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티데일리]

인간과 기술의 관계

우리는 로봇과 자동화 기술이 화두인 시대에 살고 있다. 언론에서는 오늘날 기술 선구자들을 혁신가로 말하기도 하고, 아니라고 하기도 하며 새로운 기술에 대해 찬반양론이 분분하다. 사람들은 새로운 기술에 빠져들기도 하지만 로봇과 같은 첨단기술로 인간의 존재를 잃게 될까 두려워하기도 한다. 정부는 이 같은 변화의 시대를 헤쳐나가기 위해 일자리 감소에 대한 불안, 교육 시스템의 변화, 사회구조의 붕괴, 민주주의에 대한 위협 등에 대처하는 동시에 디지털화된 공공 서비스 혜택과 모든 사람들의 생활 수준을 향상시키기 위해 기술 개발까지 하고 있다.

오늘날 기술이 어느 정도까지 발전했는지 알기 위해서는 인류 역사에서 인간과 기술이 어떤 관계였는지 되돌아볼 필요가 있다. 최신 기술이 어떤 것인지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뿐만 아니라, 정부의 공공정책 또는 개개인의 수준에서 의사결정 과정의 효율적 관리에도 도움이 될 수 있다.

 

기술에 대한 이야기는 역사 그 이전부터 존재해 왔다. 아마도 인류 역사만큼이나 긴 역사를 가지고 있을 것이며, 이 이야기는 기술 혁신자로서, 인간으로서 우리의 입장도 설명할 수 있을 것이다.

기술이 곧 인간이다

원시시대나 21세기나 기술은 항상 인간의 능력을 확장하기 위해 고안되어 왔다. 바위, 나무막대기, 바퀴에서부터 자동차 및 전자제품에 이르기까지 많은 도구들은 한정된 시간과 에너지로 더 많은 일을 할 수 있도록 인간 신체의 연장선에서 이해할 수 있다. 최근 컴퓨터는 물리적인 도구가 우리의 신체적 능력을 확장시키는 것과 같은 방식으로 우리의 정신력을 크게 확장시키고 있다. 그런데 왜 인간은 이런 방식으로 자신을 확장하려고 하는 걸까? 왜 인간은 있는 그대로 사는 것에 만족하지 않는 걸까?

호모 사피엔스가 다른 종과 구분될 수 있는 가장 주요한 특징은 끊임없이 스스로를 정의하려 하고, 기술에 매력을 느낀다는 것이다. 인간은 다양한 방법으로 기술을 사용한다. 몸과 마음을 확장하는 기술을 통해 인간 스스로를 더 이해하기도 한다. 예를 들어, 뇌가 어떻게 작용하는지를 시각화하기 위해 우리가 사용하는 은유법을 생각해보도록 한다. 오늘날 이러한 은유들은 컴퓨터 기술에서 비롯되었다. 인간은 마치 컴퓨터처럼 정보를 저장하고 처리한다고 은유적으로 표현하기도 한다. 컴퓨터 개발 이전에도 인간은 초기 기술 형태로부터 ‘은유’라는 방식으로 인간을 이해하곤 했다. 또한 인간은 기술을 사회적으로 사용한다. 옷이 인간의 피부 기능을 확장시킬 뿐만 아니라 인간을 만들고 정체성을 표현할 수 있는 기술이라면, 다른 형태의 기술들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우리는 경험적으로 대부분의 사람들이 습득할 수 있는 거의 모든 기술과 밀접하게 연관된 상태로 살고 있다는 것을 안다. 협동로봇을 개발한 유니버설로봇과 같은 기업은 로봇과 인간이 함께, 상호작용할 수 있다는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기술에 대해 가지는 감정의 양면성

기술은 인간의 거울이기 때문에, 인간은 기술에 매료된다. 인간은 기술을 원하고, 사용하고, 과시하고 싶어한다. 그러나 많은 기술들이 인간의 능력을 비출 뿐만 아니라 확대시켜 때때로 두려움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어떤 사람들은 기술에 의한 유토피아를, 어떤 사람들은 기술에 의한 디스토피아를 예견한다. 상황이 좋든 싫든, 가능하든 불가능하든, 어떤 방식으로라도 인간은 기술에 대해 강한 끌림의 감정을 가지고 있다.

