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4년 - 컴맹 탈피 목표 / 2014년 - SW교육 의무화

[컴퓨터월드] 94년 사회에서 ‘컴퓨터가 세상을 변화시킨다’는 이야기는 이미 상식으로 통용돼, 그런 변화가 하루하루 속도를 더해가고 있었다. 교육 분야 역시 마찬가지로, 초·중·고등학교에 컴퓨터가 보급되고 졸업시즌에는 PC가 인기 있는 선물이 됐다. 그러나 컴퓨터에 대한 교육, 컴퓨터를 활용한 교육이라는 측면에서는 많은 문제를 안고 있었다.

20년이 흐른 오늘날, ‘소프트웨어(SW)가 세상을 변화시킨다’로 주어만 바뀌었다. 또 최근 새로운 교육과정에서 SW교육 의무화가 발표되면서 기대와 우려가 교차하고 있다. SW중심사회 실현을 목표로 하는 정부의 움직임을 지켜보며, 20년 전의 컴맹 구제 정책을 돌아본다.

 

1994년, 국내 초·중·고등학교의 컴퓨터교육 목표는 명확했다. ‘컴퓨터문맹 탈피’, 즉 컴퓨터를 잘 쓸 수 있도록 하는 교육이었다. 그러나 컴퓨터교육에서 가장 초보적인 수준이라고 할 수 있는 이러한 목표조차도 구체적인 학교현장에서는 거의 실종해, 국내 컴퓨터산업의 문제점을 총집합해놓은 곳이 학교 컴퓨터교육 현장이라고 말할 수 있을 정도였다. 학교 컴퓨터교육이 나아가야 할 비전은 거의 제시조차 되지도 않았다.

 

제6차 교육과정

▲ 94년 본지에 실린 제6차 교육과정 교과목 편제와 시간 배당

당시는 95년부터 시작되는 초·중등학교의 제6차 교육과정을 앞두고 있었다. 국내 컴퓨터교육에서 제6차 교육과정은 중요한 의미가 되고 있었다. 89년 제5차 교육과정부터 도입됐던 초·중·고등학교의 컴퓨터 보급과 교육의 성과 위에서 국내 컴퓨터 기초교육의 수준을 한 단계 높여야 할 시기라고 여겨졌기 때문이다.

제6차 교육과정부터는 그때까지 4,5,6학년 실과과목에서 주당 2시간씩 가르치던 초등학교 컴퓨터교육시간이 3,4,5,6학년 주당 1시간씩으로 바뀌게 됐다. 표면적으로는 주당 수업시간이 줄었지만 학교장 재량으로 컴퓨터교육시간을 늘릴 수 있어, 실제적으로 교육시간 연장의 효과를 얻을 것으로 기대됐다.

중학교 역시 실업·가정교과의 일정 시간을 할애해 컴퓨터를 교육하는 것에서 탈피, 한문과 환경 등과 같이 정식 선택과목으로 채택됐다. 고등학교는 제5차 교육과정까지 기술·공업·상업·정보산업에 컴퓨터 관련 내용이 포함됐던 것에서 그 범위가 농업, 수산업, 가사, 진로·직업 과목으로까지 확대됐다. 양적인 측면에서 볼 때 초·중·고등학교의 컴퓨터교육은 일단 확대됐다고 볼 수 있었다.

그러나 질적인 측면으로 가보면 상황이 달라졌다. 제5차 교육과정 컴퓨터교육을 통해 각 급 학교현장교사들과 전문가들에 의해 제기됐던 문제들이 별다른 해결책 제시 없이 그대로 연장됐다는 지적이 많았던 것이다.

우선 초등학교의 경우, 기본적으로 ‘무엇을 언제 어떻게 가르칠 것인가’라는 과제가 해결되지 않고 있었다. 교육과정과 교과서 자체가 없는 상태였던 것이다. 컴퓨터교육과정 선택이 학교 재량에 맡겨져서 일률적으로 적용할 컴퓨터교육과정과 교과서 개발이 유보됐고, 여기에 대한 지표 제시가 시급한 형편이었다. 일부 지역 초등학교의 경우 정규 프로그램에 의한 학교 공교육을 아예 포기하고 인근 사설학원과 계약을 맺어 학생들을 특별활동 명목으로 위탁 교육시킨 경우도 있었다.

