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진섭 오픈베이스 그룹 회장

정진섭 오픈베이스 그룹 회장

[컴퓨터월드] 대용량 DB 설계 및 구현 기술로 이 시장을 주도해 온 오픈베이스가 창립 20주년을 맞이했다. 지난 1995년 9월 설립 당시 국내 IT시장은 외산이 거의 주도를 하고 있어 독자 기술로 시장을 개척하기란 쉽지 않았다.

그러나 오픈베이스는 자사만의 독특한 데이터베이스 설계 및 구현 기술로 대법원, 특허청 등의 대용량 데이터베이스 구축은 물론 검색 시스템까지 개발해 높은 평가를 받았다. 특히 오픈베이스가 개발한 검색 알고리즘은 미국의 유명한 W사, L사 등이 국내 시장진출을 포기했을 만큼 뛰어났다고 한다. 오픈베이스의 이 같은 기술력은 성장의 튼튼한 기반이 됐고, 지금도 최고라는 평가를 받기에 부족함이 없다는 게 관련 업계의 공통된 지적이다.

이젠 오픈베이스를 중심으로 오픈SNS, 데이타솔루션, 나노베이스, 시큐웨이브, 그리고 중국 법인인 아시아애널리틱스(AsiaAnalytics, China) 등의 계열사를 거느린 그룹으로 성장했다. 그 중심에 정진섭(59세) 오픈베이스 그룹 회장의 리더십이 있었다는 게 내부 직원들의 한 목소리이다.

정 회장은 그러나 “직원들 덕분에 참 행복한 20년을 보냈다”며, “특히 DB 설계 및 구현 기술을 개발한 오픈SNS 배복태 사장의 노고는 성장의 가장 큰 토대가 됐다”고 그 공을 직원들과 배 사장에게 돌렸다. 정 회장은 창립하면서 반드시 지켜야 할 3가지 항목, ▲신용을 지키는 회사 ▲비정상적인 일이 일어나지 않는 합리적인 회사 ▲망하면 안 된다는 자신과의 약속을 마음속으로 철저히 지키려 노력해 왔다고 밝혔다.

정 회장은 향후 20년을 “그룹의 외형만이 아닌 직원들과 그 가족들 모두 함께 행복한 삶이 실현되는 내실 있는 기업으로 성장하길 바란다”고 밝혔다. 언론과의 인터뷰는 코스닥 등록 때(2001년) 이후 두 번째라는 정 회장을 만나본다.


3두 마차 체제는 환상의 콤비

“어떤 큰 목적을 갖고 오픈베이스를 창립한 것은 아닙니다. 필요에 의해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비즈니스를 시작했는데, 벌써 20년이 됐습니다.”

정진섭 오픈베이스 그룹 회장은 창립 20주년 기념 소감을 ‘필요에 의해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흘러왔다’고 회상했다. 오픈베이스의 성장·발전에 큰 어려움이 없었다는 얘기다.

그렇다. 오픈베이스는 지난 20년 동안 큰 풍랑이나 태풍도 만나지 않고 순탄하게 성장해 왔다. 오히려 다른 기업들이 어려움을 겪을 때 - IMF(1998년) - 더 큰 성장을 했다. 그 이유는 정 회장을 중심으로 창립 멤버이자 자회사인 오픈SNS 배복태 사장과의 콤비 플레이 때문이었다는 게 주변 관계자들의 공통된 지적이다. 지금도 이들 두 사람의 호흡은 멀리 있어도 숨결을 느낄 만큼 잘 맞고 있다는 게 정 회장의 설명이다. 정 회장은 리더십을 바탕으로 일을 벌이는 스타일인 반면, 배 사장은 기술력을 바탕으로 프로젝트 구축 및 완료까지 뒤처리를 잘한다고 한다. 회사 설립에서부터 지금까지 한 배를 타고 있다는 것에서도 이들의 관계가 어떤지 잘 알 수 있음이다.

