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안재명 (주)리테일테크 대표



2009년도 7월 13일로 우리 회사는 6번째 생일을 맞았습니다. 그 날은 마침 일요일로 별다른 약속이 없어 집에서 조용히 보냈지만 주마등처럼 스쳐가는 지난 6년을 회고해 보는 하루였습니다.

6년 전 창업을 준비하면서 마지막 결의 모임을 갖던 날이 문득 생각났습니다. "사장님, 우리 회사는 무슨 일을 할 건지 물어봐도 되나요?", "새로운 회사로 입사하면 연봉이 많이 줄어듭니까?"강남 선릉역 부근의 조그만 커피숍에서 창업에 동참하기로 했던 8명이 모여서 가졌던 첫 대화가 아직도 기억에 생생합니다.

당시 15년 이상을 유통, 물류 IT분야에서 평범한 직장인으로 사회생활을 하면서 단 한 번도 사업을 하겠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었던 내가 과연 나를 믿고 따르는 동지들에게 후회없는 삶을 줄 수 있을지, 그리고 창업을 결심하면서 이루고자 했던 꿈들을 실현할 수 있을지…. 그날 우리가 함께 했던 선택에 대해서 5년이 지난 지금도 아직 확실한 결론을 내릴 수 없습니다.

사무실 임대료를 걱정하며 10평도 채 안 되는 상가 사무실을 얻어 사업자 등록을 하였고, 중고 집기를 들여 놓고, 주말에 모여 청소하고, 페인트칠을 하였습니다. 지친 몸으로 저녁에 함께 먹던 자장면의 맛을 아직도 잊을 수 없습니다. 인원수보다 적은 책상으로 2년을 보냈고 우리 실정에 맞는 워크숍이라며 모두 찜질방에 모여 캔 맥주를 마시며 나누던 진지한 대화도 잊을 수 없습니다.

8명 중 7명이 미혼이었고, 모두 음주는 약했던 탓에 술값은 거의 들지 않았던 것도 우리의 당시 모습으로 기억합니다. 2002년 어느 여름 날 주 거래처의 대형 프로젝트에 온힘을 쏟던 시절, 매일 늦은 시간까지 전념하던 R군의 실연을 위로해 준다고 밤 11시가 넘어 모인 직원들 3명이 오늘은 실컷 취해본다고 맥주 2병을 사가지고 모텔 방으로 들어가 밤새도록 얘기하다가 술에 취해 곯아 떨어지고 다음 날 일어나보니 술1병이 따지도 않은 채 남아있었다는 일화도 우리가 회식자리에서 여러 번 떠올리던 에피소드였습니다.

이제 8명으로 시작했던 회사식구들이 50명이 넘었습니다. 초창기 창업멤버들 역시 그 세월 동안 결혼도 하고, 아기의 아빠가 되고, 몇몇 직원들은 아파트도 장만하는 등 많은 변화가 있었습니다. 회사는 이제 사무실도 제법 넓어지고 유통/물류분야의 S/W 및 RFID 기반기술 경험으로는 국내 일류라는 네임밸류도 생겼습니다. 일 년에 몇 번씩 팀별로 직급별로 1박2일 워크숍도 가고 매년 10억 원 이상의 R&D도 계속 하고 있습니다.

그 동안 2~3년 경력의 초급사원으로 입사했던 직원들은 5년이 지나면서 중견 간부로 성장했고, 신입사원으로 입사했던 직원들도 회사의 주요 업무를 수행하는 중견 사원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정말 힘겹고 보람 있었던 많은 일들이 있었습니다. 프로젝트를 수주하고, 수행하면서 겪었던 많은 경험과시행착오도 결국은 우리들의 자산으로 남아 우리의 경쟁력을 배가 시켰지만 아직도 갈 길은 멀기만 합니다.

