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축년(己丑年) 새해를 맞는 모든 업계의 가장 큰 소망은 지금의 경제 위기와 불황을 가능한 빨리 벗어나는 일일 것이다. 그리고 기업이나 개인에게 또 다른 기대가 있다면, 지금의 위기가 기회로 변하는 시기를 잘 타서 승자의 위치에 서는 일일 것이다. 위기는 곧 기회라는 데에 이견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기회를 잡기 위해 변화를 어떻게 이끄는가에 따라 향후 승자와 패자의 명암이 뚜렷하게 갈릴 것이다.
위기에서 기회를 준비하는 방법-'차별화된 경쟁력' = 위기를 기회로 삼기 위해서는 차별화된 경쟁력을 갖춰야 한다. 경제 호황기에는 누구나 순조롭게 성장할 수 있다. 그러나 불황기에는 많은 기업들이 어려움을 겪고 도태된다. 반면에 남들이 따라잡을 수 없는 경쟁력을 갖춘 기업은 오히려 시장 점유율과 지배력을 확대할 수 있다.
우리 시대가 필요로 하는 경쟁력이 어떤 것인지 파악하려면, 먼저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주변 환경에서 혁신이 필요하다. 시급히 개선되어야 할 비효율이고, 낭비적인 것들이 무엇인지를 살펴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지금의 경제 위기가 초래된 원인중 하나로 금융기관들이 각종 파생 상품의 리스크를 추적하여 분석하고 예측할 수 있는 '똑똑한(Smart) 시스템'을 갖추지 못했던 점이 꼽히고 있다. 이로 인해 금융 위기가 실물 경제로 전이되면서 그야말로 전 지구적인 경제 위기를 겪게 된 것이다.
우리는 지금, 경제 위기를 계기로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이 얼마나 복잡하게 얽혀 있는지 새삼 깨닫게 되었으며, 동시에 글로벌 차원에서 경제, 기술, 사회적으로 통합되어 있는 환경이 초래할 수 있는 위험성에 대한 경각심도 생기게 되었다.
기존 시스템의 비효율과 낭비, 그러나 해결 역량은 이미 있다 = 글로벌 통합 환경에서는 경제 및 사회 곳곳에 숨어 있는 문제들이 다른 영역의 문제들과 얽히면서 예측하기 힘든 변화를 초래하기 쉽다. 한 보고서에 따르면,
• 지능적이지 못한 송배전 시스템으로 인한 전기 에너지 손실량은 전세계적으로 40~70%에 달한다.
• 미국에서는 교통 혼잡으로 인해 연간 780억 달러의 비용이 들며 42억 시간과 29억 갤런의 휘발유가 낭비되고 있다.
• 공급망의 비효율성으로 인해 전세계 소비재 산업은 400억 달러의 매출 손실을 초래하며, 이는 전체 매출의 3.5% 규모이다.
• 전세계적으로 물 사용량은 1990년대 이래 6배나 증가했고, 이는 인구증가율의 2배에 해당되는 규모이지만, 수자원 관리의 낙후성으로 인해 물 공급에 위기가 예상되고 있다.
이같은 비효율과 낭비는 글로벌 기후 변화나 에너지를 둘러싼 환경적이고 지정학적인 이슈, 글로벌 공급망에 의존하고 있는 식품과 의약품에 대한 이슈, 복잡한 이해의 충돌로 생기는 국가적인 안보 이슈 등과 얽혀 앞으로 수많은 변화를 초래할 것이다.
다행스러운 것은, 이러한 문제들을 해결할 수 있는 능력이 이미 우리들에게 주어져 있다는 것이다. 오늘날의 세계를 뒷받침하고 있는 정보통신 인프라스트럭처는 복잡하게 얽혀서 기능화되고 상호 연결되고 있을 뿐 아니라 지능화되고 있기 때문이다. IBM의 샘 팔미사노 회장은 이와 관련, 지난 11월 개최된 비즈니스 리더십 포럼에서 "우리는 인류 역사상 최초로 거의 모든 것을 디지털적으로 인식할 수 있고 상호 연결되고 있다"고 언급한 바 있다.
• 우선, 세계는 점점 기능화(instrumented) 되어 가고 있다. 2010년까지 인구 1인 당 사용하는 트랜지스터는 수십억 개에 이를 것이며, 트랜지스터 1개의 가격은 1천분의 1센트로 낮아질 것이다. 조만간 전세계 휴대폰 가입자가 40억 명에 달할 것이고 2년 안에 300억 개의 RFID 태그가 생산될 전망이다. 다양한 센서가 공급망 사슬, 의료 네트워크, U-city를 비롯, 심지어 강과 같은 생태계에까지 모든 생태계에 내장될 것이다.
• 둘째, 세상은 상호 연결(interconnected)되어 가고 있다. 조만간 20억 명이 인터넷을 사용하게 될 것이며, 다양한 디바이스를 통해 전례 없는 방식으로 웹상에 접속하게 될 것이다. 또한 자동차에서 비행기, 카메라, 도로, 파이프, 의약품과 가축에 이르기까지 서로 연결되고 지능을 갖춘 1조 개가 넘는 시스템과 사물들이 '스스로 소통'하며 존재하게 된다. 이 모든 것들이 상호 작용을 통해 생성할 수많은 정보의 양은 가히 상상하기 조차 힘들 것이다.
