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C혁명'이란 긍정적 평가와 '협박의 승리'라는 부정적 평가 상존

마이크로소프트의 공동 설립자겸 회장인 빌 게이츠에 대해 컴퓨터 업계는 두 개의 극단적인 평가를 내리고 있다. 하나는 '타이탄(Titan)'으로 대변되는 컴퓨터 업계의 거장이라는 긍정적인 평가이며, 다른 하나는 경쟁 업체들을 모조리 사장시켜버리는 '타이런트(Tyrant)', 폭군이라는 부정적 이미지이다.

'거장(Titan)' 빌 게이츠

조지 워싱턴, 베이브 루스, 간디. 그리고 빌 게이츠? 25년 동안 시장을 지배해 온 '비대한' 운영 체제를 개발한 빌 게이츠를 같은 반열에 올려놓을 수 있을까? 전세계의 위대한 챔피언이자 리더 중에서 마이크로소프트의 공동 설립자겸 회장을 빼놓을 수 없다는 것은 역사적으로 볼 때 부인할 수 없다. 마이크로소프트를 떠나 자선 사업으로 자신의 열정을 쏟겠다고 발표하면서 빌 게이츠는 상업용 소프트웨어 시장을 활성화시키고 전세계의 PC 보급을 촉발했으며 과거에는 결코 본 적이 없는 규모로 개인의 생산성과 창조력의 파도를 불러 일으킨 고무적인 기술자이자 총명한 기업인으로 기억될 것이다.

PC혁명 이끈 빌 게이츠, 생활패턴 바꿔

오랫동안 지속되어 온 오픈 소스 진영과의 불화, 독과점 논란, 버그로 점철된 소프트웨어 등으로 인해 게이츠의 은퇴후 전기에는 추악함도 일정부분 서술될 것이다. 하지만 이는 그의 업적 중에서 부차적인 사건에 불과할 뿐이다. 게이츠의 윈도우와 오피스, 그리고 수많은 소프트웨어 제품의 '선'이 '악'을 능가한다. 협력자이자 때로는 경쟁자였던 SAP의 빌 맥더멋 CEO는 "빌 게이츠는 여러 모로 사람들의 생활을 바꾸어놓았다"라고 평가했다.

소프트웨어 표준화에 직접적인 영향을 받은 PC 혁명은 빌 게이츠가 이루어놓은 것이다. 이는 윈도우 PC뿐만 아니라 윈도 기반의 서버도 기업에서 채택되도록 촉진했으며 그 결과 하드웨어의 표준화가 이루어지고 이메일, 데이터베이스, 웹 서버 등의 소프트웨어를 부서와 데이터 센터에 통합되도록 해주었다. 빌 게이츠는 인터넷이나 최초의 브라우저를 창조하지 않았지만 윈도우에 인터넷 익스플로러를 무료로 제공하면서 PC 컴퓨팅과 웹 브라우징을 동일하게 이용할 수 있게 했다. 구글은 빌 게이츠에게 감사해야 한다.

컴퓨터 업계에 게이츠가 기여한 업적을 분석하기엔 아직 시기상조일까? 빌게이츠가 InformationWeek의 인터뷰 요청을 거절한 것을 보니 그는 그렇게 생각하는 것 같다. 그러나 게이츠는 이러한 '회고' 형태의 움직임을 스스로 시작했다. 지난 2006년 6월 15일 자신의 직함과 역할을 레이 오지와 크레이그 문디에게 물려준 다음 장기 휴가를 떠난 것이다. 회사를 완전히 떠나지는 않고 2008년 7월까지는 근무한 뒤 주요 프로젝트에 조언을 제공하는 회장직은 유지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하지만 그가 회사에서 한 발을 뺀 것은 틀림 없다. 2003년에 게이츠는 향후 10년 동안은 회사에 몸담을 것이라고 밝힌 바 있는데, 그의 이번 은퇴는 원래 계획보다 5년이 앞당겨진 것이다.

