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업계는 지금 신기술 경쟁으로 몸살을 앓고 있는 듯하다. 실제로 업계에서는 기술발전 속도가 시장 성장 속도를 너무 앞질러 나가는 게 아니냐는 지적도 있다. 마치 멈춰서면 쓰러지는 자전거를 타고 경주라도 하는 양, IT업계의 신기술, 신개념 다툼은 가속페달을 늦추지 않는다.

IT업계의 신기술 경쟁은 당연한 현상이다. 무어의 법칙이 그렇듯 우선 반도체 기술의 눈부신 발전이 IT를 잠시도 멈춰 서 있게 하지 않는다. 또한 그 속성상 지극히 유기적인 시스템을 형성하고 있어 하드웨어, 소프트웨어, 네트워크, 보안 그리고 온갖 디바이스들이 어우러져 서로의 발전을 부추기고 있다.

성능이 월등해진 정보기술이 나오면 그 것은 정보화의 질을 높이는 것이니 나무랄 일이 아니다. 하지만 이것들에 대한 요즘 관련업계 분위기는 쌍수를 들고 환영하는 눈치는 아닌 것 같다. 여러 원인이 있겠지만, 가장 큰 이유는 데이터센터들의 고민을 단숨에 해소시킬 만한 획기적인 신기술이라든가, 신개념이라기보다는 벤더들의 상술이 더 진하게 묻어있는, 포장된 기술이 너무 많기 때문일 것이다.

이 때문에 일어나는 부작용도 만만치 않다. 길게는 IT의 공급 과잉 현상이 2000년 전후를 기점으로 해소되지 않고 있다. 이는 IT시장의 오랜 정체기가 증명해준다. 단기적으로는 벤더들의 무차별적인 신기술 공급이 데이터센터들을 혼란스럽게 하고 있다. 새로운 IT의 출현이 데이터센터의 소화불량을 더욱 가중시키고 있다는 것이다. 최근 차세대라는 이름으로 쏟아지는 신제품들도 그렇다. 이것들이 과연 유익한 데이터센터를 약속해줄 것인지, 아니면 신개념의 덫으로 변해 우환덩어리가 돼 버릴지 아무도 모르는 일이다.

이제 IT없이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사용자들은 그렇지 않아도 각종 컴플라이언스에 종종대고, 관리에 시달리고, 덜 익은 정보화의 고도화에 매달리느라 여념이 없다. 벤더들마다 이러한 사용자들의 고민을 해소시켜주겠다며 신기술을 내미는데, 사실 이런 현상은 오래전부터 있어왔던 일이다. 저마다 고객지향적인 제품, 고객감동의 서비스를 외쳐대지만 이 또한 귀 따가운 구호가 된 지 오래다. 그다지 고객 지향적이지도 감동적이지도 않았다는 것이다

IT벤더들의 속도조절이 필요한 시점에 와 있다는 지적을 새겨들어야 할 때인 것 같다. 신기술 개발을 등한시 하라는 것이 아니다. 사용자들이 확신을 갖고 사서 쓸 수 있는 기술을 제공하라는 것이다. 수년 전만 해도 제품 자체의 결함이 문제가 되곤 했다. 하지만 요즘은 그런 경우는 드문 것 같다. 그만큼 IT가 발전한 것이다. 그런데 그 눈부신 신기술이 문제가 되곤 한다. 'IT가 곧 사용자의 경쟁력이요, 수익창출의 원동력'이라는 진화된 목표에 부합하지 않은 신기술은 신무기가 아니라 곧바로 군더더기가 되어버리기 때문이다. 사용자 환경에 맞지 않아 삐걱거리고 결국은 엄청난 피해만 안겨주는 팔고보자식 공급은 더 이상 없어야 한다는 것이다. 실제로 이 같은 사례가 늘고 있음을 심각하게 받아들여야 한다.

IT벤더들의 입장에서도 신기술 경쟁에 대한 지금까지의 자세를 돌아다 볼 필요가 있다. 세계적으로 IT시장의 성장률은 한자리수를 면치 못하고 있다. 웬만한 IT 기술은 거의 나와 있는 것이 그 한 요인일 수도 있다. 뚜렷한 성장 동력이 없는 셈이다. 그렇다면 IT벤더들의 경쟁력은 어디에서 찾을 것인가. 지금은 사용자들에게 신기술을 어필하기 보다는 잘 익은 기술을 제공하는 그야말로 실질적인 고객지향적인 파트너가 되는 것이 그 해답일 것 같다.

IT의 발전은 끊임없이 지속될 것이다. 2050년경에 이르면 인간과 기계의 격차가 없어질 것이라는 어느 IT업체의 전망대로라면 그 기술발전의 끝은 과연 어디일까? 그리고 그 속에서 어떤 공급업체가 살아남을까? 사용자에게 이식되는 순간, 즉시 피가 순환되고, 아무런 부작용을 일으키지 않은 그런 기술을 제공할 줄 아는 벤더가 아닐까 생각해본다.

저작권자 © 아이티데일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