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가치판단 기준은 ‘월 사용료’가 아니다

▲ 지난 7월 열린 ‘SW생산국 도약을 위한 SW기업 간담회’ 모습

[아이티데일리] 문재인 정부가 인공지능을 중심으로 한 4차 산업에 지대한 관심을 갖게 된 데는 미래 일자리와 먹거리 창출 때문일 게다. 특히 일자리 창출은 문재인 대통령이 직접 일자리위원회 위원장을 맡을 만큼 최대 관심사안 가운데 하나이다. 4차 산업 역시 대통령 직속기관으로 4차산업혁명위원회를 신설, 위원장을 총리급 지위를 부여한다고 공언했을 만큼 지대한 관심을 보이고 있다. 이에 대한 대중들의 긍정적인 평가와 지지를 받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

주관부처인 과학기술정보통신부를 이끌고 있는 유영민 장관 역시 이를 실현하기 위해 관련 기관 및 기업들을 대상으로 간담회를 열고, 여러 가지 다양한 의견을 듣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그러나 4차산업혁명위원회가 대통령 직속기관으로 신설될 만큼, 유영민 장관이 그 중요성과 가치를 제대로 인식하고 행보를 하고 있는지는 의문이다.

유 장관은 최근 ‘SW생산국 도약, SW기업하기 좋은 나라 실현’이라는 주제로 관련 기업대표들과 간담회 자리를 가진 바 있다. 그는 ‘SW산업발전을 위해 무엇이 문제인가?’라는 화두를 던지며 의견을 수렴했지만, 결론은 일자리 창출을 위해서는 SI사업이 더 중요함을 강조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심지어 그는 해외 수출로 수백억 원의 매출을 올리고 있는 L대표의 “SW 희망은 상용SW에 있다”는 의견에 “SI업체가 활성화돼야 많은 인재들이 나온다. 때문에 SI사업에 대한 이윤이 있도록 먼저 지원하겠다”며 L대표의 의견을 거의 귀담아 듣지 않았다고 한다.

유 장관은 그러면서 SW산업발전과 관련, 10년여 전(한국소프트웨어진흥원장)과 거의 똑같은 소리를 듣고 있다며, “아직도 왜?”라는 캐치프레이즈로 TF팀을 구성해 매주 월요일 회의를 개최하고 있다고 한다. TF팀은 과학기술정보통신부의 SW정책관과 SW산업과장, IT서비스협회장과 한국상용SW협회장, 한국소프트웨어산업협회 관계자, 그리고 SI기업인 LG CNS와 KCC정보시스템 관계자 등으로 구성됐다고 한다. TF팀은 상용SW 활성화 방안을 목적으로 구성됐는데도 불구하고 SI사업과 관련된 기업의 수가 더 많다. 유영민 장관의 의지가 상용SW산업보다 SI사업에 더 관심이 높음을 보여준 대목이 아니라 할 수 없다.

4차 산업혁명의 핵심가치는 SW에 있다. 인공지능, 빅데이터, IoT, 드론, 로봇, 무인자동차 등등 거의 모든 것들이 SW가 중심이다. 그것은 곧 SW가치는 무궁무진하고, 문재인 정부가 강조하고 있는 일자리와 미래 먹거리 등이 모두 다 SW를 중심으로 창출된다고 할 수 있다. 문재인 정부 역시 이러한 배경으로 4차산업혁명위원회를 대통령 직속기관으로 설치한다는 강한 의지를 보였고, 관련 업계 역시 “SW의 가치와 중요성을 제대로 아는 정부가 탄생했다”며 환호하기도 했다.

‘아직도 왜?’는 근본적 문제 해결이 안 됐기 때문

그러나 그 가치와 중요성은 시간이 지날수록 새로운 희망이 아닌 실망으로 변해가고 있다는 느낌을 받고 있다는 게 관련 업계의 공통된 시각이다. 문재인 정부, 특히 실무 부처를 이끌고 있는 유영민 장관이 “아직도 왜?”라는 지적을 하고 있듯이 미래 일자리와 먹거리 창출의 핵심인 SW산업이 10년여 전과 별다른 진전 없이 다람쥐 쳇바퀴 돌 듯 반복되고 있는 이유는, 그 동안 SW산업 발전을 위한 SW기업인들의 요구사항 및 근본적인 문제점들에 대한 해결책을 제대로 마련하지 못했거나, 만들었어도 실행이 안 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SW기업인들이 그 동안 주유장천 요구해오고 있는 사항은 그렇게 많지도 않을 뿐만 아니라, 아주 기본적이고 근본적인 문제이다. 즉 ▲SW 제값 인정 ▲SW유지보수요율(15%) 현실화 ▲용역개발SW의 무상배포 금지 ▲SW분리발주 등이다.