SW 회사 없던 시절에 'SW로 돈 번 사람'

게이츠의 조기 은퇴는 마이크로소프트와 경쟁하고 있는 오픈 소스와 웹 애플리케이션 소프트웨어가 회사의 라이선스 모델을 잠식하고 있는 상황이라, 회사로서는 매우 중요한 시기에 결정된 것이다. 게이츠는 마이크로소프트가 웹 소프트웨어의 새로운 시대에 대한 준비를 마쳤는지에 대한 대답을 해야 한다. 준비는 미흡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아직은 모르는 일이다. 이미 마이크로소프트는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더 많은 애플리케이션을 웹으로 전환해놓고 있다. 블로그 소프트웨어나 맵(maps), 핫메일, 오피스 라이브 등이 대표적이다. 마이크로소프트에게는 기술적인 실행 가능성보다는 비즈니스 모델의 적응성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마이크로소프트 워드가 향후 웹에서 무료로 제공된다면 박스 라이선스 요금 부과를 어떻게 정당화할 수 있을까? 게이츠는 이 질문에 대한 해답을 오지와 스티브 발머 CEO에게 넘기고 떠났다.

통합된 소프트웨어를 개발한 것이 게이츠가 남긴 유산의 절반이라면 나머지 절반은 이를 통해 엄청나게 번 돈이 차지하고 있다. 더벅머리의 20세 청년이었던 게이츠는 현재는 사용자라 불리지만 당시에는 '하비스트(hobbyist)'였던 컴퓨터 이용자들에게 소프트웨어의 사용 대가를 지불하라고 요구했다. 그는 1976년 2월 공개된 서한에서 "대부분의 하비스트들은 소프트웨어를 훔쳐서 사용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할 것"이라고 비난했으며, 31년이 지난 지금에도 리눅스 개발자 및 벤더와 지적 재산권 다툼을 벌이고 있다.

물론 게이츠는 난폭할 정도로 컴퓨터 사용자들에게 소프트웨어 사용 대가를 청구해 성공했으며 다른 상업용 소프트웨어 업체들도 그 뒤를 따랐다. 현재 전세계 소프트웨어 시장 규모는 연간 2,400억 달러를 상회한다. 지난 5월 게이츠와 함께 공개석상에 나타난 애플의 스티브 잡스 CEO는 빌 게이츠에 대해 "업계 그 누구도 소프트웨어 회사가 무엇인지를 알기도 전에 소프트웨어 회사를 설립한 장본인"이라면서, "그 영향력은 엄청났다. 또한 그들이 추구한 비즈니스 모델이 업계에서 정말로 효과가 높다는 것이 입증되었다"고 말했다.

게이츠는 비즈니스 전문가와 잡음이 많은 기회주의 사이에서 언제나 줄을 잘 타왔으며 그의 회사 역시 마찬가지였다. 또한 도가 지나칠 때도 있어 반독점법 위반에 끊임 없이 휘말리고 있다.

개발자와 고객 모두를 아우를 줄 아는 리더

거의 모든 업체들이 마이크로소프트에 대항해 생존 방안을 마련해야 하지만 마이크로소프트의 힘에 의지해 살아가는 기업들도 많다. 어떤 마이크로소프트의 컨퍼런스든지 한번만 참석해보라. 그러면 마이크로소프트의 광대한 소프트웨어 환경에 낄 수 있는 방법을 찾기 위해 개발자들이 마이크로소프트 주위에 얼마나 열성적으로 모여들고 있는지를 알 수 있을 것이다. 이를 윈도우 에코시스템이라 부르며, 게이츠는 베타 코드를 이들에게 배포하면서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고 있다.

지난달 로스앤젤레스에서 열린 마이크로소프트의 윈도우 하드웨어 엔지니어링 컨퍼런스에서 그는 참석자들에게 "64비트 주소 체계에서는 어디에서나 정보를 넣을 수 있는 32비트 포인터를 가진 32비트 드라이버를 더 이상 제공하지 않을 것"이라면서 새로운 64비트 컴퓨팅 환경을 위해 디바이스 드라이버를 업그레이드해줄 것을 촉구했다.

