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IT산업은 '융합'과 '정보화'라는 두 갈래 큰 길을 내고 달려가고 있다. 이를 두고 '뜨는 융합', '지는 정보화'라는 시류어도 나돈다. 시장 상황을 감안하면 이러한 시류에 수긍이 가기도 한다. 우선 심리적으로도 융합시장은 광대무변한 영역을 향해 질주하고 있는 듯하다. 이에 비해 정보화 시장은 뭔가 답답한 정체기에 접어들었다는 느낌이 강하다. 이 때문에 IT산업을 성급하게 사양 산업으로 치부해버리는 시각도 만만치 않다.

백전호 논설주간



구조 조정기에 빠져든 정보화 시장
실제로 IT산업의 텃밭인 정보화 시장은 과거에 비하면 팍팍하다. IT공급자들이 제품을 팔아봤자 별로 남는 게 없는 시장구조에 빠져든 것이다. 한때 IT업계는 무려 50~60%라는 터무니없이 높은 마진율을 누렸던 적도 있다. 이때는 정보화 시장이 막 열리던 초창기의 일이니 비교할 가치가 없지만, 불과 10년 전 안팎을 둘러보면 20~30%의 이익을 챙기는 비교적 호황기가 있었다. 이처럼 잘나갔던 과거를 생각하면 요즘 정보화 시장은 그야말로 초토화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처럼 초토화된 정보화 시장을 두고 '구조 조정기'에 들어섰다는 진단이 내려진다.

정보화 시장이 구조 조정기에 들어선 것은 분명한 것 같다. 얼핏 봐도 공급과잉에 눈에 띌만한 수요 확대는 없다. 줄기차게 신기술 퍼레이드를 펼치며 달려온 세월이 쌓일 만큼 쌓여 이제는 정보화의 발길이 닿지 않은 곳이 없다. 정보화의 중요성을 역설하는 것은 새삼스런 일일뿐더러, 오히려 시행착오의 부산물들이 곳곳에 산재해 수요 창출의 발목을 잡고 있기도 한다.

일반적으로 공급은 많고 수요의 증가폭은 제자리인 수급 불균형의 시장은 공급자가 적정 수가 될 때까지 줄어드는 것이 해결의 상책이다. 예컨대 서버, 스토리지, PC, 각종 솔루션 등을 공급하는 분야별 업체수가 2~3개로 정리되는 것을 말한다. 이른바 시장자율경쟁에 의한 생존과 도태의 구조조정을 거쳐 시장이 안정기에 들어선다는 논리이다. 지금 업계에는 정보화 시장이 이러한 고착기를 향해 진입하고 있다고 보는 견해가 설득력 있게 전파되고 있다. 그래서인지 이 고비를 버티기만 하면 언젠가는 안정된 시장을 공유할 수 있다는 생각의 똬리를 심중에 틀고 있는 업체들도 없지 않다.

구조 조정의 요체는 '질적 대변혁'
정보화 시장이 구조조정을 겪고 있으며, 또한 그 과정을 치러야 한다는 데는 이견이 없어 보인다. 하지만 그 진단과 전망, 그리고 대처방법에 있어서 단순히 현재의 수급현황만을 가지고 예단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 시장구조를 보다 정밀하고 내밀하게 들여다봐야 한다는 것이다.

우선 정보화 시장의 수요가 정체상태에 놓여 있는 원인부터 분석할 필요가 있다. 관점의 차이는 있겠지만, 정보화의 과잉 현상을 원인의 전부로 보는 것은 다소 성급한 것 같다. 현재 상황이 공급과다인 것은 분명하지만 정보화의 질적 수준에서 놓고 보면 반드시 그렇지만은 않다는 생각이다. 요컨대 정보화의 고도화라는 명제를 시장이 절체절명의 과제로 받아들인다면 이야기가 달라질 수도 있다는 것이다.

고도화란 이른바 'IT=비즈니스'라는 등식이다. IT가 비즈니스의 전 과정을 책임지는 것을 말한다. 이는 IT가 비즈니스를 생성하고 수익을 창출하는 수단으로서 뿐만 아니라 지능적으로 전략을 구사하는 것을 의미한다. 특히 기업들은 IT가 궁극적으로 비즈니스의 성공을 책임지는 전략적 지휘체계를 구족하기를 요구하고 있다.