 

인간은 로봇에 이름을 붙이는 것과 같이 기술을 의인화시키는 경향이 있다. 감정, 동기, 행동을 기술에 투영하기도 한다. 인간이 기술을 혐오하거나 두려워할 때면, 종종 권력에 굶주리고 탐욕스러워진 기술이 사람들을 지배할 것이라고 이야기한다.

요르겐 본 홀렌(Jürgen von Hollen) 유니버설로봇 사장은 로봇 혐오, 더 나아가 기술에 대한 혐오는 현실적인 이해보다는 기술이 가져올 부정적 미래에 대한 예측과 우려에서 기인한 것 이라고 말한다. 기계는 인간이 조작한 것 이상의 어떤 것도 할 수 없다. 그렇다고 미래에 대한 두려움이 잘못되었다는 것은 아니다. 우리 인간은 자칫 우리 손으로 지구를 파괴할 수 있을 정도의 기술을 발전시켰다. 자칫하면 기술이 아닌 우리가 가해자가 될 것이다.

기술의 상징으로서의 로봇

‘로봇’이라는 용어가 1920년 카렐 차베크(Karel Čapek)의 희곡 ‘로숨의 유니버설로봇(Rossum's universal robots)’ 이전에는 등장하지 않았었지만, 인간과 유사한 기계에 대한 개념은 적어도 다빈치 시대부터 존재해 왔다. 오늘날, 로봇은 공상과학 소설을 포함한 다양한 장르에서 등장한다. 인간을 닮았지만, 정작 인간이 아닌 로봇은 때때로 인간을 정의하는데 도움을 준다. 로봇은 분명히 인간을 닮았기 때문에, 다른 기계 장치와는 다른 강력한 상징성을 가지고 있다. 로봇에게는 매혹적이고 두려운 무언가가 있다.

인간은 어디까지 왔나

때때로 인간은 기술에 매료된다. 인간은 저마다 자기 자신에게 애착을 느끼는 나르시시즘(Narcissism)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더 근본적인 이유는 기술이 인간을 진보시키기 위해 철학, 종교 등 그 어느 것보다 더 많은 것을 해왔기 때문이다. 호모 사피엔스의 등장 이후 지금까지, 인간은 문제를 해결하고 앞서 나갈 수 있는 기술들을 끊임없이 개발했다.

기술은 다른 어떤 요인보다도 인간이 어떤 종인지 잘 설명해 준다. 인간은 수세기 전의 조상들과 동일한 유전자를 공유하고 있지만, 오늘날 인간의 삶은 예전과 매우 다르다. 현재 인간은 그때보다 더 오래 살고, 더 건강하고, 더 편안하고, 더 부유해졌다. 인간은 변하지 않았다. 기술이 차이를 만든 것일 뿐이다.

인간이 기술을 두려워하는 것은 미지의 것에 대해 두려움을 느끼는 것과 다르지 않다. 미지의 것을 두려워하는 것은 인간의 본성 중 하나일 것인데, 대개 신기술은 미지의 것을 수반하기 때문이다. 기술은 인간이 모험하고 창조하도록 자극하는 동시에, 미래에 수많은 변수를 발생시켜 불안감을 초래하기도 한다.

특히 로봇 기술의 경우, 인간은 로봇들이 우리들의 일자리를 빼앗는 것을 포함해 기술에 종속되는 미래를 두려워한다. 하지만 사람들이 로봇에 대해 표현하는 두려움은 대부분 잘못된 것들이 많다. 최근 사회는 자동화의 새로운 물결, 말하자면 새로운 산업 혁명을 경험하고 있다. 증기기관에 의한 1차 산업혁명 때와 같이, 새로운 자동화 기술이 등장할 때마다 종말론자들은 고용의 종말을 예언하는 반면, 실제 결과는 더 많은 일자리와 더불어 더 긴 수명, 더 나은 건강 그리고 더 큰 부를 제시한다. 기후 변화, 일자리 붕괴, 경제적 불균형 등 기술의 부정적인 영향을 계속 주시하는 한, 인간의 삶은 발전할 것이다. 기술이 인간을 유토피아로 이끌지 않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기술이 인간의 진화에 일부가 되었기 때문에, 인간은 더 나은 미래를 향해 나아가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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