게이츠는 PC 컴퓨팅 시대를 16비트 윈도우 3.0에서 32비트 윈도우 NT로, 그리고 최근에는 64비트 윈도우 x64로 이동시키는 등 두 가지 메가 아키턱처의 전환을 통해 PC 업계를 이끌어왔다. 그는 컴퓨터 과학의 진보를 지켜보았으며 이러한 변화를 직접 지휘하지는 않았지만 언제나 그 중심에 있었다.

소프트웨어 엔지니어링 전문가는 셀 수 없이 많으며 '비전'을 가진 기술 리더도 무궁무진하다. 게이츠는 미래의 컨버전스 디바이스와 애플리케이션을 이끄는 제품 로드 맵을 개발하는 동시에 개발자와 고객들이 같은 노선을 따르도록 하는 두 가지 역할을 결합시킬 수 있는 독특한 능력을 보유하고 있다.

사라지지 않는 권력

필자가 빌 게이츠를 처음 만난 곳은 1997년 뉴올리언즈 컨벤션 센터에서 개최된 컴퓨터 어쏘시에이츠의 CA 월드 트레이드 쇼였다. 당시 그는 CA의 대표적인 시스템 관리 플랫폼인 유니센터(Unicenter)와 마이크로소프트의 시스템 관리 툴 간의 상호 호환성을 논의하기 위해 참석했었다. 그의 옆 자리에는 CA의 설립자 겸 CEO였던 찰스 왕이 앉아 있었다.

10년이 지난 지금, 뉴올리언즈는 허리케인 카타리나에 의해 거의 파괴되었으며 찰스 왕 회장은 2000년에 CA의 CEO 자리에서 물러나 2002년에 회장 자리에 올랐지만 회계 부정 사건을 일으킨 다음 세간의 관심 밖으로 사라졌다. 반면에 마이크로소프트는 회계연도 2006년에 443억 달러의 매출과 126억 달러의 순익을 달성하면서 5배 이상 성장해왔다.

사람들 앞에 스스럼없이 모습을 드러내며 기술 CEO들에게 손을 내밀어 악수를 청하고 경쟁사의 재능을 사들이며 다른 곳의 기술 혁신을 모방하는 그의 행동은 다른 사람의 아이디어를 통해 폭리를 취하고 있다는 세간의 혹평도 받아왔다.

하지만 그의 이러한 행동은 경쟁사들보다 현명하며 압도하기에 충분하다는 평가를 받을 만하다. DOS 운영체제를 통해 운 좋게 성공했다는 평도 있지만 한번만 성공한 것이 아니다. 그는 PC에서 애플을 물리쳤고 스프레드시트와 이메일에서는 로터스를, 부문별 네트워크에서는 노벨을, 브라우저에서는 넷스케이프를, 그리고 기업용 서버에서는 유닉스 벤더를 격퇴했다.

지난 몇 년 동안, 게이츠는 리눅스와의 경쟁에 주력해왔다. 2003년 11월에 필자는 그에게 마이크로소프트가 윈도우와 리눅스 사이의 상호 운용성을 개선하는 것 등을 추진하게 될 지에 대해 물어본 적이 있다. 그는 "우리가 하고 있는 것 중에 부족하다고 생각하는 분야가 있다면 말해달라"면서 "더 이상 무엇을 해야 하는가?"라고 말했다. 하지만 최근에 마이크로소프트는 노벨 및 린스파이어(Linspire) 등 리눅스 벤더와 윈도우-리눅스 상호 운용성을 목적으로 일련의 협정을 맺었다. 바뀐 배경이 무엇일까? 마이크로소프트는 리눅스 벤더들이 규칙을 따르도록 특허권을 휘두르고 있으며 새로운 시장으로 다시 한번 영향력을 확대하고 있다.
마이크로소프트의 영향력이 확대되는 것은 빌 게이츠의 유산의 하나일 것이다. 마이크로소프트는 PC 소프트웨어에서 서버 소프트웨어로, 기업용 애플리케이션으로, 그리고 모바일 디바이스를 비롯해 홈 엔터테인먼트와 웹으로 저변을 확대하고 있다. 게이츠는 일반적인 소프트웨어와 API, 프로토콜 모두를 자신의 손에 넣고 있다.

