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현장에서 사용되는 3D 프린팅 기술은?

 

▲ 스트라타시스 3D 프린터 'Objet24'(왼쪽)과 ‘uPrint SE’

의료계에 부는 3D 프린팅 바람

▲ 치과에서 활용되는 3D 모델

의료계는 3D 프린팅의 보급 속도가 두드러지는 산업군 중 하나다. 컴퓨터단층촬영(CT)·자기공명영상(MRI) 등 3D 프린팅 기술을 활용할 수 있는 데이터가 비교적 다른 산업군보다 많이 축적돼 있기 때문이다. 뼈와 장기의 손상을 확인하기 위해 영상을 보는 것보다 3D 프린팅 출력물을 확인하는 게 어떤 모양으로 얼마나 손상됐는지 더 쉽고 정확하게 판단할 수 있다.

특히 치과에서 3D 프린팅 기술이 유용하게 활용되는데 이미 치과 내에 보급돼 있는 3D CT, 치과용 3D 스캐너 등과 연계할 경우, 개인 골격에 맞는 제품을 디자인하기 쉬워져 치아 교정 장치, 임플란트 등을 제작할 때 3D 프린팅 기술이 사용된다. 3D 프린팅 기술을 활용해 치아 교정 장치나 임플란트를 제작 시 치과용 3D 스캐너를 활용해 환자의 치아를 스캔한 뒤 적당한 위치를 컴퓨터 프로그램이 계산하게 되고, 이 결과를 3D 프린터가 치아 교정 장치나 임플란트로 제작하게 된다.

▲ 치과 진료에 사용되는 오브젯 3D 인쇄 모형

치과 외에도 정형외과, 성형외과 등 많은 의료현장에서 3D 프린팅 기술을 도입하고 있는데 대부분 환자의 컴퓨터단층촬영 데이터를 통해 3D 프린터로 맞춤형 인공 관절이나 뼈를 제작해 의료행위를 진행하고 있다. 이같이 3D 프린팅 기술을 활용한 보형물은 기존의 방법인 수공으로 제작된 보형물보다 더 정밀한 작업까지 구현할 수 있어 환자의 몸에 최적화된 보형물을 만들 수 있다. 또 3D 프린팅 기술의 효과로 환자들은 병원에서 소요되는 시간과 비용을 줄일 수도 있다.

3D 프린팅 기술은 향후 살아있는 세포를 원하는 형상이나 패턴으로 적층해 조직이나 장기를 제작하는 등 다양한 분야에 적용할 수 있는 연구도 진행되고 있고, 이런 기술의 발달로 장기 이식 문제도 해결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또 의약 분야에도 활용되면 화학물질을 정제해 약으로 만들고 신약 개발에도 활용할 수 있을 전망이다. 이와 함께 3D 프린팅 기술을 통해 환자의 수술부위에 대한 사전 연습이 가능해지면서 조직 손상을 최소화하고, 수술 성공률을 높여 의료 질을 높일 것으로 기대된다.

▲ 3D 프린터로 제작한 장기 내부의 신경

맞춤형 의료 가능한 3D 프린팅

▲ 3D 프린터로 제작된 의료용 모델

의료현장에서 3D 프린팅 기술은 의료진과 환자 모두에게 높은 효용가치를 제공한다. 3D 프린팅 기술을 활용해 환자의 신체 부위를 모형으로 제작하면 실제 수술에 앞서 의료진이 수술 계획을 세우거나 모의 수술을 진행할 수 있어 수술 시간을 단축하고 성공률을 높일 수 있다.

한 가지 사례로 지난 2002년 미국 캘리포니아주립대 병원에서 3D 프린터를 활용해 100시간 가까이 걸리는 샴쌍둥이 수술을 22시간 만에 성공했다. 캘리포니아주립대 병원 의료진은 샴쌍둥이의 붙어 있는 신체부분을 MRI로 촬영한 후 샴쌍둥이의 모형을 3D 프린터로 제작했다. 제작된 3D 모형을 이용해 의료진은 두 아이의 내장과 뼈가 다치지 않도록 분리하는 예행연습을 실시했고, 이를 통해 자칫 목숨을 잃을 수도 있는 위험한 수술을 빠르고 안전하게 수행할 수 있었다.

3D 프린팅 기술 도입 이전에는 CT, MRI 등 영상 자료에 의존해 수술을 진행해야 했기 때문에 환자의 뼈와 장기를 정밀하게 확인하는 게 어려워 실제 수술 과정에서 손상이 발생할 가능성이 있었다. 하지만 3D 프린팅 기술을 통해 이 같은 위험요소를 줄일 수 있었다.

