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재동(코스콤상임감사)

정재동 코스콤 상임감사








요즘 들어 라운딩 횟수가 많아졌다. 영업을 위한 라운딩뿐만 아니라 이런 저런 이유로 그저 횟수만 많아졌다. 중년의 운동으로서 더할 나위 없이 좋은 것이긴 하지만 왠지 귀찮기만 하다. 더러 나의 잦은 라운딩을 부러워하는 이들도 있다.

하긴 제법 잘 나간다는 의미로 보일 수도 있으리라.

얼마 전 라운딩에서 첫 홀에서 버디를 했다. 왠지 예감이 좋다. 이럴수록 더 조심해야 한다. '첫 끗발이 개 끗발이다'라는 말이 있잖은가? 다음 홀도 순조롭다. 허지만 다음 홀에서 그만'더블 파'를 하고 말았다. 그 다음 홀은 다시 버디… 뭔가 할 것 같다.

어느 덧 15번 홀이다. 지금까지 한 것처럼만 하면 '생의 베스트 스코어'를 기록할 수 있을 것 같다. 흥분되기 시작한다. 15번 홀 티 박스로 가는 걸음을 재촉한다. 급한 내 마음과는 다르게 두 팀이나 밀려 있다. 맥이 끊어진다. 조급증이 생긴다. 딴 생각을 하기로 한다. 골프는 인생과 유사하다고 하는 말이 불현듯 떠오른다. 18홀 중에 15번 홀은 내 인생의 어디쯤일까? 딱 지금의 내 나이일 때다. 오늘 라운딩은 지금까지 잘 돼가고 있는데 내 인생은 어떤가?

현재 건강 상태는 생활하는 데 큰 지장은 없다. 오늘도 라운딩을 잘 하고 있지 않은가? 그러나 정기 건강 검진 결과에 무언가 문제가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니 지금과 같은 생활을 계속하면 문제가 될 것이다. 결국은 내 인생의 핸디캡이 될 것이다. 건강이 내 인생의 핸디캡이 되지 않게 하기 위해서는 적어도 현재의 건강 상태는 유지되어야 한다. 현재의 상태라도 유지하려면 지금부터라도 운동을 해야 한다. 밥을 굶으면 죽는 두려움을 느끼듯 운동을 하지 않으면 인생을 성공하기 어렵다는 위기감을 가져야 한다.

건강만큼 중요한데 건강과 같이 무시하고 사는 것이 있다. 가족이다. 우리는'왜사냐'는 질문을 받을 때 가장 흔하게 대답하는 것이"가족을 위해서"라고 말한다. 그런데 정작 가족을 위해서는 시간을 내지 못한다. 시간을 내기는커녕 아예 무시할 때가 많다. 가장 무시당하는 가족이 아마도 아내일 것이다. 친척들은 체면 유지를 위해서 적당히 챙기게 되고, 자식들은 기본적인 책임과 혹시 가능할지 모르는 노후대책으로 생각하여 의도적으로 챙기게 된다. 그리고 부모님들은 고마움, 효심, 체면 등의 이유로 챙긴다. 이런 식으로 챙기다 보면 아내는 빠트린다.

나에게 아내는 어떤 존재인가. 가정을 갖게 해주고, 나를 대신해 자식을 키우고, 바쁜 나를 대신해서 부모님을 챙기고, 더 나아가서는 우리 집의 재무를 담당하여 집도 사고, 노후도 준비하는 사람이다. 아내가 지금까지 해온 일은 내가 같이 했어야 했던 일들이다.

나는 아내와 이렇게 살려고 결혼하지는 않았다. 사랑하고, 사랑하기 때문에 같이 있고 싶어서 결혼했다. 지금이라도 그때 마음으로 돌아가야 한다. 그리고 지금까지 아내에게 밀어뒀던 일들을 같이 해야 한다. 또 결정할 것이 있으면 같이 결정해야 한다. 그리고 내 인생이 아니라 나와 아내 즉, 우리 공동의 인생으로 바꾸어 살아야 한다. 공동의 인생이 되기 위해서는 같이 계획을 짜고 같이 행동해야 한다. 아내를 내 인생의 파트너로서 그것도 내가 사랑하는 사람으로 다시 확인해야 한다. 그런데 아내는 내 이런 생각에 동의할까? 아내가 내 의견에 동의해서 나와 함께 해준다면 다가올 내 인생은 걱정할 것이 없을 것이다.

