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6.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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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원주택에 살면 누구나 시인이 된다




"어이, 오 교수 너무 빨리 은퇴 한 것 아닙니까?"
어느 선배가 오랜만에 만난 술자리에서 내게 툭 던진 한마디이다. 내가 전원주택으로 이사했다는 얘기를 듣고 하신 말씀이라 생각된다.

그렇다. 전원주택으로 이사 간다는 것은 현실로부터 멀어 진다는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반평생 살아 온 각박한 도시 생활을 등지고 산골이나 농촌 한적한 곳에서 살아가는 것을 전원생활이라고 한다. 아직도 전원생활은 곧 은퇴라는 의미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전원생활하면 곧 바로 연상되는 몇 가지가 있다. 도시에서 한 두 시간 떨어진 시골, 전원주택 단지에 있거나 외딴 집으로 있는 단독주택, 채소를 가꿀 수 있는 텃밭, 농부 같은 자유스런 생활, 시간에 매이지 않는 출퇴근 등등.

몇 해 전부터 유럽의 펜션 바람이 우리나라에도 밀려들어 왔다. 전까지는 민박이라 하던 것을 유럽 건축을 약간 흉내내어 여기도 저기도 펜션 단지가 조성되어 있다. 전원주택도 유럽의 고풍스런 저택으로부터 출발한다. 건물에는 차이가 있을지라도 실내 장식은 유럽풍을 모방한다. 거기에다 우리의 전통적 풍치를 싣게 되면 전원생활에 맛은 한 층 더하게 된다.

서구의 멋을 풍기는 벽난로, 스탠딩으로 즐길 수 있는 와인바, 야외 BBQ, 원두막을 닮은 정자, 두레박이 있는 우물, 그리고 야생화로 가꾼 정원. 전원생활 주말 단골 메뉴는 야외 BBQ이다. 숯 연기를 피우며 BBQ 그릴에서 구어 내는 그 맛은 좌불안석(坐不安席) 그 자체이다. "좌우지간 불고기는 안심을 석쇠에 구어 먹어야 제 맛"이다.

분당 사람들은 천당 아래 분당이라고 분당을 자랑한다. 나에게 어디에 사냐고 물으면 분당 넘어 천당 아래 오포에 산다고 한다. 나는 몇 년 전, 분당 넘어 오포 태재고개 조용한 숲속에 통나무집을 지어 전원생활을 시작하였다. 농촌에서 태어나 중학교까지를 농촌에서 자랐기에 서울 도심에서 살아온 수십 년의 생활 속에서도 항상 시골생활을 그리워하곤 했다. 도심을 꽉 매운 아파트 숲은 보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답답하다. 잠시 살아 본 아파트 생활 속에서 아파트는 가장 시설이 잘 갖춰진 인간 동물원이라는 생각을 떨쳐버릴 수가 없다. 아파트 울타리를 벗어나 전원주택으로 뛰쳐나온 것을 쇼생크 탈출이라 부르고 싶다.

전원생활은 무조건 꿈에 그리고 싶은 낭만이 널려있는 것만은 아니다. 현대생활에 젖은 사람들을 위하여 몇 가지 꼭 필요한 요건을 반드시 갖추어야 한다. 꿈꾸어 왔던 낭만과 도심 아파트 생활에 젖은 현실을 접목하기 위해서는 필수적이다.

뭐니 뭐니 해도 집까지의 진입로를 포함한 불편 없는 교통 여건, 야간에도 안심하고 살 수 있도록 잘 갖추어진 보안 환경, 병원과 슈퍼마켓을 포함한 문화시설이 인근에 반드시 있어야 한다. 특히 보안은 전원생활을 보장하는 가장 중요한 요건이며 유비무환(有備無患)은 전원생활의 보안의 첫 번째 철칙이다. 개업 의사들은 유비무환을 일컬어"비가 오는 날에는 환자가 없다"고 풀이 한다지만.

