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 수 있는 일이라고 다 해서는 안 된다 (유혁 Willow Data Strategy 대표)

▲ 유혁 Willow Data Strategy 대표

[컴퓨터월드] 유혁 대표(미국명 Stephen H. Yu)는 25년 이상 데이터베이스 마케팅 분야에서 명성을 얻고 있는 세계적인 데이터 전략, 빅데이터 애널리틱스 전문가다. I-Behavior의 공동창업자/CTO, Infogroup 부사장 등을 역임하면서 정보수집, 데이터베이스 설계, 통계학적 모델을 활용한 타깃마케팅 등 마케팅과 IT간 가교에 큰 기여를 해왔다.
유혁 대표의 오랜 전문가로서의 경험을 바탕으로 국내 사용자들과 독자들에게 보다 데이터를 효과적으로 잘 사용하면서 시행착오를 줄일 수 있는 방법을 특별연재를 통해 소개하고자 한다. 금융, 통신, 미디어, 유통, NGO 등 다양한 글로벌 고객들과의 현장 경험에서 우러나온 애정 어린 충고와 쓴 소리에 독자들의 많은 관심을 부탁드린다.  편집자 주

 

‘할 수 있는 일이라고 다 해서는 안 된다‘라는 단도직입적인 표현 대신에 영화 스파이더맨에 나오는 대사인 ‘With great power comes great responsibility’, 즉 ‘대단한 능력에는 그에 걸맞은 책임도 따른다’라는 말을 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러지 않은 이유는, 첫째, 미국에선 이것이 이미 진부한 표현이 된지 오래고, 둘째는 필자가 스파이더맨을 그 많은 슈퍼히어로들 중 별로 선호하는 편은 아니기 때문이다.

물론 이건 웃자고 하는 말이지만, 실제 이유는 데이터를 조금 다룰 줄 아는 사람이나 데이터에 접근이 가능한 어느 마케터도 그들에게 슈퍼파워가 있건 없건 대중들에게 실제적인 피해를 입힐 수 있다는데 있다.

대부분 그런 것들은 심각한 수준의 피해라고 부를 정도는 아니겠지만 실제로 많은 마케팅 수단이나 메시지는 일반인들에게 귀찮고, 때로는 공격적인 존재다. 디렉트 마케팅이나 데이터베이스 마케팅 산업에서는 금기시된 말이지만, 감히 내놓고 말하자면 ‘정크 메일(junk mail)’이나 ‘스팸(spam)’이라고 분류돼 마땅한 것들이 마케팅이란 허울을 쓰고 창궐하고 있다.

마케팅이란 허울을 쓰고 창궐

각설하고, 해서는 안 될 짓을 하는 마케터들은 무수히 많다. 이제는 하도 많이 봐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반응도 안 하는 경고문으로 가득 찬 협박성 편지는 아직도 미국의 많은 가정으로 날아들고 있다. 이번 달에 갱신하지 않으면 자동차 애프터서비스(미국에선 warranty라고 부른다)가 당장 끝난다는 식의 편지는 대부분 자동차 브랜드와는 상관도 없는 곳으로부터 발송돼온다.

주로 노인들이나 이민자들이 이런 식의 공갈성 경고문에 넘어가 쓸데없는 보증을 돈 주고 사게 되는데, 특히 괘씸한 것은 그런 짓을 하는 사업자들이 나름 데이터를 갖고 분석해 ‘old and gullible’, 즉 ‘나이 들고 남의 말에 잘 속아 넘어가는 부류’라는 세그먼트를 만들어 사용한다는 점이다. 의심의 여지없이 이런 것은 ‘할 수 있다고 다 해서는 안 되는 행위’의 좋은 예다.

혹자는 이런 예를 일부 몰지각한 사업자들이 저지른 특별한 경우라고 치부할지도 모르겠지만, 과연 그런 것일까? 디렉트 마케팅 산업의 구조를 아주 잘 알고 있는 필자도 덫에 몇 번 빠진 적이 있다.

