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진호 게임베이스 선임엔지니어

▲ 유진호 게임베이스 선임엔지니어

[컴퓨터월드] 여느 콘텐츠 제작과 마찬가지로, 게임을 만드는데도 자본, 시간, 인력 등이 요구된다. 그리고 게임개발자들이 게임제작에 사용할 도구도 필요하다. 하나의 소프트웨어(SW) 상품이라 할 수 있는 게임엔진이 바로 그것으로, 좋은 도구가 훌륭한 작품을 빚는 데에 도움이 된다는 점은 게임업계에서도 다르지 않다.

게임베이스는 비교적 흔치않은 게임엔진 전문 개발사로, 지금도 널리 쓰이는 ‘게임브리오’ 엔진을 서비스하고 있다. 지난 7월 게임베이스는 새로운 게임엔진 ‘리치3dx(Reach3dx)’의 CBT(비공개테스트)를 열었는데, 게임엔진의 CBT는 업계에서 처음 있는 일이다. 게임베이스의 유진호 선임엔지니어로부터 이러한 이례적인 선택의 배경과 게임엔진에 대해 들어본다.


게임엔진에 대해 간략히 설명한다면.

게임을 만드는 두뇌라고 볼 수 있다. 물리, 네트워크, 렌더링, 애니메이션, 사운드 등에 대한 개별엔진이나 이러한 복수의 기능들을 포함하는 통합엔진을 통칭하는 말로, 여러 가지 기능들을 정리해서 모아놓은 것이다. 이러한 요소들을 활용해 원하는 방식으로 커스터마이즈해 게임을 제작할 수 있는 플랫폼이자 툴이라고 보면 된다.

미리 만들어놓은 SW 형식이라 프로그래머 입장에서는 소스코드 라이브러리들의 집합으로 보이겠고, 디자이너 입장에서는 프로그래머가 불러서 사용할 수 있게 도와주는 도구로 보일 것이다.

C++, 자바스크립트(JavaScript) 등 프로그래밍 언어를 이용해 기초부터 설계해서 직접 게임을 만들 수도 있다. 하지만 그런 방식으로는 규모가 방대해지고 내용이 정교해질수록 필요한 시간과 인력이 급격히 불어나게 되고 훨씬 많은 비용투자가 요구된다.

그러므로 대개의 경우 게임개발사들은 게임 제작 시 게임엔진을 통해 어느 정도 규격화 돼있고 정해져 있는 여러 가지 세팅된 기능들을 불러와서 개발에 활용하고 있다.

게임엔진으로 게임 이외의 3D 멀티미디어 콘텐츠를 제작하는 경우도 있다. 일례로 스웨덴의 한 게임엔진 개발사가 CAD로 유명한 오토데스크에 인수된 바 있다. 새로운 흐름 중 하나인 메이커 운동에서는 3D데이터를 다룰 수 있는 SW가 필요한데, 게임엔진은 이에 적합하다고 볼 수 있다.


‘리치3dx’를 선보이게 된 계기는.

▲ ‘리치3dx’ 엔진의 게임개발 화면

자사의 ‘게임브리오’를 비롯해 에픽게임즈의 ‘언리얼’, 크라이텍의 ‘크라이’ 등 여러 가지 게임엔진들이 널리 쓰이고 있지만, 모바일 쪽으로 움직이는 시대의 흐름에 따라 모바일게임 개발에 보다 적합한 엔진이 필요하다고 느껴왔다.

마침 모바일게임시장에서 ‘유니티’ 엔진이 이슈가 되는 것을 보고서는 이에 상응하면서도 차별화된 새로운 콘셉트의 게임엔진을 개발해보고 싶었다. ‘유니티’가 주형틀이고 ‘언리얼’이 3D프린터라면, ‘리치3dx’는 커스터마이징 가능한 주형틀과 3D프린터의 중간 정도라고 비유할 수 있겠다.

게임개발자들이 보다 쉽게, 보다 빠르게, 보다 효율적으로, 보다 스마트하게 게임을 만들 수 있도록 돕는데 중점을 뒀으며, 이러한 맥락으로 보다 많은 플랫폼을 지원하게끔 만들었다.

