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00년대에 구름처럼 떠돌며 살다간 삿갓, 김병연 선생이 2000년대에 재림하여 지금 돌아가고 있는 세상의 꼴을 보고는? 어떻게 살까?, 문득 이런 가정을 해본다

영월 땅에 삿갓 선생, 김병연의 묘가 있다. 1982년 어느 영월 사람이 발견했다고 한다. 김 삿갓 선생이 돌아가신 지 꼭 120년만이다. 하지만 이 무덤이 삿갓 선생의 묘인지 의심스러운 점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우선 김삿갓은 전국을 떠돌다가 1863년 영월과는 거리가 너무나 먼 전남 화순(동복)에서 그 한 많은 생을 마감한다. 객사다. 이 소식을 듣고 그의 둘째 아들이 아버지의 시신을 찾아나섰다 한다. 아들이 시신을 모셔와 영월 땅에 묻었을 거라고 추정한다. 그 때 당시엔 교통수단이라곤 말이 가장 빨랐을 터, 하지만 평생 가정을 돌보지 않은 아버지와 살기 힘들어 친정으로 돌아갔다는 어머니를 둔 자식의 경제적 형편은 거지, 아버지와 다름없었을 게 분명하다.
역시 당시엔 양반이라도 아무나 말을 들여 자기 재산으로 삼기 힘들었다. 극히 일부 세도가 양반에게나 가능했으리라. 지금 거의 누구나 가지고 있는 자가용과 비할 게 아니다. 극소수만의 소유물이었을 말. 이렇다면 영월에서 전남 화순까지 걸어서 갔을 것이며 돌아올 때도 마찬가지였지 않았겠나. 더욱이 아버지 사망 소식도 사망 후 한참 후에나 들었을 것이다. 시신이 온전할 리 없다. 기록엔 3년 뒤 이장했다는 설도 있긴 하지만, 묘터가 어디라고 기록으로 전해져 오는 건 단지 태백산과 소백산 사이에 김삿갓의 묘가 있다는 이 하나뿐이요, 기록이라 하더라도 그 땅의 범위가 너무나 넓고 막연해 황당할 따름이다. 소문이 하나 더 있었다.
'삿갓을 쓰고 전국을 떠돌며 풍월을 즐기는 거지가 이 산 어딘가에 묻혔다.'
이 기록과 소문으로만 찾은 게 바로 지금의 김삿갓 묘다. 증거는 하나도 없었고 주인 없는 무덤 하나를 그의 묘로 삼았음으로 간주할 수밖에. 그 옆에서 발견됐다는 초라하기 그지없는, 역시 주인 없는 슬레이트 지붕 집 한 채를 김삿갓이 살던 집으로까지 믿고 있다니 이 점 또한 더 의아심만 부추길 뿐이다. 이 의심은 蓋然性을 넘어 不可에 가깝다. 그 후, 영월군에선 김삿갓 묘역 주변을 정리, 공원으로 단장했다.(지자체 수입원으로 간주되었을 것이다) 나는 120년 만에 찾아냈다는 김 삿갓 선생의 초라한 묘 앞에서 이렇게 물었다.
"삿갓 선생, 진짜 안에 계신 거유? 인사를 올리려 하는데 선생 아닌 딴 분이라면 이 얼마나 낭패겠소. 선생도 그 다른 분도..." 한을 익살로, 좌절을 해학으로, 문전박대를 풍자로 웃어 제끼며 사십 년을 몸은 전국으로, 마음은 바람으로 떠돌던 시인이 그나마 죽어서는 안주할 땅을 업고 누웠으니 한편 다행이다 싶었다. 대답이 없다. 침묵은 긍정인가?
"편히 잠드소서."
큰 절 두 번, 작은 절 반 번 하고 돌아서려는데 누군가의 목소리가 나를 잡아당긴다.
'나, 죽어서도 아직 이 땅에 떠돌고 있다오.'
돌아보니, 누더기 삿갓을 쓰고 있는 초췌한 늙은이였다. 140년 만에 다시 시를 읊어본다며,

내 죽어 땅 뙤기 한 점 달랬던가.
몸을 땅에 붙여 놓고 한번 살지 못했건만
어데 혼인들 붙일 마땅한 마음 허했겠나.
살아서는 몸을 부지하려 구걸마다 하지 않았지만
죽어서는 부지할 몸 없으니 구걸 없이 자유였다.
헌데, 내 뜻 묻지도 않고
죽은 자 땅에 묶어 두고 산 자 자기끼리 잔치하네.
제사상의 진수성찬, 생전 밥 한술만도 못하건만
내 언제 천평 만평 땅덩어리 부귀영화 원했는고
빌어먹더라도 그저 하루 한 끼니 마음 하나 편했거늘
아서라, 아서라. 내 너희에게 손 젓느니
땅 밖으로 뛰쳐나와 널 따라
한 서린 한양 구경 또 가련다.
사람 없는 집에 명패만 달렸구나.