일회용 거래라고 생각하고 어떤 물품을 구매했는데 전혀 아무런 경고도 없이 필자를 정기구매 고객으로 둔갑시켜서 매월 같은 물건이 배달되게 만들고, 또 그런 정기구매 계약을 해지하는 절차를 아주 어렵게 만들어놔서 사람 미치게 하는 행태들이 그런 예다. 게다가 정보가 다른 손으로까지 넘어가 또 다른 쓸데없는 이메일들이 무수히 날아오게 되고, 심지어 미국에서는 불법인 텔레마케팅 회사로부터의 전화까지 집으로 들이닥치곤 한다.

정보가 어떤 식으로 돌아가서 그런 일이 생길 수 있는지 그 산업의 생태계를 잘 알고 있는 사람으로서 일련의 의심스러운 행태들을 쉽게 미뤄 짐작할 수 있다. 한마디로 데이터 만지는 사람들 전체를 다 욕 먹일 짓들을 골라서 하는 인간들이 꼭 있다는 말이다.

옳은 예측도 대가를 치러야 하는 경우 있어

불법적인 요소는 없더라도, 데이터가 광범위하게 커지고 타깃팅 기술도 날로 발전하면서 개별적으로는 별로 위험해 보이지 않는 여러 행동들이 모여서 소비자들에게 부정적인 영향을 끼치는 경우도 있다.

미국 발 뉴스에 관심 있는 이들은 알겠지만, 대규모 유통회사인 Target이 몇 년 전에 고객들의 거래내역을 분석해 어떤 가구에 임신한 사람이 있는지를 유추, 그것을 토대로 마케팅 메시지에 사용했다가 커다란 구설수에 오른 적이 있다. 어떤 부모가 그 회사의 소위 ‘최적화된’ 마케팅 메시지를 보고 자신의 10대 딸의 임신을 알게 된 것이 문제의 발단이었다. 그것은 분명 ‘의도하지 않은 결과’였겠지만, 해서는 안 되는 일을 한 것이 그렇게 드러난 것이다.

필자는 그 사건이 널리 알려지기 전에 그 모델을 만드는데 참여한 사람들이 발표하는 프레젠테이션을 예측적 분석을 주제로 한 어떤 컨퍼런스에서 직접 볼 기회가 있었다. 당시 그 사람들은 자신들이 한 일이 앞으로 어떤 파장을 일으킬지 알지 못하는 상황이었고, 그래서 아주 자랑스럽게 그들이 사용한 통계적 방법들을 발표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들이 무엇을 예측하려고 프로젝트를 기획했는지 말하는 순간, 마침 필자 옆에 앉아 있던 당시 팀 내 수석 통계전문가와 눈을 마주치게 됐는데, 우리 둘 다 ‘아니 이게 무슨 경우인가’라는 표정을 하고 있었다. 우리가 우려한 바는 우리 팀도 그 정도 예측은 데이터만 있으면 할 수 있어서 기술적인 것이 아니었고, 그런 ‘사람의 감정을 건드릴 수 있는 예측’이 소비자나 데이터 업계에 끼칠 영향에 관한 것이었다.

이런 일이 뉴스거리가 되면 일반인들의 데이터 산업에 대한 공포심만 키울 뿐이다. 예측적 분석에서는 늘 ‘틀린 예측에 관한 위험’을 감수해야 하지만, 때로는 ‘옳은 예측’도 대가를 치러야 하는 경우가 생긴다. 그래서 할 수 있는 일이라고 다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분석가나 데이터 사이언티스트는 개개인이 초능력을 갖고 있지는 않지만, 마치 일반인도 쉽게 구할 수 있는 재료로 폭탄을 만들 수 있듯, 기술과 많은 데이터가 합쳐지게 되면 커다란 영향력을 지니게 된다.

사회적 영향도 생각해야

아이러니컬하게도 필자는 이 시리즈를 통해 데이터 사이언티스트라고 불리는 사람들은 데이터와 기술을 제대로 접목시켜 빅데이터를 더 작고 의미 있게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해왔다. 하지만 데이터를 의사결정자가 쉽게 사용할 수 있는 대답의 형태로 만드는 행위, 즉 데이터를 인본화하는 활동은 악영향도 가져올 수 있다.