물론 다른 계열사 대표들과의 호흡도 마찬가지이다. 예를 들어 오픈베이스 송규헌 대표이사는 2000년 3월 입사 후 현재까지 16년여 째 정 회장과 호흡을 맞추며 성공적으로 이끌고 있다는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한 마디로 정 회장을 중심으로 오픈베이스 그룹을 이끌고 있는 3두 마차 체제는 서로 믿고, 끌어주고 밀어주는 아무나 쉽게 흉내 낼 수 없는 환상의 콤비임에 분명하다. 그것은 곧 정 회장의 리더십에 큰 하자가 없다는 것으로 해석된다.

정 회장의 매력은 ‘있는 그대로의 솔직 담백함과 합리적’이라는 데 있다고 한다. 정 회장 스스로도 밝혔듯 회사 설립 당시 흔히 일반 기업들이 내세우는 ‘국내 최고’, ‘세계 최고’가 되겠다는 거창한 꿈 보다 직원들 및 회사 간, 고객들과의 신용을 먼저 생각했다. 신용을 지키기 위해서는 합리적인 의사결정이 더없이 중요하고, 특히 그는 망하지 말자라는 아주 소박하면서도 가장 중요한 약속을 스스로에게 한 것이다. 그 약속을 지키기 위해 정 회장은 최선을 다 했고, 그런 정 회장을 믿고 따른 임직원들이 있었기에 오늘의 오픈베이스 그룹으로 성장했다는 것이다.

창립 목표는 ‘망하지 말자’

사실 정 회장은 벤처기업을 설립해 망해본 경험도 갖고 있다. 정 회장이 미국 스탠포드 대학교 대학원 네트워크 연구실에서 연구원으로 유학하던 시절(1980년~1984년), 당시 실리콘밸리는 벤처기업 붐으로 스탠포드 대학원생들이 너도나도 벤처기업을 설립했다고 한다. 정 회장 역시 팩스를 인터넷으로 보내는 SW를 개발·공급하는 벤처기업을 설립했지만 제품의 상용화 기간이 너무 길어 결국 3년 만에 사업을 접어야만 했다고 한다.

속된 말로 쫄딱 망한 정 회장은 쪽박신세가 돼 극단적인 생각을 할 만큼 충격이 컸다고 한다. 정 회장은 대한민국 대다수 국민들이 부러워하는 경기고등학교와 서울대학교(산업공학과)를 졸업하고 KAIST에서 석사까지 마친 수재로 거침없이 살아왔다. 그런 그였기에 사업실패의 충격도 그만큼 컸음이 분명하다. 그러나 정 회장은 그 때의 경험과 충격을 교훈 삼아 오픈베이스의 성장 발전으로 승화시켰다. 정 회장이 창업하면서 “망하지는 말자”는 자신과의 약속을 한 데는 그러한 배경에서 비롯됐음이다.

정 회장은 “대학교 시절부터 사업에 관심이 많아 KAIST 시절(1981년)에는 PC를 조립·판매하기 위해 밤새워 일을 한 적이 있고, 그 때 너무 무리해 과로로 쓰러진 적도 있다”며, “당시 병원에 입원해 아무 것도 하지 않은 채 몇 개월 동안 누워 있는데, 아무 것도 할 수 없다는 게 그렇게 비참할 수 없음을 깨달았다”고 밝혔다. 특히 그는 석사를 마치고 C대학교 교수로 부임한 바 있는데, 한 학기를 마친 후 그만뒀다고 한다. “밑에서부터 일을 하고 싶었는데, 젊은 나이에 대접받는 게 싫었고, ‘갑’보다는 ‘을’이 좋고, 어느 누구와도 스스럼없이 지내는 게 좋았기 때문”이었다고 정 회장은 밝혔다.

