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만의 성토여선 안 된다

프로 축구장에서도 독도 세리모니가 있었다. 골을 넣자 선수들이 '독도는 우리 땅'이라 써진 현수막 앞에 모두 모여 몸짓으로 독도는 우리 땅임을 재확인시켜주는 의미 있는 어필이었다. 시합 전 선수들 간에는 누가 골을 넣든 그 현수막 앞으로 가 이 의미 있는 의식을 펼치자고 사전에 약속을 해뒀나 보다. 얼마나 화가 나고 얼마나 울화가 치밀면 축구선수들까지 축구장에서 저럴까 하고 그들의 행동에 동감을 하면서도 아쉬운 점이 남는다. '독도는 우리 땅'이 영어나 일본어였다면 하는 아쉬움이었다.
문득 1994년 아프리카에서의 일이 떠올랐다. 르완다 난민들을 치료하는 우리나라 의료자원봉사대를 따라 출장을 갔었다. 중앙일보에서 준비한 현수막이나 의료단체에서 마련한 현수막이나 모두 한글 일색이었다. 큼지막하게 쓰인 「긴급구호의료봉사단」이나 「우리는 아프리카를 사랑합니다」라는 우리나라 글씨를 그 아프리카에서 어느 누가 읽을 수가 있을까. 누구에게 보여주기 위한 현수막인가. 한국 사람은 자원봉사자와 우리 기자 몇 명뿐이었다. 모두 치료를 받기 위해 모인 아프리카 르완다 난민이었다. 나는 낯이 뜨거웠다. 자원봉사 측이나 이를 보도하는 신문이나 현수막으로 보여주고 싶은 대상은 아프리카 난민이 아닌 우리 국민이나 독자가 아닌가. 국내용임이 분명했다.
세계 속에 나가 행해지는 자원봉사도, 이를 보도하는 언론마저도 모두 국내의 시각이나 시선에 더 관심을 가지고 있음이 아니던가. 국내용? 요즘 독도에 대한 한국 정부의 반응에 대해 일본정부나 일본 언론이 지적하고 나서는 '국내용'을 이래서 그저 흘겨 보낼 수만은 없다.
자원봉사자들의 진지한 표정을 아프리카 난민 어린이와 함께 담은 사진을 전송해 보냈지만 서울에선 재전송을 요구했다. 이유는 역시 그 한 가지. "너, 플래카드 안 챙겼어?" 「우리는 아프리카를 사랑합니다」를 넣어 찍은 사진을 넘기라는 주문이다. "그거 쇼 같아서... 독자가 보고 비웃을 텐데요." 데스크에게 이렇게 대답했다가 나는 "너 임마 기자 맞아?"라는 핀잔을 들어야 했다. 할 수없이 다시 찍어 보내고 난 뒤 자원봉사자들의 진지한 모습을 담은 다른 현장 사진들도 넘겼다. 1면에 한글글씨 현수막 사진이 대문짝만하게 게재되었다. 사진 밑에 붙은 내 이름 석자가 창피했다. 서울로 돌아와서 다시 이 건으로 여러 번 무능한 기자라는 말을 들어야 했다. 억울했다.
당시 중앙일보는 리서치전문기자를 고용하며 그 재미를 톡톡히 보고 있던 터라 나도 이 사진이 실린 신문을 들고 거리로 나섰다. 신촌에 나가 약 백 명의 시민에게 물었다. '사진 안의 글은 누구에게 보여주려는 메시지인가요?' 이런 질문이었다. 백이면 백 다 웃었다. 신문의 저의가 보인다고 했다. 하면서 하나같이 이런다고 속는 독자가 있느냐고도 했다. 이 결과를 뒤늦게 부사장급 간부에게 올렸다. 잘 했다는 칭찬을 받았다. 그러나 이후에도 이와 같은 눈 가리고 아웅 식 편집은 달리 바뀌지 않았다.