경기도 교육청은 93년 경기초등컴퓨터교육연구회에 컴퓨터교육과정에 대한 연구를 위탁했다. 경기초등컴퓨터교육연구회는 한 해 동안 연구해 ‘생각하는 컴퓨터’라는 실험용 교재를 개발했다. 이 교재는 128시간 소요분으로, 다른 지방에도 보내 새로운 교육과정 표본으로 삼도록 한다는 계획이었다. 일부 컴퓨터학원의 경우 상당한 호응을 받고 있었으며, 사고개발에 도움이 된다고 내세운 이 교재는 컴퓨터를 다룸으로써 다른 수업으로 전이효과를 얻는다는 것을 강조했다. 또 창의성 개발방법을 제시하고 교사학습을 극대화하는데 초점을 뒀다.

중학교 및 일반 고등학교의 컴퓨터교육은 응용SW의 활용능력을 강조하고 있었다. 이것은 워드프로세서나 스프레드시트 등 주변에서 얼마든지 구할 수 있는 프로그램들이기 때문에 ‘무엇을 가르칠 것인가’라는 문제는 해결된 상태라고 할 수 있었다. 그러나 여기서도 ‘누가 가르칠 것인가’라는 문제가 남아있었다.

 

교사부터 컴퓨터 소경

▲ 94년 본지에 실린 컴퓨터교육 관련예산 및 보급현황

94년 어린 학생들을 깨우쳐줘야 할 교사들부터가 대부분 컴맹이라는 점이 아이러니였다. 이 문제는 컴퓨터 보급 확대 등 단순한 물량 위주 접근방식으로는 해결이 어려워 보였다. 당시 정택희 한국교육개발원 부장은 제6차 교육과정에서 중학교의 69% 정도가 컴퓨터를 선택하고 일반 고등학교의 약 46%가 정보산업과목을 선택할 것으로 예상했다.

이럴 경우 필요한 교원 수는 약 4,300명에 달했는데, 교육부 집계에서 93년까지 전자계산 자격을 가진 현직 컴퓨터 유자격 교사는 107명에 불과했다. 선택과목으로 컴퓨터를 희망하는 학생들이 많아도 교사가 없어, 한문 등 교사가 남아도는 과목을 선택하리라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었다.

초·중등학교를 막론하고 문제점으로 지적됐던 것은 ▲교육용 SW의 질적·양적 부족 ▲컴퓨터 시설·설비의 태부족 등이었다. 또한 제도적 측면에서 행정·재정적 지원체제가 정비될 필요가 있었다.

초등학교 교육내용이 베이직 위주인 것도 문제로 지적됐다. 학원의 강의나 컴퓨터 경진대회 등도 베이직 중심으로 이뤄지고 있었는데, 프로그래밍 언어는 배우기도 어렵고 ‘컴맹 탈피’라는 원래 목적에도 맞지 않는다는 게 문제였다. 또 당시 보급된 시스템 사양에 적합지 않다는 주장도 있었다.

무엇보다, 각 급 학교 교사들의 컴맹 탈피 수준이 극히 낮았다. 92년 말에 기본적인 응용SW를 활용할 수 있는 교사는 약 14%였으며, 프로그램을 이용해 수업을 진행할 수 있는 교사는 12% 정도에 불과했다. 일반 대학의 전자계산학 등을 전공한 학생들은 거의 교직을 이수하지 않거나, 이수하더라도 교직을 진출하는 경우는 드물고 컴퓨터업체 쪽으로 가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교육부는 96년까지 전체 교사들에게 30시간의 기초과정 컴퓨터연수를 시킬 계획이었으나, 이것이 이뤄진다 해도 실제 교사들의 컴퓨터소양이 얼마나 높아질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교사들 자신부터가 회의적이었다. 외국의 경우 공식적인 연수과정보다 오히려 동료들과의 협력학습 등 자체 연수과정을 통해 보다 실질적인 기능을 습득할 수 있었다는 보고결과도 있었다.