안드로이드, iOS, 타이젠(Tizen), 플래시 등을 지원하며, 특히 최근 주목받고 있는 HTML5 지원에도 초점을 맞췄다. ‘유니티’가 4.0버전까지는 HTML5를 제대로 지원하지 않았으므로, 이를 지원하는 3D 게임엔진이 없었기 때문이다.

현재는 렌더-그래프(Render-Graph) 기반 렌더링, 셰이더(Shader), 물리 시뮬레이션(Physics Simulation) 등을 지원하고 있으며, 장차 기능을 확장해나가 보다 완벽한 통합엔진으로 발전시킬 계획이다.


‘리치3dx’의 특징으로 멀티플랫폼 지원을 꼽았는데.

특히 HTML5 지원에 강점이 있다. 웹에서 돌아가는 게임 제작 시 그 자체로 게임이 실행되는 것이 아니고 자바스크립트 등으로의 변환과정을 거쳐야 한다. 예를 들어 ‘언리얼’ 엔진은 기본적으로 C++로 돼있고 ‘유니티’ 엔진의 경우 C#으로 돼있는데, 이 엔진들에서 만든 게임을 웹에서 돌리려면 내부적으로 C++로 변환하고 다시 자바스크립트로 바꾸는 과정을 거친다.

이렇게 여러 변환과정을 거치면서 제작자의 의도대로 컴파일링이 될지는 의문이다. 또 디버깅 과정에 보다 많은 시간과 인력이 소모될 수 있다.

‘리치3dx’는 자바스크립트와 유사한 ECMA스크립트 계열 언어인 헥스(Haxe)를 기반으로 하며, 타깃 플랫폼에 맞춰 C++, 자바스크립트, 액션스크립트 등으로 자동 변환된다. 변환과정상의 부담 없이 손쉽게 적용할 수 있는 것이다.

오픈FL(OpenFL) 기술을 사용해 다양한 플랫폼에서 사용할 수 있게끔 만들었으며, 이는 HTML5의 웹GL(WebGL) 지원을 통해 액티브X(ActiveX) 등 별도의 플러그인 설치가 필요치 않은 점과 맞물려 게임개발자들의 개발편의를 높여준다.

즉, 기존의 엔진들은 크로스플랫폼 지원 시 코드 리라이팅이나 플러그인이 필요했지만, ‘리치3dx’는 원 코드 그대로 적용할 수 있고 동일한 품질을 제공한다.

웹과 모바일 등 여러 플랫폼에서 구동하는 게임을 만들고자 할 때 플랫폼에 따른 코드와 에셋을 최적화하는데 많은 노력을 들일 필요 없이 한 번에 구현할 수 있으며, 변화하는 플랫폼 트렌드와 다양한 글로벌 시장의 요구에도 보다 유연하게 대처할 수 있는 것이다.

아울러 헥스는 가비지 콜렉션, 람다(Lamda)와 같은 최신 언어들이 지원하는 기능을 제공, 코드 생산성을 높여주는 장점도 있다.

▲ ‘리치3dx’로 구현된 예시 화면


함께 선보였던 ‘게임브리오 모바일’과 다른 점은.

‘게임브리오 모바일’은 하나의 IP로 PC게임과 모바일게임을 같이 개발할 때 유용하며, 중·대형 개발사가 주 고객이다. 이와 달리 ‘리치3dx’는 PC게임이 아닌 모바일게임만을 개발하고자 하는 인디 및 중·소형 개발사를 위해 개발했으며, ‘유니티’나 ‘코코스2dx’가 주로 사용되는 시장을 타깃으로 한다.

마케팅에 있어서도 ‘게임브리오’를 비롯해 주요 게임엔진들이 택하고 있는 B2B 소스코드 판매 방식과는 달리, ‘리치3dx’는 라이브러리 SDK를 제공하는 방식이 될 것이며 인터넷 결제 등도 지원할 예정이다.

