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해석 교수
오호 통재(嗚呼痛哉)라, 아깝고 불쌍하도다. 당신을 전공(專攻)으로 얻어 수족(手足)처럼 부린 지 우금(于今) 삼십년이라. 어이 정분(情分)이 그렇지 아니 하리요. 슬프다. 눈물을 잠깐 거두고 심신(心身)을 겨우 진정(鎭定)하여, 당신의 행장(行狀)과 나의 회포(懷抱)를 총총히 적어 영결(永訣)하고자 하노라.
30년 전(前), 대한의 수도 북쪽에 있는 불암산(佛岩山)과 남쪽에 있는 관악산(冠岳山)을 오가며 당신과의 교분(交分)을 시작하여, 십 수 년 전에는 일본 동경(東京)으로 건너가 일본 땅에서 활약하는 당신을 접한 후에, 당신의 탄생지인 미국 실리콘밸리에 체재(滯在)하며 당신이 뿌린 씨앗 여러 쌈을 받아와, 문하생과 인근 기업(企業)에게 보내고, 조정에도 쌈쌈이 나눠 주며 자나 깨나 당신을 택(擇)하여 손에 익히고 머리에 넣어 애지중지(愛之重之) 하였건만, 오 애제(哀哉)라. 연분(緣分)이 비상(非常)하여, 당신을 무수(無數)히 괴롭히며 부려먹었으되, 당신만은 연구(年久)히 동거(同居)하리라 하며 살아왔으니, 비록 무심(無心)한 기술(技術)에 불과하나 어찌 사랑스럽고 미혹(迷惑)지 아니하리오. 아깝고 불쌍하며, 또한 섭섭하도다.
나의 처세술(處世術) 빈약(貧弱)하여 이 나이 되도록 엮은 것은 아이티 인맥(人脈)뿐이요, 심성(心性)이 빈궁(貧窮)하여 후학(後學)에 마음을 붙인 고로, 당신으로 하여 생애(生涯) 도움이 적지 아니하더니, 오늘 당신을 조정 뜰에서 영결(永訣)하니, 오호 통재(嗚呼痛哉)라, 이는 귀신(鬼神)이 시기(猜忌)하고 하늘이 미워하심이로다.
아깝도다. 아이티여, 어여쁘다 정보기술(情報技術)이여, 너는 미묘(微妙)한 품질(品質)과 특별(特別)한 재치(才致)를 가졌으니, 기술(技術) 중의 명물(名物)이요, 도구 중의 쟁쟁(錚錚)이라. 민첩(敏捷)하고 날래기는 백대(百代)의 협객(俠客)이요, 굳세고 곧기는 만고(萬古)의 충절(忠節)이라. 비호(飛虎) 같은 동작은 바람 부는 듯하고, 빈틈없는 총명(總名)함은 이 세상 천재를 다 모은 듯한지라. 능라(綾羅)와 비단(緋緞)에 난봉(鸞鳳)과 공작(孔雀)을 수라도 놓는 듯한 당신의 예술(藝術) 솜씨, 그 우아하고 신기(神奇)함은 귀신(鬼神)이 돕는 듯하니, 어찌 하찮은 우리네 인력(人力)에 비유 하리요.
오호 통재(嗚呼痛哉)라, 자식(子息)이 귀(貴)하나 손에서 놓일 때도 있고, 제자들은 순(順)하나 명(命)을 거스릴 때도 있나니, 너의 미묘(微妙)한 재질(才質)이 나의 전후(前後)에 수응(酬應)함을 생각하면, 자식과도 같고 제자 이상이라 칭찬(稱讚)하고 싶은지라. 천은(天銀)으로 지은 집에 기거하며, 오색(五色) 찬란한 화면으로 자태(姿態)를 뽐내니, 남녀노소(男女老少)의 으뜸가는 노리개라. 밥 먹을 적 잠잘 적만 빼고는 널로 더불어 벗이 되어, 여름 낮에 주렴(珠簾)이며, 길고 긴 겨울밤 텔레비전 대신에 당신만을 상대(相對)하여 두드리며, 긁으며, 밀며, 훑으며, 머리를 쥐어 짜서 결실을 얻어 보니 봉미(鳳尾)를 두르는 듯, 수미(首尾)가 상응(相應)하고, 전후(前後)가 합치하니 조화(造化)가 무궁(無窮)하도다. 이생에 백년 동거(百年同居)하렸더니, 오호 애재(嗚呼哀哉)라, 아이티여.
금년 이월 중순경 모일 술시(戌時)에, 삼각산 정자 아래서 사모관대(紗帽冠帶) 요란한 나리들이 모여 만사형통(萬事亨通)하는 현란한 솜씨로 깃을 달다가, 무심중간(無心中間)에 자끈동 부러지니 깜짝 놀라 와라. 아야 아야 두 동강이 났구나. 정신(精神)이 아득하고 혼백(魂魄)이 산란(散亂)하여, 마음을 빻아 내는 듯, 두골(頭骨)을 깨쳐 내는 듯, 이토록 기색혼절(氣塞昏絶)하였다가 겨우 정신을 차려, 만져 보고 이어 본들 속절없고 하릴없다. 편작(扁鵲)의 신술(神術)로도 장생불사(長生不死) 못하였네. 동네 장인(匠人)에게 때 이련들 어찌 능히 때 일손가. 한 팔을 베어 낸 듯, 한 다리를 베어 낸 듯, 아깝도다! 아이티여, 여기를 보아도 저기를 보아도, 뛰놀던 자리는 따끈하게 그대로 남아있네. 오호 통재(嗚呼痛哉)라, 내 인맥(人脈)이 박(薄)하고 식견(識見)이 미천(微賤)하여 내 일에 정신에 팔려 미처 당신을 구하지 못하였으나 그래도 혹자(或者)는 이 상사(喪事)를 일컬어 소탐대실(小貪大失)이라 혹평(惑評)하지 않겠나.
무죄(無罪)한 당신을 마치니, 백인(伯仁)이 유아이사(由我而死)라, 누를 한(恨)하며 누를 원(怨)하리요. 당신의 능란(能爛)한 성품(性品)과 공교(工巧)한 재질을 나의 미약한 힘으로 어찌 다시 회복하리요. 절묘(絶妙)한 의형(儀形)은 눈 속에 삼삼하고, 특별한 품재(稟才)는 심회(心懷)가 삭막(索莫)하다. 당신 비록 기술(技術)이나 무심(無心)하지 아니하면, 후세(後世)에 다시 만나 평생 동거지정(平生同居之情)을 다시 이어, 백년고락(百年苦樂)과 일시 생사(一時生死)를 한 가지로 하기를 바라노라. 오호 애재(嗚呼哀哉)라, e대한민국이여!
오해석 경원대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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