고개를 흔들어보고 눈을 비벼봐도 다시 시인의 형상은 보이지 않았지만, '내친 김에 하나 더' 하며 그의 목소리만 또 들려온다.

명패 보고 든 손님 내 칭찬이 가관이네.
고맙소만 나는 이 집 주인 아니라오.
날 찾아왔거든 바람 보고 웃어주오.

순간, 골바람이 내 모자를 벗겼다. 땅에 떨어졌다. 집으려 하니, 다시 그가 카랑카랑 목청을 돋운다.

네 성씨가 뭐더냐 김씨가 삿갓 쓰니 김삿갓
사모 닮은 검은 모자, 오사모라 불러주리
死者 김삿갓 生者 오사모를 뒤쫓고
생자 오사모 사자 김삿갓을 따르네

신경질적으로 "싫습니다. 흔해 빠진 '~사모' 듣기 싫습니다" 했다. 나도 김삿갓 선생에게 미천한 시로 응수했다.

성역과 금기에 도전한다는 또라이가 나타났습니다.
삿갓 선생, 신분 계급 스스로 넘지 못했듯이
성역은 세도여서 감히 넘을 수 없는 금기였습니다.
또라이의 도전이 하도 통쾌해 사람들이 꾀였습니다.
성역 금기 깨지고 나니 성역 금기도 별 것 아닌 듯했습니다.
옳거니 하고 사랑으로 모아졌습니다.
어느 식당 잘 되면 너도 나도 원조 원조 뛰어들 듯
노사모, 박사모, 또 다른 노사모...
원조사랑은 사람 아닌 사상의 공유였습니다.
아류사랑은 사상 아닌 사람을 쫓아갑니다.
천개 성씨마다 사모 사모 뭔 사모 씨족사회 닮은꼴입니다.
씨족장의 한 말씀이면 무조건 굽실굽실
헤아림 오버하여 씨족장을 넘습니다.
이런 사모 전 싫습니다.
지들만의 잔치인 그 따위 사모, 전 싫습니다.
사람 따라 맹종, 사람 쫓아 부역.
행여 내 얼굴에 말로라도 그 가면 씌워준다 마옵소서.
내겐 더없는 욕이 된답니다.
나도 선생 따라 삿갓이나 어디 없나 뒤져 흉내라도 낼까 하는데.

바람이 살랑살랑 불어온다. 삿갓 선생이 고개를 젓고 있는 겐가.

하면 사모가 '사랑하는 모임'이라더냐
내 통속하게 살았다만 언어 하난 고귀하다
사모 뜻이 여럿인데 너흰 고작 획일이냐
나쁜 모의도 사모며, 거짓으로 속여도 사모렷다.
결혼할 때 머리에 이던 것도 사모니라.
네 이고 있는 꼴이 사모요 색도 검정이라 오사모라 했거늘
네 뜻 그럴진대 네 성씨가 오 아니길 내가 오히려 빌겠노라.

나쁜 모의도 사모요 거짓으로 속여도 사모라니, 사모꾼들을 두고 한 말이려니, 역시 삿갓 선생이었다. 선생이 지어준 오사모가 되어 김삿갓을 따르기로 했다. 없던 길이 생겨나고 없던 마차 달려댄다며 내게 앞장서라 등을 민다. 우리 둘은 세상을 함께 이렇게 유랑하기로 했다. 호화롭게 치장된 공허, 김삿갓 공원을 빠져나오면서 소회 한 마디 아니 토해낼 수 없다 한다.

죽어 영화 부질없다. 치장하랴 돈 꽤 들었것다.
살아생전 저 돈 미리 가불 받았던들 내 서러움 덜 했거늘
죽어 화려함이 더 욕이 되어 돌아온다.
가난 없는 세상 없다.
저런 낭비할 돈 있거들랑 산 빈자에게나 돌려주게.
이것이 삿갓의 본뜻이로다.

'에잇 퉤퉤!' 헛 무덤 쪽에다 침을 뱉어낸다. 삿갓 선생의 삶을 기리기 위해 기념으로 만든 겁니다 했더니 하는 말, 제목으로 답한다. "방금 그 시 제목, 「지랄하뇨(志剌河尿: 뜻 지, 어그러질 랄, 물 하, 오줌 뇨. 즉, '뜻이 어그러지니 물도 오줌이 되는구나'의 뜻 )」로 함세."
다음 호 이어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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