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정한 사법개혁은 국민들이 법에 쉽게 접근하고,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어야 하며, 재판절차가 간단하고 시간을 단축할 수 있어야 한다. 여기에 비리가 개입될 소지를 차단하고, 권위의 틀을 벗어버릴 수만 있다면 최상의 개혁이 될 것이다.
그러나 우리나라 법원은 여전히 문턱이 높다. 관련 서류를 제출하거나 증명서 하나 발급받는 것도 쉽지 않다. '이리 가라' '저리 가라' 시키는 대로 다니다 보면 기진맥진해 진다. 조금이라도 데이터 관리와 같은 전산화에 익숙한 사람이라면 더 황당하다.
채권추심을 위해 공탁업체 명단을 확인하려 해도 일목요연한 종합적인 데이터를 찾을 길이 없다. 채무자들이 분명히 법원에 서류를 접수했는데도 접수현황을 한 눈에 파악할 수 없는 것이 법원의 현 상황이다.
자료를 가지고 있는 기관이 자료를 내 놓을 수 없다면 국민들은 재판의 다음 이행절차, 자료접근 및 증거확보의 형평성에서 일단 불이익을 받는 꼴이 된다. 마치 수북이 쌓인 종이문서, 어렵게 만든 재판절차를 통해 권위를 세우려는 것처럼 보인다.
법원은 이를 해소하기 위해 지난 2003년부터 종이문서 없는 전자재판, 전자법원 구현을 목표로 '전자법원 및 전자파일링 마스터 플랜'을 수립하고, 그 1단계 파일럿 프로젝트로 '독촉절차 전자파일링 시스템' 구축사업을 추진해오고 있다.
그러나 이 사업에 제동이 걸렸다. 2010년까지 추진될 이 사업을 위해 법원이 종합적인 전자문서 활용에 관한 관련법 '재판절차에 있어서의 전자문서 이용에 관한 법(안)'을 만들어 법무부에 법 제정을 의뢰했으나 변호사협회 등의 반대에 부딪친 것이다.
반대 이유는 전자파일링 시스템의 정확성 및 보안이 보장되지 않아 전면적인 시행은 어렵다는 것이다. 사법부와 관련된 이익집단들의 속내야 어떻든 법무부는 파일럿 시스템으로 구축한 '독촉절차 전자파일링 시스템'만을 운영할 수 있는 '독촉절차에서의 전자문서 이용 등에 관한 법률'로 축소해 국회에 상정했다. 법 제정을 의뢰한지 1년여 만이다.
따라서 향후 어떤 전자문서가 구축이 되더라도 활용할 수 있는 근거를 마련한 총괄적인 '재판절차에 있어서의 전자문서 이용에 관한 법(안)'은 사장됐다. 그나마 축소 합의한 '독촉절차 전자파일링 시스템'도 법안상정이 늦어지고 국회가 파행 운영되는 바람에 아직까지 시행에 들어가지 못하고 있다.
독촉절차 전자파일링 시스템은 당초 2005년 2월 개통예정이었으나 이제는 아무리 빨라도 시스템 구축 14개월여 만인 올 4월이나 되어야 국민들에게 첫 선을 보일 전망이다.
현행 재판진행 절차를 전자문서화 할 경우 전체 국민들은 쌍수를 들어 환영할 것이다. 그러나 반대로 법원과 관련한 업무로 생활을 꾸리는 조직이나 개인들은 당장 번거롭고, 수입이 줄어들 수 있다.
진정한 사법개혁은 '국민들을 편하게 해 주는 것'이라는 것을 안다면 모두가 하루빨리 전자법원의 구현에 발 벗고 나서야 할 것이다.
"사법부 내부 사람들을 위한 사법개혁보다는 국민들이 체감할 수 있는 개혁이 진정한 사법개혁"이라고 한탄하는 법원 관련 인사의 말이 내내 가슴 속을 떠나지 않는다.
<박종환 기자 telepark@rfidjournalkore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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