간단히 말해 어떤 것이든 쉽게 사용할 수 있다는 것은 쉽게 남용할 수도 있다는 뜻이다. 인간이란 완전하지 못한 존재이고 탐욕과 이기심에 이끌려 행동하는 경우가 많다. 혹 분명히 나쁜 의도를 가지고 행동하지는 않더라도, 감정적이고 때로는 잘 놀라는 일반 소비자들을 상대하는 일은 그 모든 결과를 미리 알 수 없기 때문에 더욱 조심해야 하는 법이다.

제12장: ‘훌륭한 데이터 사이언티스트란?’에서 강조했듯이 데이터를 다루는 사람들은 사회적 영향도 생각하면서 일을 추진해야 하고, 그래서 데이터 사이언티스트든 아니면 다른 직책이든 이 데이터 산업에 몸담고자 하는 사람들은 기술뿐 아니라 인간과 사회에 관한 이해도 깊어야 한다.

‘이건 뭐가 잘못된 것 같은데?’라는 뱃속의 신호를 감지할 수 있어야 한다는 말이고, 그런 탐지기능이 모든 사람들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면 훈련을 통해서라도 우리 어깨 위에 수호천사를 하나씩 만들어 앉혀놔야 하는 것이다.

되돌아보면서 결론을 내리기는 쉬운 법이지만, 결과적으로 가족 내 임산부의 존재를 예측하려 했던 분석가들은 기술적인 면과 그 결과로 벌어들일 수익만을 고려했지, 인간적인 측면은 생각도 하지 않았다고 단정 지어 말할 수 있다.

그들은 그런 인간적·사회적인 면도 당연히 고려했어야 했고, 그들이 그런 점들을 간과했다면 그들의 팀장이 나서서 말려야 했다. 그도 아니라면 마케팅 부서에서 생각을 더 깊이 했어야 했고, 그들도 아니라면 홍보팀이라도 나서서 거부권을 행사했어야 했다.

결론은 그 조직 내의 누군가가 그 프로젝트를 인간적인 측면에서 검토했어야 마땅했다는 것이다. 사회성이 완전히 결여돼있는 저능한 사람이 아니고서야 그 아무도 길을 걸어가다가 임신한 것처럼 보이는 여성에게 다가가 ‘당신 임신했죠?’라고 물어보지 않는 것처럼 말이다.

의심이 들 만한 행동은 하지 않는 것이 상책

나라마다 문화적인 차이는 있겠지만 - 예를 들어 초면에 수입이나 나이 등을 묻는 것 등 - 사회구성원의 대다수는 일반적인 상황에서 ‘넘지 말아야 할 선’에 대한 사회적 규범을 공유한다.

예를 들면 여객기에서 옆에 앉게 된 모르는 사람과 대화가 시작됐을 때 우리는 어느 정도의 개인정보까지를 별 걱정 없이 그와 나눌 수 있는지 알고 있다. 만약에 그 상대가 그 선을 너무 성급하게, 혹은 서슴없이 넘는다면 우리는 그런 사람을 적절한 행동을 할 줄 모르는 무례한 사람, 그 정도가 심하다면 섬뜩하고 징그러운 사람으로 여길 것이다.

문제는 그 징그럽다고 느끼는 선이 사람과 대상마다 다 다르다는 것인데, 예를 들면 유명 영화배우인 조지 클루니(George Clooney)나 스칼렛 조한슨(Scarlett Johansson) 같은 사람들은 일대일 상황에서 많은 이들에게 그 오글거려지는 선이 아주 높게 책정돼있다고 짐작할 수 있다.

하지만 꼭 ‘선’이 아니어도 상식적으로 넘지 말아야 할 ‘영역’은 설정돼 공유될 수 있다. 대량의 데이터를 다루며 많은 사람들에게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경우에는 의심이 들 만한 행동은 아예 하지 않는 것이 상책이다. 즉 남을 불편하게 할 가능성이라도 있으면 시도조차 하지 말라는 것이다.

그렇다고 필자가 이 자리에서 프라이버시에 관한 어떤 열성당원들을 대변하는 것은 아니다. 그런 사람들은 대부분 데이터가 어떻게 돌아가고 사용되는지 잘 모르는 경우가 대부분이고, 개인정보를 무작정 파헤치는 행위와 소비자와 판매자 모두에게 도움이 될 수 있는 데이터의 사용을 다르게 봐주지도 않기 때문이다.