또 3D 프린팅 기술은 환자의 특징적인 신체 구조를 수술 등 의료행위에 정밀하게 반영할 수 있다. 모든 환자의 신체 구조는 같지 않기 때문에 통상적인 데이터만으로 의료행위를 진행하기는 쉽지 않다. 하지만 3D 프린팅 기술을 활용하면 환자 개개인의 특징적인 신체 구조를 정밀하게 분석할 수 있어 수술 등 의료행위에 더 정확하게 반영할 수 있는 만큼 환자 맞춤형 의료를 제공할 수 있다.

3D 프린팅, 미래 의료 서비스 트렌드에 큰 변화

▲ 백정환 서울삼성병원 이비인후과 교수

이렇게 맞춤형 의료를 제공할 수 있는 3D 프린팅 기술은 미래 의료 서비스 트렌드에 큰 변화를 불러일으킬 것으로 보인다. 대표적인 사례로 지난해 백정환 서울삼성병원 이비인후과 교수는 국내에서 처음으로 부비동암 수술에 3D 프린터를 이용해 수술 후 부작용 중 하나인 얼굴, 눈 함몰 가능성을 최소화시킬 수 있게 했다. 백정환 교수는 재발 부비동암 여성 환자와 코가 자주 막혀 비중격만곡증으로 알고 병원을 찾았다가 부비동암으로 판정받은 남성 환자를 3D 프린터를 이용해 성공적으로 수술했다.

부비동암 수술은 안구를 떠받치는 뼈 등 암이 퍼진 얼굴의 골격을 광범위하게 절제한 후 다른 부위의 뼈나 근육을 떼어 내 붙여 기존의 얼굴골격을 대신하도록 하고 있다. 주로 환자 자신의 어깨뼈와 근육 등을 떼어 미세혈관 수술을 이용해 얼굴재건을 시도한다.

하지만 CT 등 영상의학검사 자료에만 의존하는 기존의 수술을 진행할 경우 얼굴 골격을 정확히 확인하기 힘들어 수술 과정에서 부정교합이 발생할 수 있다. 또 시간이 지나면 구조물이 변형으로 인해 눈 주변부가 주저앉아 양쪽 눈이 수평선이 어긋나면서 1개의 물체가 2개로 보이는 복시가 진행되기도 했다.

▲ 3D 프린터로 제작한 부비동암 환자의 골격 모형물

이 같은 부작용을 해결하기 위해 백정환 교수는 환자의 수술 부위의 골격을 3D 프린터를 이용한 모형물을 만들어 수술 중 예상되는 얼굴 골격 절제 범위를 미리 확인하고, 절제 부위의 뼈 두께, 절제 방향의 중요 구조물 등을 실시간으로 확인하며 수술에 이용했다. 뼈 절제 후 뼈 결손 부위 복원 시 두개골 복원용 골시멘트를 이용해 모형물에서 정확한 뼈결손부의 복원을 시킬 수 있었고, 이 골시멘트 결손 모형은 직접 혹은 복원에 사용되는 다른 소재인 티타늄의 모양을 정확히 만들어 주는 데 이용했다. 아울러 모형물은 환자 및 보호자에게 수술의 이해도를 높이는 데에도 이용했다.

또 다른 사례로 조주영 순천향대병원 소화기병센터 교수팀은 3D 프린터로 만든 내시경 수술기구를 실제 임상에 적용하는데 성공했다. 조주영 교수팀은 여성 환자의 위점막하종양을 하이브리드노츠(hybrid NOTES) 치료법으로 제거하는 수술에 3D 프린터로 제작한 내시경 캡을 사용했다.

조 교수팀이 사용한 내시경캡은 3D 프린터 제조사인 프로토텍과 의료기기 개발 회사인 에이엠티가 공동 개발한 것으로 이 내시경 캡은 기존 제품과 달리 식도와 위장 등 각 장기에 사용하기 적합하고 환자의 병변 위치에 따라 크기와 모양 등을 바꿀 수 있다.

식도 병변은 기존의 내시경 캡을 사용할 경우 접근이 쉽지 않았다. 이에 조 교수팀은 3D 프린터를 이용해 양 옆을 절개한 캡을 만들어 기존 제품의 시야가 좁아지는 단점과 금형제작 등으로 초기비용과 시간이 많이 소요됐던 단점도 개선했다.

이밖에도 의료현장에서 3D 프린팅 기술은 환자의 신체와 똑같은 3D 모형 교육이나 환자와의 커뮤니케이션을 위해서도 활용된다. 중앙대병원 신경외과는 3D 프린터로 제작된 두상 모형물로 의대생과 전공의를 대상으로 뇌종양 수술 교육을 진행하고 있고 향후 시체 모형으로 해부실습교육도 진행할 계획이다.

