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달 말 지경부가 'SW산업 발전방안'을 내놓았다. SW는 명색이 이번 정부가 심혈을 기울여 추진하고 있는 6개 분야 22개 신성장동력 중의 하나다. 정통부를 해체하고 몇 개의 IT관련 부처가 각개전투를 벌여온 지 열 달이 다되도록 별다른 소식이 없던 차에 소프트웨어 산업을 본격 육성하겠다는 정부의 의지가 표출된 것이다. 소프트 업계로선 더할 나위 없이 반가운 일이다. 'SW산업 발전방안'의 골자는 ① SW와 서비스업의 융합을 통한 새로운 시장 창출, ② SW와 제조업의 융합을 통한 국가 전략산업의 경쟁력 강화, ③ SW산업의 역량 강화 등이다.

그런데 실천계획을 보니 뭔가 허전하다. 서비스업을 통한 시장 창출, 제조업을 통한 임베디드 소프트웨어 활성화 등은 이미 잘 알려진 사실이다. 특별히 기대를 모은 'SW산업 역량 강화'는 그 내용이 빈약하다 못해 실망스럽다. 소프트웨어 업계의 건전한 생태계 조성을 위한 업그레이드 된 SI업 규제, 소프트웨어 분리발주에 대한 강한 의지 등이 그나마 눈길을 끌었지만 결국 재탕에 불과하다. 인력 양성, 기반기술력 제고, 해외진출 활성화 등의 의지 표명은 거창하게 하고 있지만 실천계획은 좀 심하게 표현하자면 아이디어 몇 개로 땜질하는 수준이다. 소스코드를 재활용하고, 해외장학생 프로그램을 신설하고….

그리고 발전방안은 소프트웨어산업에 대한 정부의 입장이 어떤 것인지를 단호하게 천명했다. "금번 'SW산업 발전방안'은 그간의 정부정책이 SW산업의 성장에 초점을 맞춘 것에서 벗어나, 신규 시장과 부가가치를 창출하기 위한 SW의 역할을 극대화하기 위한 의지가 반영된 것"이라는 것이다. 또한, "SW산업계도 과거 정부주도의 정보화사업에 의존했던 것에서 벗어나 새로운 서비스모델을 발굴하고 해외진출을 활성화하는 등 새로운 수익창출의 기본 틀을 만들어가야 한다"고 요구했다. "이번 방안이 그 계기가 될 것"이란 자신감과 함께.

예전 산자부의 전통이 그대로 살아있는 지경부의 이번 방안을 보고 고민되는 게 많다. 국내 소프트업체들이 거대한 융합시장에서 얼마나 수익을 올릴 지, 과연 그럴만한 역량은 지니고 있는 지. 소프트웨어 산업발전을 위한 장기적인 R&D 계획은 필요없는 것인지. 머리 좋고 고급일자리만 찾고자 하는 대량 청년 실업자들을 소프트웨어를 기반으로 한 지식산업으로 유인하는 범국가적 대형 프로젝트를 추진해볼 의지는 정말 없는지. 끝내 소프트웨어산업 그 자체를 동력화 하기 위한 예산 지원은 사실상 한 푼도 없을 것이지.

지경부의 발표가 있은 며칠 후인 11월 3일, 마이크로소프트사의 스티브 발머 CEO가 청와대를 방문, 선물 보따리를 풀었다. 한국에 향후 3년간 6천만 달러를 투자하겠다고 밝힌 것이다. SW분야 글로벌 상생협력을 위해서 우리나라의 SW분야 인재양성, 신생 SW기업 육성, 해외진출지원 등 3개 분야를 키우겠다는 것이다. 우리나라 기업도 아닌 미국 민간 기업인 마이크로소프트사가 우리나라 소프트산업을 위해 거금을 투척하겠다니….

이를 두고 무턱대고 기뻐해야 할 일이 아니라는 것은 삼척동자도 다 안다. 마이크로소프트사의 투자목적이 무엇인지 다 알기 때문이다. 우리 정부가 역점을 두고 펼치는 융합산업의 단 꿀을 마실 준비가 돼 있는 마이크로소프트의 역량과 오픈소프트웨어의 꿈을 지피고 있는 아시아 지역의 핵심주체인 한국의 위상을 생각하면, 6천만 달러는 어쩌면 조족지혈일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이크로소프트의 투자가 반갑다는 게 솔직한 심정이다.

우리 스스로 우리의 소프트웨어 산업의 가능성을 내팽개치는 판에 우리의 잠재력을 알아봐주고 투자를 아끼지 않겠다는 자가 있으니, 어찌 고맙게 여기지 않을 손가. 이왕 반갑게 맞이할 마음의 준비가 돼 있으니 IBM도 HP도 오라클도 다 나서는 게 어떤가.

정부의 내수진작에 힘입어 건설업계는 곧 부흥회라도 열 것 같은 분위기인데, 대표적인 국산소프트 업체들은 구조조정 소식만 날린다. 뭐 그다지 구조조정할 만한 살림살이도 아닐 텐데, 이래저래 마냥 심란하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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