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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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삿갓 동행유랑 2
모두들 얼굴 묻고 있는 큰 종이가 뭐냐 묻는다. 신문이라 했다. 신문이 뭐냔다. 앉아서 세상 돌아가는 걸 다 읽을 수 있다 했다. 참 편한 세상이라며 삿갓 선생이 등 너머로 신문을 기웃거린다. 1면 톱, 「김정일, 세습 시사」김정일이 누구냐 물어온다. 부자세습이라면 북한은 아직도 조선이냐 되묻는다. 나라 이름엔 민주공화국이라 덧붙었다고 대답해줬다. 삿갓 선생, 삿갓을 뒤로 제치고 하늘 보며 허허 웃는다.

닭새끼 뒤를 까서 암숫놈 고르듯이
뱃속 들춰 양반 상놈 구별하랴.
오입부터 알아봤다. 너는 양반 나는 상놈.
남녀상하 애걸복걸 뒤섞으니 처지 이미 태어났네.
공자왈 맹자왈 뛰어나도 과거 한번 볼 수 없고
공맹자 펴기도 전에 잘난 조상 내길 막았으니
아둥바둥 인생역전 세운 헛좃 뭐 다를까.
어디 보자 네 팔자
뱃속부터 쥐고나온 손바닥에 네 팔자가 다 들었으니.

재벌총수들이 다 세습이요, 신문 회장 역시 모두 물려받았다 하니 거 참 양심없네 하며 또 한 수가 입 밖으로 술술이다.

조선 방씨 / 대대손손 이어갈 뜻 여전한데 / 제몸 똥 묻은 건 모르고 남 똥물에 삿대질일세.

삿갓 선생, 140년 만에 세상 밖으로 나와 보니 더 가관이 아닐세 하며 세습 재벌 하나 골라달란다. 가장 잘 나가는 세습재벌 일러줬다.

구부정한 허리 폼이 나와 동무하면 맞을 행색이고,
툭 불근 두꺼비눈 겁먹은 듯 유유상종 마냥 내 꼴일세.
그댄 어찌하여 나와 놀진 않고 천국에서만 노는가.
두 손 어깃장 모양(X)한 도청문서 들통 나고
처남, 꾀쓰다가 결국 검찰 출두할 적
매형, 미국땅 병원에 숨어서는 조국땅을 등졌으니
그댄 또 어찌하여 외국땅만 겉도는가?
설마 하니 뱅기삯이 없어서는 아닐 테고
죄 짓고도 도망가면 바깥땅이 더 편한 세상.
세상 불공평은 그 때나 이 때나 달라진 게 하나 없네.

길을 계속 걷는데 어느 촌로가 집 밖에 담을 쌓고 있었다.

담쌓는 짓 저꼴 보소 이리 삐뚤 저리 삐뚤
좌측 기준 물려놓고 우방편쪽 담만 쌓네
비켯거라 위험하다 곁에 있다 돌 맞을라.
담 쌓아 도둑막기 전에 네 발등이나 걱정하렴.

언중유골이라 누굴 두고 한 말이냐 했더니 담 쌓는 저 미장이 보고 하는 말이 아니더냐 하며 껄껄걸 웃기만 한다. 오사모(烏紗帽), 나도 삿갓 선생의 옛 시 하나 흉내내보겠다 했다.

뒤뚱뒤뚱 추레한 꼴 나가타
좌왕우왕 우측 일방통행 노가타
허공 속에 묻힌 그 약속 조카타

원숭이처럼 시늉내길 잘 한다며 '나'는 나니 알겠지만 '노'는 누구요, '조'는 누구냔다. 삿갓 선생도 좆같은 노씨가 누군지 궁금했던가. 곧 알게 된다 하고 서울을 향해 또 걷고 걸었다. 이 신문이나 저 신문이나 다 똑같은 기사를 보고는, "전쟁났냐?" 김삿갓이 묻는다. 검찰총장이 사표내고 청와대가 이를 수리했다는 보도다. 자초지종 듣고 나더니,

동서, 노소로 갈라져선 내가 옳거니 너만 그르니
집안 싸움질만 해댈 적에
무식한 일본놈에 이 땅 두 번 홀랑 내준 구린 역사 잊었는가.
틈새 침입은 틈을 내준 쪽이 우선 잘못이거늘
여직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또 저 짓거리네.
훈장이 떠든 얘기, 서당 안에서 이러쿵 저러쿵 하면 될 것을
나라 이끈다는 족속들이 장외로 끄집어내선
제 이익에만 혈안일세.
아서라, 말아라. 이러다가 일본놈이 또 넘겨보겠다.
저것 보라지.
일본추잡놈이 또 신사동인가에 가질 않다드냐?
이런 데도 집안 싸움질만 여전하니
조만간 삿갓도 쓰지 못하고 내 땅 밖을 떠돌지나 않을런지.
옛 양반족 대신 현 양복족들,
저치들부터 이 땅에서 내쫓는 게 나라사랑이요 국익일세.