아내가 내 인생의 파트너라면 인적네트워크는 내 인생의 조력자들 집합체이다. 집합체에 포함된 조력자들이 많으면 많을수록 좋을 것이다. 그러나 조력자들의 수만 많은 인적 네트워크는 바람직하지 않다. 혹자들은 인적 네트워크가 중요하다고 생각하여 네트워크의 크기만 키우는 우를 범한다. 크기만 커진 인적 네트워크는 유지하기 위한 비용만 많이 들고, 관계가 느슨하게 되어 조력이 필요할 때 역할을 다하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

관리하기 편하고 관계가 타이트한 인적 네트워크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영향력 있는 중심인물을 관리하는 방법이 바람직하다. 중심인물은 타인에게 영향력이 가장 큰 사람을 의미하지만은 않는다. 우선 나와의 관계가 믿음과 사랑을 기초로 하는 관계이어야 한다. 이런 관계는 말처럼 쉽게 유지되는 것은 아니다. 내가 먼저 믿음과 사랑을 주고, 내 능력을 끊임없이 개발하여 그들에게 반드시 필요한 사람이 먼저 되어야한다. 그런 다음 도움을 기대해야 한다. 그리고 그들의 능력도 개발되도록 끊임없이 도와야 한다.

인생의 조력자들 중에는 가르침을 주고, 몸소 실천하여 본받게 하고, 끊임없는 사랑과 인내로 잘 되라고 기원하는 사람이 있다. 우리는 이런 이를 스승이라 한다. 그런데 요즈음은 이런 스승을 찾기 힘들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것은 오늘날 스승들은 지식만을 전달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오늘날도 스승의 역할은 과거와 같다고 생각한다. 다만 역할이 세분화되어 각각 다른 사람이 담당하고, 지식을 전달하는 사람만 스승이라 부르기 때문에 생긴 오해라고 생각한다.

오늘날 스승의 역할은 지식을 전달하는 것, 분발하도록 이끌어서 최대의 성과를 내도록 도와주는 것, 어려운 상황에 대해서 토의 후 대안을 제시하는 것, 본인의 삶을 보여주고 따르도록 하는 것 등으로 세분화되어 있다. 만약 이렇게 세분화된 역할을 혼자서 감당하는 스승이 있다면 이 스승은 과거에 조상님들이"스승님"하고 부르던 바로 그 스승일 것이다. 이런 스승을 모시게 되면 스승과 같이 있는 것만으로도 삶이 계속 발전 할 것이다. 나에게는 이런 스승님이 계시다. 그래서 앞으로의 내 인생은 든든하다.

스승들에게 배우고 얻는 것들을 이용하여 우리는 삶을 살아가고, 목표도 달성한다. 그런데 이것만으로는 부족하다고 생각한다. 다른 이들도 모두 이렇게 하기 때문이다. 물론 노력과 타고난 능력에 따라 차이가 있어 스승들의 가르침대로 성장하지 못하는 경우도 많다. 그러나 적어도 내 경쟁자들은 나와 같은 수준으로 노력하고, 능력도 갖고 있기 때문에 추가적인 무언가가 필요하다.

그것은 창조력이다. 갖고 있는 지식과 방법론을 나만의 독특한 방법으로 다른 무엇을 만든 뒤 조금이라도 다른 해법을 찾는 능력을 창조력이라고 생각한다. 창조력은 창의성을 갖고 있어야 만들어진다. 창조성은 현재 수준의 정보, 지식, 방법론 등에서 벗어나야만 만들어 질 수 있다. 하지만 갖추고 있는 것들이 없다면 벗어난다는 것은 근본적으로 말이 안 되고, 벗어나서 새롭게 만든다는 것은 더 더욱 말이 안 된다.

창의성을 키우려면 우선 갖출 것을 갖추고, 그 것을 깨고, 주워진 범위를 벗어나서 새로운 것을 찾는 연습을 끊임없이 해야 한다. 갖고 있는 지식과 방법론에 창의력을 더했을 때 생겨나는 능력을 나는 지혜라고 부르고 싶다. 지혜는 유기체와 같아서 영양분을 계속 공급해 주어야 하고, 최적의 환경을 유지시켜야 되고, 끊임없이 자극해야 한다. 이왕이면 내가 살아가고픈 인생에 도움이 되는 지혜가 많이 쌓이면 좋겠다. 그러면 내 삶이 한결 편해 질 것이다.

