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은 1등만 기억한다.
세계에서 제일 높은 산이 에베레스트 산이라는 것은 초등학생들도 다 아는 사실이다. 하지만 2번째로 높은 산이 어디라는 것은 전문 산악인이 아니면 거의 기억하는 사람이 없다.
하지만 가장 높은 에베레스트 산과 2번째 높은 산은 그 높이에서 별 차이가 없을 것이다. 시장경제 역시 1등 기업에게 커다란 혜택과 메리트를 제공한다. 때문에 1위 기업은 마케팅의 기본이자 원칙으로 통한다. 이러한 모습은 IT 시장 역시 마찬가지다.
IT 시장을 좌지우지하는 거대 글로벌 기업들 역시 1등이 아닌 영역에서는 서러움을 톡톡히 겪는다. DB 절대강자인 오라클을 예를 든다면 이 회사는 ERP 분야에서는 2등의 서러움을 절감하고 있다. 70년대부터 ERP에 전념해 온 SAP에 비해 오라클은 80년대 후반에 이 시장에 뛰어들었다. 한 마디로 오라클은 후발주자라고 할 수 있다.
후발주자인 오라클은 어려움을 견뎌내면서도 나름대로 선전 해왔으나 최근 들어 SAP에 밀리는 모습이 그 어느 때보다 역력하다. 오라클은 2000년도 초반까지만 하더라도 국내 시장에서 만큼은 SAP코리아와 비등비등한 관계였다. 그러나 최근 들어 격차가 점점 더 크게 벌어지고 있다.
오라클 관계자는 SAP가 ERP 부분의 1위 업체라는 점이 크게 작용하고 있고 국내는 유달리 1등 주의를 중시하는 풍토가 강해 어려움이 크다고 하소연한다. 또한 "프로세스 한 요소만 보지 말고 기업 전산 환경 전체를 보라"는 한국오라클의 메시지는 'ERP는 SAP가 최고'라는 인식에 밀려 별 다른 호응을 이끌어 내지 못하고 있다.
IT 시장에서 공공의 적으로까지 불리는 마이크로소프트 마저 어쩌지 못하는 분야가 있다. 그것은 곧 운영체계 분야이다. 마이크로소프트의 운영체계는 최근 들어 지속적으로 점유율이 상승하고 있으나 여전히 핵심적인 업무에서는 채택이 주저되고 있다.
그 이유는 메인프레임이나 유닉스에 비해 안정성이 떨어지고 대용량 처리에 미흡하다는 고객 인식이 굳건하기 때문이다. 전혀 근거가 없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MS 역시 이를 문제 삼지는 않는다.
MS는 '윈도우=불안정'을 불변의 진리로 여기고 활용을 위한 노력과 고민조차 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억울함을 하소연한다. 가령 유닉스나 메인프레임이 장애를 일으키면 전문가를 불러 원인을 분석하고 자체 시스템의 문제 여부를 점검한다.
하지만 윈도우가 문제를 일으키면 거의 대부분 '이럴 줄 알았다'는 반응과 함께 모든 비난은 MS로 집중된다. 설사 사용자 실수나 내부 시스템의 문제로 인한 경우에도 별다른 진단이나 개선 작업 없이 포맷하고 다시 설치하는 지극히 원시적인 처방에 그친다는 점이다.
지속적인 성능개선 작업으로 성능차이는 거의 극복했다는 MS의 주장은 MS 직원들 외엔 귀담아 듣는 사람이 별로 없다. MS로서는 참으로 서럽고 아쉬운 일임이 분명하다.
MS와 오라클이 이러한데 국내 토착 기업들이 겪는 어려움은 그 이상일 것임에 분명하다.
시장 경제에서 1등이 기득권을 갖는 것은 당연한 결과라 할 수 있다. 대다수 벤처 기업들이 1등을 목표로 피나는 노력을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하지만 프로젝트는 무조건 큰 업체가 맡아야 믿음이 간다는 인식이 항상 좋은 결과를 거두는 것은 아니다.
불안감을 무릅쓰고 굳이 2등 솔루션을 택해야할 당위성은 없다. 하지만 가격을 비롯해 기업의 특화된 부분 지원 등에서 보면 2등 솔루션 역시 분명히 장점을 가지고 있다.
IT 업계에서도 점차 맞춤형 서비스가 늘어가고 있다. 업종별로, 기업규모별로 특화된 제품과 서비스가 다양하게 출현하고 있다. 고객들의 인식도 좀 더 열린 방향으로 변화해야만 할 시기이다. 1등 기업을 향해 매진하고 있는 수많은 국내 벤처 기업들이 존재가치를 느낄 때 국내 IT 산업의 미래가 있기 때문이다.
<이강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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