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속도로를 달리기 위해서는 반드시 톨게이트를 거쳐 요금을 지불해야 한다. 고속도로는 국도보다 빠르고 편리하기 때문에 일정 요금을 지불하고서라도 이용하는 것이다. 독립소프트웨어업체(ISV)들은 그룹 계열사 SI업체들을 속칭 ‘톨게이트’라고 부른다.
어떠한 대가를 지불하더라도 이 톨게이트를 통과해야만 대기업 프로젝트에 참여할 수 있기 때문이다. 공공 프로젝트도 마찬가지다. 경험이 없고 자본구조가 취약한 ISV보다는 SI업체들을 더 선호하기 때문에 ISV가 공공 프로젝트에 참여하기 위해서라도 SI를 거쳐야만 한다.
그동안 ISV들은 이 톨게이트를 통과하며 다양한 대가를 치러왔다. SI업체들은 수익 중심의 경영을 외치며 자사의 이익을 보호하는 한편 협력사들에게 개발비 삭감을 강요했다.
또한 ‘선 투입, 후 계약’ 관행으로 이미 인력을 투입해 프로젝트에 참여했다 해도 SI업체가 협력사를 교체하면서 빠지는 경우도 많다. 이는 공정거리위원회가 최근 실시한 SI실태조사에서 가장 많이 신고 된 사항이기도 하다.
SI업체들이 계약진행비의 일부를 협력사에게 떠넘기는 일도 빈번하다. SI업체들의 영업 담당자가 계약 진행비를 공동 부담할 것을 요구할 경우 이를 거절하기란 쉽지 않다. 협력사 교체를 두려워해 ISV 영업담당자는 수용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그러나 계약이 성사되지 못했을 경우 이 계약 진행비는 고스란히 손실로 남게 된다. 실제로 한 ISV의 영업담당자는 과도한 계약진행비만을 지불한 채 계약이 성사되지 못해 퇴사한 사례도 있다.
일반 기업들은 대금지급을 어음으로 결제하는 것이 관행이나 공공기관은 프로젝트가 끝나는 시점에 현금으로 결제하도록 돼 있다. 이 때 1차로 대금을 받은 SI업체가 협력사인 ISV에게 대금 지급을 지연해 ISV들이 자금난에 시달리기도 한다.
국내 IT프로젝트의 경우 발주사인 갑과 주요 SI업체인 을 이외에 SI업체와 계약한 병, 정 등의 소규모 IT업체들이 존재하는데 SI업체와 ‘병’업체가 각각 3개월 이후에 대금을 지급해 ‘정’업체의 경우 이를 기다리지 못하고 파산하는 경우도 있다.
이러한 병폐는 국내 IT시장에서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라는 것은 이 업계에 몸담은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고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ISV들이 여전히 그룹사 SI업체들과 손잡으려고 하는 이유는 이들을 통하지 않고서는 대기업 시장은 물론 공공 시장도 진입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병폐는 알고 있지만 ‘그래도 안전한 수익원’이 대기업 시장이라는 것이다.
공정위는 이번 SI시장 실태조사 결과에서 드러난 법위반행위에 대해 조만간 위원회를 열어 시정조치하고 SI시장에서 나타난 각종 불공정거래 관행의 개선을 위해 제도 보완도 함께 추진할 계획이다. 정부가 직접 나서겠다는 것인데 얼마나 실효를 거둘지는 지켜봐야 할 것이다.
<박해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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