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의 남자'가 대박 행진을 계속하고 있다. 제작자는 "꼭 로또가 당첨된 것 같다"고 말한다. 국산 영화가 이렇듯 성공작을 계속해서 양산할 수 있는 것은 상상력이 풍부해진 결과이다. 상상력은 통제·규제와 관련이 있다. 전제시대, 독제시대에서는 상상력을 표현할 길이 없었다.
대박을 낸 국산영화의 계보를 보자. 쉬리, 공동경비구역JSA, 실미도, 태극기 휘날리며, 최근의 월컴투동막골에 이르기 까지 과거 독제시대에서는 상상하기 힘든 주제들이다. 주제를 넘어서 분단이라는 동일한 문제를 가지고도 그 소재의 지평을 넓혀왔다. 남북대결 구도를 보여줬던 것이 '쉬리'라면, 동막골에서는 형제가 됐다. 규제와 통제가 없어진 체제 안에서 상상력이 발전한 까닭이다.
'인터넷 실명제'시행을 꾸준히 추진해 온 정통부가 여당과 협의를 마치고 곧 '제한적 인터넷 실명제'를 입법 예고할 계획이라고 한다. 우선 영향력이 큰 포탈 사이트를 대상으로 하고, 로그인할 때 본인확인 절차를 밟아 문제가 생겼을 때 사후에 운영자가 파악할 수 있게 한다는 것이 골자이다. 또 한차례 찬반 양론이 격해질 전망이다.
'도시와 인간'에 대한 깊은 성찰을 했던 세계적인 건축가이면서 MIT의 미디어 아트 및 과학분야 책임자이자 지능도시(smart city) 연구 프로그램의 책임자인 MIT의 윌리엄 미첼(William J. Mitchell)은 그의 저서 'City of Bits'에서 초고속정보통신망 시대에 등장하는 가상도시에서는 기존과는 전혀 다른 도시 인식이 이루어질 것이라고 보았다. 비록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GPS의 등장과 서로 정보를 주고받는 스마트 자동차, PDA의 상호 소통을 통해 체험지식에 의존하지 않고도 도시 구조파악이 가능해졌다고 말한다.
이 정보고속도로 시대의 가상 도시에는 모든 교차점(node)이 랜드마크의 역할을 대체할 수 있다는 것이다. 즉 조선·중앙·동아일보를 대형 포탈이 대신할 수 있다는 말로 기존 정보의 집산과 배포를 상징하는 언론 권력을 대체하는 것이 가능해졌다는 의미이다. 이를 다시 도시에 대입하면 도심 없는 도시가 가능해진다는 것이다. 도심의 광장이나 도로, 소로는 도시 계획가나 건축가가 시민들을 유도하는 의도된 동선이다. 그러나 하이퍼링크로 무장한 인터넷의 가상도시는 무한대의 점프를 가능케 한다. 관심이 없으면 바로 딴 곳으로 튀어 버리면 되고, 제 나름의 동선을 디자인 하고 만들 수 있다.
그러나 무한한 상상력의 신도시 'City of Bits'에도 현실도시와 마찬가지의 갖가지 악이 존재한다. 악플, 음란, 성매매, 도박 등…. 이루 헤아릴 수 없다. 인터넷 실명제를 도입하고자 하는 정통부는 가상도시에도 현실세계와 똑같은 광장과 도로, 소로, 즉 윤리와 법체계가 있어야 한다는 각계의 의견을 반영한 것으로 풀이된다.
현실 세계이든 가상세계이든 가장 큰 문제는 각종 일탈행위가 아니라 상상력의 빈곤이다. 범죄에 해당하는 행위는 일탈 행위일 뿐이다. 일탈행위를 막기 위해 상상력의 빈곤을 가져올 통제와 규제를 앞세운다면, 미래 가상 신도시는 삭막한 사막 그 이상이 될 것이다.
초고속정보통신망에 기반을 둔 'City of Bits'를 결정짓는 것은 비트에 기반을 둔 인간의 상상력이다. 이 도시에서는 전문가들이나 기득권자들이 구축해 온 영역을 허물고 '전문지식'이라고 포장된 분야를 건전한 판단력과 상식으로 지배하는 것도 가능하다. 다만 이 상상력을 적절히 통제하여 새로운 윤리적 규범을 세우고 이 공동체를 운영할 우리 인간들의 의지가 중요하다. 결코 현실세계의 인위적인 광장, 도로, 소로가 아니다

과대 포장된 SOA
올 한해 IT 핫 이슈를 꼽다보면 서비스 기반 아키텍처(SOA)는 빠지지 않고 거론될 분야다.
