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 몸에 전율(戰慄)이 흐를 만큼 대기업SI들의 힘이 이렇게 막강할 줄 몰랐습니다."
한국SW전문기업협회 회장이자 SW솔루션 전문기업인 데이터스트림즈 대표이사를 맡고 있는 이영상 사장의 토로이다.

이영상 회장은 최근 'SW산업진흥법 개정안' 국회통과를 위해 앞장서 뛰고 있는 대표적인 인물 가운데 한 사람으로 관련 기관 관계자들이나 의원들을 직접 만나면서 국회통과를 저지하려는 대기업SI들의 막강한 힘이 어떻게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 몸소 피부로 체험했던 것이다. 물론 그 힘은 눈으로 직접 확인할 수는 없었다고 하지만, 그 동안 이렇다 할 의견도 제시하지 않았던 일부 학계의 교수나 국가정보화전략위원회 위원장이 개인 자격으로 언론을 통해 SW산업진흥법 개정안에 대한 의견을 표명하고 나선 것부터가 이 회장의 토로에 공감할 수 있는 여지가 충분하다고 할 수 있다.

특히 한국정보과학회, 한국IT서비스학회 등 IT 관련 19개 학회 일부 관계자들은 긴급회의를 갖고 공동의견서까지 마련했다. 공동의견서 작성과 관련 일부 학회 관계자는 강력히 반발을 했고, 일부 학회는 상세한 내용까지는 확인하지 않고 이름만 빌려줬을 뿐이라고 한다.

심지어는 KAIST 소프트웨어정책연구센터 김진형 교수와 국가정보화전략위원회 박종호 위원장까지도 개인적인 자격으로 의견을 표명하고 나섰다.

물론 이들이 모두 대기업SI의 압력 및 영향을 받아 의견을 표명했다고 확신할 수는 없지만 그럴 소지가 충분하다는 게 관계자들의 공통된 시각이다.

SW산업진흥법 개정안은 지난해 10월 27일 지식경제부를 비롯한 행정안전부, 문화체육관광부, 방송통신위원회 등이 공동으로 마련한 "공생 발전형 SW생태계 구축 전략"을 실현시키기 위해 추진하고 있는 법안이다. 즉 정부는 그 동안 이 법안을 만들기 위해 정책토론회를 갖는 등 많은 관계자들로부터의 의견 수렴을 거쳐 마련했음에 분명하다. 물론 법안은 분명 대기업SI들을 제재하기 위한 것인 만큼 모두를 만족시킬 만큼 완벽하지 않은 것도 사실이다.

문제는 이 같은 모든 과정을 거쳐 국회 상임위원회인 지식경제위원회를 통과시켜 법사위(법제사법위원회)와 본회의 통과만을 남겨 놓은 시점에 이들이 문제가 있다고 의견을 표명하고 나선 점과 내 놓은 의견들이 현실과는 다소 동떨어진 부분이 많다는 점에 있다.

즉 그 동안 학계나 이들 기관들은 SW산업진흥법 개정안이 마련되고, 지식경제위원회까지 통과되는 동안 이렇다 할 의견 한 번 제시하지 않았었다. 그런데 뒤늦게 문제가 있다고 지적하고 나서는 것은 분명 어불성설이다. 이들 학계의 교수나 기관장은 어느 누구로부터도 인정받을 수 있는 높은 신분인 만큼 그들이 진정으로 SW산업 발전을 위한 의견을 표명한다면 당연히 그 가치를 높게 평가받을 수 있다.

그러나 그들이 내놓은 의견은 현실과 동떨어졌을 뿐만 아니라 SW산업발전을 위한 진정성 있는 고민의 흔적이 보이지 않는다는 데 문제가 있다. 실질적으로 공동의견서 작성을 주도한 것으로 알려진 K대 K교수는 "초안이기 때문에 그렇다. 3일 후에 다시 이야기 하자"며 정확한 답변을 못했다. 김진형 교수 역시 "주변 사람들의 의견을 들어 정리했고, 개인적으로도 크게 틀리지 않아 의견을 냈을 뿐이다"며, 현실과 맞지 않는 의견 표명 지적에 대해 속 시원한 답변을 하지 못했다.

국가정보화전략위원회 관계자 역시 "전략위원회 위원들의 충분한 의견 수렴을 거쳐 내놓은 공식적인 의견이 아니다"며, "그러나 박종호 위원장이 개인적으로 많은 고민을 통해 의견을 표명한 것으로 안다"고 밝혔다.