데이터를 이용한 타깃팅이란 결코 어떤 한 개인의 정보를 일일이 들여다보는 것이 아니라, 거시적으로 어떤 사용자들과 상품들의 궁합이 잘 맞는지를 드러나게 하는 것이 목적이다. 다시 말해 정직하게 데이터를 다루는 사람들은 어느 누가 어떤 사이트를 드나드는지를 늘 지켜보고 있는 것도 아니고, 나쁜 의도를 가지고 개인정보를 모으지도 않는다.

다르게 말하자면 웨이터나 웨이트리스가 계산서와 크레딧 카드를 가지고 카운터를 오가는 미국에선 식당 종업원이 간단한 기구로 카드정보를 훔치는 경우도 있다. 그렇다고 해서 식당산업 전체를 싸잡아 비난해도 마땅한 것인가? 도둑은 어느 곳에나 있을 수 있고, 모든 웨이터가 도둑이 아니듯이 모든 데이터를 만지는 사람들도 해커가 아닌 것이다.

통계적으로 말하자면 비행기를 이용한 여행이 자동차 여행보다 안전하다고 하듯, 모르는 사람에게 크레딧 카드를 건네주는 행위가 온라인에서 크레딧 카드 번호를 입력하는 것보다 더 위험하다고 할 수도 있다. 다만 비행기 사고와 마찬가지로 큰 회사에서 데이터 보안에 문제가 생기면 많은 사람들이 한꺼번에 다치기 때문에 굉장히 위험해 보이는 것이다.

정보의 보안은 은행이 금고를 지켜야 하는 것만큼 당연한 일이고, 해커들의 존재 때문에 데이터를 그 어떤 마케팅이나 최적화 목적으로도 사용하지 말라는 것은 은행강도가 존재한다고 은행 문을 다 닫으라는 것만큼 지나친 주장이다.

은행강도가 존재한다고 은행 문을 닫아서야…

수년 전에 직장에서 가까운 어떤 일식집에 점심마다 자주 들르곤 했었는데, 스시를 직접 만들던 일본인 주인은 그의 일천한 영어 실력 때문인지 많은 말을 하지 않아서 단골로 다닌 지 1년이 넘어서야 필자가 뭐 하는 사람인지 조심스럽게 물어봤다.

사람을 직업으로 판단하는 일본인 치고 굉장히 오래 기다린 편인데, 그는 데이터베이스 마케팅, 디렉트 마케팅, 혹은 CRM(당시는 빅데이터란 말이 나오기 전이었다)이란 말을 들어보지 못한 사람이라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아주 간단히 설명해야 했다.

오랫동안 뉴욕 주변 소도시의 한자리에서 장사를 해와서 단골도 꽤 많을 테니, 그가 고객에 따라 누가 어떤 생선을 좋아하고, 누가 와사비를 싫어하며, 누가 갑각류를 먹지 않고, 누가 희귀한 생선알을 좋아하는지 등을 알고 있냐고 물었다. 그의 대답은 부지런한 스시맨에게서 당연히 기대할 수 있었듯이 간단한 “yes”였다.

그래서 필자가 하는 일은 데이터와 컴퓨터를 이용해 그런 맞춤형 서비스를 수백만 명에게 동시에 제공할 수 있게 하는 것이라고 말해줬더니 금방 이해하고는 “아, 소…”라고 나지막이 중얼거렸다.

그런데 여기서 입장을 바꿔보도록 하자. 고객의 입장에서 봐도 내가 단골로 가는 스시집 주방장이 내가 어떤 종류의 초밥을 좋아하는지 잘 알고 있다면 그것은 분명히 편리한 이점이다. 아침마다 들리는 커피전문점에서 일하는 바리스타가 내가 어떤 스타일의 커피를 늘 주문하는지 알고 있어도 그렇다. 그런 정보의 공유는 상호간에 도움이 된다.