• 셋째, 모든 것이 지능화(intelligent)되어 가고 있다. 강력한 처리성능을 가진 컴퓨터 및 컴퓨팅 '클라우드'를 통해 엔드 유저 디바이스, 센서, 액추에이터 등에서 생성되는 어마어마한 양의 데이터를 손쉽게 처리하고, 모델링하며, 예측 및 분석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첨단 분석 기법과 결합된 수퍼컴퓨터들은 엄청난 데이터를 실제 행동으로 변환시키는 지능으로 전환시킬 수 있으며, 이를 통해 우리의 시스템과 프로세스를 보다 '똑똑하게' - 더욱 효율적이고 생산적이며 변화에 신속 대처할 수 있게 - 해줄 것이다.
이처럼 저렴한 가격에 곳곳이 연결된 네트워크, 첨단 기술력이 넘쳐 나는 환경은 앞서 언급한 전지구적인 이슈들을 충분히 해결할 가능성을 우리에게 제시하고 있다.
경쟁력의 관건은 '똑똑한 시스템' = 우리가 고민해야 하는 것은, 다양한 기업과 조직, 정부 기구들이 어떻게 하면 새로운 방식으로 기술을 적용하여 변화에 탄력적으로 대처할 능력을 갖출 수 있게 하는가이다. 즉, 재화의 개발과 생산, 구매와 소비, 서비스, 인력과 자본, 석유와 수자원, 그리고 수십억 인류의 일상 생활에 이르기까지 세상이 돌아가는 방식 - 시스템과 프로세스 - 에 지능을 불어 넣는 방법에 대한 것이다.
보다 스마트한 시스템과 프로세스를 갖춤으로써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을 보다 똑똑하게 만들 수 있는 영역과 그 가능성은 교통시스템, 유전개발, 식량, 보건, 에너지 자원 관리, 유통망, 수자원 관리, 공급망 관리, 기후, 지역 개발, 도시 인프라 등 무한히 펼쳐져 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이와 같은 '똑똑한 시스템'들은 지금의 글로벌 경제 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방안인 동시에 국가와 기업의 경쟁력을 좌우하는 기본 요소가 된다는 점이다. 글로벌 통합 경제에서 투자와 업무의 흐름은 비용 우위, 기술과 전문성을 제공하는 곳으로만 집중되지 않고, 스마트한 인프라 즉, 효율적인 교통체제와 현대화된 공항, 안전한 무역로, 신뢰할만한 에너지 네트워크, 투명하고 신뢰받는 시장, 그리고 향상된 삶의 질을 제공함으로써 공공의 효익을 창출하는 국가, 지역, 도시로 흘러가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에서도 최근 경기부양책의 일환으로 사회 인프라스트럭처에 대한 투자가 거론되고 있는데, 사회, 경제 전반의 인프라스트럭처에 '똑똑한 시스템'을 결합할 수 있다면 이는 한국의 국가경쟁력을 제고시키는데 크게 기여할 것이다. 다른 나라의 예를 들어 보면, 스톡홀름시에서는 지능형 교통시스템을 도입하여 교통체증을 20% 줄였고, 배기가스도 12% 감소시켰으며, 대중교통 이용자 수를 4만 명 증가시켰다. 현재 이 시스템은 런던, 브리즈번, 싱가포르 등에 속속 도입되고 있다. 또한 미국 38개주 200만 환자를 대상으로 진행되고 있는 지능형 의료시스템은 전체 치료비용을 90%까지 낮출 수 있을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의사결정과 관리시스템을 지능화시키자 = 기업 차원에서도 마찬가지로 이러한 똑똑한 시스템을 갖추는 것이 향후 경쟁력의 관건이 될 것이다. 예를 들어, 소비재 산업의 경우 최종 사용고객에 대한 정보가 부족하거나 있어도 활용도가 크지 않은 경우가 대부분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지금까지 활용하지 않았던 이런 정보를 '똑똑한 시스템'을 통해 축적하고, 분석하고 활용할 수 있다면 기업의 경쟁력은 크게 강화될 수 있을 것이다. 현재 유전 분야에서는 매장량의 20~30% 밖에 추출할 수 없는데, 지능화된 유전 기술을 활용하면 기존 유정의 생산성을 향상시킬 수 있다. 북유럽 지역에서는 현재 RFID 기술을 적용한 스마트 푸드 시스템을 활용하고 있는데, 목축장에서 소매업자에 이르는 육류의 모든 유통과정을 추적하여 안전한 먹을거리를 제공할 수 있다.
똑똑한 시스템을 만들기 위해 중요한 것은 정부와 기업, 학계는 물론 공급자, 파트너, 협력업체, 유통채널, 고객 등 다양한 이해 당사자들 간의 긴밀한 의사소통과 협업(Collaboration)이다. 모든 것이 통합되어 서로 얽혀 있는 환경에서 소수에 의존하는 의사결정으로는 성과를 거두기 어렵기 때문이다.
아울러 프로세스를 더 신속하고 효율적으로 만드는 것에만 신경을 쓰기보다, 의사결정과 관리시스템을 끊임없이 지능화 시키는데 노력을 집중해야 한다. 정부와 기업의 지도자들이 적절히 기회를 포착하여 보다 스마트한 시스템에 투자를 집중한다면, 차세대 성장 동력을 마련하는 동시에 우리의 삶을 보다 풍요롭게 만들 수 있을 것이다.
보다 똑똑한 세상(Smarter Planet)을 만들어야 하고, 만들 수 있는 역량이 우리에게는 있다. 새해에는 우리 모두 단순히 살아남기보다 변화의 게임에서 승리할 수 있는 리더들이 되기를 기대해 본다.
이휘성 한국IBM 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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