게이츠와 마이크로소프트가 기업 기술 시장을 이해하는 데에는 20년이나 걸렸다. 제너럴 모터스의 CIO인 랄프 자이겐다는 자사의 13만 윈도우 사용자의 소프트웨어 요구 사항에 대해 논의하는 자리에서 게이츠를 만났는데 "그는 기업을 이해하고자 했는데 그것이 나를 짜증나게 했었다"고 말했다. 자이겐다는 마이크로소프트와 일했던 초반기에는 "서로 다른 언어로 대화하는 것과 같았다"고 술회했다.
하지만 게이츠는 대기업의 요구 사항을 이해하게 되었다. 자이겐다는 "마침내는 그가 알아들었다"고 밝혔다. 현재 마이크로소프트의 비즈니스 부서는 3월31일 완료된 1분기에서 48억 달러의 매출을 기록해 규모 면에서 클라이언트 소프트웨어 비즈니스에 이어 2위를 차지했다.

빌&멜린다 게이츠 재단으로 위대한 기여 나서

SAP의 맥더멋는 윈도우가 수많은 결함에도 불구하고 IT의 걸작 중의 하나라고 말했다. 마이크로소프트는 윈도우에 대해 인도나 중국 및 기타 개발도상국가를 대상으로 가격을 낮춘 버전을 제공하고 있다. 성공을 거둘 경우 게이츠의 소프트웨어는 수십억 명의 추가 사용자를 확보할 수 있게 될 것이다.
그가 이룬 이와 같은 업적에도, 많은 사람들은 게이츠의 사회에 대한 가장 위대한 기여가 빌&멜린다 게이츠 재단(Bill & Melinda Gates Foundation)의 형태로 지속될 것으로 생각하고 있다. 이 재단은 게이츠의 개인 재산 상당수를 포함해 334억 달러의 기금을 운용하고 있으며 전세계 질병을 없애고 보건을 향상시키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게이츠와 그가 공동으로 설립한 회사의 얘기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더 많은 소프트웨어 패치와 취약점이 발표될 것이며 유럽 연합의 제소와 오픈 소스 진영에서 마이크로소프트의 전략에 대한 불만의 목소리 역시 높아질 것이다.

하지만 윈도우 기반의 스마트폰과 컴퓨터를 통해 새로운 형태의 협업이 이루어진다면, 직원들의 생산성이 향상되고 학생들의 교육 여건이 좋아진다면, 가난한 나라의 사람들이 컴퓨터를 갖게 되고 말라리아 백신을 얻게 된다면, 그리고 삶의 표준이 세계에서 가난을 줄여준다면 빌 게이츠의 단점은 희석될 것이다. 그를 위해서가 아니라 우리를 위해서 그가 성공하기를 희망해보자.

'폭군(Tyrant)' 빌 게이츠

서로 불가분의 관계인 빌 게이츠와 마이크로소프트는 위대한 미국인의 성공 스토리라 할 수 있다. 그는 수많은 사람들을 고용하고 있으며 그의 소프트웨어는 엄청난 사람들이 사용하고 있고 기술적인 리더십은 빛을 발하고 있다. 이러한 정황에 비추어볼 때 빌 게이츠를 나쁘게 말한다면 미국인이 아닐 것이다.