하지만 비즈니스 오너나 서비스를 주는 사람이 나에 대한 서비스의 질을 높이는데 별 도움이 되지 않는 쓸데없는 질문을 하고, 예를 들어 내 개인 자산정보에 대해 알려고 들거나 혹은 나의 과년한 딸에 대해 징그러울 정도의 관심을 보이고 이것저것 캐묻는다면? 그들이 아무리 희귀한 생선을 싸게 들여다 놓고 세계에서 가장 맛있는 커피를 제공한다 해도 그들과 당장 거래를 끊어버릴 것이다. 한마디로 그런 것은 선을 넘는 질문들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많은 회사들은 컴퓨터나 클라우드 뒤에 숨어서 - 행위 자체는 불법이 아닐지라도 - 그런 선을 서슴없이 넘는 경우가 많고, 사용할 곳도 분명하지 않고 감당하기도 어려운 개인정보를 마구 수집한다. 예를 들면, 온라인에서 신문을 구독하는데 왜 주민등록번호까지 요구하느냐 말이다.

미국처럼 정보의 교환이 자유로운 나라에서도 사회보장번호(Social Security Number) 등은 금융거래 등 절대로 필요한 경우가 아니면 상용 목적으로는 물어보지도 않는다. 타깃팅을 위한 것이라면 마케팅 데이터베이스 안에서의 크레딧 카드번호 따위는 보안에 부담만 될 뿐이고, 그저 어떤 종류의 카드를 사용했는지만 알아도 충분하다. 다시 말하지만 할 수 있다고 다 해서는 안 되는 것이다.

기술적인 것과는 상관없는 일반인 배려해야

필자는 1999년 가을 즈음에 미국에서 ‘디렉트 마케팅의 아버지(Father of Direct Marketing)’라고 자타가 공인하는 전설적인 인물인 레스터 원더먼(Lester Wunderman)과 가까이에서 일할 기회가 있었다. 당시는 I-Behavior라는 회사에 창업 CTO로 참여하려 할 때였는데, 그 비즈니스 아이디어 자체가 레스터 원더먼과 그의 오랜 친구들이 대화하다가 냅킨에 써놓은 것에서 비롯됐고, 그는 그 회사가 팔릴 때까지 회장직도 겸했었다.

그를 직접 만나기 이전에 필자는 그의 이름을 그대로 가진 Wunderman이란 광고회사에서 일한 경험이 있었다. 그때 그는 그저 먼발치에서 그가 연설하는 것을 볼 수 있는 것만으로도 행운으로 여겨야 할 존재였으니, 그와 작은 테이블에 둘러앉아 비즈니스 아이디어를 교환한다는 것은 마치 기타 치는 것을 열정적으로 좋아하는 사람이 에릭 클랩튼과 함께 잼을 할 수 있게 되는 것만큼이나 영광스러운 일이었다.

가장 놀라웠던 것은 그가 이미 여든을 넘긴 나이에도 불구하고 ‘닷컴’ 붐이 휘몰아치기 시작하던 그 당시 돌아다니던 수많은 ‘온라인’ 아이디어에 전혀 현혹되지 않고, 오히려 왜 그 대부분이 실패로 끝날 것인지를 조목조목 따지던 것이었다. 물론 21세기 초반의 닷컴 역사를 굳이 들먹일 필요도 없이 그의 예측은 정확했다.

많은 젊은이들과 투자자들이 신기술을 이용한 일확천금을 꿈꾸고 있을 때, 그는 이미 한 십 년 이상 앞을 내다보고 디지털 혁명의 ‘인간적인 측면’에 대해 생각하고 있었다. 보통 80세를 넘긴 많은 이들이 그들 자녀들의 직업을 묘사할 때 ‘걔는 밤낮 컴퓨터 앞에 붙어있어…’라고 말하는 것에 비해 대단한 지식과 통찰력이고, 필자도 그 나이가 되도록 그 정도로 날카로울 수 있다면 원이 없겠다는 생각이다.

어느 날 그는 마침 그의 사무실에 있었던 몇몇에게 그가 쓰고 있었던 ‘Consumer Bill of Rights for Online Engagement’, 즉 ‘온라인 거래에서의 소비자 권리선언’이란 글의 초고를 보여줬다. 필자도 그것을 거의 처음으로 보게 된 운 좋은 사람들 중 하나였는데, 그때 느낀 점은 늘 그래왔듯이 그의 요점 하나하나가 다 반드시 새겨들어야할 말이라는 것이었다.

