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장에서 10억원의 판매고를 보이는 A상품과 20억원의 매출을 기록하는 B상품이 있다고 하자. 둘 중 한 상품은 매장에서 철수시켜야 할 상황이라면 어느 상품을 철수시키는 게 옳을까? 일반인들은 매출이 적은 A 상품을 서슴치 않고 꼽을 것이다. 그러나 최근 유행하는 CRM이라는 기법을 적용하면 결론은 달라진다. 가령 A 상품이 구매자들의 쇼핑 리스트에 포함된 제품(예를 들어 귀금속을 구매하는 소비층이 선호하는 주부)이라면, 이는 매출 금액에 상관없이 자리를 지킬 수 있다. 반면 A보다 2배의 매출을 올리는 B제품이 구매력이 낮은 서민들이 애용하는 일용품이라면 매출액은 2배임에도 불구하고 퇴출대상으로 낙점된다.
최근 국내 경제는 양극화 문제가 심각한 문제로 거론되고 있다. 비록 양상은 조금 다르지만 IT 역시 너무나도 명확한 양극화 현상을 접할 수 있다. A 상품과 B 상품의 예는 한 단면일 뿐이다. 이와는 비교도 안 될 정도의 양극화 모습이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 다름 아닌 '정보화 격차' 문제다.
정보화 시대라 일컬어지는 요즘 IT는 기업 경쟁력의 핵심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그리고 대기업, 또는 상류층 인사들일수록 정보화를 통해 더 많은 기회를 얻고 있다. 더 많은 양질의 정보를 더 빠른 시간 내에 접할 수 있고, 이를 신속하게 활용할 수 있다. 이러한 선순환의 구조를 위해 IT 투자를 대대적으로 하는 것이다.
한 개인이나 기업을 두고 보면 전혀 문제될 것이 없으나, 사회 전체적으로 보면 이는 매우 심각한 구조적인 문제점을 안고 있다. 갈수록 선두 기업군은 첨단 IT로 중무장해 경쟁력을 키워나가는데 비해 이보다 한걸음 뒤처진 그룹들은 IT 투자 여력 부족으로 정보화 부분에서 뒤지게 되고, 이는 극복할 수 없는 경쟁력의 차이로 쌓이게 된다.
정보화 격차는 어느 시장에서든 선두 브랜드만 남기고 여타 브랜드는 생존할 수 없는 극악의 상황을 만들어가고 있다. 철저한 정글의 법칙을 정보화 격차에서도 여실히 찾아볼 수 있다. 여전히 통용되는 규모의 경제에 더불어 정보화 격차는 선두그룹, 대형그룹들이 누릴 수 있는 강력한 무기로서 작동하고 있다. 경제 분야의 양극화가 사회 안정성을 해치는 것만큼 정보화 격차 역시 IT시장을 비롯해 사회 저변을 크게 취약하게 한다.
정보통신부를 비롯해 정부 각 부처에서는 매년 정보화 격차 해소를 위해 중소기업 정보화 지원이나 농어촌 지역 정보화 투자 등을 시행해오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업간, 계층간, 지역간 정보화 격차는 점점 더 크게 벌어지고 있다. 정보화에서도 규모의 경제가 통용되기 때문이다.
규모의 경제가 통하는 수레바퀴를 인위적으로 멈추기는 불가능하다. 투자 의지와 능력에 따라 진행되는 IT 투자에서 기인하는 정보화 격차 역시 대동소이한 문제다.
3만개 중소기업 ERP 지원 사업이 무엇을 남겼는가? 올 초 중소기업 IT 투자 증진을 위해 개발된 대출상품(IT 구매자금대출)도 무관심속에 방치되고 있다. 정보화 격차 문제의 심각성은 당사자가 먼저 인지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그렇지 못한 것이 현실이다.
정보화 격차 해소, 아니 최소한 더 이상 간극이 커지는 것을 방지하는 것은 IT가 기업 경쟁력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커질수록 관심을 가져야할 문제이다. 그리고 그 주체는 상대적으로 약자인 중소기업의 몫 이여야 한다. 그 이후에 정부의 지원정책, 대기업의 협업 프로그램 등도 의미를 가질 수 있을 것이다. 정보화 투자와 IT를 '있으면 좋은 것' 정도로 치부할 것이 아니라 생존을 위한 핵심도구라는 점을 명확히 인식해야 할 것이다. 정글에서 살아남으려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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