국내 각 급 학교 교사들이 “교무실 컴퓨터 도입이 시급하다”고 요구하던 것도 마찬가지 맥락이었다. 당시 학교에서 컴퓨터교육 담당교사를 제외한 일반 교직원들이 컴퓨터에 접근할 기회는 거의 없었다. 일본이나 미국 등이 교실보다 교무실에 먼저 컴퓨터를 들여왔다는 건 시사한 바가 컸다. 교원들의 컴맹 탈피는 학교업무의 컴퓨터화와 학교 자체 연수프로그램에 맡기고, 정부는 장학사나 프로그램 개발요원, 강사요원 양성 등 환경조성에 치중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었다.

컴퓨터교사를 양성해야 할 공식적인 기관인 사범대학이나 교육대학의 컴퓨터 이수학점은 교양필수 2학점, 심화선택 4학점으로 한정돼있었다. 학생들이 교육필수만 수강할 경우 겨우 50시간 내외의 교육을 받고 학교현장에 나와 초·중등학생들을 가르치게 됐다.

교육부는 이것을 교양필수 6학점으로 상향조정한다는 방침이었으나, 실제 각 대학의 준비가 부족한 상황이었다. 절대시간이 부족할 뿐만 아니라 교육내용도 실제 컴퓨터 활용과는 거리가 있는 이론 위주로 돼있었다. 일반 대학 전자계산학과에 더 적합한 내용들이라는 것이었다.

 

재교육 프로그램 필요성 대두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사범대학과 교육대학의 컴퓨터과목을 필수로 부과하고 이수학점도 8학점으로 상향조정해야 한다는 의견이 제기되고 있었다. 또 교과이수의 편의를 위해 교과과정을 기초과정과 심화과정으로 나누고, 교육내용도 컴퓨터와 일반 교육과정을 통합할 수 있는 이론적 근거들과 적응력을 길러주는데 집중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또한 초·중등학교 학생들이 컴퓨터 이용에 대해 정확한 식견과 안목을 가질 수 있도록 지도하는 능력을 좀 더 강조해야 한다는 지적이었다.

구체적 정책으로 교육대학의 심화과정에 컴퓨터교육 심화과정(21학점)을 설치해야 할 필요가 있었다. 교육부는 교육대학 심화과정에 컴퓨터교육 전공을 설치하겠다는 목표였으나, 잘 이뤄지지 않고 있었다. 선택과목 중 컴퓨터교육과목이 포함되기는 했으나, 이것으로 초등학교의 학교 재량시간과 특별활동 등 요구에 부응하기는 힘들 것으로 보였다. 사범대학의 컴퓨터교육과 설치를 늘리고 전자계산 및 컴퓨터교육 부전공을 확대하는 한편, 일반 대학의 컴퓨터 관련학과 교직과정 이수자를 더욱 증원해야 할 필요도 있었다.

▲ 94년 본지에 실린 컴퓨터교육 담당교원 연수실적

우수한 컴퓨터교사가 확보되기 위해서는 궁극적으로 사범대학과 교육대학의 컴퓨터교육이 활성화돼야 했지만, 그렇게 되기만 기다리고 있을 수는 없었다. 이미 현장에 나와 있는 현직교사들에 대해서는 연수 등 재교육 프로그램을 적극 활용해야 했다. 당시 교육부가 마련한 현직 교사에 대한 연수프로그램은 크게 기초과정(30시간), 심화과정(60시간), 전문과정(120시간), 교육용SW 개발요원 연수(60시간), 컴퓨터교육담당 장학요원연수(60시간) 등 5가지로 나눌 수 있었다.