요즘 이 빅데이터의 움직임이 과거의 닷컴 붐과 같이 커지고 있는 시절에 그의 소비자 권리선언을 다시 읽어봤는데, 그의 말은 여전히 적절하고 현대적 의의가 있다고 여겨졌다.

과거를 돌아보면 많은 면에서 기술적인 해일은 실제로 세상의 모습을 근본적으로 바꿔버리곤 한다. 그런 기술적 변화 덕분에 작은 이득이라도 얻는 사람들이 잊어서는 안 될 점은 그런 급격한 변화는 대다수 사람들의 실생활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고, 그런 기술 주도의 변화가 속도를 잃지 않고 계속 진행되려면 기술을 다룰 수 있는 사람들이 기술적인 것과는 아무 상관없는 일반인들을 반드시 배려해야만 한다는 것이다. 즉 대중을 화나게 하고 실망시켜서 이득이 될 것은 하나도 없다는 말이다.

그런 의미에서 여기에 레스터 원더먼의 ‘Consumer Bill of Rights for Online Engagement (온라인 거래에서의 소비자 권리선언)’을 그의 저서 ‘Being Direct’의 제2판에 실린 그대로, 번역도 최대한 의역을 자제하고 소개한다:

1. Tell me clearly who you are and why you are contacting me.
 (당신이 누구이고 왜 나와 접촉하는지 분명히 말하라.)

2. Tell me clearly what you are - or are not - going to do with the information I give.
 (내게 얻은 정보로 무슨 일을 할지, 또 하지 않을지 분명히 말하라.)

3. Don’t pretend that you know me personally. You don’t know me; you know some things about me.
 (나를 개인적으로 아는 척하지 말라. 당신은 나를 모른다; 다만 나에 대한 몇 가지를 알고 있을 뿐이다.)

4. Don’t assume that we have a relationship.
 (우리가 관계를 갖고 있다고 가정하지 말라.)

5. Don’t assume that I want to have a relationship with you.
 (내가 당신과 관계를 갖길 원한다고 가정하지 말라.)

6. Make it easy for me to say ‘yes’ and ‘no’.
 (내가 ‘예’, ‘아니오’를 쉽게 말할 수 있게 해달라.)

7. When I say ‘no’, accept that I mean not this, not now.
 (내가 ‘아니오’라고 말할 때는 권하는 것이 내가 원하는 것이 아니고 지금은 때가 아니라는 것을 분명히 받아들여라.)

8. Help me budget not only my money, but also my TIME.
 (내가 나의 금전뿐 아니라 시간도 아껴 쓸 수 있도록 도와 달라.)

9. My time is valuable, don’t waste it.
 (내 시간은 귀중하다. 그것을 낭비하지 말라.)

10. Make my shopping experience easier.
 (내 쇼핑 경험을 쉽게 만들어 달라.)

11. Don’t communicate with me just because you can.
 (단지 할 수 있다고 나와 소통하려 들지 말라.)

12. If you do all of that, maybe we will then have the basis for a relationship!
 (이 모든 조항들을 다 지켜준다면 우리가 앞으로 관계를 가질 수 있는 토대가 생길지도 모른다!)

그 이후로 15년 이상이 지나고 소위 말하는 디지털 혁명을 겪으면서 과연 이 조항들 중 몇 가지나 제대로 지켜지고 있을까? 끊임없이 들이닥치는 이메일이나 각종 사이트들이 돌아가는 것을 보고 있자면 지켜지지 않고 있는 사항들이 훨씬 많은 것이 분명하다.

소위 마케팅을 한다는 사람들 멋대로 무수한 메시지들이 일방적으로 남발되고 있으며, 수신인들은 그저 그런 것들을 무시하는데 길들여져 있을 뿐이다. 한국에서는 심지어 읽으려는 기사를 가리는 광고까지 횡행하고 있지 않나.

온라인의 미래는 오프라인에 있다

이 책을 통해 줄곧 말해왔듯이(앞으로 채널간의 구분이 모호하고 무의미해질 것이므로) 온라인의 미래는 오프라인에 있고, 모든 마케팅은 도구나 채널에 상관없이 고객중심으로 이뤄져야 하는 법인데, 현실은 정반대다. 많은 마케팅 캠페인들은 채널, 상품, 브랜드, 회사, 심지어는 회사 내에서의 부서 중심으로 이뤄지고 있다.