편한 삶을 살기 위해서는 일정 규모 이상의 재산도 필요하다. 필요한 재산의 규모에 대해서는 사람마다 생각이 틀리다. 각자가 생각하는 생활을 유지하기에 넉넉한 비용을 기준으로 생각하기 때문이다. 조금 더 깊이 생각한 사람들은 미래의 생활 유지비용까지 포함해서 기준으로 삼는다. 내 기준은 현재의 생활수준을 유지하는데 지장이 없고 미래에도 같은 수준으로 살기 위해 준비하는데 필요한 만큼의 비용만이다. 내가 유지하고 싶은 현재의 생활수준은 잠잘 곳이 있고, 부모 형제 자녀와 먹고 사는데 부족하지 않고, 아플 때 치료받을 수 있는 수준을 뜻한다.

재산이 많으면 성공한 인생인가? 그렇지 않다. 사람은 노동을 하고 성취감을 느끼지 못하면 죽음에 빨리 이르게 된다고 한다. 장수하시는 분들을 보면 끊임없이 몸을 움직인다. 주위에서 안쓰러워"왜 그렇게 일을 많이 하세요?"라고 여쭤보면 늘 대답이 같다. 놀면서 일한다고들 대답하신다. 일에 대한 대가가 미미하기도 하고, 바라지도 않고, 그저 몸을 움직이시는 것이 즐거워서 일을 하고 있다는 말씀일 것이다.

나이가 들면 성취감보다는 즐거움을 위해서 일을 하게 된다. 나는 아직 보상과 성취감을 얻기 위해 일하고 있다. 당분간 이런 일들을 계속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나이가 많아지면 재미있게 살기 위해서 일을 하고 싶다. 만약 지금 내가 하고 있는 일이 재미있으면서 보상도 많이 받는 것이라면 얼마나 좋겠는가. 나는 예술인들이 너무 부럽다. 작업 자체가 얼마나 고통스러운지는 알고 있다.

하지만 예술 활동은 꼭 하고 싶어서 하게 되고, 하면 즐거워서 하지 않는가. 나도 지금의 내 일이 재미있기는 하다. 보상도 많다. 하지만 예술인들처럼 늙어서도 재미있게 할 수 있는 일은 아니다. 내가 하고 있는 일들 중에서 그렇게 할 수 있는 일을 찾아야 한다. 없으면 새로이 준비를 해야 한다. 이왕이면 성과보다는 성취감이나 재미가 있는 것이 좋겠다. 물론 나이가 아주 많아지면 재미만 있어도 될 것이다.

사람들은 살아가는데 일 말고 다른 무언가를 필요로 한다. 사람들은 일정 시간 일하면 쉬어야 한다. 그런데 아무것도 안하고 가만히 쉬기만 하면 심심하다. 그리고 금방 지겨워진다.

지겨워지면 그것이 스트레스가 된다. 이렇게 되면 쉬는 게 아니라 고행이 된다. 그러니까 몰두는 하지만 스트레스는 생기지 않고, 오히려 일에서 받은 스트레스가 없어지게 하는 것이 필요하다.

이것이 취미다. 나에게는 이런 취미가 없다. 물론 이력서에 일부러 써넣는 취미는 있다. 하지만 실제로 도움이 되는 취미는 없다. 취미를 만들어 앞으로의 삶이 활력이 넘치도록 하고 싶다. 이왕 새롭게 만들 취미라면 취미생활을 했을 때 약간의 보상이 가능한 것이면 좋겠다. 취미도 저절로 만들어지지 않는다. 세월, 시간, 그리고 비용을 투자해야만 만들어 진다.

"오너가 누구세요?"," 나야. 조금 전에 거리가 얼마라고 그랬지", "150미터요!", "한번 말씀드릴 때 잘 들으시지 않고…."오늘 라운드 중에 제일 중요한 홀인데 너무 오래 기다렸다. 게다가 캐디의 태도가 자꾸 마음에 걸린다. 그린도 포대그린이라 그린주변의 상황이 머리에 그려지지 않는다. 불안하다. 이번 홀이 15번이니까 이번에 파만 세이브하면 나머지 홀들 중'보기'가 나와도'생의 베스트 스코어'를 달성할 수 있으리라. 그런데 집중이 되질 않는다. 이럴 때일수록 침착해야 한다. 가볍게 연습 스윙을 하고, 견고한 셋업을 한다.
스윙이 두렵다.' 머리를 박고',' 힘을 빼고', 티에 올려놓았던 공이 눈앞에서 사라지고, "탁"하는 소리가 귀에 들린다. 타구감이 좋다. 재빨리 머리를 들어 공을 뒤쫓는다. 공은 안보이고 대신에 햇빛만 눈에 꽉 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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