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정배 선문대학교 컴퓨터공학과 교수



"아빠! 아빠! 할머니가 날 보고 웃으셨어! 난 할머니 무척 보고 싶어! 할머니 살아 계시면 얼마나 좋을까? 내가 잘 해 드릴 텐데…. 할머니 참 보고 싶다!" 우리 집 막내 딸 형경이가 어느 날 저에게 다가와서 불쑥 꺼낸 한 마디였습니다. 저희 집 서재 컴퓨터 테이블 옆에는 저희 가족들을 항상 걱정하시고 돌봐주시는 어머니 영정 사진이 걸려 있습니다. 그래서 어머니께서는 한 번씩 아이들을 보시면서 흐뭇한 표정으로 빙그레 웃으십니다.

"그래! 아빠도 할머니 참 보고 싶단다. 형경아! 할머니 정말 미인이시지? 할머니랑 우리는 같이 사는 것 같아. 그치? 할머니 생전에는 형탁이와 형경이를 무척이나 많이 사랑하셨단다. 아이고! 우리 대감! 우리 공주! 라고 말씀 해 주신 것 생각나지? 용돈도 많이 주시고, 맛있는 과자도 많이 사주신 것 다 생각나?" "응! 아빠! 나 할머니 집에 가고 싶어. 요사이 할머니 집에 누가 살고 있을까? 우리 할머니 집에 놀러가 보자!"

저희 집 아이들은 이렇게 항상 할머니를 그리워하면서 사진 속의 할머니와 같이 하루하루를 즐겁게 지낸답니다. 저도 어머니와 늘 함께 살고 있다고 느낍니다. 혹시나 저희 가족들에게 조금이라도 걱정거리가 있으면 어머님 표정도 근심어린 표정으로 가득 찹니다. 저희 가족들에게 좋은 일이 있으면 어머님께서는 금방 환하게 미소를 지우시곤 한답니다.

또한 저의 개인용 컴퓨터에는 어머니 생전에 찍으셨던 많은 사진들이 저장되어 있습니다. 그림으로는 도저히 그릴 수 없을 것같이 아름다우시고 자애로우신 어머님 모습을 영상으로 뵐 때마다 어머님의 따뜻한 체온과 훈기를 느끼곤 합니다. 그리고 귓가에는 어머니의 고운 목소리가 들리는 듯합니다. 제 핸드폰에는 아직까지 어머니 전화번호가 저장되어 있습니다. 한 번씩 어머니께 전화를 걸면 금방이라도 반갑게 받아주실 것 같은 착각에 빠지기도 합니다. 가끔씩 핸드폰에 저장된 전화번호를 눌러 보고 어머니의 그 고우신 음성을 애써 기억해 내곤 합니다.

지금으로부터 6년 전, 어머니께서는 평소에 사시던 그 모습대로 항상 주무시던 그 모습대로 어디 한군데 불편하신 모습도 없었고 찡그린 표정도 없이 참으로 어머니답게 그렇게 고운 얼굴로 눈을 감으셨습니다. 어머니께서 돌아가시던 날, 오전에 들었던 어머니의 그 곱고도 청아한 전화 음성이 귓전에 맴돌고 있었던 그 시간에 어머니께서 세상을 하직하셨다는 청천벽력과 같은 소식을 접했습니다.

그날따라 하늘은 깨끗한 행주로 닦아놓은 듯 맑고도 높았습니다. 모진 땡볕이 대지를 달구던 여름도
지났고, " 더도 말고 덜도 말고 한가위만 같아라!"라는 추석도 지났습니다. 들에는 온갖 곡식들의 유쾌한 합창소리가 드높았고 골목에는 사람들의 오가는 소리가 어느 때 보다도 정겨웠습니다. 사계절 중에 가장 높아 보이고 옥보다 더 고운 파란 물감을 풀어 놓은 것 같이 고운 하늘 저 너머로 어머니께서는 그렇게 저희들 곁을 떠나셨습니다.

어머니께서는 평생을 신앙처럼 언제까지나 저희들 곁을 돌보아 주셨습니다. 어릴 적부터 보아왔던 어머님의 손끝은 요술을 부리는 듯 했습니다. 집안 사정이 몹시 힘들었던 시절에는, 어머니의 요술이 여지없이 발휘되곤 했습니다.

바로 어머니의 삯바느질 요술로 저희 식구들을 모두 뒷바라지 하셨습니다. 그 당시 어머님께서 만드신 날렵한 버선코와 날아 갈 듯한 동정 깃의 품위는 뭇 여인들의 추종을 불허했습니다. 또한, 동양적인 어머니 미모는 시대의 변천에도 불구하고 항상 요샛말로 얼짱이셨습니다. 어디에 가시든 예쁘고도 고상한 외모는 모든 이와 견주어 뛰어나셨고 무슨 옷을 입으셔도 그렇게 잘 어울릴 수가 없었습니다. 곱고도 품위 넘치신 자태와 그러면서도 좌중을 휘어잡던 그 언변과 해박한 지식은 한 마디로 인기 짱이셨고 그 모습은 돌아가시는 그 순간까지 조금도 변치 않으셨습니다.

2004년 추석 3일 후에 큰형님께서 미국 LA집으로 떠나시려고 짐을 싸시던 그 순간에, 갑작스런 호흡곤란으로 세상을 하직하셨던 어머님은 큰형님을 무척 사랑하셨던 것 같습니다. 아마도 20여 년 동안 미국에 사셨던 큰 형님을 무척 그리워 하셨던 그 한을, 어머니께서는 형님 곁에서 마지막 시간을 함께 하심으로써 다 푸셨던 것 같습니다.

오늘도 그날처럼 하늘이 높고도 푸른 가을날입니다. 연구실 창문 넘어 운동장에는 학생들의 요란한 북치는 소리, 고함 소리와 함께 젊음의 뜨거운 열기가 밀려들고 있습니다. 지금 이 순간, 당신의 손을 잡고 산으로 들로 다니면서 어머니의 그 자애롭고 따뜻한 미소를 뵙고 싶습니다. 또한 자애로운 당신의 음성을 너무나 듣고 싶습니다. 오늘은 유난히도 어머니가 그리운 가을 날 입니다.

어머니! 언제나 사랑합니다. 존경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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