‘온라인 고객’이라는 말도 안 되는 표현이 소위 디지털 마케터라고 불리는 사람들로부터 버젓이 사용되고 있고, 이메일 담당자라는 사람들은 어느 사이트에 들렸다가 다만 귀찮아서 이메일 수신거부를 하지 않은 고객들을 마치 자신이 소유하고 있는 것처럼 행동한다. 다 세상 무서운 줄 모르고 하는 짓들인데, 고객들은 회사의 영업계획을 맞추기 위해 함부로 아무 때나 접촉해도 되는 대상이 아니다.

게다가 그런 생각 없는 대량살포식 캠페인이나 이메일은 보내는 사람에게도 도움이 안 된다. 그렇게 계속 고객의 입장에서 재미없고 상관없고 별 도움도 안 되는 이메일을 자꾸 보내다 보면 그 명단은 곧 효용을 잃게 된다. 아예 수신거부를 하는 사람들도 점점 많아질 것이고, 이메일 수신허가를 받는 것 자체가 일이라는 것을 고려하면 다 사업체에게는 손해다.

지난 40~50년간 디렉트 메일, 이메일 등 각종 1-to-1 채널이 이용돼왔지만, 실제적 반응률, 즉 open rate이니 click-through rate같은 피상적인 지수들 말고 사람들이 캠페인에 반응해 물건을 구매한 비율을 따지자면 발전된 것이 별로 없다. 구매율을 엄격히 따지자면 1% 반응도 얻지 못하는 캠페인이 대부분일 것이다.

기술과 데이터가 날로 발전하고 빅데이터가 밥 먹여주는 시대가 왔다고 하지만, 데이터를 잘 다루지도 못하고 정보의 ‘남용’이 제대로 된 타깃팅보다 훨씬 더 흔한 방법이라면 다 소용없는 얘기다.

도대체 시대가 어느 시대인데 이메일의 질보다 양을 자랑하는 사람들이 아직도 흔하며, 부서의 목표 자체를 그런 식으로 잡는다는 말인가. 데이터가 넘쳐난다면서 ‘Personalized’, 즉 개인적으로 최적화된 메시지를 소비자로서 받아보기가 왜 이렇게 어려운가. 툴셋 장사하는 사람들이 그런 약속들을 남발하고 다니지 않았던가.

기술발달로 사람 짜증나게 하는 것도 훨씬 더 쉬워져

기술이 발달하면서 사람들을 접촉하기가 수월해졌지만, 그만큼 그들을 화나고 짜증나게 하는 것도 훨씬 더 쉬워졌다는 것을 잊으면 곤란하다. 데이터를 다루는 사람들 대부분이 그들의 ‘한시적’ 관리 하에 있는 정보를 계속 남용하면 특정 마케팅 채널 자체가 고사해버리는 수가 있다.

심한 경우에는 입법부에서 아예 특정 정보 사용을 원천적으로 봉쇄해 버리는 경우도 충분히 가정해볼 수 있다. 한국이 미국에 비해 정보공유금지에 관한 법이 훨씬 강력하게 된 이유도 초기에 정보를 남용하고 관리를 잘못해서 범죄에 이용되기까지 했었다는 별로 자랑스럽지 못한 과거 역사와 관련된다는 점을 잊으면 안 된다.

정보공유와 데이터에 기초한 마케팅에 훨씬 관용적인 미국 정부도 시도 때도 없이 전화통을 울려대는 텔레마케터들의 극성에 지친 시민들의 탄원으로 아예 고객이 아닌 사람에게 전화를 하는 것 자체를 연방법으로 금지시킨 바 있다. (물론 정치인 자신들이 하는 전화는 예외 조항으로 남겨뒀다.)

미국에서 활동하는 큰 회사들이라고 정보 남용에 관한 한 예외가 아니다. 정보가 많으면 접촉 자체를 최적화해야 하는 법인데, 이메일 수신 기록을 보면 정반대다. 그러니 상용 이메일 자체를 금지시키자는 목소리가 힘을 얻는 것이다.