그렇다면 게이츠의 유산을 통찰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 이번 기사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일부 업계 베테랑들은 그에 대한 평가에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오라클은 언급을 거절했으며 썬 마이크로시스템즈의 스콧 맥닐리 CEO 역시 마찬가지였다. 썬의 관계자는 맥닐리가 빌 게이츠에 대해 긍정적으로나 부정적으로 언급하길 원치 않는다고 전해주었다. 그 관계자에게 필자가 게이츠에 대해 '강력하게' 의견을 말해줄 사람을 섭외하기가 쉽지 않다고 털어놓자 그는 "누구도 나서서 그렇게 말하지 않을 것"이라고 답했다.
아니, 한 사람은 있다. 세일즈포스닷컴의 마크 베니오프 CEO이다. 그는 게이츠에 대해, "마이크로소프트가 PC에서 독점적인 위치를 차지하는 동시에, 엄청난 매출을 달성해 세계에서 가장 부자로 만든 기술과 비즈니스 모델을 개발한 사람으로 기억될 것"이라고 평가했다.

'포식'의 천재 게이츠

게이츠의 가장 위대한 유산이 기술적인 혁신과는 거리가 멀다는 것은 확실하다. 그는 운영체제를 개발하지 않았으며 워드 프로세서도 만들지 않았고 그래픽 사용자 인터페이스도 창조한 적이 없으며 웹 브라우저도 발명하지 않았다. 또한 마이크로소프트에서 어느 누구도 그렇게 하지 못했다.

화이트워터 검사인 케네스 스타와 연방 대법원 특별 검사인 로버트 보크는 2001년 7월 월스트릿 저널 기고문에서 "혁신이 아니라 비즈니스와 포식에서의 천재였다"고 기술했다. 마이크로소프트를 겨냥한 것이지만 게이츠를 지목한 것과 다름 없다.

게이츠가 IBM의 절박한 상황을 이용해 PC 운영 체제를 엄청난 수익의 비즈니스로 적용한 스토리는 로마의 시인 호라치움이 남긴, "오늘을 잡아라, 오늘에 모든 것을 걸어라(carpe diem)"라는 말의 대표적인 사례로 꼽히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스토리도 수년 동안 법적인 소송과 법무부의 조사를 받는 등 음험한 비즈니스 거래로 오점을 남기고 말았다.

1980년에 게이츠는 IBM 경영진에게 자신의 프로그래밍 언어인 베이직(Basic)과 함께 새로운 PC 운영체제를 보유하고 있다고 단언했다. 사실은 그렇지 않았기 때문에 당시 가장 있기가 있던 PC 운영 체제였던 CP/M을 모방한 시애틀 컴퓨터 프러덕츠(Seattle Computer Products)라는 작은 회사의 QDOS를 5만 달러에 사들였는데, 원래 소유주에게는 IBM과 협상 중이라는 것을 알리지 않은 채 인수했다.

하지만 이후 IBM의 PC는 엄청나게 팔리게 되었고 마이크로소프트의 운영체제인 MS-DOS는 사실상 업계 표준으로 자리를 잡게 되었다. 게이츠는 경쟁사들을 흡수하고 소외시키며 제거하는 기법을 통해 그 지위를 확고히 했다.

경쟁자 퇴출시키고 경쟁 차단한 것이 가장 큰 혁명

Stac Electronics가 대표적인 사례이다. 1990년대 초반만 해도 Stac는 인기가 높은 디스크 압축 유틸리티인 Stacker로 성공 가도를 달리고 있었다. 마이크로소프트는 Stacker에 대해 라이선스를 제안했지만 Stac의 CEO였던 게리 클로우는 라이선스 요금이 터무니 없이 낮다며 그 제안을 거절했다. 그러자 마이크로소프트는 경쟁 제품을 라이선스한 다음 MS-DOS 버전 6에 통합해 무료로 제공하게 된다. Stac는 마이크로소프트를 특허권 침해 혐의로 1994년 제소해 승소했지만 이미 그때는 압축 유틸리티가 OS의 일부분이 되었으며 Stac의 시장은 사라지고 말았다. 게이츠는 자신의 의도를 스스럼 없이 만천하에 공개했다. 필자는 90년대 초반의 마이크로소프트 컨퍼런스에 참석한 적이 있었는데 당시 그는 소프트웨어 개발자들에게 마이크로소프트가 진입하고자 하는 시장에 있을 경우 사전 경고를 받게 될 것이며 순순히 자리를 양보하는 것이 좋을 것이라는 말을 했던 것을 잊지 않고 있다.