지금의 전원주택에는 첨단 IT시설이 잘 갖추어 있어 19세기와 21세기가 혼재한 친자연적 문화생활을 즐길 수 있다. CCD카메라가 촬영한 화면을 인터넷으로 전송하여 원격 감시하는 최첨단 보안시스템, 팍팍 터지는 휴대 전화, 무선 공유기를 이용한 댁내 완전한 초고속 인터넷 망, 디지털 HD 위성방송은 서울 도심 고층 아파트에 비하여 전혀 손색이 없다. 재택근무나 SOHO(Small Office Home Office) 환경에도 전혀 불편을 느낄 수 없다. 유비쿼터스라는 도시 친화적 전문 용어가 전원생활 속에서도 IT의 위력을 새삼 실감하게 된다.

전원생활을 하면 자연스레 아침 형 인간이 된다. 어쩜 새벽형 인간이라고 하는 것이 더 적합할 것 같다. 아침 형 인간은 기업체 근무 때부터 몸에 배어 온 자랑스러운 나의 습관이기도 하다. 주말을 막론하고 아침 6시 이전에 일어나 네 종류의 트래킹(tracking)을 즐긴다.

맨 먼저 하는 트래킹이 인터넷을 훑어가는 정보 트래킹이다. 인터넷 신문으로 시작하여 관심 사이트 훔쳐보기, 그리고 이메일 읽고 답하기로 인터넷 트래킹은 종료된다.

두 번째 트래킹이 트래일 트래킹(trail tracking)이다. 집 주변에 야산이 있어 아주 짧은 산길 트래킹 코스를 개척해 놓았다. 소요시간은 10분도 채 걸리지 않는다. 목표지점에 바위가 있어 때로는 명상의 시간을 가져보기도 한다. 이 오솔길 트래킹을 몇 차례 반복하면 스트레칭 이상으로 몸과 마음을 유연하게 해 준다.

세 번째 트래킹은 정원과 집 주변의 화초와 나무를 돌보고 텃밭을 다듬는 코스로 식물들과 어울리는 코스인지라 그린 트래킹(green tracking)이라 한다. 식물원이라 칭할 규모는 아닐지라도 하나하나 정성을 담아 물을 주고 잡초를 뽑아주고 가지를 다듬어 주며 한 코스를 돌다 보면 시간이 꽤나 흐른다.

그린 트래킹은 다운 시프트( down shift) 습관을 몸에 배게 만들어 현대인의 공통 불치병이라는 빨리 빨리 조급증을 치유해 주는 효과도 있다. 나의 성격도 그리 느긋한 편이 못 되지만 그린 트래킹 동안만은 매우 여유 있는 다운 시프트 삶을 흉내 내보곤 한다.

마지막은 네트워크 트래킹(network tracking)이다. 출근 준비 마지막 단계이기도 하다. 스케줄 다이어리를 확인하며 오늘 만날 사람, 금주에 만날 사람, 내주약속까지 확인하며 조만간 꼭 만나야 할 사람까지 챙긴다. 그 분들에 대한 간단한 신상, 전화번호, 약속 장소, 대화 주제 등을 따져 가며 인맥 코스를 트래킹 한다. 아직 약속이 이루어 지지 않은 분의 이름을 포스트 잇(post it)에 이기(移記)하여 수첩에 끼워둠으로써 전화 약속으로 이어지도록 한다.

전원생활 참살이의 진수를 보여주는 것은 세 번째 그린 트래킹이다. 손수 뿌린 씨앗이 싹을 트고 무럭무럭 자라 열매를 맺기 까지를 지켜보는 뿌듯함은 해 본 사람만이 느낄 수 있다. 또한 손수 심은 묘목이 일주일이 다르게 커가는 모습을 지켜보는 즐거움 또한 비할 바가 없다. 그린 트래킹을 열심히하면 아름다운 정원이 만들어지고 초록 내음이 물씬 풍기는 텃밭이 조성된다.

전원주택의 대표적 상징은 뭐니 뭐니 해도 시골다운 정원이다. 도심에 있는 고급 단독주택처럼 값비싼 소나무로 호화찬란하게 꾸며진 정원은 전원주택에는 어울리지 않는다. 자연 그대로를 보여줄 수 있는 아늑한 정원이 전원생활을 더욱 맛깔나게 한다. 정원에는 사시사철 꽃이 핀다. 봄, 여름, 가을, 겨울 꽃이 핀다. 개나리 진달래를 선두로 하여 가을의 전령사 국화를 거쳐 겨울의 맛에 흠뻑 빠지게 하는 눈꽃까지 철철이 피어난다. 꽃과 수목으로 장식된 전원주택 여기저기를 거닐고 있노라면 보통 사람들의 가슴 속에도 시의 운율이 넘칠 수밖에 없다. 전원생활을 하다보면 누구나 시인이 된다. 계절별로 피고 지는 꽃을 보노라면 학창시절 국어 책에서 배운 그 옛날의 사귀절을 나도 몰래 떠올리게 된다.