이러한 요구는 무엇보다도 기업의 비즈니스 환경 변화에 기인한다. 오늘날 기업의 경쟁무대는 곧바로 글로벌 시장이다. 그 기업이 세계 어느 곳에 위치해 있든, 상품이나 서비스가 무엇이든 글로벌 경쟁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 아무리 특정 지역, 특정 수요처를 겨냥한 상품이라 할지라도 글로벌 경쟁을 벗어날 수 없다. 전 세계의 FTA화는 기정사실로 받아들여지고 있고, 무엇보다도 인터넷을 통한 세계의 정보화는 이른바 니치마켓이나 블루오션의 시장을 결코 오래 놔두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기업에게 있어 글로벌 시장이란 거대한 수요처임과 동시에 보다 치열하고 보다 비좁아진 경쟁을 의미한다.

이처럼 역동적인 비즈니스 세계가 펼쳐지고 있는 21세기 기업들의 IT에 대한 요구는 지금까지와는 그 질을 달리할 수밖에 없을 터이다. IT는 지금 IT에 대한 강한 회의와 마지막 기대가 뒤섞인 변혁의 극점에 도달해 있다고 볼 수 있다. IT에 대한 마지막 기대란, IT가 진정으로 산업혁명의 대를 끊고 정보기술 혁명을 완성하는 것을 말한다. 구체적으로, 산업사회식 기업구조에 맞춰 온 IT를 진정한 정보사회식 기업구조의 IT로 대 변혁시키려는 거대한 흐름으로 볼 수 있다는 얘기다.

IT 주체들의 환골탈태가 시장을 부흥시킨다
결론적으로 정보화 시장은 질적 변혁을 주제로 구조 조정에 직면해 있으며, 한편으로 거대한 새로운 수요의 창이 열리고 있음을 의미하기도 한다. 문제는 정보화 시장이 고도화 시장으로 얼마나 빨리 진화해 가느냐이다. 대체로 고객의 요구는 충만해 있다. 그 근거가 최근 1~2년 사이에 쏟아져 나오고 있는 고객들의 IT관련 요구사항들이다. 각종 리서치 결과를 통해 나타난 고객들의 요구사항은 대략 3가지로 요약된다. 첫 번째는 IT의 고비용 구조를 타파하는 것이고, 두 번째는 비즈니스혁신을 위한 IT의 재정비 및 진화작업이다. 그리고 총체적으로 인텔리전트한 IT구조를 구축하는 것이다.

이 같은 고객의 요구에 반해 IT는 아직 제 역할을 다할 준비를 하지 못한 상태다. 물론 공급업체들은 하루가 멀다 하고 고객의 구미를 유혹할 만한 신기술들을 쏟아내고 있다. 하지만 이런 신기술들은 개념적으로는 그지없이 합당할지 몰라도, 실제로는 고객들이 요구하는 질적 수준에 도달하기에는 한참 멀리 있는 실정이다. 한마디로 공급이 수요를 받쳐주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아직 정보화 시장이 고도화를 계기로 제2의 부흥기를 맞이할지, 그 시장이 얼마나 크고 실속이 있을지는 더 두고 봐야 한다. 하지만 최소한 정보화 시장이 이대로 침체일로에 빠져든 것만은 아니라는 점을 강하게 일러주고 있다. 관건은 공급업계가 정보화 시장을 얼마나 빨리 고도화 시장으로 리드해 가느냐에 있다. 당연히 지금과 같은 팸플릿 나열식 마케팅 방식으로는 고객들을 설득할 수 없다. 뭔가 실증적으로 보여주어야 한다.

정보화 시장은 이제야 본격 무한대로를 달리기 위한 출발점에 서 있다고 본다. 정보화시대가 이제 열리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무한대로를 타고 달릴 수 있는 자격은 아무에게나 주어지지 않는다. 무엇보다도 IT주체들, 특히 공급업계의 '질적 변혁'이 시급하다. 동시에 정부를 비롯 모든 관련 분야의 정보화 시장과 산업에 대한 근본적인 인식변화가 필요한 시점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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