이러한 고압적인 태도는 주의를 끌게 마련이다. 1990년, 연방통상위원회(FTC; Federal Trade Commission)는 마이크로소프트의 기업 행태에 대한 조사팀을 발족시켰다. 3년 뒤에는 법무부가 이를 맡아 진행했다. 이듬해, 마이크로소프트는 하드웨어 제조 업체들에게 그들이 탑재한 운영체제가 무엇이건 상관 없이 MS-DOS를 탑재한 것으로 간주해 비용을 청구하는 등 '악명 높은' 반경쟁적인 기업 관행을 버리기로 한 동의명령(consent decree)에 서명했다.

1998년에 법무부는 마이크로소프트에 대해 웹 브라우저를 운영체제에 번들로 제공함으로써 당시 인기가 높았던 넷스케이프 인터넷 브라우저를 없애버리고 플랫폼에 상관 없이 프로그래밍할 수 있게 해주는 자바라는 새로운 언어가 마이크로소프트의 '헤게모니'를 위협할 수 있다고 판단해 방해했다는 내용을 들어 동의명령 위반 혐의로 마이크로소프트를 고소했다. MIT의 경제학 교수이자 반독점법 정부 관계자인 프랭클린 피셔는 "넷스케이프와 자바를 말살하려는 의도가 명백했다"고 말했다.

독점하는 것은 법에 위반되며 혁신을 저해하고 소비자들에게 해를 끼치는 등 시장을 교란한다. PC 소프트웨어에서 마이크로소프트는 독점권을 행사하고 있지만 비교적 가격을 낮게 책정하면서 대중들을 '입막음'하는 데 성공해왔다. 마이크로소프트가 저해한 혁신은 엄청난 피해이다. 피셔 교수는 "어떤 혁신이 일어났을지 모른다"면서, "마이크로소프트는 자신이 원치 않는 혁신은 힘으로 제압해버렸다"고 밝혔다.

바로 이점이 게이츠가 소프트웨어에 기여한 것이다. InformationWeek의 칼럼니스트였고 현재 포브스(Forbes)와 PC월드에서 칼럼니스트로 활동하고 있는 스티븐 메인스는 "경쟁자들을 시장에서 퇴출시키고 경쟁을 차단해버리는 총명하고 성공적인 방법이 게이츠가 이뤄낸 가장 큰 혁명"이라고 비아냥거렸다.

"혁신이 아닌, 협박을 통해 승리하라"

현재까지는 상당수 사람들이 게이츠의 과거 무분별한 행동에 대해 그냥 받아들이는 것처럼 보인다. 보험 중개업체인 Lockton의 데이브 로빈슨 CIO는 "개인적으로, 반독점법에 대해 별 다른 감흥을 느끼지 않는다"고 밝혔다. 그에게 마이크로소프트는 단순히 소프트웨어 업계를 표준화하기 위해 그렇게 해야만 했을 것이라는 의견이다. 그는 "의도적으로 그랬든, 불법적으로 그랬든, 고객에게는 혜택이 되었다"고 전했다. 물론, 빌 게이츠에게도 이득이었다.

폭로 저널리스트인 아이다 타벨이 1904년에 쓴 '스탠다드 석유회사의 역사(The History Of The Standard Oil Company)'에서 그녀는 "나는 기업의 규모의 부에 대해 적의를 갖고 있지 않으며 기업 형태를 부정하지도 않는다. 그들이 거대하고 부유해지기 위해 결합 및 성장을 해야만 했다는 것도 인정한다. 하지만 합법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그들은 결코 공정하지 못했으며 그로 인해 그들에게서는 아무런 위대함도 찾을 수가 없다"라고 밝혔다.