보청기·의수·의족 등 맞춤형 보형물 제작

▲ 3D 프린팅 기술로 제작된 의족 커버

의료분야에 걸쳐 3D 프린팅 기술이 접목됨으로써 보청기, 의수, 의족 등 맞춤형 인체 보형물의 제작에 많은 도움이 되고 있다. 현재 3D 프린팅 기술을 통해 가장 일반적으로 쓰이고 있는 인체 보형물 중 하나는 맞춤형 보청기다. 사람마다 다른 귀 모양의 보청기를 만드는데 3D 프린팅 기술만큼 적합한 기술이 없기 때문이다.

과거 맞춤형 보청기는 최소 10년 이상 경력의 숙련공이 일일이 깎고 다듬는 방식으로 제작돼 제작시간과 비용이 많이 소요됐다. 하지만 3D 프린팅 기술을 이용한 맞춤형 보청기는 실리콘으로 귀 모양을 본뜬 후 3D 스캐너를 이용해 귀 모양을 정확하게 인식하고, 그 모형에 따라 3D 프린터로 출력하면 환자의 귀에 꼭 맞는 보청기가 제작된다. 또 기존 수작업과 달리 장비를 통해 빠른 시간 내에 대량 생산할 수 있어 제품의 가격경쟁력을 만들고, 고객 귀 모양의 스캔 자료를 보관해 분실 시 언제든 제작할 수도 있다.

이 같은 흐름에 국내 보청기 제조업체 딜라이트는 2011년 3D프린팅 기술을 도입해 개인의 귀 모양에 맞는 보청기를 제조하고 있다. 딜라이트 보청기 관계자는 “3D 프린팅 기술을 도입해 정교하고 세밀한 보청기 제작을 한 이후로 불량률이 크게 낮아지고, 고객들의 착용감도 개선됐다”며 “3D 프린터가 기술자 3~4명의 작업량을 한 번에 소화해 빠른 시간 안에 대량생산이 가능해졌다”고 말했다.

아울러 3D 프린팅 기술은 팔이나 다리를 잃은 환자들이 착용하는 의족이나 의수의 커버를 맞춤형으로 제작하는데도 사용된다. 미국 샌프란시스코에 있는 베스포크 이노베이션은 환자의 의족이나 의수에 씌우는 커버를 제작하는 데 3D 프린팅 기술을 접목했다. 다리를 잃은 환자의 의족을 만들기 위해 다리의 형태를 그대로 구현해 의족의 모양을 만드는 것이다.

▲ 3D 프린팅 기술로 제작된 의족 커버

기존의 의족이나 의수는 파이프 형태의 구조물을 그대로 보여주거나, 아니면 피부톤에 맞는 스펀지 등 커버로 표면을 감싸는 형태로 제작돼 외형적 모습이나 바라보는 시선이 좋지만은 않았다. 하지만 3D 프린팅 기술을 활용해 제작한 의수나 의족은 환자의 체형에 꼭 들어맞는 맞춤형 외형을 갖출 뿐만 아니라 금속, 가죽 등 다양한 재질과 디자인의 커버를 통해 개인의 개성을 표현할 수 있게 됐다. 

안전성 확보 및 허가 방식 등 정부 정책 시급

이처럼 의료분야에서 3D 프린팅 기술의 활용 추세는 앞으로 한층 더 가속화될 전망이다. 하지만 3D 프린팅 기술을 의료현장에서 더욱 다양한 용도로 활용하기 위해 해결해야할 점도 많다.

아직 국내 의료현장에서 3D 프린팅 기술이 자리를 잡지는 못한 상황이라 안전성 확보에 대한 제도도 마련돼 있지 않은 현실이다. 미국과 유럽의 경우 의료 및 보건산업에서 3D 프린팅 기술 접목에 따른 시스템을 갖추는 작업이 이뤄지고 있지만 국내에서는 이에 대한 별다른 움직임이 없는 실정이다. 3D 프린팅 기술을 통해 환자가 개선된 의료 서비스를 받기 위해서는 안전성 확보에 대한 제도 마련이 시급하다는 게 업계의 입장이다.

또 3D 프린팅 기술이 만드는 다양한 의료기기를 현 의료법 체계 내에서 어떻게 담아내야 할지에 대한 의료기기 허가 패러다임 변화도 필요하다. 현재 식약처에는 3D 프린터와 관련한 의료기기 품목에 대한 규정이 없다. 3D 프린팅 시장은 급격하게 성장하고 있는데 반해 국내 정부의 정책은 전무해 대책이 시급하다는 지적이다. 이밖에 불법 스캐닝과 설계에 따른 저작권 등 지적재산권 문제도 반드시 해결돼야 할 부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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