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외산폰 무덤' 공식 깨트릴까

[컴퓨터월드] 현재 국내 휴대전화 가입자 수는 인구 수 약 5000만명 보다 많은 5500만명에 달하고 있다. 전체 휴대전화 가입자 중 스마트폰 사용자는 약 3800만명 이상으로 10명 중 6명은 스마트폰을 사용하고 있는 셈이다. 
 
국내 스마트폰 시장은 2009년 하반기 애플의 스마트폰 ‘아이폰 3GS’가 출시되면서 활짝 열리게 됐다. 아이폰 3GS가 출시하기 이전에도 국내에서는 윈도우모바일 운영체제를 탑재한 삼성전자의 옴니아, 블랙잭 시리즈 등이 있었지만 낮은 사양과 수많은 버그로 당시 반응은 지금의 갤럭시 시리즈와 많은 차이가 있었다.

▲ 국내 스마트폰 시장을 연 애플 ‘아이폰 3GS’

마땅한 경쟁자가 없는 상황에서 애플은 아이폰 3GS로 국내 스마트폰 시장을 빠르게 장악했고, 2010년 6월 삼성전자의 안드로이드 운영체제 스마트폰 ‘갤럭시 S’가 등장하며 경쟁구도를 갖추게 됐다.

이 시기에 대만 스마트폰 업체 HTC가 국내 시장에 진출했고 노키아, 모토로라, 소니, 구글, 블랙베리 등 글로벌 스마트폰 업체들도 줄줄이 국내 시장을 두드렸다. 또 국내 휴대폰 제조사인 LG, 팬텍도 스마트폰 시장에 도전장을 내밀었다.

▲ 삼성의 초기 스마트폰 옴니아 시리즈(왼쪽)와 블랙잭

이렇게 국내 스마트폰 시장은 많은 글로벌 제조사 및 국내 제조사의 다양한 제품들이 출시되며 빠르게 성장하는 듯 했지만 이런 상황은 오래 가지 않았다. 사후지원, 빠른 통신기술, 국내 사용자의 소비패턴 등 다양한 사유에서 외국 기업들은 국내 시장에서 경쟁력을 유지하기가 어려워졌다.

이에 국내 스마트폰 시장을 함께 활성화시키던 많은 외산폰 중 노키아가 가장 먼저 국내 시장에서 사라졌고 2012년 7월에는 HTC가 국내 사업을 접었다. 같은 해 11월에는 소니의 스마트폰 사업을 담당하는 소니MC 조직을 소니코리아로 축소했고, 지난해 2월에는 모토로라, 블랙베리 역시 지난해 3월 국내 법인을 철수했다.

▲ 2010년 국내 시장에 진출했던 대만 스마트폰 제조사 HTC

외산폰으로는 유일하게 애플만이 이런 국내 시장에서 생존하고 있는 상황에서 철수하다시피 했던 소니가 엑스페리아 Z2를 지난 5월 국내에 출시하며 국내 스마트폰 시장을 두드렸다. 또 지난해 점유율을 늘린 알뜰폰 사업자들이 다수의 외산폰을 출시할 예정으로 노키아, HTC 등 국내 시장에서 철수했던 업체들과 공급을 논의 중에 있다.

국내 시장을 ‘외산폰의 무덤’으로 여겨 사업을 접었던 외산폰 업체들의 재도전이 이번에는 어떤 결과를 가져올 수 있을지, 몇 년간 바꾸지 못한 국내 시장을 어떻게 변화시킬지 예상해본다. 

국내 스마트폰 시장=외산폰 무덤?

국내 스마트폰 시장이 ‘외산폰의 무덤’이라고 불리며 대부분의 외산 스마트폰 제조사가 철수한 데에는 이유가 있다. 가장 큰 이유는 사후지원 문제를 꼽을 수 있다.

▲ 오바마 폰으로 알려진 블랙베리 BOLD 9000

삼성, LG, 팬텍 등 국내 스마트폰 제조사들은 오랜 시간 국내에서 사업을 하면서 전국 곳곳에 촘촘히 만들어둔 AS센터 등 사후지원 시설을 보유하고 있다. 국내 시장에 진출한지 5년도 채 되지 않은 외국 업체가 단기간에 국내 제조사만큼의 AS센터를 설립하는 등 사후지원을 따라잡기에는 불가능했다.

또 애플 등 외산폰 제조사의 사후지원 정책인 리퍼비시 정책이 국내 사용자들에게 큰 혼란을 주면서 외산폰에 대한 소비자들의 선호도가 줄어들기도 했다. 리퍼비시 정책은 고장난 제품을 수리된 재생제품 혹은 신제품으로 교환해주는 정책으로 즉시 교환이 가능하다는 장점이 있지만 데이터를 따로 백업해야 하고, 보증 기간이 지나면 더 이상 무상 수리가 불가능해 소비자들의 불만이 제기돼왔다. 이러한 서비스 방식에 불만을 갖던 일부 사용자들은 비공식 수리점에서 수리를 받는 불편을 감수하기도 했다.

