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버 레이크와 TPG 캐피털 82억 달러에 인수∙∙∙달라진 사모펀드 행보에 관심 집중






전통적인 사설(기업) 전화망과 IP텔레포니 전문업체인 어바이어가 사모펀드인 실버 레이크 (Silver Lake)와 TPG 캐피털의 손에 넘어갔다. 알카텔이 루슨트를 인수한 이래 통신업계의 매머드급 M&A로 기록될 만 하다. 매매 대금만도 82억달러로 약 8조원에 해당한다.

어바이어의 M&A에 따른 관련업계의 관심은 'IP 텔레포니 사업에서 시스코와의 경쟁 구도에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가'이다. 또 인력 감축 등 강도 높은 구조조정을 통해 기업가치를 올린 후 매매차익을 남기고 새로운 주인을 찾아 되파는 사모펀드의 특성상 향후 어바이어의 새로운 주인이 누가 될지가 초미의 관심사이다.

치열한 각축장 UC시장서 독자 생존 어려워

시장전문가들은 M&A에도 불구하고 어바이어와 시스코는 기업용 IP 텔레포니 시장에서 당분간 경쟁을 지속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어바이어는 IP기반의 기업용 전화 장비 시장에서 여전히 선두를 달리고 있다. 1분기의 경우 매출이 25.3% 증가했으며(시스코는 25.2% 증가) 2분기 순익은 50% 증가한 3,800만 달러를 기록(주당 8센트)했다. 매출은 4.5% 증가한 12억9,000만 달러라고 발표했다.

주목할 만한 것은 어바이어의 순익과 매출이 8년 전 IP텔레포니 시장에 진입한 시스코보다 느리게 성장하고 있다는 점이다. 시스코와 달리 전통적인 전화 시스템에서 강세를 보이고 있는 어바이어는 고객들이 IP장비로 이동하면서 매출이 감소하고 있는 것이다.

이에 따라 어바이어는 그동안 IP기반 강화에 주력해왔다. 최근 SIP 서버와 시그널링 시스템 제공 업체인 유비쿼티 소프트웨어(Ubiquity Software)를 인수한 것이 좋은 사례이다. 어바이어는 시스코가 SIP을 콜 매니저에 추가한 것이 얼마 되지 않기 때문에 충분히 따라잡을만하다고 판단했다. 시스코가 네트워킹 분야에서는 브랜드 인지도가 높지만 IP 커뮤니케이션 장비 시장에서는 브랜드에 걸맞는 강력한 영향력을 발휘하지는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 하더라도 어바이어는 변화하는 시장에서 위기에 봉착했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IP기반의 텔레포니 시장이 급속히 UC(Unified Communication)시장으로 이전하고 있기 때문이다.

UC 시장은 말 그대로 통합 커뮤니케이시션 시장이다. 전통적인 전화시스템 뿐만 아니라, 네트워크, IP텔레포니, 비디오, 오피스나 커뮤니케이터 등과 각종 협업 애플리케이션을 기반으로 한다. 그러나 어바이어는 UC 시장의 경쟁업체들인 시스코나 알카텔-루슨트, 마이크로소프트, 노텔 등과 비교할 때 솔루션이나 플랫폼이 제한적이다. 전통적인 PBX기반의 전화시스템에 강점을 두고 있고, IP기반으로 발 빠르게 변신했을 뿐이다. 한마디로 점점 더 치열해지는 통합 커뮤니케이션 시장에서 자이언트급 통신장비 업체들과 격돌해 독자 생존한다는 것이 어렵다는 생각을 할 수 있다. 따라서 어바이어의 이번 기업 매각은 최상의 선택일 수 있다.

기술기반의 성장산업에 투자하는 사모펀드

그렇다면 어바이어의 향후 향방은 어떻게 될까? 당연한 수순이겠지만, 올 가을쯤 M&A가 완료되면 강도 높은 구조조정이 이루어질 것으로 전망된다. 그렇다고 인력 감축 등 전통적이고도 구태의연한 방식의 구조조정이 예정되어 있다고는 말 할 수 없다. 그러한 방식은 '소수의 개인 및 기관투자자로부터 돈을 끌어모아 기업을 인수해 가치를 높인 뒤 되팔아 차익을 추구하는 기존 사모펀드의 방식이다. 사모펀드도 최근에는 영업 방식을 바꾸고 있다.