이밖에도 멀티플랫폼으로 포팅하는데 있어서는 ‘유니티’ 엔진이 버전마다 시트당 가격이 있고 ‘언리얼’ 엔진이 프로젝트 베이스로 로열티를 받는 형식인데, ‘리치3dx’의 경우 1인당 모든 플랫폼을 사용할 수 있는 라이선스를 하나의 가격으로 책정, 플랫폼에 따른 추가비용이나 게임 서비스에 따른 로열티 부담이 전혀 없다.


게임엔진으로서는 최초로 CBT를 열었는데.

후발주자로서 고객들의 피드백을 받아 차별화 요소를 강화하기 위해서다. 게임엔진 시장의 니즈는 무엇인지, 어떻게 고객에게 다가갈 것인지, 이를 통해 어떤 방향으로 ‘리치3dx’를 발전시켜나갈 것인지에 대해 모든 부서가 모여 회의를 거듭하며 고심하던 끝에 CBT를 열어보자는 결정에 이르렀다.

처음 상용화 목표를 정할 때는 개발부서에서도 각자 가상의 보도자료를 작성해보며 마케팅 아이디어를 내보기도 했다.

지난 2월 개최했던 세미나의 참석자들을 비롯해 총 2천여 명의 이용자들을 초청해 선착순 200명에게 이메일로 HTML5 버전을 공급했고, 샘플 게임 소스, 튜토리얼, 레퍼런스는 누구나 접근이 가능하게끔 웹사이트에 공개했다.

이번 CBT를 통해 고객들의 피드백에 따라 기능적인 부분을 강화하든 지원 플랫폼을 확대하든 발전방향을 설정해 고유의 색깔을 구축하고자 한다. 린스타트업 방식으로 접근해 시장의 반응에 따라 비즈니스 모델을 맞춰가려고 하며, 앞으로도 매분기마다 메이저 업데이트를 실시할 계획이다.

적어도 분기 단위로는 시장의 니즈에 발맞춰 변화를 꾀해나갈 생각으로, 이를 통해 차별화를 이뤄나갈 방침이다. 도큐먼트와 튜토리얼의 업데이트도 중요하게 여기고 있으며, CBT 참여자들이 제안하는 코드나 기능이 있다면 이를 반영하는 것까지 고민 중이다.

무엇보다 자체 커뮤니티 활성화에 신경쓰려한다. CBT 평가판을 다운받아 체험해보고 커뮤니티의 포럼에 건의나 지적을 남겨주면 적극 반영토록 하겠다.

▲ 게임베이스가 지난 2월 개최한 게임엔진 솔루션 세미나


게임엔진 시장은 앞으로 어떻게 흘러가리라 보나.

지난 ‘GDC 2014’에서 에픽게임즈가 ‘언리얼’ 엔진의 월임대 정책을 간판으로 내세우자, 다음날 맞은편의 크라이텍에서도 ‘크라이’ 엔진의 월임대 정책을 가격까지 똑같이 내건 일이 있었다. 이러한 마케팅의 대상은 활성화되고 있는 1인 개발자 및 중·소형 개발사로, 사용자 확보를 위한 경쟁을 통해 진입장벽이 허물어지고 있는 추세다.

그만큼 이제는 범용성과 편의성이 점차 중요해지리라 본다. 기능적인 부분은 다이렉트3D(Direct3D)나 오픈GL(OpenGL) 등의 기술 발전에 달려있는 면이 크며, 엔진 자체의 성능은 이미 최대한 끌어내고 있다는 평가가 많다. 글로벌 시장에서도 결국 차별화가 관건이라는 게 업계의 중론이다.

아시아에서 우리나라와 중국을 중심으로 모바일 시장이 급성장해 3년째 강세를 보이고 있는데 비해, 아직까지 북미나 유럽 시장에서는 콘솔 시장이 주를 이루고 있고 모바일 시장은 걸음마 단계에 가깝다.

장차 전 세계적으로 모바일이 대세가 될 것으로 예상하고 있기 때문에, 아시아 시장에서 성공을 거두면 전반적인 글로벌 시장 공략도 충분히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규모가 큰 일본이나 중국 시장에서도 가볍고 HTML5에 최적화된 엔진을 찾는 수요가 분명 존재할 것으로 예상한다.