▲ 빠르게 성장하는 국내 통신기술에 외산폰이 대응하기 쉽지 않았다.

전 세계에서 가장 빠르게 성장하는 국내 통신기술 역시 외산폰의 몰락에 한몫했다. 국내에서 세계 최초로 LTE 서비스가 정식으로 시작됐을 당시 삼성, LG, 팬텍 등 국내 제조사들은 이미 LTE 스마트폰을 출시했거나 개발이 완료된 상태였지만 외산폰 업체는 빠른 통신기술에 대응하기 쉽지 않았다.

국내 이동통신 시장의 유통 구조도 외산폰이 생존하기는 힘든 구조였다. 스마트폰 제조사가 통신사에 단말기 판매를 지원하는 장려금을 지급하고, 통신사는 소비자에게 단말기를 교체하는 데에 부담을 줄여주는 보조금을 지급한다. 이 단말기 보조금은 통신사와 제조사가 경쟁 우위를 점하기 위한 마케팅 비용으로 경쟁이 치열해지다 보니 정부가 제한한 보조금보다 훨씬 많은 보조금을 쏟아 붙게 된다.

통신사 입장에서는 장려금을 제공하는 제조사의 제품을 더 많이 팔기 위해 보조금을 해당 기업의 제품들에 집중적으로 투입하고, 소비자는 자연스럽게 보조금을 많이 지급받아서 구매에 부담이 덜한 제품을 사게 된다. 이런 유통구조에서 외산폰 제조사들이 경쟁력을 유지하기 어려워지는 것은 당연한 이치다.

소비자의 외산폰 수요는 ‘꾸준’

대부분의 외산폰 제조사가 국내 사업을 철수했었지만 외산폰에 대한 수요는 꾸준히 있었다. 국내 이동통신사를 통해 구입할 수 있는 스마트폰이 대부분 삼성, LG, 팬텍, 애플 등으로 편중돼 있어 좁은 스마트폰 선택 폭에 갈증을 느낀 사용자들은 직접 해외에 출시된 스마트폰을 구했다.

이들 사용자는 특정 국가에서만 쓸 수 있도록 하는 잠금장치인 컨트리 락(Country Lock)이 해제된 스마트폰을 직접 해외에서 구매해 오거나 국내에서 3KH, 익스펜시스, 폰포조이, 킹폰, 홍콩폰 등 해외 스마트폰 구매대행 전문 업체를 통해 스마트폰을 구입, 사용할 수 있다.

▲ 해외 스마트폰 구매대행 업체 ‘익스펜시스’

국내에 출시되지 않은 외산폰에 대한 수요는 스마트폰 보급이 본격화된 2011년부터 증가하기 시작했는데 주요 원인으로는 전파인증 간소화 및 비용 면제를 꼽을 수 있다. 과거 국내에서 인증을 받지 않은 스마트폰 등 방송통신기기는 국내 반입 및 사용이 제한돼 왔고, 국내 인증을 받은 방송통신기기라도 개인이 해외에서 반입하는 경우에 개인별로 인증을 받아야 했다.

하지만 2011년부터 판매목적이 아닌 경우 사용자 당 1대에 한해 반입신고서를 전파연구소에 제출하면 사용이 가능해졌고, 스마트폰의 경우 약 50만원 가량을 전파인증 비용으로 내야만 했지만 이도 함께 면제됐다.

외산폰에 대한 수요는 넓은 선택폭, 전파인증 간소화 외에도 무약정, 국내보다 저렴한 가격 등으로 아직까지 끊이지 않고 있다. 국내에서 스마트폰을 개통하게 되면 24개월, 30개월 등 약정을 통해 구입하게 되는 경우가 대부분인데 이기간 동안 분실, 해지, 기기변경 등이 자유롭지 못한 불편이 있다.

하지만 외산폰을 구입하게 되면 원하는 요금제를 통해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다. 또 국내에 출시되는 같은 스마트폰이라도 해외의 경우 출고가가 10~20% 저렴한 이점이 있고, 같은 가격이라도 더 좋은 성능의 다양한 스마트폰을 구입할 수도 있다.

무덤에서 재도전, 성공 여부는?

지난 5월 국내에서 스마트폰 사업을 축소했던 소니가 전략 스마트폰 ‘엑스페리아Z2’를 출시하며 외산폰의 무덤이라고 불리는 국내 스마트폰 시장에 다시 한 번 도전장을 던졌다.

