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RM 시스템만 구축하면 고객관리를 잘 할 수 있다는 생각은 '우물가에서 숭늉을 찾는 것'과 같다. CRM 시스템 구축은 CRM의 전체에서 중간단계에 불과하며 시스템을 구축한 후 이를 기반으로 끊임없는 샘플링과 이벤트 시도, 고객반응 확인 등의 과정을 거쳐 고객의 행동을 분석하고 예측해야 한다.
지난 2000년부터 화두였다가 CRM이 투자회수(ROI)를 실현시켜주지 않는다고 시스템을 상용화하지 않고 이벤트도 시도해보지 않았던 것은 CRM에 대한 연습이 부족했기 때문이다.
CRM은 ERP처럼 시스템 구축이 끝나면 바로 효과가 나타나는 것이 아니다. CRM을 위해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바로 고객을 분류(Segmentation)하는 것이며, 이 분류를 단순하게 성별, 나이, 직업, 거주지 등으로 해서는 안 된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일정 기간 동안 특정 제품을 구매한 사람, 특정 이벤트 기간 동안 신규 고객이 됐거나 빈도 높은 구매를 일으킨 사람 등으로 고객의 행동을 중심으로 분류해야 하며 이러한 분류가 끝나기 전까지 CRM 시스템을 구축하면 효과를 볼 수 없다.
한 관계 전문가는 고객 분류가 끝나기 전에 CRM을 구축하는 것과 관련 "외투부터 입고 그 위에 내의를 입는 격"이라고 지적했다.
처음부터 전체 고객을 세세하게 분류할 필요는 없다.
영국에 있는 테스코 본사는 6,500만 명의 고객 가운데 1%인 65만 명에 대한 데이터웨어하우스(DW)를 구축해 테스트 마케팅을 실행한 바 있다. 6,500만 명의 고객 DW를 구축하려면 300억 달러 정도가 필요한데 100분의 1인 65만 명의 고객 DW를 구축하는 데는 채 3억 달러의 비용 밖에 필요하지 않는다고 한다. 또한 DW 역시 PC에서도 가동이 될 정도로 가벼워진다.
지금까지 국내 시장에서 CRM을 접근할 때 처음부터 욕심을 너무 부렸다는 지적이다. 모든 고객을 대상으로 DW를 구축하고, 아울러 모두 다 알고 싶어 했으며, 모든 고객을 타깃으로 마케팅을 실행하고자 했다. 그러나 결과는 어떤 고객도 만족시키지 못하고 CRM은 사장되고 말았다.
유통업체들에게 불특정 다수를 향한 매스 마케팅은 신앙과도 같았기 때문에 특정 고객군을 타깃으로 마케팅을 진행하지 못해왔다.
그러나 할인점인 이천일아울렛은 지난해 매스 마케팅을 버리고 타깃 마케팅을 추진한 결과 매출은 증가하지 않았지만 영업이익이 30% 늘어나는 쾌거를 올렸다. 당시에는 할인점 업계 1위인 이마트마저 마이너스 성장을 보여 업계의 주목을 받았다. 이천일아울렛은 타깃 마케팅의 비중을 높였으며 그 결과 특정 고객집단의 재구매율도 83%로 상승했다.
CRM이 화두가 됐던 2000년부터 지금까지 특정 고객군을 분류해서 관찰한 후 타깃 마케팅을 실행했다면 분명 기업들은 성공했을 것이다. 그 동안 경험을 바탕으로 테스트마케팅을 실행해 좀 더 다양하고 많은 정보를 수집해야 할 단계에 너무 성급하게 투자회수(ROI)를 기대했던 것은 아니었는지 생각해 볼 때다. <박해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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