국내의 경우 모바일게임 시장이 활성화돼있고, 모바일게임의 주요 장르도 미드코어로 넘어가는 추세다. 게임개발 프로젝트팀은 수없이 많지만 성공하는 비율은 1% 수준인데, 이렇게 성공률이 낮은 데는 마케팅 부족도 하나의 이유가 될 수 있다.

텐센트 등 글로벌 기업들의 투자를 통해 요즘 모바일게임들도 게임당 수억 원의 마케팅 비용이 들어가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이에 반해 인디개발자가 마케팅에 쓸 수 있는 돈이 얼마나 있겠나.

플랫폼 수수료 이슈 등으로부터 비롯되고 있는 모바일게임시장의 악순환에 대한 반작용으로 인해 언젠가는 국내에 온라인게임의 시대가 다시 찾아올 수도 있다고 본다.


국산 게임엔진으로서 의의를 둔다면.

게임베이스가 국내에서 흔치않은 게임엔진 전문 개발사이긴 하나, 이를 마케팅적인 측면에서 활용하지는 않으려 한다. 자칫 회사의 경쟁력을 떨어뜨릴 수 있다고 보기 때문이며, 글로벌 시장에서 경쟁하며 냉혹하게 판단받아 발전해나가고 싶다.

결국은 글로벌 시장에서 성공을 이뤄야 하며, 국적에 상관없이 좋은 인재가 필요하기 때문에 채용공고도 영어로 올려 해외개발자도 받아들이려 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 외국의 SW 인재를 데려오고서는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는 데는 언어와 문화의 측면이 크다고 보는데, 우리는 이를 타파해나가고 있다고 자부한다.

‘리치3dx’는 린이나 애자일 방식으로 개발하고 있으며, 개발자가 개발에 전념할 수 있고 의견을 충분히 수렴할 수 있는 선진화된 개발 프로세스를 만들어가려고 한다.

국내에서 개발된 게임엔진이 글로벌 시장에서 성공했을 때의 긍정적인 효과로는 먼저 해당 분야 SW 인력들의 일터가 늘어난다는 점을 꼽을 수 있겠다. 현재 국내에서 한해 약 500억 원의 게임엔진 사용료가 해외로 나가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이를 줄일 수 있는 측면도 있을 것이다.

과거 정부가 국책사업으로 약 100억 원을 들여 ETRI(한국전자통신연구원)에서 ‘드림3D(Dream3D)’라는 게임엔진을 개발하기도 했으나, 해당 엔진은 시장에서 사장됐다. 게임엔진 개발에 정부 측으로부터 지원을 받아본 적은 없고, 지속적으로 접촉을 시도하고는 있다.


게임베이스의 향후 계획은.

‘리치3dx’는 분기마다 업데이트를 통해 지속적으로 피드백을 반영할 방침이라 어떻게 변화해나갈지는 예상하기가 어렵다.

CBT 결과에 따라 가급적으로 3분기에 상용화를 목표로 하고 있지만 반응에 따라 탄력적으로 일정을 조정할 수도 있다. 엔지니어들은 보다 완벽한 게임엔진을 내놓고 싶어하기 때문에 OBT까지 열 수도 있고, 직접 게임을 개발해 서비스할 계획은 없지만 고객들에게 보여줄 수 있는 예제 정도는 제작해볼 생각이다.

멀티플랫폼 부분에서 콘솔 지원도 고려중이고, 언제든지 수요가 있다면 즉시 지원할 용의도 가능성도 있다. 서비스하면서 부족한 부분은 시장의 반응에 맞춰 채워나가겠다.

소규모 개발자들이 멀티플랫폼으로 개발할 때 1차로 시도해볼만한 엔진이 됐으면 좋겠고, 이 엔진을 통해 성공적인 게임을 만들 수 있기를 바라며, 고객의 성공이 자사의 발전으로도 이어졌으면 한다. 아울러 게임엔진으로서의 역할을 넘어 3D 콘텐츠를 제작하는 데에도 유용한 툴로 자리했으면 한다.

지난 ‘GDC 2014’에서 발표했을 때도 반응이 좋았다. 첫 공략 대상은 아시아 시장이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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