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전시행정과 대기업 덤핑 전략에 '전문업체 아사직전'

"RFID를 국가 신성장동력원으로 삼았으면 국내 RFID 우수 HW나 SW를 개발해 글로벌 시장 공략의 발판으로 삼는데 총력을 쏟아야 할텐데, 최근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시범사업과 확산사업의 방향과 그 속에서 일어나고 있는 가격 덤핑 등 일련의 상황을 보고 있으면 분통이 터진다."
한 업체 관계자가 요즘 국내 RFID 산업이 돌아가는 상황을 보고 이처럼 개탄의 목소리를 토해냈다.

2004년부터 정부가 의욕적으로 추진하고 있는 RFID 시범사업과 본사업은 국내 RFID에 대한 인식을 높이고, 여러 분야에 적용가능성을 심어줬다는 점에서 긍정적인 평가를 받는다. 많은 RFID 전문기업들이 정부 정책에 희망을 걸고 이 분야 사업에 나섰고, 실제로 시장도 개화의 가능성을 보이고 있다.

그러나 신성장동력원으로 추진하겠다는 정부의 말만 믿고 RFID를 주력사업으로 추진했던 국내 중소업체들은 허리띠를 졸라매던 끝에 이제는 아사 직전에 몰렸다며 그 불만이 폭발직전에 와 있다.
왜 이런 일들이 발생하고 있는가? 모든 문제의 발단은 앞만 보고 RFID 확산에만 주력한 정부의 책임이 크다. 고질적인 전시행정 버릇을 버리지 못하는 정부가 한정된 예산으로 너무 많은 RFID 사업을 무리하게 진행했다는 것이 업계의 공통된 문제 인식이다.

작년까지 RFID 본사업과 시범사업에 참여한 많은 RFID 업체들은 차기 사업에 대한 일말의 기대속에서 부족한 예산에 맞추느라 적자사업을 감내해야 했다. 그런데 올해 정통부가 추진하고 있는 RFID 확산사업은 86억 예산에 무려 7개 사업을 선정해 추진하고 있다. 주관기관의 매칭을 통해 사업을 진행한다고는 하지만 42.6억 원의 매칭 예산이 형성됐을 뿐이다. 1개 사업 평균 18.4억 원의 예산이 투입되는 셈이다. 이는 지난 사업에 대한 적자보전은커녕 더 이상 졸라맬 수도 없는 참여업체들의 허리를 아예 동강내겠다는 정부의 처사라는 게 업계 생각이다.

업체 관계자는 "현재 우리가 입찰에 참여하기로 결정한 사업의 예산이 터무니없이 적게 책정돼 입찰에 참여해야할지 고민"이라고 속내를 밝혔다. 그는 "이렇게 되면 여태까지 진행돼 왔던 시범사업과 본사업의 전철을 또 밟는 꼴이 되고 만다"며 "더 허리띠를 졸라맬 수 없는 국내 RFID 업체들은 결국 아사하게 되고, 시범사업과 본사업을 통해 국내 RFID 업체들이 닦아 놓은 RFID 시장은 결국 외산 업체들이 장악하게 될 것"이라고 경계했다. 이러한 결과가 현재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USN 시범사업을 통해서도 발생하지 않을까 걱정된다고 덧붙였다.

'때리는 시어미보다 말리는 시누이가 더 밉다'고 이처럼 사업을 혼탁하게 만드는 또 하나의 주범으로 대기업의 덤핑횡포도 큰 문제로 지적된다.
현재 국내 RFID 시장이 공공 위주로 돌아가다보니, 공공사업에 일부 대기업들이 RFID 시장 단가를 터무니없이 낮춰 입찰하면 중소 업체들도 따라갈 수밖에 없는 형국이다. 여기서 나오는 입찰가가 바로 시장가로 적용되는 것은 자명한 사실이다.

한 중견 RFID HW업체 관계자는 "대기업은 RFID 사업을 하다가 수지가 맞지 않아 다른 사업으로 전환하면 그만이지만, 이 사업에 사활을 걸고 있는 중소 RFID 업체들은 RFID 사업 하나만 보고 투자를 해왔는데, 터무니없는 가격을 제시하며 순식간에 시장을 어지럽히는 행위는 자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작년에 이어 올해 일부 대기업들이 공공 프로젝트 HW 단가를 말도 안되게 낮춰 입찰에 참여하고 있다. 각 확산사업에 책정된 예산이 적다보니 주사업자는 당연히 예산을 맞추기 위해 조금이라도 낮은 입찰가를 제시한 쪽으로 기울기 마련이다. 결국 자금력이 바닥난 전문업체들은 도리없이 주저앉아야 하는 실정이다.

한 업계 관계자는 "정부 시범사업이나 본사업이 HW 가격을 너무나도 떨어뜨려놔 수출에서도 악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털어놨다. 그는 정부 RFID 사업에 HW를 적자를 봐가면서 납품했다가 원래 가격으로 수출했는데, 이 사실을 외국 바이어가 알아차려 상당한 애를 먹은 일화를 들려줬다.

이대로 가다간 정부가 선정한 국가의 미래 성장 동력인 RFID산업이 신성장동력원은커녕 외산 제품들의 한판 잔치로 끝날 공산이 크다는 우려가 벌써부터 업계에 확산되고 있다. 현재로서는 공공시장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국내 RFID 업체들이 그나마 R&D 투자를 통해 기술경쟁력을 갖추고 수출이라는 열매를 맺기 위해서는 정부와 업계의 공동의 노력이 필요하다.

정부는 미래의 국가 먹거리로서 RFID 기술의 수출 경쟁력을 확보하는데 우선 순위가 무엇인지 다시 한번 고민해봐야 한다. 또한 업계는 지금은 서로를 보호해야 할 때임을 인식해야 한다. 터무니없는 가격으로 시장을 교란시켜 결국은 제살을 깎아먹는 것은 물론 외산에 송두리째 자리를 내주는 우를 범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김진희 기자 rfidkim@rfidjournalkore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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