나보기가 역겨워
가실 때에는
말없이 고이 보내 드리오리다

내가 사는 집 주변에 심어진 진달래는 윗 산에서 옮겨 온 것들이다. 봄철에 틈틈이 한두 그루씩 옮겨오다 보니 지금은 진달래 공원이 만들어지게 되어 김소월님의 진달래처럼 5월의 정원을 분홍빛으로 물들인다.

전원주택의 운치를 한 단계 업그레이드 하는 장식물 중에으뜸은 옹달샘이다. 계절에 맞추어 수량(水量)과 멜로디를 바꾸어 가며 졸 졸 졸 졸 흐르는 샘물은 소리만으로도 전원생활의 정취에 흠뻑 빠지게 한다.

" 깊은 산 속 옹달샘 누가 와서 먹나요
새벽에 토끼가 눈비비고 내려와
세수하러 왔다가 물만 먹고 가지요."

도랑으로 그냥 흘려보내는 것이 아까워 정원수로 뿌리기도 하고 때로는 빨래터가 되기도 하지만 쫄쫄쫄 흐르는 물소리는 전원생활의 맛을 찡하게 해 준다.

텃밭을 가꾸는 일은 전원생활의 묘미중의 으뜸이다. 텃밭이 없는 전원주택을 도시의 단독주택과 뭐가 다르다 할 수 있으리.너무 넓게 가꾸면 노동이 될 수도 있는 텃밭은 전원생활의 맛을 감칠 나게 하는 조미료와 같다고나 할까. 텃밭 가꾸는 맛에 딱 맞는 시 한수가 떠오른다.

" 남으로 창을 내겠소
밭이 한참갈이
괭이로 파고
호미론 김을 매지요"

전원주택의 가을은 단풍으로 시작하여 낙엽과 함께 저물어간다. 떨어지는 낙엽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시심(詩心)을 자극하기에 충분하다.

"시몬, 나뭇잎 떨어진 숲으로 가자
낙엽은 이끼와 돌과 오솔길을
뒤덮고 있다
시몬, 너는 좋으냐? 낙엽 밟는 소리가…"

구르몽의 낙엽은 언제 읽어도 가슴 뭉클한 어릴 적 추억을 자극하곤 한다.

자연을 칭송하는 시가 넘치고 있는가? 하면 인간의 내면을잘 표현한 시 한수도 떠오른다. 전원생활에는 유난히 사계가 뚜렷하게 느껴진다. 봄은 꽃으로, 여름은 녹음으로, 가을은 단풍으로, 겨울은 눈꽃으로 주인을 즐겁게 해 준다. 전원주택의 겨울은 시골 생활 맛을 감칠나게 해 준다.

눈이 온다.
자기 집 앞 도로를 덮은 두꺼운 눈은 반드시 자신들이 치워야 한다. 눈 치우는 일은 낭만이라 우기기에는 무리가 있을지라도 숲속 나뭇가지에 눈꽃송이가 주렁주렁 걸려있는 장관은 글로 표현하기에는 글 실력이 따라주지 못함을 아쉬워 한다.

" 시몬, 눈은 네 목처럼 희다시몬, 눈은 네 무릎처럼 희다"

도시에 사시는 분들은 아파트 정원의 작은 변화를 통해 계절이 바뀌는 느낌을 갖지만 전원생활에는 눈으로 귀로 마음으로 그것도 모자라 온몸으로 봄, 여름, 가을, 겨울을 맞이하고 또 보낸다. 자연 속에 있노라면 자연스레 자연인이 된다. 몸도 마음도 생각도 자연에 동화된다. 옛날 옛적 교복 시절에 암송했던 싯귀(詩句)가 자연스레 입가에서 읊어진다. 전원주택에 살다 보면 시를 짓는 시인은 아닐지라도 시를 응얼거리는 시인이 된다.

정지용 시인의 향수를 콧노래 부르다 어느새 나는 접시꽃 당신이 되고 만다.