소니 엑스페리아Z2는 5.2인치 풀HD 디스플레이, 2.3GHz 퀄컴 스냅드래곤801 프로세서, 4K 동영상 촬영을 지원하는 2070만 화소의 카메라, 방수 기능 등 초고성능 기능을 탑재하고도 70만원대의 출고가로 갤럭시 S5, LG G3 등 경쟁작 보다 저렴한 가격에 출시됐다.

▲ 소니 전략 스마트폰 ‘엑스페리아Z2’

소니 엑스페리아Z2는 SK텔레콤, KT를 통해 진행된 예약판매와 11번가 등 온라인을 통한 판매에서 매진 행렬을 이어가며 국내 시장이 외산폰의 무덤이라는 불명예를 무색하게 하고 있다. 소니 엑스페리아Z2는 이통사를 거치지 않고 제조사 단독으로 단말기를 출시할 수 있는 자급제 단말기로 출시된다.

다만 이통사의 유통자회사가 도매 구입해 보조금을 실어 재판매하는 방식으로 판매되고 있다. 이번 매진 행렬은 소니가 제조사 보조금을 지급하지 않는 대신 스마트밴드와 노이즈캔슬링 이어폰, 독 등 사은품을 제공하고, 출고가도 해외시장에 비해 10만원 가량 낮춘 전략이 주효하고 있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엑스페리아Z2는 자급제의 한계를 극복하고자 소니코리아와 KT가 전략적인 제휴를 맺어 KT 67무한요금제 이상 가입자에게는 24만원의 구매할인 혜택을 제공한다. 이 경우 실제 구매가격이 55만9000원까지 낮아진다.

소니 외에도 국내 스마트폰 시장에 새로운 환경이 열리면서 외산 스마트폰 업체들이 다시 도전장을 내던질 조짐이다. 단말기 자급제, 알뜰폰 시장 활성화 등 정부 정책이 효과를 거두고 있어 휴대폰 시장 유통구조가 다양화됨에 따라 재도전의 문이 열리고 있다는 판단이다.

스마트폰 구매대행 업체인 3KH는 한국 지사를 철수한 뒤 블랙베리 스마트폰을 해외구매 대행방식으로 수입해 국내시장에 공급하고 있다. 3KH는 일부 법인용 스마트폰 수요뿐 아니라 젊은 층 사이에서도 블랙베리의 쿼티키보드를 탑재한 바(bar) 타입의 독특한 디자인이 인기를 끌고 있어 수요가 충분하다는 판단이다.

▲ 3KH는 국내에서 철수한 블랙베리 스마트폰을 구매 대행 방식으로 공급하고 있다.
 
이 회사는 최신 블랙베리 스마트폰인 Q5와 Q10을 앞세워 마케팅에 나서고 있다. 과거 블랙베리를 출시했던 SK텔레콤이 아직까지 전용 요금제를 갖추고 있어 사용자는 3KH에서 구매한 블랙베리 스마트폰을 사용하며 보안 기능까지 활용할 수 있다.

알뜰폰 사업자들은 연내 중저가 외산폰을 다수 출시할 예정이다. CJ헬로비전이 운영하는 헬로모바일은 중국 등 외산 휴대폰을 출시할 계획으로 소니를 비롯해 노키아, HTC 등 국내 시장에서 철수했던 업체들과도 공급을 논의 중이다. 태광그룹 계열 티플러스는 이미 중국 ZTE의 ‘Z폰’과 과 ‘ME폰’, 비츠모의 ‘UT폴더폰’ 판매를 시작했다.

외산폰이 국내에서 대부분 철수한 이후 국내 스마트폰 시장은 삼성, LG, 팬택이 시장을 나누고 있고, 외산폰으로는 유일하게 애플만이 생존하고 있다. 전체 인구보다 많은 휴대폰 가입자 중 60%가 스마트폰을 사용하고 있는 나라에서 스마트폰 선택의 폭이 4곳 제조사 제품에 불과한 것은 소비자들이 선택권을 박탈당한 것이나 다름없다. 또 그동안 소비자들은 같은 경쟁 조건에서 성능 등으로 제품을 선택해야 했지만 보조금이 제품 선택을 좌우하던 이해하기 힘든 구조였다.

하지만 이제는 단말기 자급제, 알뜰폰 시장 활성화, 연내 실시될 것으로 예상되는 단말기유통구조개선법 등을 통해 과거와 달리 외산폰도 국내 스마트폰 시장에서 충분히 경쟁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이에 소니를 비롯해 여러 외산폰 제조사들이 국내 시장을 노크할 준비를 하고 있다. 이를 계기로 국내 시장이 더 다양한 제조사의 제품들을 만날 수 있는 다양성을 되찾는다면 제대로 된 품질 경쟁으로 인해 소비자의 선택권도 넓어지고, 제조사 간의 정정당당한 경쟁이 기술 발전으로 이어질 것으로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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