한 마디로 이들이 표명한 의견은 소속 회원들이나 구성원들의 의견수렴을 충분히 거치지 않고, 개인 자격으로 내놓은 의견임을 분명히 드러냈다.

그렇다면 이들이 내 놓은 의견 표명의 공통분모는 대략 다음과 같다. 즉 ▲ 대기업 공공정보화 참여제한 땐 외국 기업에 중소 업체들이 종속되고, 또한 ▲ 중소 SW기업과 전문 SW기업이 중견 SW기업의 하도급으로 종속될 가능성이 높으며, ▲ 우수 인력들의 이탈 우려, ▲ 공공정보화 사업 부실화 우려 등이다.
우선 이 같은 의견은 대기업들의 주장과 거의 일맥상통하고 있음이다.

그러나 이 같은 지적은 현실과는 다소 동떨어진 의견에 불과하다. 즉 이들이 지적하는 국내 시장에 진출한 대표적인 글로벌 기업들인 IBM, HP, 오라클, 액센츄어, 마이크로소프트 등은 기본적으로 하드웨어나 소프트웨어 솔루션 위주의 제품이나 기술을 판매하고 있다. 다만 IBM이나 HP는 SI사업을 제한적으로 하고 있지만 공공분야 비즈니스는 아예 참여조차도 못하고 있다. 그 이유는 간단하다. 글로벌 기업들은 기본적으로 공공부문 SI 프로젝트처럼 무한책임을 지는 비즈니스는 본사에서 승인을 하지 않기 때문이다. 때문에 국내에서는 하고 싶어도 못한다는 게 현실이다.

또한 중견 SI기업들의 하도급으로 종속될 가능성 지적에 대해서도 '희박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즉 대표적인 중견 기업으로 지목되고 있는 D나 S기업의 경우, 제살 깎아먹는 경쟁은 할 수가 없는 게 현실이다. 삼성SDS, LG CNS, SK C&C, 롯데정보통신 등은 수십 개의 계열 기업들을 갖고 있어 적자를 내더라도 뒤에서 든든한 버팀목 역할을 해 주지만, 이들 기업들은 그런 버팀목들이 이미 없어졌다. 따라서 이들 기업들은 무한책임을 져야만 하는 공공분야 SI사업에서 덤핑경쟁을 할 수가 없다는 것이다. 오히려 시장질서를 어지럽히는 대기업 SI만 빠진다면 중견 기업과 중소 SW기업 간의 상생을 위한 협력은 자연스럽게 이뤄질 가능성이 더 높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우수한 인력 이탈 현상도 그렇다. 대기업SI들이 공공부문 비즈니스만을 타깃으로 설립한 기업이 아니다. 특히 이들 기업들은 매년 조직개편과 함께 인사이동도 자연스럽게 이뤄진다. 특정 분야만을 위한 인력은 없다는 것이다. 때문에 공공부문 사업을 포기한다고 하더라도 그 인력을 다른 분야에 투입하면 되고, 특히 막강한 자금력으로 우수한 인력들을 확보한 만큼 글로벌 비즈니스와 같은 부문에 투입하면 오히려 관련 인력들에게는 미래 희망을 안겨 줄 수 있다는 것이다.

공공정보화 부실 우려도 지나친 기우에 불과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규모가 작든 크든 SI 프로젝트는 주관 기업을 중심으로 여러 중소기업들이 함께 컨소시엄을 이뤄 추진된다. 또한 그 동안 그 어떤 대형 프로젝트도 대기업SI들이 단독으로 모든 것을 다 하지는 않았고, 규모 또는 단위 업무별로 나눠 관련 중소기업들이 역할에 맞춰 업무를 분담해 프로젝트를 수행해 왔다. 따라서 중소기업들의 역할이 절대적이었기 때문에 우려할 만큼 중소 SW기업들의 프로젝트 수행능력이 크게 뒤떨어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아무튼 국가정보화전략위원회나 KAIST 소프트웨어정책연구센터, 그리고 관련 학계 등은 소속된 구성원들이 누구로부터도 인정받을 수 있는 높은 지식과 학식, 경험과 노하우 등을 쌓은 훌륭한 분들일 것이다.
그런 그들이 'SW산업 발전을 위해 진정한 마음으로 머리를 맞댄다면 안 될 게 없을 텐데'라는 씁쓸함과 아쉬움이 가슴속 깊이 남는 것은 왜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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