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홍배 (주)C&S 마이크로웨이브 대표이사

역사를 찾아 들어간다는 것이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어떤 의미를 주는 것일까? 역사를 통해 현재의 정통성을 찾는 것이 뭔가 현재의 삶의 판단에 도움이 되겠지 하는 생각을 해 본다.

언젠가 벌초하러 선산에 갔을 때 같은 항렬의 종가집 형님께서 그 동안 몰랐던 사실을 알려 주신다며, 우리 연안 이씨는 소정방 군대를 따라온 장수로부터 시작되었다는 사실을 뒤 엎고, 말갈족이었다고 했다.

고조선 시대에 대해 내가 학교 다닐 때는 별로 많은 것을 배우지 못했던 것 같다.' 홍익인간, 단군 조선, 8조 금칙,…'그런데 이제 옛 기록들을 찾고 해석해 낼 만큼 경제 상황이 좋아져서 그런지, 그 당시의 상황에 대한 자료들이 많이 연구되고 있는 모양이다. 중국의 시조에 대한 신화는 헌원(황제), 신농씨(염제), 그리고 치우부터 시작되는데, 여기에서 치우(2002년 한일 월드컵 때 마스코트로 쓰였던 치우천왕)라는 사람이 우리의 선조(동이족)라고 주장하는 책이 있어 큰 자부심과 대륙의 기질이 가슴속 저 깊은 곳에서 솟아나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여러 가지 자료를 근거로 그 당시의 우리 땅의 면적을 가늠해 본 지도를 본 순간 더 이상 우리는 반도국가가 아니라, 대륙민이었던 것이다. 역사에 대한 책 한 권이 이렇게 사람의 마음을 시원하고 통쾌하게 만들어 주다니 참으로 고맙기까지 했다. 이러한 민족이 역사가 흐르면서 융성하기도 하고, 쇠하기도 하였으리라. 또한, 세상의 변화에 따라 인접 민족의 유입도 당연한 일이 아니었을까 싶다.

상고시대에 귀화(귀화라는 표현이 적절한지는 모르겠다)한 사람들로는 우리 머리 속에 남아 있는 기자 조선의 기자(은나라 마지막 왕인 주왕의 친척)의 후손인 청주 한씨, 선우씨, 기씨 등이 있다고 한다.

초기 신라에는 금관가야의 허황후(김해 허씨)가 인도 출신이었고 황조가의 배경이 된 유리왕의 아내 치희도 중국인, 신라 탈해왕이 된 석탈해도 이민족일 가능성이 높다는 기록이다. 또한 해주 오씨도 신라초기에 귀화했다고 보고 있다. 고구려 시대에는 수당 전쟁을 치르면서 남양 홍씨가, 백제 때는 흑치상지의 사위인 순 장군 역시 일본에서 귀화했을 것으로 보고 있다. 통일신라시대의 처용, 당나라 사신의 후예 평해 구씨, 제갈공명과 같은 핏줄인 제갈씨, 당나라 문화 사절의 온양 방씨… 참으로 열거하기 어려울 정도로 많은 이들이 동이족이 아니면서 이 땅에 들어와 이 좁은 한반도에 같이 살고 있는 셈이다.

그렇다면 과연'현재의 우리 민족이란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 그리고 과연 민족이란 무엇일까?'라는 질문을 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참으로 답하기 어려운 문제로 귀결되고 마는 것 같다. 이에 대해 내가 결론을 내릴 수 있는 부분은 아닐 것이며, 또한 의미도 없어 보인다. 단지 나는 현재 대한민국이라는 나라의 국적을 가지고 살고 있을 뿐이다.

약 100년 전 세계의 제국주의가 조선에 접근해 왔고, 그 당시의 국경은 모호했던 것 같다. 우리 영토가 만주 벌판까지 포함하고 있었다고 볼 수도 있었을 것이고, 지금 북한의 국경까지였을지도 모를 일이다.