이러한 요구사항들은 사실 SI기업들이 프로젝트를 통해 일괄 수주 및 공급함으로써 SW의 가치와 중요성이 묻혀버렸다. 특히 SI기업체들은 저가의 덤핑경쟁으로 인한 수익감소를 컨소시엄을 이룬 협력사, 즉 중소SW기업 및 하도급 기업들에게 전가시키는가 하면, 요구사항을 들어주지 않으면 컨소시엄 기업을 일방적으로 자기들 입맛에 맞는 기업으로 바꾸기까지 했다. 더욱이 대기업 SI업체들은 자 그룹 계열사 기업들의 SI 및 SM 프로젝트는 외부에 오픈하지 않고 거의 독식했다. 다시 말해 경쟁 SI기업들에게는 시장을 오픈하지 않으면서 그 외의 시장, 특히 정부공공시장 공략에 집중했다. 속된 말로 “내 것은 내 것, 네 것도 내 것”이라는 상도의에 어긋나는 비즈니스를 펼쳐온 게 사실이다. 대기업 SI들의 이 같은 비즈니스 행위는 결국 중소 SW전문기업들의 성장 발전은 물론 SW산업 발전에도 가장 큰 저해요소로 작용했다. 결국 지난 2013년 SW산업 발전을 위한 새로운 생태계 조성을 위해 ‘소프트웨어산업진흥법’을 마련, 대기업SI들의 정부공공시장 진출을 막았다. 유영민 장관 역시 이러한 SI기업들의 폐해에 대해 잘 알고 있을 것이다.

아무튼 정부공공 SI시장은 이로 인해 중소SI기업들이 뛰어들게 됐고, 그들은 제대로 준비가 안 된 상태여서인지 그들 역시 덤핑경쟁을 통한 저가 수주로 인해 폐해는 개선되지 않았고 오히려 더 심해졌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일부 SI기업들은 문을 닫거나 사업방향을 전면 수정하기도 했다. 결국 중소 SI기업들 역시 “이대로는 못 살겠다”며, ▲잘못된 설계로 인한 프로젝트 규모가 너무 작다 ▲인건비 산정이 잘못됐다 ▲설계 및 사업변경 시 비용 반영 등의 요구를 하고 있다. 중소 SI기업들 역시 무엇이 문제인지 근본적인 문제를 찾아 해결하려는 자성의 자세보다 남의 탓으로만 돌리는 경향이 짙다.

“SW는 SI프로젝트에서 완전 분리하라”

사실 SW기업과 SI기업은 맞물려 성장·발전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문재인 정부가 기대하고 있는 일자리 및 먹거리는 SI보다 SW에서 더 많이 창출된다는 것이다. 미국 시장의 경우 IDC는 자료에 따르면 지난 2013년 이후 패키지SW시장의 연평균 성장률은 8% 안팎인 반면, SI(IT서비스)는 2.5% 안팎으로 거의 정체상태인 것으로 나타났다. 반면 국내 시장은 패키지SW와 SI가 각각 4%와 1.8% 안팎으로 거의 정체상태에 있지만 패키지SW의 성장세가 배 이상 높은 것으로 조사됐다. 이처럼 패키지SW의 성장률이 더 높게 나타난 것은 그만큼 일자리와 먹거리가 더 많은 것으로 분석된다. 세계 시장을 주도하고 있는 애플, 구글, 마이크로소프트, 오라클, 아마존 등의 글로벌 기업들은 SW를 바탕으로 성장하고 있다. SW이든, SI든 어느 것 하나 중요하지 않은 게 없지만, 기본적으로 SW산업이 더 중요하고 더 가치 있는 미래 산업이라는 데는 누구나 공감하고 있다. 4차산업혁명위원회를 신설하는 배경도 바로 여기에 있을 것이다.

관계 전문가들은 SW의 중요성이나 가치를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고 있는 데는 그 기준이 무엇인지를 잘 모르고 있기 때문이라고 지적한다. 즉 SW의 가치기준을 월 인건비로만 판단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SW는 ‘아이디어와 가치(창의성, 활용성, 희소가치, 품질, 생산성, 효율성 등)’로 판단해야만 한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피카소 그림이 수십억에서 수백억 원에 팔리는 것은 단순히 그림을 그린 시간(인건비)이나 재료(물감, 종이 등 각종 재료) 등만으로 가격을 산정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따라서 사용자들이나 SI기업들이 A라는 SW를 개발용역으로 B가격에 맞춰 개발해달라는 요구는 SW가치를 제대로 모르고 있거나 인정해주지 않는 무지의 행위라는 것이다.

한 전문가는 이와 관련 “SW 가치를 SI업체가 정해서는 안 된다. SW는 SI 프로젝트에서 완전히 분리시켜 발주해야만 하고, 그렇지 않으면 다른 가치 판단기준을 만들어 평가해야만 한다”며, “상용패키지SW는 상용패키지SW끼리, SI기업은 SI기업들끼리 경쟁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야만 한다. 정부는 공정경쟁체계를 유지·관리할 수 있는 책임만을 수행해야만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또 “SW 가치를 사람의 사용량으로 계산하는 현재의 방법은 SW산업뿐만 아니라 모든 산업인들의 희망을 꺾어버리는 요소이기 때문에, 그 가치기준을 바꾸는 혁신적인 방법을 도출해야만 한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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