정 회장의 사업 꿈은 오픈베이스 설립을 시작으로 본격 이뤄지기 시작했다. 오픈베이스는 자회사인 오픈SNS의 배복태 사장의 제안으로 탄생했다고 한다. 두 사람은 DB 검색 전문기업이자 전 직장인 오픈테크에서 만났는데(1993년), 이 회사는 당시 주 공략시장인 금융과 정부·공공 가운데 수익률이 더 높은 금융시장에만 집중할 계획으로 정부·공공 시장을 포기할 의사를 비쳤다는 것이다. 정부·공공 분야는 마치 ‘계륵’과 같았기 때문이라고 한다.

이에 당시 DB 검색 부문 담당 엔지니어였던 배 사장은 정부·공공 시장 영업을 맡고 있던 정 회장에게 회사 설립을 제안했고, 두 사람은 의기투합해 오픈베이스를 설립했던 것이다. 사실 그 때 대법원 판례검색 프로젝트가 시험사업을 거쳐 본 사업 계약이 성사되기 직전이었다고 한다.

정 회장은 배 사장과 관련, “합리적이고, 한 달에 한 번 정도 만나도 서로 이해하고 주어진 책임을 다하기 위해 열심히 하는 인물”이라며, “특히 그는 대용량 DB 설계 및 구현 능력 기술은 알고리즘을 직접 개발할 만큼 배 사장만의 노하우로 아무나 쉽게 따라올 수 없을 것”이라고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정 회장은 이어 “구글이 검색으로 세계적인 기업이 됐지만, 구글과 똑같은 검색엔진을 개발하는 것은 그렇게 어렵지 않다. 다만 오픈베이스는 내부정보 검색에 집중한 반면, 구글은 데이터에 관계없이 엄청난 데이터를 다루는데 특화시켜 성공했다”며, “기술력도 중요하지만 시장의 흐름에 맞춰야만 더 큰 비즈니스를 창출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덧붙였다.

정 회장은 “오픈베이스의 대용량 DB 검색엔진 개발로 수백 명의 변호사를 고용하고 있는 미국의 W사, L사 같은 큰 기업들이 국내 시장진출을 포기했다”며, “지금도 글로벌 검색기업들이 국내 시장에서 맥을 못 추고 있는 것은 오픈베이스의 영향이 컸음이 아니었겠느냐”고 국가 경제에 기여했음을 은근히 자랑도 했다.

대용량 DB 구축 및 검색기술은 국내 최고

오픈베이스는 정 회장과 배 사장이 단 둘이서 설립했고. 대법원과 특허청을 첫 고객이자 주 고객으로 오픈베이스는 성장가도를 달리기 시작했다. 사실 오픈베이스가 탄생할 시기인 1995년은 외산 기업들이 국내 IT시장을 거의 주도하고 있어 국내 기업들의 입지는 그렇게 녹록하지 않았다. 그런 만큼 국내 기업들은 틈새시장을 노릴 수밖에 없었다.

그 틈새가 오픈베이스의 성장기반이 된 데이터베이스 설계 및 구현과 관련된 시장이었다. 회사명인 ‘오픈베이스’는 개방(Open)과 베이스(Base)의 합성어인데, 당시 표준을 바탕으로 한 개방화 바람이 불었고, 그것이 미래 시장도 지배할 것이라는 판단에 따라 오픈을 여기에 자사의 주력 기술인 데이터베이스의 베이스를 조합했다는 것이다.

오픈베이스의 성장은 크게 3단계를 거쳐 오늘에 이르렀다고 한다. 즉 설립초기인 1단계는 설립의 토대이자 성장의 기반이 된 대용량 데이터베이스 설계 및 구현 기술을 바탕으로 한 성장이었고, 2단계는 IMF 때이고, 3단계는 인터넷 바람을 타고 네트워킹 기술로 성장해 왔다고 한다. 이 가운데 가장 큰 성장을 한 단계는 2단계인 IMF 때라고 한다. 1998년 IMF 때 대다수 기업들이 어려움을 겪고 있었고, 대기업들도 프로젝트 수주는 물론 투자까지도 꺼려했다는 것. 그 기회는 독자 브랜드로 프로젝트를 수주해 왔던 오픈베이스에게 주어졌던 것이다. 당시 오픈베이스의 매출은 100억 원 규모로 그 이전보다 10배 이상 성장했다고 한다. 이를 계기로 오픈베이스는 코스닥 시장에 등록, 비즈니스를 펼칠 자금도 충분히 확보하게 된 것이다.