연수실적을 보면 92년 말에 전체 교사의 24.3%가 기초과정을 이수했고 심화과정은 14.7%, 전문과정은 0.5%의 결과를 보였다. 학교 급별로는 초등학교 전체 교원의 53.5%가 각급 과정을 이수했고 중학교는 25.6%, 일반 고등학교는 29.2%로 전체 초·중등학교 교사의 39.6%가 연수를 받았다.

교원 자율연수와 학교 자체연수가 보다 효과적이란 점에서 외국의 순회강사제도도 적극 도입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었다. 각 급 학교 교사의 컴퓨터 자율연수를 전담하는 교사조직을 두고 이들이 지역별로 돌아다니면서 교사들의 컴퓨터교육을 지도한다는 것이었다.

이밖에 컴퓨터강사요원과 컴퓨터장학요원을 양성하는 컴퓨터교육요원 양성을 활성화할 필요가 있었다. 교육부는 학교교육개발원을 컴퓨터교육요원 특정 연수기관으로 지정, 매년 180명을 교육하고 있었다. 그러나 연수내용과 기간을 좀 더 확대·강화하는 한편, 인원도 더 늘리고 연수비를 현실화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었다.

또 교육현장의 여론을 형성하고 중요한 사안의 결정권자들인 학교장과 시·도 교육 간부, 교육위원과 학부모를 대상으로 컴퓨터 인식 교육과정을 설치할 필요가 있다는 주장도 있었다.

 

20년후, SW교육 의무화

▲ 교육부에서 제시한 학교 급별 SW교육 모형

지난 7월 미래부, 교육부, 산업부, 문체부 등 관계부처는 박근혜 대통령이 참석한 가운데 판교 테크노밸리에서 ‘SW중심사회 실현 전략보고회’를 열어, 종합적인 SW진흥책을 발표하면서 SW교육 활성화 방안을 내놨다. 정보소양능력을 갖춘 인력을 조기에 발굴·육성하고자 SW교육을 초·중·고 교육과정에 포함시키기로 한 것이다.

이에 교육부는 2018년 적용 예정인 문·이과 통합형 교육과정의 총론을 지난 9월 발표, 내년 하반기에는 새 교육과정을 최종확정해 고시하기로 했다. 먼저 초등학교의 경우, 실과교과의 ICT 활용 관련 내용을 저작권 보호 등 SW기초소양으로 확대 개편하기로 했다. 실과과목이 편성된 5,6학년에서는 한 학기동안 주당 한 시간씩 SW를 배우게 된다. 또한 고등학교의 경우, 심화선택인 정보과목을 SW중심으로 개편해 일반선택으로 지정했다.

이 가운데 특히 중학교의 경우, 정보교과를 선택이 아닌 필수독립과목으로 개편, 현행 ‘과학, 기술·가정’ 교과군이 ‘과학, 기술·가정, 정보’로 변경됐다. 선택과목에 배정된 수업시간도 기존 646시간에서 680시간으로 늘어났다. 최근 관련업계에 따르면, 중학교 SW교육 시수는 34시간이 확정적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앞서 ‘SW중심사회 실현 전략보고회’를 통해 SW교육 의무화 방안이 발표되기 일주일전, ‘정보과학’의 초·중·고등학교 교육과정 정규독립교과 도입에 힘을 싣기 위해 ‘창조경제 시대의 정보과학 교육 정책 방향’을 주제로 국회 공청회가 열린 바 있다.

이 행사의 패널토론에서 교육부 남부호 교육과정정책과장은 시수 조정, 교사 양성, 사교육 방지 등 당면한 현실적인 문제를 짚으며 “어떻게 쉽고 재미있게 가르칠 것인가, 학부모들에게 그 중요성을 어떻게 알릴 것인가, 대학 입시에서 해당 학과 지원 시 어떻게 혜택을 적용할 것인가 등을 고민해봐야 한다”고 밝힌 바 있다.

이러한 부분들을 해결해, 향후 대한민국의 SW교육이 소기의 성과를 거둘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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