오 해석 교수는 (현 청와대 IT특보) 유학의 꿈을 미완성으로 실현한 대한민국 IT의 대변자로 평가된다.
오 교수는 경북 상주군 공성면 산골에서 6.25 사변 때 태어났다. 용문산 자락의 농촌마을은 전기가 들어오지 않아 호롱불 밑에서 중학교를 졸업하고 서울로 유학, 목표한 대학에서 원했던 학문의 도를 깨우침으로 형설의공(螢雪之功)을 득한 행운아 중의 한 사람이라고 할 수 있다.
오 교수가 대학을 진학할 당시에는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이 성공적으로 추진됨으로 경제발전의 밑거름이 되는 공대(工大) 졸업생들이 최고의 대우를 받는 공대 전성시대이었다. 불암산 밑에 자리한 서울 공대에 진학하여 오늘의 IT월드는 예측하지 못한 채 컴퓨터 엔지니어가 되는 목표에 도전했다고 한다.
오 교수는 그 당시 공대와 쌍벽을 이루는 법학(法學)을 전공할 생각도 했다고 한다. 초고속 출세의 관문이라 할 수 있는 사법고시(司法考試)를 패스해 판검사가 되고 싶은 마음도 없지 않았기 때문이다. 고 2때 이과(理科)와 문과(文科)를 선택할 당시 오 교수의 부친 연세는 66세, 모친은 57세였다고 한다. 부친이 50세 때 외아들로 얻은 늦둥이로 태어난 오 교수는 부모로부터 자유로운 여건만 되었다면 공대가 아닌 법대를 진학해 사법고시에 도전하여 IT와는 완전히 다른 분야에서 밥벌이를 하고 있었을 것이라고 한다.
오 교수는 그러나 이과를 선택해 공대에 진학했고, 컴퓨터 엔지니어의 꿈을 키우며 당대의 대표 컴퓨터인 IBM1130으로 포트란과 코볼을 실습하던 그 자체가 자부심이었다고 한다.
오 교수는 대학 졸업 후, 기업체에서 컴퓨터 엔지니어로 근무하던 중 또 다른 번민(煩悶)에 직면하게 되었다고 한다. 바로 자신의 불확실한 미래를 두고 누구와도 상의할 수 없는 고심에 빠졌던 것이다. 미국의 스탠포드(Stanford)나 버클리(Berkeley)에 유학을하고 싶은 열망이 그의 마음을 지배하고 있고, 그 대학에 유학하여 장래 무엇이 되겠다는 목표보다 세계 최고의 명문 대학에서 컴퓨터 박사학위를 취득하는 것 자체가 소망이었기 때문이다.
오 교수는 최선이 아닌 차선으로 일본 동경대(東京大) 객원교수(客員敎授)와 스탠포드 객원교수의 길을 택해 세계 명문 대학의 학문의 깊이와 대학 문화를 체험하고, 산업체 특히 벤처기업 지원 활동을 위하여 스탠포드 MBA 경영자 과정을 수료함으로써 유학에 대한 미련을 다소라도 떨쳐내는 계기를 만들었다.
5년여 익힌 기업체 스타일의 사고방식과 근무태도를 대학 교수에 접목한 오 교수는 대학 내외 활동에서의 돋보이는 역할로 인정을 받으며 40대 중반 나이에 대학 부총장 보임, 정보처리학회 회장, 주요 정부 기관의 자문교수, KBS 객원해설위원, 홍조근정훈장서훈이라는 영광을 얻었다.
숭실대 IT대학에서 21년, 경원대 IT대학에서 6년간의 교수로 봉직(奉職)하면서 배출한 30여 명의 박사 제자를 비롯한 IT분야 요인(要人)들과 함께 대한민국 IT산업 발전에 열정을 불태우고 있다. 오 교수의 미래 희망은 영국의 명문대학에 체류하면서 영국을 중심으로 한 유럽을 체험하는 기회를 갖고 싶다고 한다. 다산 정 약용 선생님을 그리며 두루두루 읽히는 명저를 저술하는 것이 죽기 전에 꼭 하고 싶은 희망이라고도 한다. 인생 전반부의 꿈이 미국 유학이었다면 명저(名著) 집필이 인생 후반부의 꿈이라고 오 교수는 큰 소리로 외치고 싶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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