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보통신부가 최근 발표한 주민등록번호 없이 인터넷 회원으로 가입할 수 있는 방안을 둘러싸고 의견이 분분하다. 정보통신부는 인터넷 회원가입이나 성인인증 등을 위해 주민등록번호 대신 사용할 수 있는 주민번호 대체수단을 마련하고, 지난 10월31일 공청회를 개최한 바 있다. 정통부가 인정한 대체수단으로는 ▲가상주민번호 서비스 ▲공인인증서를 이용한 주민번호 대체 서비스 ▲그린버튼 서비스 ▲개인ID인증 서비스 ▲개인 인증키를 이용한 주민번호 보호 서비스 등이다.
정통부는 대체수단 중 1가지 이상을 사용하도록 권고하고 우선 업계 자율로 실시키로 했다. 앞으로 점진적으로 시범서비스를 거쳐 신규 회원 또는 신규 서비스 가입, 대형포털 및 게임 사이트 등의 순으로 보급을 확산할 예정이다.
이에 대해 인터넷업계는 정부의 이번 방침은 사업자에게 불편과 부담을 줄 뿐 아니라 또 다른 혼란을 부추겨 사회적 비용을 발생시킬 수 있을 것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이들의 주장 근거는 대체수단을 제공하는 기관이 너무 많고, 고객에 대한 식별정보를 제3의 기관이 보유하게 돼 인터넷 사업자의 고객 관리 및 지원 업무에 심각한 타격을 줄 수 있다는 것이다.
한편 시민단체, 소비자단체에서는 일단 긍정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다. 시민단체에서는 정부가 장기적인 로드맵을 만드는 등의 일련의 노력에 대해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있다. 내년 상반기에 공공기관에 주민번호 대체수단을 적용키로 하는 등 정부 스스로가 대체 수단에 적극 나선다는 점에 높은 점수를 주고 있는 것이다.
네티즌들도 주민번호를 대체하는 것은 환영하고 있으며, 점진적으로 주민번호 수집 자체를 제한해야 한다는 필요성을 제기하고 있다. 그러나 이들도 주민번호 대체수단이 인터넷실명제와 연계되는 것에 대해서는 우려를 나타내고 있다.
주민등록번호를 이용한 범죄는 인터넷 상에서 뿐 아니라 절도나 사기 등 기존에도 꾸준히 발생해 왔었다. 우리나라에서 주민등록번호는 개인의 생년월일을 포함해 개인을 식별하는 기본 도구로 사용되고 있다. 따라서 주민등록번호를 도용해 범죄에 이용하는 경우 전자거래와 각종 문서에서도 피해가 커질 수밖에 없는 실정이다.
실제로 지난 9월에는 1조원대로 추정되는 게임 아이템 시장이 주민번호를 도용한 중국 업체들에 의해 대거 잠식된 것으로 드러났다. 중국인 아이템 생산업자들은 5만 3,000여명의 주민등록번호를 도용, 12만 개의 게임 ID를 만든 뒤 국내에 판매했다. 현재 1조원 규모의 아이템 시장에서 95% 가량이 중국에서 들어온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얼마 전에는 성인 남녀 간의 전화 통화를 주선해주고 정보이용료를 챙기는 폰팅업체 업자가 휴대전화 사용자들의 주민등록번호와 전화번호를 모은 뒤 이들 몰래 허위로 폰팅 서비스 이용료를 청구하는 수법으로 범행을 저질러 검거되기도 했다.
현재 우리나라에는 주민등록법과 정보통신망 이용촉진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 전자상거래 등에서의 소비자보호에 관한 법률 등이 제정되어 있다. 하지만 이들 법률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는 정보 침해와 도용에 대한 신종 범죄에 대해서는 명확하게 규정되어 있지 않다.
타인의 주민등록번호를 도용해 인터넷사이트에 무단으로 회원 가입하는 행위에 대한 형사 처벌 규정은 없는 실정이다. 처벌 규정의 신설과 더불어 신종 범죄에 대응할 수 있도록 전반적인 검토와 재정비가 필요하다.
선진국에서는 우리나라처럼 주민등록번호와 같은 국민고유번호가 없는 게 대부분이다. 프랑스, 독일, 벨기에 등의 국가는 전국민신분증 제도를 사용하긴 하지만 이들 국가는 카드 자체의 일련번호만을 부여하고, 분실 등으로 인해 카드를 재발급 받게 되면 일련번호 자체가 변경된다.
미국은 주거등록제도와 개인 식별번호, 국가신분증 제도가 없으며 출생기록이 곧 국적기록이다. 따라서 출생, 사망, 혼인 등 사건별로 기록부가 작성되고 개인별로 기록되고 있다.
주민등록번호는 그 자체로 국민 개개인의 정보를 포함하고 있기 때문에 이 자체만으로도 사생활 침해 요소가 많다고 지적되고 있는 실정에서 정통부의 이번 방안은 주민등록번호제도를 둘러싼 논란의 첫걸음으로 볼 수 있다.
즉 새로운 개인 인식 과정의 한 부분으로서 이번 방안이 자리 잡을 수 있다면 점진적으로 다른 분야에도 주민등록번호제도를 대체할 수단이 마련될 수 있을 것이다.
기존 체제에서 새로운 체제로 전환하는데 따르는 부작용을 최소화하기 위한 노력과 철저한 준비가 무엇보다 필요하다. 또한 지금보다 더 안전하고 사생활 침해를 최소화할 수 있는 개인 인식 방법을 꾸준히 강구해야 할 것이다. <김정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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