작년 말 그 동안 고락을 함께하며 많은 순간들을 견디고 미래를 설계하던, 초급사원으로 입사하여 어엿한 중견 간부로 자리를 잡았던 동지 3명이 회사를 떠났습니다. 창업 이전부터 7년 간을 한결 같이 직장, 사회, 결혼, 인생, 기술, 미래 등 모든 것에 대해 고민하고 토론하던 형제보다 더 가깝다고 생각했던 동지들이었습니다.

나도 놀라고 직원들도 예기치 못했던 일이었기에 당황스럽고 어떻게 처신 하는 것이 옳은 지 한 동안 갈피를 잡지 못했습니다. 다른 일을 경험해 보고 싶고, 회사의 성장과 함께 주어지는 역할에 대한 중압감을 견디지 못하고, 그 동안 쌓은 실력을 다른 곳에서 발휘해보고 싶고, 분위기를 바꾸고 싶고, 좀 더 조건이 좋은 곳에서 대우를 받고 싶고… 등등 조심스럽게 이유를 밝히는 그들의 모습에서 답답함과 무력감, 안타까움과 배신감, 어느 순간부터 점점 줄어들었던 직원들과의 시간에 대한 미안함, 한동안 정신없이 앞으로만 달리느라 소홀했던 이해와 설득, 공유 등 쏟아지는 자괴감으로 힘들었던 시간이었습니다.

추호도 회사에 대한 불만은 없다고 강조하고, 훗날 다시 기회가 돼서 다시 일하고 싶다는 말에 애써 위로를 받았지만 작년 송년회 행사에서 우리가 헤어진다는 섭섭함에 모두 눈시
울을 적시던 일들을 아직도 또렷이 기억합니다.

중소기업의 사장으로 산다는 것이 쉽지 않다는 얘기는 많이 들었지만, 이제 겨우 만 5년의 세월을 지내면서 수 십 년간 사업가로서 활동하시는 많은 선배님들에게 점점 경외감이생깁니다. 오늘도 늦은 시간까지 귀가하지 않고 사무실에서 야근하고 있는 직원이 꽤 여러명 보입니다.

그중 한 명이 언젠가 내게 묻던 질문이 떠오릅니다. 사장님은 사업을 하면서 가장 기쁠 때가 언제입니까? "큰 프로젝트를 수주하여 매출이 초과 달성 했을 때 인가요?"," 회사가 큰 상을 받았을 때 인가요?"," 새로운 제품이 개발되어 성공적인 런칭을 했을 때 인가요?"그때 저는 대답했습니다. 고객으로부터"우리 직원이 매우 일을 잘한다고 칭찬해 줄 때, 처음에 미숙하던 직원이 성장하여 어려운 프로젝트를 능수능란하게 처리하는 모습을 볼 때, 벅찬 감동과 보람을 느낍니다"라고.

그 동안 많은 일들이 있었고 또 앞으로 많은 일들이 생기겠지만, 결국 사람에 의해서 슬픔을 얻고, 사람에 의해서 기쁨과 보람을 느끼는 것이 인생이고 사업이라는 생각을 해 봅니다. 비록 8명의 창업동지들은 이제 5명으로 줄었지만 40명이 넘는 새로운 식구들이 동고동락을 하고 있고 여전히 서로를 위로하며 더 높은 곳을 향해 가고 있습니다. 세상이 어둡고 미래의 등불이 희미하지만 아직도 잡은 손을 놓지 않고 꿋꿋이 걷고 있습니다.

회사를 떠난 후에도 일이 있을 때마다 달려와서 도와주는 R군, L군, C군 등 모두에게 감사를 드립니다. 그리고 오늘도 늦은 시간까지 지칠 줄 모르고 프로젝트에 여념이 없는 모든 동지들에게 감사를 드립니다. 모두 건강하시고 멀지않은 날 모두 같이 모여서 소주 한 잔 할 수 있는 자리를 만들겠습니다.

※본 수필은 본지가 발간한 '창공에 빛나는 별 하나'에서 발췌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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