오픈베이스는 이어 인터넷 바람이 불던 2000년대에 네트워킹 기술로 또 한 번 도약의 기회를 맞이한다. 인터넷은 데이터를 전달하는 기술인데 당시 글로벌 네트워크 시장을 주도했던 C사 등의 네트워크 전문 기업들은 연결에만 집중했을 뿐, 어떤 데이터에 의해 네트워킹이 안 될 수도 있다는 것을 간과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오픈베이스는 대용량 데이터베이스 구축 및 검색 시스템 구축경험을 통해 네트워크 연결만으로는 원활한 데이터 전달이 안 된다는 것을 알았고, 그 기술을 이미 개발했기 때문에 또 한 번의 성장의 기회를 맞이했던 것이다. 오픈베이스의 네트워킹 기술은 국내 최고라고 평가될 만큼 고객들로부터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정 회장은 “오픈베이스가 갖고 있는 네트워킹 기술은 자동차들이 씽씽 달리는 도로에서 신호등 역할을 하는 것”이라며, “C사 등은 자동차가 달릴 수 있도록 도로를 건설하는 기업이라면 오픈베이스는 달리는 데 문제가 발생하는 각종 요소를 고려해 자동차가 사고가 나지 않고 원활하게 달릴 수 있도록 신호등 역할을 하는 기술”이라고 설명했다.

오픈베이스는 DB 구현 및 검색 기술과 인터넷 네트워킹 기술로 가파른 성장세로 20년 동안 달려왔고, 이젠 5개의 자회사까지 거느린 대기업으로 성장했다. 글로벌 기업들이 주도해오고 있는 국내 SW 시장에서 오픈베이스가 자사만의 독자 기술과 노력으로 성장한 것은 남다른 의미가 있음에 분명하다. 정진섭 회장과의 일문일답을 통해 오픈베이스 그룹을 어떻게 이끌어 나갈지 직접 들어본다.

“남들이 원하는 것을 개발해야 성공”

대다수 SW기업들은 너무 앞선 기술로 본인이 원하는 제품을 개발하는 경우가 많은데, 그것보다는 남들이 원하는 제품을 시장의 흐름에 맞춰 개발하는 게 성공할 확률이 더 높다고 정진섭 회장은 지적했다.

10년 후 1조 원대 매출 기업으로

- 창립 후 20년은 순탄한 성장을 했다. 향후 20년은 어떻게 준비하고 있나.
“오픈베이스는 기본적으로 데이터와 관련된 기술을 갖고 있다. 예를 들어 오픈베이스는 네트워크 부문에 강하고, 오픈SNS는 DB 구현 및 검색 기술이 강하다. 또한 데이타솔루션은 데이터 통계 및 예측 분석이 강하다. 즉 데이터 관련 플랫폼을 갖고 있기 때문에 이를 IoT와 연계시킨다면 또 다른 비즈니스를 창출할 수 있을 것으로 본다. 오픈베이스는 시장을 지배할 수 있는 큰 기술과 맞물리면서 성장해 왔다. 또 한 번의 점프는 IoT를 통해 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예감이다.”

