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으로 전산사고가 나면 해당 CIO는 물론이고 CEO도 자리를 보전하기가 힘들 전망이다. 최근 국내에서는 크게 이슈가 되지 않았지만, 일본 IT 업계에서는 동경증권거래소 사건으로 사장과 전산담당책임자인 CIO가 경질되는 사건이 있었다. 전산시스템 다운 및 각종 사고가 빈번한 국내 IT업계도 남의 일만은 아닐 성 싶다.
현재 일본 IT시장은 동경증권거래소의 연이은 시스템 장애문제를 둘러싸고 논란이 한창이다. 이번 동경증권거래소 시스템 장애를 단순히 시스템이 멈춘 사건으로 보지 않고, 일본 IT가 안고 있는 문제를 총체적으로 보여주고 있다고 해 일각에서는 '동경증권거래소 사건'이라고 지칭하고 있다고 한다.
동경 증권거래소 사건이란 2005년 11월에서 2006년 1월에 걸쳐 발생한 동경증권거래소의 IT 시스템 관련 문제의 총칭이다. 일본증권거래소는 11월 1일 온라인 시스템의 장애를 시작으로 12월 8일에는 미즈호 증권이 1주 61만 엔의 매도주문을 1엔 61만주로 입력하는 오발주를 증권거래소의 시스템이 취소하지 못한 문제, 그리고 1월 18일 패치 처리의 문제로 증권거래가 정지하는 시스템 사고가 잇달아 발생했다.
이로 인해 동경증권거래소 사장과 시스템 담당 임원이 경질됐고, 새로운 시스템 담당 임원을 외부(NTT 데이터 그룹)에서 초빙했다. 또한 동경증권거래소에 온라인 시스템을 납품한 후지쯔는 사장을 비롯한 고위 간부들을 감봉 처분했다.
이를 둘러싸고 다양한 토론이 전개되고 있다. 시스템 장애의 근본적인 원인부터 내부 전문인력의 부재 문제, 연락체계와 운영체계의 낙후성, 지나친 특정 벤더 의존도의 위험성, 메인프레임의 안정성 문제 등이 도마 위에 올랐다.
전산사고가 심심찮게 발생하고 있는 국내 여건에서는 주의 깊게 바라볼 필요가 있는 사안이다. 이번 사건이 우리에게 시사하고 있는 것은 전산 사고는 이제 단순히 시스템이 잠시 멈춘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기업의 존폐를 좌우할 만큼 민감한 부분이 되고 있다는 점이다.
IT 역사가 우리나라 보다 더 오래된 일본에서도 IT 시스템 장애로 최고경영층이 사임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고 한다. 또한 동경증권거래소와 같은 역사 깊은 일본 기업이 사외에서 시스템 관련 간부를 초빙한 것도 매우 이례적인 일로 평가되고 있다.
일련의 모습은 시스템 장애가 내외부에 미치는 파장이 갈수로 커지고 있어 빚어지는 문제다. 동경증권거래소 사건은 우리에게 시스템 장애는 이제 내부 시스템 담당 임원이나 전산 책임자들만의 몫이 아닌 시대로 진입하고 있음을 암시하고 있다.
이러한 예는 2000년대 초반 회계부정 논란에서 유사한 모습을 찾아볼 수 있다. 엔론이나 월드컴 등 당시 논란이 됐던 기업의 최고 경영자들은 재무담당자들이 회계부정 사실을 은폐시켜 진실을 몰랐으며, 담당자의 책임이라고 떠 넘겼으나 강화된 법안에 의해 엄벌에 처해졌다. 전산사고 역시 회계부정과 마찬가지로 투자자에게 막대한 피해를 입힌다는 점에서 대동소이하다. 그렇다면 회계부정 사태 이후 강력한 처벌 규정으로 '사베인즈-옥슬리' 법안이 출현했듯 전산 시스템의 장애에 대해서도 책임을 묻는 법규 출현 역시 충분히 예견해 볼 수 있는 문제다. 회계부정 처리를 염두에 두고 보면 시스템 장애 가능성을 IT 담당자가 제대로 보고하지 않아 적시에 파악하지 못했다는 최고경영자의 주장은 앞으로는 통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국내 전산 사고를 둘러싼 원인 규명은 아직도 베일에 싸인 채 진행된다. 철저히 밝힐수록 치부를 드러내는 일이라 생각해 유야무야 넘어가는 경우가 빈번하다. 정통부나 금감원 역시 이에 대해 뚜렷한 입장을 밝히거나 문제해결에 적극적으로 간여하지 않는다. 많은 기업들이 글로벌 기업으로 도약을 준비하고, IT 선진국을 자처하는 지금이 시스템 장애에 대해 전향적인 접근이 절실한 시점이라는 생각이다.
<이강욱 기자 wook@rfidjournalkore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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