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오라클 전임 윤문석 회장이 취임 한 달여 만에 사임한 데 이어 김일호 지사장도 취임 9개월여 만에 일신상의 이유로 사임하고 말았다.
한국오라클 초대 지사장이자 이 회사를 성장 발전시켜 온 전임 강병제 회장이 무려 12년이나 장기간 동안 재임한 것과는 완전히 대조적이다. 물론 윤문석 회장은 지사장을 4년 동안 맡았었다. 그러나 회장직은 맡은 지 한 달도 채 안 돼 미련 없이 박차고 나왔다.
그렇다면 강 회장 이후 한국오라클을 총괄책임지고 있는 지사장들이 왜 이렇게 단명 하는가?
실력이나 능력, 덕망이 없어서. 아니면 지사장으로서의 갖춰야 할 또 다른 자격요건이 부족해서…. 그러나 이들은 학력이나 경력, 경험을 바탕으로 충분한 실력이나 능력을 갖추었다는 평이다. 오라클 역시 그들이 지사장으로서 충분한 역량과 리더십을 갖추었다고 평가했기에 지사장으로 임명했을 게 분명하다.
그렇다면 지사장들이 가장 압력을 받고 있고, 또한 책임을 가장 크게 느끼고 있는 영업실적이 나빠서일까? 결코 아니다. 한국오라클은 이 달로 마감되는 2005년 영업실적이 작년대비 성장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설사 실적이 떨어진다고 해도 특별한 결격 사유가 발생하지 않는 한, 특히 회계가 다 끝나지 않은 상황에서 지사장을 교체하는 경우는 지극히 드물다. 결격 사유도 없었다.
그런데, 왜? 정확한 이유나 배경에 대해서는 전해지는 게 없다.
다만 주변 정황으로 볼 때 아태지역 본사와 지사장 간의 심한 의견 충돌로 인한 상호 갈등인 것으로 미루어 짐작해 볼 수 있다. 즉 김일호 지사장은 지난 10일 아태지역 책임자와 의견을 나눈 후 곧바로 사임의사를 밝혔다고 한다. 본사 역시 곧바로 사표를 수리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마치 서로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사표 제출과 동시에 수리를 일사천리로 처리했다는 것이다.
다만 오라클 아태지역 책임자는 전임 지사장들처럼 김 지사장에게 '회장'직(?)을 권유했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그러나 김 사장은 일언지하에 거절했던 것으로 그를 잘 아는 한 관계자가 귀띔했다.
그렇다면 김일호 지사장이 본사보다 사임할 시기를 더 많이 기다렸다고 볼 수 있다. 실질적으로 김 지사장은 그 동안 본사와의 갈등을 여러 번 표출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김일호 지사장이 회장이라는 명예직마저 미련 없이 거절 할 만큼 특별한 이유는 무엇일까?
사실 김일호 지사장은 본사의 지사장 선임에 그렇게 기분 좋게 허락을 하지는 않았다는 게 주변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그 이유는 전임 윤문석 회장이 지사장과 회장직을 그만 둔 이유를 옆에서 지켜봤고, 또한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한국오라클 지사장이라는 직책이 겉보기와는 달리 권한이 그렇게 많지도 않으면서 책임만 주어진다는 것이다. 한 마디로 '자리'만 지키는 명분 없는 직책을 반기면서 맡을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그런데도 김 지사장은 한국오라클 설립 이후 처음으로 실시한 구조조정 역할을 큰 무리 없이 수행하는 등 지사장에게 주어진 역할과 책임을 다 하기 위해 노력해 왔다고 한다.
당시 김 지사장은 처음으로 실시하는 구조조정에 대해 적지 않은 부담을 느꼈다고 한다. 즉 취임한지 3개월여 밖에 안 됐는데, 환영받지 못할 궂은 일을 해야만 한다는 사실에 남다른 고민과 고충을 느끼고 있었다는 것이다.
김일호 지사장은 본사의 잘못된 정책에 대해 'NO'라고 말하는, 한국오라클 내에서 몇 안 되는 임원이었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글로벌 기업이 성장 발전하기 위해서는 전 세계 각 지사의 의견을 충분히 수렴하는 게 무엇보다 중요할 것으로 판단된다. 그렇게 해야만 글로벌 기업으로서의 인정도 받을 수 있다.
글로벌 기업 지사장이 본사의 정책이나 지시대로, 마치 로봇처럼 명령에 따라 움직이듯이 지시만을 받아 수행한다면 그 지사장은 결코 살아 있는 존재라고 할 수 없다.
오라클이 지사장의 충언을 거부하면서 성장 발전하기를 기대한다는 것은 지나친 자만과 오만이 아닐까? <박해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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