업을 예로 꼽으라면 단연 돌아가신 유일한 박사가 설립한 유한양행을 자랑스럽게 들 수 있다. 미국에서 승승장구하던 그가 일제치하의 고국을 방문, 처참한 삶을 살고 있는 민족에게 봉사한다는 일념으로 1926년에 세운 회사가 유한양행이다. 훗날 전재산을 사회에 환원하기까지 그의 거룩한 행적은 더 이상 설명할 필요도 없이 우리 국민이라면 다 아는 얘기다.

유한양행은 한 위대한 기업가의 업적을 기리는 것 외에도 또다른 벅찬 교훈을 우리에게 남겨주고 있다. 모두에게 존경받는 경영이념으로 출발한 기업이 80여년 넘게 온갖 역경을 헤치고 굳건히 성장해오고 있다는 귀감적 사례가 바로 그것이다. 만일 유한양행이 도중에 좌초됐다면 '기업의 사회적 책임은 한 우국기업인의 의지일 뿐 기업의 수익성과는 별개'라는 허무한 역사적 가치로 남아버릴 수도 있었을 것이다.

얼마전 모기관에서 실시한 '한국에서 존경받는 기업' 조사에서 유한양행과 유한킴벌리는 나란히 3위와 4위에 올랐다. 이는 위대한 창업정신의 영속성이라는 측면에서 무척 고무적인 일이며, 기업의 수익성과 사회적 책임을 강조하는 오늘날 아주 적절한 재조명이 아닐 수 없다.

사회적 지명도나 규모면에서 유한양행과 비교하기에는 다소 중량감이 떨어지지만, KCC정보통신은 한국의 컴퓨터산업史 측면에서 보면 결코 경시할 수 없는 가치를 지니고 있다. 창업주인 이주용 회장이 한국인 최초로 IBM 본사에 근무하다 일시 귀국, 컴퓨터에 관한한 황무지인 고국의 현실을 안타깝게 여기고 뭔가 기여를 해야겠다는 생각으로 결국 눌러앉게 되는 경위는 유일한 박사류의 선구자적 창업정신에 일맥상통한다고도 볼 수 있다.

1967년 이주용 회장이 설립한 한국전자계산(KCC)은 한국 컴퓨터산업사의 첫 장을 열었을 뿐더러 선구자적 기업으로서 그 역할을 눈부시게 해냈다. 한국전자계산이 갈고 닦은 전산화와 그 기술, 그리고 배출해낸 수많은 전산인력은 오늘날 우리나라가 'IT 강국'으로 일컬어지는 '시원'이었다고 해도 틀리지 않을 것이다.

KCC정보통신의 40년 역사는 이주용 회장의 선구자적 창업정신과 그 창업정신을 훼손하지 않고도 40년을 내실있는 기업으로 성장시켜왔다는 점에서 단순한 성공 이상의 교훈을 주고 있다. 허황된 대박을 꿈꾸는 천박한 기업 풍토를 철저히 외면하고 이상 실현을 위해 불굴의 의지로 질곡의 역사를 견뎌내 온, 그리고 살아서 번창하고 있는 KCC정보통신은 우리의 귀감이자 귀중한 자산이 아닐 수 없다.

창업정신이 남달랐고, 그 계승발전에 투철했던 KCC정보통신의 40주년에 다시한번 갈채를 보내며, 이제는 수익성과 사회적 책임이라는 글로벌 경쟁력을 갖추고 세계시장에서도 그 창업정신이 빛을 발하기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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