정선 땅에 이르자 삿갓 선생이 앞장선다. 들러볼 곳이 있단다. 거칠현동이다.

왕씨에서 이씨로 고려에서 조선으로
같은 땅에 다른 나라 섬김을 둘로 못 나누이
산골짝에 숨어들어 산 벗 삼은 칠현이여
책 버린 손끝에는 호미 삽이 들렸구나
삿갓 쓰고 떠돌면서 청운 꿈 날렸듯이
흙을 엎어 분개하고 땅을 파서 충절 묻네
땅속 충심 눈비 섞여 한양 땅에 진작 닿을진대
육백년이 넘도록 칠현 거처 아직 정선이네.

정의가 죽고 나니 불의가 정의 행세를 대신한다며 조선이 멸하고 세상이 몇 꺼풀 벗겨져도 이 땅에 달라진 게 뭐 있냐 물어온다. 오사모가 사설로 화답하길,

36년 일본에게 이 땅 넘기고도 모자라 일제 잔당 여직 권력자로 득세하고
일제 청산 앞에 두고 우리끼리 싸움이니 달라진 게 하나 없습니다.
천황이냐 일왕이냐? 과거청산 주장하는 이도 오락가락 하더니만
그 아랫것이 천황이 옳소이다 하니 일본이 희색하고 더 날뛸 밖에.
그 아랫것 더 가관인 게 우리 땅 독도 순찰 순시 막아서며 일본인인 양.
국익이 어쩐다나 저쩐다나?

김삿갓, 고개를 끄덕이며 눈을 지긋 감는다.
우리 아비 내 부르길 천신(天神)이라 하였것다.
옆집 아이 부르다가 천신께 아뢰라 한들
콧방귀나 뀌겠는가. 영락없이 이 수작이군.
옆집 아이 그럴 수 있네. 우리집에 빌붙어서
콩깍지 하나라도 더 얻어먹을 심산이면
무엇인들 못할까. 이완용이 따로 없다.
완용에게 완장 채워 나라 판 일 엊그젠데
아류 완용 개판쳐도 나무랄 이 없는겐가.
완장 달아 주던 이도 함께 나라 팔고 있구나.
오하, 통재라.
아하, 통째로 나라 넘어가네.
어제는 중국, 오늘은 일본·미국,
내일은 뉘 나라에 몸을 팔꼬.

김삿갓, 40년 문전걸식 하다보니 눈치 하난 박사됐다 했다.
'맞습니다 맞고요...' 백성 마음 헤아리니
말 한번 시원하다 완장 채워 줄만 했다.
점잖은 저 양복신사 예비군복 입혔더니
망나니가 따로 없다. 옷이 사람을 바꿨듯이
빤빤한 연예인과 옷 맞춰 논다하여
밑줄 쫙 패인 주름 눈두덩에 부부동반 이식하고
배우와 닮아지랴, 연예인과 같아지랴.
거울 앞에 세워보면 제 우스운 꼴 보일런지
사나운 꼴 짐작하고 거울 앞을 주저하나?

말만 앞세우는 사람이 정치인이요, 정치인은 믿을 수가 없다지만, 해도 그렇지 하며 김삿갓, 또 한 수를 읊는다.

입만 달고 살려거든 앵무새로 나올 것을
인간으로 나와서는 한입으로 두입하네.
남만 쫓는 앵무새도 한입 갖고 두입하지 않건만.

거칠현동을 내려 나와 쉴 겸 구경할 겸 겸사겸사 해서 시골 영화관엘 들렀다.
볼 듯 하면 끊어지고 알 듯 하면 또 끊기고
끊긴 연유 모르나 끊어진 뜻 잘 보이네.
얼마나 구렸으면 끊어라도 막았을까.
끊는다고 끊겨지나 막는다고 막아지나
끊겼으니 궁금하고 막았으니 넘고 싶네.
어즈버 몹쓸 인간 볼듯알듯 그 때 그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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