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 옛적에 한국 IT산업은…, 그래봤자 20여 년 전 이야기이다.
본격적으로 IT한국의 시동을 건 시기는 1980년 대 중반이었다. 당시 IT란 용어는 대중화 되지 않았고 컴퓨터 또는 전산화란 용어가 훨씬 많이 통용됐다. '정보'라는 단어는 서슬 시퍼런 정보기관 아니고는 그 누구도 함부로 사용할 수 없었던 시절이니, 이것만으로도 상전벽해를 그대로 실현시킨 눈부신 IT기술의 발전사를 굳이 말하지 않더라도 정말이지 '옛날 옛적'의 IT이야기이다.

IT한국의 엔진은 공교롭게도 태생에서 정통성을 인정받지 못한 5공화국에서 힘차게 시동을 걸었다. 그때 IT는 최고 권력 구조에서 알 턱이 없었고 정치권 누구도 관심주지 않던 산업의 변방지대였다. 한편으로는 정쟁의 화염이 미치지 않는 '무풍지대'이기도 했다. 훗날 정권교체의 결정적 수단이 된 IT의 도약대가 5공화국이였다는 역사적 아이러니를 뒤로 하고, 어쨌거나 차세대 성장동력을 찾아 황무지를 개척한 IT한국의 주역들이 있었다는 사실을 우리는 기억하지 않을 수 없다.
그들은 바로 청와대 경제비서실의 몇 사람과 힘없는 부처로 손꼽혔던 체신부, 그리고 과기처 및 상공부의 과 단위 조직의 공무원들, 가족이나 다름없는 기업인들, 또는 연구개발자들이다. 그들이 머리를 맞대며 싹을 틔우기 시작한 것이 오늘날 IT한국의 모태인 것이다.

이제와서 돌이켜보면 참으로 꿈만 같은 시절이었다. IT한국을 기획하는 일부 정책자들의 아이디어는 무모한 도전으로 비쳐지기 일쑤였고, 게다가 극도로 팽배한 정치적 불신에 휘말려 사사건건 사시의 눈길을 받곤 했다. 심지어 삼성반도체가 4M 디램을 개발했을 때까지도 일부 언론에서는 가당찮은 쇼 정도로 치부하기도 했으니, 더 예를 들 필요도 없이 당시 IT패밀리들이 겪은 고초가 어떠했는지 짐작할 수 있다. 그래도 반도체나 휴대폰이 잘나가고 우리나라가 세계에서 알아주는 인터넷 강국으로 우뚝 섰으니 앞만보고 열심히 일했던 그들은 보람된 삶을 산 셈이다.

그런데 요즘 가끔 그들을 만나보면 얼굴에 그늘이 가득하다. 여기저기서 들리는 '위기의 IT한국'이라는 말 때문에 심사가 편치 않다는 것이다. 그들이 우려하는 것은 삼성이 위기를 공식 표명하고 구조조정에 들어간 것이나, 코앞에까지 들어닥친 중국의 위세가 가슴을 옥죄고 있어서만은 아니다. 이런 것들은 이미 예상됐던 일들이다. 문제는 대비책이 없다는 것이다. 조금만 관심을 두고 앞을 내다보면 얼마 안가서 길이 막혀 있는 게 뻔히 보이는 데도 미리 길을 뚫을 생각들을 않고 있다는 것이다. 우려의 목소리는 무성한데, 정책도 없고 누구하나 나서는 사람도 없고 열심히 일하는 풍토는 사라진지 오래고 성장동력의 불길은 희미해져 가기만 하고….

그들중 한 분이 얼마전 오래전부터 알고 지낸 미국의 한 유력 인사를 만났다고 한다. 그 인사가 하는 말이 "옛날에는 한국인들이 미국인들 보다 2배나 더 일하는 걸 보고 금세 미국을 따라잡을 수 있겠다 생각했는데 지금은 아니다. 3배를 더 일해도 미국을 따라잡기 힘들 것 같다"고 했단다. 다소 과장 섞인 말일 수도 있다. 그러나 국제사회에서 우리나라의 성장동력이 바닥났음을 훤히 뚫고 있음은 이미 다 알려진 사실이다.

그렇다면 위기의 IT한국을 바로잡을 방안은 무엇일까? 차세대 성장동력이 무엇이고, 어떤 정책을 구사해야 하고, 기술적으로 어떤 부문을 강화해야 한다는 식의 구체적 제안에 앞서 우리사회가 선결해야 할 과제가 있다. 아직도 우리를 얽어매고 있는 오랜 정치적 폐해의 악몽에서 벗어나 찢겨진 한국을 통합하는 것이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정치권에 기대를 걸어서는 어림도 없다. 국민들 스스로가 통합의 지혜를 발동시켜야 한다. 일본에 강제 합병됐던 구한말의 치욕을 거울로 삼아 절대로 정치권에 기대를 걸지 말고 일찌감치 3.1독립운동 같은 것을 해야 한다. IT를 놓고 말하자면 'IT 패밀리'를 형성하자. 우리가 책임져야 할 IT를 남에게 맡기지 말고 우리 스스로 성장의 동력을 살려나가야 한다는 것이다.

옛날 옛적의 이야기를 꺼낸 것은 지금엔 맞지도 않을 그 당시의 방식을 또 써먹자는 것이 아니다. 그 소명의식과 열정, 무엇보다도 열심히 일했던 분위기를 다시 되살려 보자는 것이다. 위기가 곧 기회인 것은 위기시에는 그 어느때보다도 사회통합이 잘 이뤄지는 우리나라의 저력이 있기 때문이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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