우리는 스스로를 우물 안 개구리로 만든다. 박정희 독재시절에만 이랬던 게 아니다. 지금도 역시 마찬가지다. 독도가 우리 땅인 것은 말할 줄 아는 어린 애도 우리나라 사람이면 다 안다.
그럼, 「독도는 우리 땅」은 독도가 우리 땅임을 알려야 하는 곳에다가 외쳐야 한다. 우리 아닌 밖에다가 외쳐야 한다는 말이다. 그러나 실제는 이렇질 않다. 거리의 성토나 정부의 대응 모두가 우리 안에서의 외침이요 성토로만 그치고 만다. 일본 시마네 현의 우익단체들의 거리 시위 화면을 보니 그들도 역시 현수막을 들고 나왔는데 보니 개발로 쓴 것 같은 엉터리 필체를 한 한글로 「한국인은 다께시마를 돌려달라」라고 적혀 있었다. 시위의 한 장면에서나 그리고 그 대응 면에서도 우린 일본 지방정부와 비교해 참으로 어줍다. 「대마도의 날」을 마산시가 조례제정 했더니 하루도 지나지 않아 중앙정부에선 국익에 반한다며 철회를 요구하고 있고, 독도영유권 분쟁의 최근 빌미가 된 1999년 신어업협정을 재검토하거나 일본과 재협상할 수 없음을 분명히 했다. 국내를 상대로 하는 일에 대해선 참여정부는 무지 신속하게 처리한다. 그리고 단호하다. 헌데 일본이나 미국 등 다른 나라와의 문제에 대해선 국익이 어떻고 섣불리 건드렸다간 더 손해라느니 하며 늘 뒷짐만 쥐고 있다. 참, 이상한 정부라고 아니 할 수가 없다.
정부의 이러한 이중적 잣대를 도저히 감쌀 수만은 없다. 20세기 초, 일본어부들-주로 시마네현 어부들이었다고 한다-의 요구로 시마네현이 나서서 1905년 2월 22일 독도를 자기 땅이라고 일방적으로 선언했다.
하지만 우린 어땠는가? 지금까지 한번이라도 어부들의 주문이나 요구를 지방정부는 커녕 중앙정부에서 귀담아 들어준 적이 있었나? 지금 우리 정부가 하는 걸 보면 일본에서도 가장 자그마한 지방에 속하는 지방정부보다도 미숙하다. 국민의 요구에 대한 반응도 그렇고 그 결과도 그렇다. 일본 중앙정부가 우리 정부에 대해 비난하는 「국내용」이란 말을 우리 국민은 여러 번 곱씹어봐야 한다. 그리고 독도 앞에 한데 모아진 우리의 힘이 단지 우리들을 향한 우리만의 성토로 끝나게 해서는 안 된다. 인터넷망을 열어보면 IT강국이란 용어가 무색하게도 국제사회에서 독도는 다께시마로 훨씬 더 알려져 있다. 갖은 포탈 사이트로 저마다 독도를 앞세워 네티즌들을 모으지만 이 또한 국내용 숫자 늘리기요 그 숫자경쟁에 불과하다.
커질대로 커진, 그리고 돈을 벌대로 벌어들이고 있는 대한민국 대표포탈은 포탈대로 독도를 외국에 한번이라도 더 알리는 일에 힘을 쏟아야 한다. 정치, 언론만이 아니라 국내용 이벤트는 우리 저변에 너무나 깊숙이 깔려 있다. 실속 없는 일에 목숨을 걸고 있다. 실용주의를 외치는 참여정부 또한 그 실용주의를 국외에도 적용시킬 줄을 알아야 한다.
실용주의가 강대국에도 적용되어야 그 실용주의의 저의를 가감 없이 믿어줄 수가 있다. 실용주의가 이중적 기회주의로만 보인다. 「국내용」이 너무 판치고 있다. 독도는 물론, 나라를 더 망가트리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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