- 중소 SW기업이 국내 시장 환경에서 성장하기란 쉽지 않다. 어떻게 해야만 한다고 보는가.
“내가 하고 싶은 것과 남들이 하고 싶어 하는 게 있다. 내가 하고 싶은 것보다 남들이 원하는 것을 하는 게 성공할 확률이 높다. 다시 말해 내가 하고 싶은 것을 개발해 보니 시장에서 요구하는 시기와 못 맞춰 실패했다. 실리콘밸리에서의 사업실패가 대표적인 사례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기업은 수익을 창출하는 게 주목적이기 때문에 비용절감보다 획득에 더 큰 목적을 두고 이를 어떻게 달성할 것인지에 대한 노력이 더 중요하다고 본다. 사실 비용절감은 획득보다 훨씬 쉽다.”

- 오픈베이스는 DB와 연계된 SI사업을 펼치고 있다. 가장 어려운 일이라면.
“수익률이 떨어진다는 것이다. 그것은 곧 사람에 대한 가치를 제대로 인정해 주지 않기 때문이다. 프로젝트에 설계된 대로만 구축되면 좋겠는데, 고객들의 요구사항이 너무 자주 바뀐다. 그렇게 되면 그것은 사람이 투입되는 만큼 비용이 증가하게 되는데, 이에 대한 비용을 인정해 주지 않고 있어 수익률이 그만큼 떨어지고 있는 것이다.”

“또 하나의 문제라면 국내 SW 시장규모가 너무 작다는 것과 모든 도큐멘테이션(documentation)이 한글로 돼 있다는 점이다. 시장이 작은 만큼 경쟁이 치열하고 영어가 아닌 한글로 돼 있어 세계 시장 진출에 한계가 있다는 것이다. 인도의 소프트웨어 산업이 발전하는 것은 바로 언어 때문이라고 본다.”

“이밖에 좋은 인력을 확보하는 게 가장 어려운 사안 가운데 하나다. 좋은 인력들이 IT산업을 돈도 안 되는 힘든 직업으로 생각하고 지원을 잘 하지 않는 것 같다. 좀 괜찮다 하는 인력들은 대기업만을 선호한다. 이런 문제는 오픈베이스만이 아니라 다른 중소기업들도 마찬가지이다.”

빅 데이터와 IoT를 도약 기회로

- 오픈베이스 그룹은 모기업인 오픈베이스를 중심으로 5개의 계열사들로 구성돼 있다. 시너지는 어떻게 내는가.
“약 5년 전에 전 직원들을 대상으로 계열사 간 근무지를 바꿔주기 위해 신청을 받았지만 단 한 명도 신청하지 않았다. 사실상 근무지를 바꿔 같이 일한다는 게 현실적으로 어렵다. 시너지를 내는 데는 그만한 시간이 필요하다는 말씀이다. 그러나 굳이 시너지를 내기 위해 협업할 필요는 없다고 본다. 가장 중요한 것은 의사결정 과정인데, 이를 합리적으로 한다면 문제 될 게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최근 빅 데이터 관련 프로젝트를 오픈SNS와 데이타솔루션가 함께 수주한 바 있다. 이처럼 필요에 따라 협업을 하기도 한다.”

한편 정진섭 회장은 앞으로 10년 후 매출규모 1조 원대의 회사가 될 수 있다고 창립 20돌 기념사에서 밝혔다. 현재 1,200억 원 규모의 매출은 설립 5년여 만에 100억 원으로, 20년여 만에 1,000억 원을 돌파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특히 그는 인터넷을 통한 모바일 시대에는 데이터 전달 기술이 더더욱 중요하기 때문에 오픈베이스가 20년여 동안 쌓아온 데이터베이스와 네트워킹 기술을 잘 활용한다면 또 한 번 성장기회를 맞게 된다는 게 정 회장의 확신이다.

정 회장은 “그룹의 외형만이 아닌 직원들과 그 가족들 모두 행복한 삶이 실현되는 내실 있는 성장이 되길 바란다”고 강조했다. 정 회장의 리더십을 중심으로 한 3두 마차 체제가 지금까지와 같이 호흡을 잘 맞춘다면 목표 달성에 큰 무리가 없을 것이라는 믿음이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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