SOA는 IT 인프라 영역의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평가될 만큼 큰 파장이 예상돼 거의 모든 IT공급업체들은 SOA를 주시하고 있고 이에 대한 향후 로드맵을 쏟아내고 있다.
SOA는 다른 무엇보다 시스템의 재사용성을 획기적으로 높여 빈번한 시스템 재개발을 줄여준다는 점에서는 IT 기술의 진일보이자 새로운 단계로의 도약이라고 평가하기에 충분하다.
그런 만큼 많은 IT 기업들은 SOA를 향후 핵심 비전으로 삼아 전력투구하고 있다.
문제는 SOA가 지향하는 찬란한 비전에 취해 SOA가 안고 있는 리스크가 간과되고 있고, 현 수준의 SOA가 과대 포장되고 있다는 점이다.
SOA는 아직까지 다양한 논의가 진행되고 있는 부분임에도 불구하고 각 공급업체들은 SOA 구축 프로젝트를 이미 많이 수행했다고 밝히고 있다.
국내에서 SOA를 했다 또는 사례로 거론되는 것들의 실체를 살펴보면 EAI 프로젝트에서 EAI를 부분적인 통합을 구현한 사례, 또는 채널통합, 그렇지 않으면 기존 클라이언트/서버(C/S)환경이나 P2P 환경을 웹서비스로 바꾼 경우가 거의 100%다.
최근에 논의되고 있는 수준의 SOA는 IT투자의 초기 도입자(Early Adapter)라 불리는 선도 기업들조차 이제야 파일럿 프로젝트를 추진하고 있으며 거의 대다수의 기업들은 왜 SOA를 도입해야하고 그 효용은 무엇인지를 궁금해 하는 수준이다.
이런 실정임에도 불구하고 국내 각 벤더가 제시하는 SOA 구현 사례들을 합해보면 이미 수십 개의 기업이 SOA를 도입하고 잘 사용하고 있다. 이게 사실이라면 한국은 전 세계에서 SOA 구현이 가장 짧은 시간에, 그리고 가장 완벽하게 이뤄진 시장일 것이다.
양지가 있으면 음지가 있는 법.
SOA가 그토록 놀라운 효용을 가진 만큼 그 이면에는 큰 리스크가 존재하고 있음이 간과되고 있다. SOA는 놀라운 수준의 재사용성이 보장되는 만큼 서비스가 생성되고 제공되는 순간 전 세계로 퍼져 나가게 된다. 이는 곧 엄청난 수준의 운영 능력을 필요로 한다는 의미다.
보안 능력은 물론이며 24×365의 무정지 시스템 역시 필수불가결한 부분이다. 기업 내부적으로는 기존 시스템이 운영되면서 모듈의 변경이 가능해야 한다. 현 수준의 운영 시스템으로 구현하기에는 녹녹한 문제가 아니다. 모든 시스템이 그러하듯 SOA 역시 지원이 전부가 아니라 효율적인 운영이 관건인 것이다.
SOA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공급업체들의 비전 제시가 구체화되어 갈수록 이러한 부분이 충분히 고려되어야 할 것이다. 그렇지 못할 경우 기존의 IT이슈가 숱하게 보여줬듯이 SOA또한 '언어의 유희'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이다.
SOA가 제시하는 비전은 결코 새로운 것이 아니다. 그 본질을 하나하나 따져가다 보면 IT가 결국 SOA라고 할 수도 있는 지극히 원론적인 비전이다. 현업에서 필요로 하는 기능을 곧바로 반영되는 시스템을 만들자는 것이 SOA인 셈이다. SOA가 각광받는 것은 그 방식이 세련됐고 이상(?)에 도달할 수 있는 가능성이 높기 때문일 것이다.
새로운 패러다임은 기존 사고와 관행에서 벗어나 새로운 각성과 접근이 있어야 비로소 의미를 갖는다. SOA가 기존 IT에 대한 인식을 바꿔나가고 새로운 장을 열어가기 위해서는 기존과는 다른 접근이 있어야 할 것이라는 생각이다. 공급업체나 사용자 기업 모두에게 적용되는 주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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