게이츠는 다소 어눌해보이며 머리는 비상하지만 비현실적인 인물로 묘사되고 있다. 하지만 놀랍도록 매력적이고 탐구적이다. 이전 마이크로소프트 직원이었던 로버트 스코블은 "그는 사교적이며 비즈니스적인 상황에서 내가 만날 때마다 끊임 없이 질문을 던지는 세계에서 유일한 비즈니스 리더"라고 말했다.
또한 그는 직원과 다른 사람에게 성급하고 까다롭기로 유명하다. 필자는 1990년대 초에 한 컨퍼런스에서 그와 마주친 적이 있었는데, 당시 그에게 법무부의 최초 조사에 대한 내용을 회고시키면서 마이크로소프트의 제한적인 라이선스 정책에 반대하는 아시아의 PC 제조 업체들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서 그의 반응을 보았더니 그는 "내가 이제까지 들어본 말 중에서 가장 멍청한 것"이라고 오만하게 답했다.

리눅스 배포 업체인 레드 햇의 엔지니어링 부사장이자 소프트웨어 업계에서 20년 동안 몸담고 있는 전문가인 폴 쿠미에르는 게이츠에 대해 마이크로소프트의 어떤 희생을 치루더라도 승리해내는 문화를 주도해왔다고 밝혔다. 하지만 그러한 영향력도 서서히 쇠퇴하고 있다. 쿠미에르는 "현재 마이크로소프트에는 부도덕하고 경쟁사를 붕괴시키는 마이크로소프트의 평판을 달가워하지 않는 직원들이 많다"고 말했다.

그렇다해도 변화의 바람이 불기까지는 다소 시일이 걸릴 것으로 예상된다. 1950년 웨스트 버지니아의 연설에서 미 국무부 안에 205명의 공산당원이 활동하고 있다고 주장하면서 '마녀사냥'을 일으킨 조 맥카시 상원 의원처럼, 스티브 발머는 최근 포천(Fortune)지와의 인터뷰에서 리눅스를 비롯해 오픈 소스 소프트웨어가 마이크로소프트의 소프트웨어 특허권 235개를 위반했다고 주장했다. 바로 빌 게이츠의 "혁신이 아닌, 협박을 통해 승리하라"는 원칙과 일치한다.

과거의 과오 망각하고 자선가로 기억할 것

이것이 빌 게이츠의 유산일까? 아마 그렇지 않을 것이다. 필로프스키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가 처음에 어떻게 해서 그 위치에 올랐는지 보다는 그의 박애적인 노력과 그가 자신의 돈을 어떻게 썼는지를 기억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빌 게이츠는 소프트웨어의 영웅이 될 수 있었다. 하지만 그는 불공정했기 때문에 자신의 위대함을 스스로 망치고 말았다.

빌 게이츠의 역사

1975년 4월 마이크로소프트 설립
1976년 2월 한 편지에서, PC 하비스트들이 소프트웨어를 도용하고 있다고 비난함
1981년 8월 IBM, 마이크로소프트의 MS-DOS 1.0 탑재한 노트북 출시
1985년 11월 게이츠의 대표작인 윈도우 1.0 데뷔
1989년 8월 마이크로소프트의 수익원인 오피스 등장
1990년 6월 FTC, 마이크로소프트의 비즈니스 행태 조사
1993년 8월 법무부가 조사를 위임 받음
1994년 7월 마이크로소프트, 동의판결 합의
1995년 8월 넷스케이프에게 나쁜 전조인 인터넷 익스플로러 등장
1998년 5월 법무부, 동의판결 위반 혐의로 마이크로소프트 제소
1998년 10월 리눅스를 위협으로 규정한 '할로윈' 메모 유출
2000년 1월 빌&멜린다 게이츠 재단 설립
2002년 7월 게이츠, '신뢰할 수 있는 컴퓨팅(trustworthy computing)' 전략 발표
2005년 12월 빌, 멜린다와 보노, 타임즈의 올해의 인물로 선정
2006년 6월 크레이드 문디와 레이 오지에게 권한 위양
2008년 7월 게이츠, 더 이상 마이크로소프트에 출근하지 않음. 회장으로만 남을 예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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