더욱이 정보가 넘쳐나는 시절에는 단지 법을 어기지 않고 사람들의 불평을 피해 가는 것만으로도 충분하지 않다. 당연히 해야 할 일을 했다고 자랑하는 것은 좀 모자란 사람들이나 하는 짓이다.

미국의 경우에는 디렉트 마케팅이나 데이터베이스 마케팅 산업 자체 내에서 정화활동을 과거 수십 년간 잘 해왔다고 자부하고 있지만, 이제는 데이터와 타깃팅 기술이 저렴해지고 동시에 더 강력해지면서 예전의 자체적 규약 정도로는 충분하지 못하다.

앞으로는 우리 눈앞에 있는 여러 가지 화면들보다도 더 직접적인 커뮤니케이션도 가능할 날이 멀지 않았는데, 그것은 곧 작은 실수로도 많은 사람들을 소름 끼치게 만들 수 있다는 뜻이다. 영어로 말하자면 ‘personal touch’와 ‘creepy’는 곧 한 끗 차이에 불과하다는 말이다.

레스터 원더먼과 같은 선각자들은 온라인 커뮤니케이션이 가능해진 시점부터 이미 그것의 남용에 대해 걱정한 것이다. 우리 모두가 그가 한 말을 귀담아들을 일이며, 행동을 취하기 전에 그 결과가 사람들에게 끼칠 영향에 대해서도 여러 번 생각해봐야 한다.

구글은 회사설립 초창기에 이미 기업목표 중 하나로 ‘Don’t be evil‘이란 표현을 써서 이와 비슷한 생각을 포용한 바 있다. 그들이 이윤을 추구하지 않겠다는 뜻이 아니라, 데이터를 주도적으로 다루는 사람들 입장뿐 아니라 데이터 수집의 대상으로 남아있는 대다수 사람에게 그들의 행동이 미칠 영향도 늘 염두에 두겠다는 약속인 것이다.

필자는 순전히 이타주의적 이유로 이런 말을 하는 것이 아니다. 그 빅데이터란 말을 선호하지도 않지만, 오히려 이 빅데이터 운동을 성공적으로, 또 지속적으로 이어나가기 위해서 데이터 산업 내에서의 인간적인 면의 중요성을 강조하고자 함이다. 그 근본적인 이유는 그 빅데이터를 비롯한 정보와 도구의 적절한 사용이 소비자의 입장에서 보더라도 궁극적으로 사회전체의 효율을 올릴 수 있다고 아직도 믿기 때문이다.

‘넘어서는 안 될 선을 절대로 넘지 말라’

아무도 현대인들의 생활이 기술의 발전으로 인해 더 편리해졌다는 것을 완전히 부정할 수 없을 것이다. 그 덕분에 우리는 예전에 비해 길을 잃고 헤매는 경우에 빠지지 않고, 외국어를 순식간에 번역할 수도 있으며(아직 불완전하지만), 지구 반대편에 있는 사람들과 거의 무료로 얼굴을 봐가며 실시간 통화를 할 수도 있게 됐다. 우리가 관심을 갖는 상품이나 서비스에 대해 많은 정보를 쉽게 얻을 수 있고, 길을 걸어가면서도 상품을 주문할 수 있으며, 심지어는 우리가 필요하다고 생각하기도 전에 우리에게 유용할 수 있는 특정 상품과 서비스에 대한 제안을 받고 있다.

다만 이러한 모든 활동에 관련된 부정적 요소도 간과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데이터를 다루는 사람이라면 범죄적 의도로 정보를 훔치려는 사람들의 접근을 차단해야 하는 것은 그들의 의무 중 하나다.

그것은 은행이 금고를 지켜야 하는 것만큼 당연한 것이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만약 사업하는 사람들이 앞으로도 많은 사람들에 관한 정보를 토대로 이익을 얻는 특별한 지위를 계속 누리기를 원한다면, 그 넘어서는 안 될 선을 절대로 넘지 말라는 것이다.

만약 여기 소개한 소비자 권리선언이 너무 길고 복잡하게 느껴진다면, 사람들 소름끼치게 하는 짓을 결코 하지 말라는 한마디만 기억해도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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