우선 사모펀드의 목표가 '자본수익률 극대화'에서 '영업수익률 극대화'로 바뀌고 있다. 과거 사모펀드들은 인수한 주식가격의 차익거래(arbitrage trading)나 차입비율(leverage) 등을 통해 자본수익률을 극대화하는 데 치중했다. 하지만 최근 들어서는 기업경영을 제대로 해 회사가 영업이익을 많이 내고, 기업가치를 올리는 방향에 집중하고 있다.

왜 그럴까? 우선 사모펀드들 간 경쟁이 너무 거세져 싼 가격으로 좋은 기업을 인수하는 게 어려워졌다. 또 기업매각방법도 높은 가격을 써내야 낙찰되는 최고가 경매방식으로 바뀌었다. 따라서 다소 비싼 가격을 지불하더라도 잠재가치가 큰 기업을 인수한 후, 기업 경영을 개선해 기업가치를 극대화시키는 전략으로 돌아선 것이다. 따라서 어바이어를 인수한 사모펀드인 실버 레이크 (Silver Lake)와 TPG 캐피털 또한 당분간 어바이어의 가치를 극대화하는데 초점을 맞출 것으로 전망된다. 물론 그 다음 수순은 당연히 매각이다.

어바이어를 인수한 실버 레이크는 어바이어 외에 이미 아메리트레이드(Ameritrade), 아바고(Avago), 비즈니스 오브젝트(Business Objects),플렉트로닉스(Flextronics), 가트너(Gartner), IPC Systems, MCI, Network General, NXP, 시게이트(Seagate Technology), Serena Software, SunGard Data Systems, Thomson and UGS 등에 투자하고 있다. 따라서 단순히 돈 되는 기업을 삼키는 사모펀드로 오해해서는 안 된다. 실버 레이크는 '기술기반의 성장산업에 투자한다'고 표방하였으며 실제로 하이테크 관련 기업에 집중 투자하고 있다. 따라서 실버 레이크는 상당기간 동안 어바이어의 기업 가치를 극대화하는데 집중할 것으로 보인다.

실버 레이크와 함께 어바이어를 인수한 TPG 캐피털은 실버 레이크의 파트너로 유명하다. 실버 레이크에 비해 투자 업종이 다양하지만, 통신과 IT 부문은 실버레이크와 비슷한 행보를 보이고 있다. TPG 캐피털이 투자한 회사들 중 IBM의 PC사업 부문을 인수한 중국의 레노버와 미국내 5대 휴대폰 메이커인 알텔, 인터그라프, 일본 텔레콤 등이 대표적이다.

TPG 캐피털은 특히 중국 레노버와 합작, IBM PC사업을 인수한 후 경영권은 레노버에 넘기는 대신 경영진 선임에 있어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것으로 유명하다. 한마디로 경영권보다는 영향력 행사에 주력하고 있는 사모펀드의 성격을 그대로 보여준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자금력과 시너지 창출이 인수 최대 쟁점될 것

지금으로서는 어바이어의 향방을 점치기는 어렵다. 먼저 UC분야에서 확실하게 입지를 다져가고 있는 시스코가 최소한 10조원이라는 돈을 투자해 어바이어를 인수할 것이라는 예측은 무리수가 있다. 돈도 돈이지만, 필요성 자체를 느끼지 못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그동안 많은 검토를 했던 노텔이 유력하다고도 할 수 없다. 분명 UC 부문에서 어바이어와 시스코에 뒤지고 있지만, 시너지 면에서 부정적이라는 게 관련업계의 분석이다.

루슨트 인수 이후 엔터프라이즈 시장 진입을 강하게 드라이브하고 있는 알카텔-루슨트는 가능성이 점쳐지기도 한다. 시장 지평을 북미와 아시아로 넓히는 것 외에 새로운 시장을 개척할 필요가 있는 알카텔-루슨트로서는 어바이어를 새로운 동력으로 삼을 만 하다.

그러나 현재로서는 어느 시점, 어느 기업이라고 예측하기 힘들다. M&A시장의 약 25%의 자금을 쥐고 있는 사모펀드의 입장에서 수익이 확실히 보장되는 방안을 찾을 것이기 때문이다. 전혀 예상하지 않은 주인이 나타날 수도 있을 것이다. 새로운 주인인 실버 레이크와 TPG 캐피털이 자신들이 투자한 여타 IT 및 텔레콤 회사와 통합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어떻든 당분간 어바이어의 향후 행보는 네트워크, 통신시장의 핫이슈가 될 것임은 확실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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