단지 현재 내가 있는 나라의 영토가 넓으면 참 좋을 것 같다.

그런데 중앙일보 보도에 따르면 현재 중국 조선 자치구의 인구 구성 중 조선족 비율이 36%까지 떨어져서 조선족 자치구로서의 의미가 상실되고 있다고 한다. 이런 까닭에 혹시라도 있을 세계의 정세 변화가 생기면 조선 자치구의 땅에 접근하기 어려울 지도 모르겠다.

다시 100년 전으로 돌아가 보면 임오군란, 갑신정변, 아관파천, 을사늑약 등을 거치면서 중국이 조선에 요구했던 것은 속국으로서의 입장이었던 것 같다. 외교에 대해 청의 승인이 없이 조약을 체결할 수도 없었고 차관도 도입할 수 없어 독자적인 일을 불가능하게 만들었다. 그 뿐만이 아니다. 청일전쟁, 러일전쟁 등에서 힘으로 밀리니까 속국을 뺏기는 상황으로 인식하였던 것이 아닐까 한다. 따라서 그 당시에는 국경에 대해서 우리는 중국에 대고 이야기 할 입장이 못 되었을 것이다. 외교권도 없었으니 말이다.

또한 을사늑약으로 우리를 속국으로 만든 일본 역시 제 맘대로 우리의 자원과 자산을 유린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국경 이야기 자체가 의미가 없었을 것이다.

현재의 독도 문제에 대해서도 많은 말들이 오가고 있다. 내가 아는 지식으로는 분명히 우리의 땅이라 이야기 할 수 있는데, 왜 이리도 많은 말들이 나오고 있는지…. 저 광활한 땅의 주인이었던 고조선, 고구려 시대의 동이족의 후손 입장에서 보면 참으로 기가 막힐 노릇이다.

2003년 일본 국립 유전자 협회가 밝힌 한국인, 중국인, 일본인의 DNA 미토콘드리아 염기 배열 분석자료를 보면'죠몽인'이라 하는 일본 본토인과 그의 후손들이라 여겨지는 아이누 인이나 오키나와 인은 어느 정도 유전적으로 가까운 관계로 나타났다. 그리고 본토 일본인의 유전자 풀 대부분은 아시아 대륙으로부터의 유입된 도래 인인 것으로 밝혀졌다. 이 결과는 일본인의 기원에 대한 혼혈성을 뒷받침하는 것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한국은?'중국인 DNA 타입 21.9%, 한국인 DNA 타입 40.6%, 오키나와인 DNA 타입 17.4%, 아이누인 DNA 타입 1.6%, 불분명한 DNA 타입 18.5%란다.

2005년 12월에 고구려 연구 재단 연구 총서에 발표된 김욱, 김종렬의'미토콘드리아 DNA 변이와 한국인 집단의 기원에 관한 연구'에서 한국인 기원을 보면"한국인 집단은 주로 몽골 및 동 남북 시베리아인 집단에서 높은 빈도로 나타나는 유전자형을 비롯하여 동남아시아와 중국 남북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유전자형이 복합적으로 나타나는 집단 형태를 보였다."고 결론 내리고 있다. 상고 시대로부터 역사를 거치면서 많은 민족이 한반도에 유입되었고, 현재 또한 국제결혼 등을 통해 유입이 계속되고 있어 우리의 정체성 역시 쉽게 결론 내릴 수 있는 문제는 아닌 것으로 보인다.

나는 그저 힘을 기르고 행복한 나라를 만들어서 독도 문제도 시비 걸지 못하게 하고(TV' 대왕 세종'을 보면서 대마도도 조선 땅이었는데…), 동북 3성의 땅도 아우르는 넓은 국토를 가진 국민이 되고 싶을 뿐이다.

※ 본 수필은 본지가 발간한'창공의 빛나는 별 하나'에서 발췌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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