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중국, 동남아로...해외 시장서 최첨단 IT 활용력 인정

국내 금융IT의 해외진출이 점점 더 활기를 띠고 있다. 그동안 아낌없이 투자해온 국내 금융권의 IT활용기술이 이제 해외 시장에서 그 진가를 발휘할 때를 맞이하고 있는 것이다.

금융IT의 수출은 금융권 전산자회사 및 일부 중견SI사가 주도하고 있다. 이들은 현재 일본, 중국, 동남아 등에 진출, 교두보를 확보하고 있으며 상당한 진척을 보이고 있다. 이들 업체들은 불과 수년 전만해도 우리나라 금융 IT의 벤치마킹 대상이었던 일본의 금융권에도 솔루션을 팔 수 있는 경쟁력을 갖췄으며, 동남아 시장의 경우, 우리나라 인력 및 솔루션 비용이 동남아 물가에 비해 크게 비싼데도 불구하고, 금융 IT 기술이 각광 받고 있다.

우리나라의 금융IT 수출은 일부의 경우를 제외하고는, 대다수가 아직 단위 프로젝트, 단일 솔루션 공급 등에 머물러 있다. 한 고객 당 많게는 수천억 수준의 국내 시장에 비하면 그 규모가 보잘 것 없다. 그러나 수출업체들은 이렇게 확보한 교두보를 바탕으로 향후 차세대 프로젝트 등을 거쳐 선진화 된 국내의 금융 IT 시스템을 통째로 적용할 기회를 엿보고 있다. 궁극적으로 전사적 SI 사업자로서의 위치를 확보하겠다는 게 이들의 전략이다.

◆개발도상국 경제발전에 따른 선진금융 수요=동남아나 중국 등은 현재 경제발전 과정을 거치고 있기 때문에, 이를 뒷받침하기 위해서는 낙후된 금융시스템을 현대화할 필요가 있다. 이 나라들은 건설 및 제조업 등이 성장하고 있으며, 이에 따라 기업들이 중장비 및 대형 설비들을 갖춰야 하는데, 구입 비용 부담을 줄이기 위해서는 리스나 렌탈과 같은 금융상품이 유용하다.

기업은행 계열 SI사인 IBK시스템은 중국이나 베트남 등에 이러한 리스 수요가 커지는 것을 겨냥해, 자체 개발한 리스시스템을 마케팅하고 있다. IBK시스템은 2년 전 자사의 리스시스템 솔루션의 중국어판을 만들어 중국의 금융사인 '닛신'에 공급했고, 국내 캐피탈사의 중국지사에도 공급한 바 있다.

IBK시스템은 현재 우선적으로 중국에 진출한 국내 캐피탈사를 상대로 영업을 하고 있으며, 중국 시장에서 기술력을 차츰 인정받게 되면 중국 금융사를 상대로도 영업을 확대해 나갈 계획이다.
IBK시스템은 리스시스템 패키지의 베트남어판도 제작하고 있다. 베트남에도 산업화 수요가 커지고 있기 때문에 기회가 많을 것이라는 판단에서다.

이러한 솔루션 공급은 한 고객 당 수억원 수준이긴 하지만, 일단 해외사업을 위한 교두보를 성공적으로 확보한다는 게 IBK시스템의 단기목표다.

◆현대정보기술 적극성 보여=현대정보기술은 금융 IT 해외 진출에 가장 적극성을 보여왔다. 이 회사는 1990년대 후반부터 베트남 중앙은행 지금결제 시스템 구축, 파키스탄 중앙은행 전산화 프로젝트들을 수주하기 시작했다. 자사가 금융 SI 수출 1호라는 게 현대정보기술이 강조하는 점이다.

2000년대에도 베트남 농업은행과 베트남 수출입은행 전산화 프로젝트를 맡게 되며, 아예 베트남에 자회사까지 설립하고, 작년에 이 은행들의 전산화 2차 프로젝트까지 맡았다. 현대정보기술의 해외사업 수주 규모는 각 프로젝트 별로 100억~300억원 가량이며, 이는 국내 유수 증권사 차세대 프로젝트 수준이다. 이만하면 국내 IT 기술의 세계 진출이라는 상징적 의미를 넘어 수익성도 꽤 거둔 성과라고 볼 수 있다.

◆일본에 역수출 할 단계에 이르러=우리나라 금융 IT는 80년대까지만 해도 일본을 벤치마킹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금융 IT 업계의 한 관계자는 "그때까지만 해도 온라인시스템이나 정보계 등을 벤치마킹하기 위해 툭하면 일본으로 견학가고, 참고하기 위한 일본 자료를 번역하는 일이 많았다"고 회상한다. 그런데 이제는 그 일본에 우리 기술을 역수출이 가능한 단계며, 일본을 참고하는 일이 거의 없어졌다고 한다.

일본은 안정성에만 치우치는 반면, 우리나라는 고객 편의성에 역점을 두고 유연하고 역동적인 시스템 개발에 힘써왔기 때문에 이 같은 역전이 생겼다는 게 이 관계자의 설명이다.

예를 들면 최근 국내 금융관계자들이 일본은행이 주최한 워크숍에 초정받아 바젤II 운영리스크에 대한 한국 사례를 강연하기도 했다.

국민은행 계열 SI사인 KB데이타시스템의 경우는, '아이매츠'라는 대외계 시스템 관련 솔루션으로 일본 시장에 진출하기 위해 준비하고 있다. KB데이타시스템은 얼마 전 일본의 SI업체와 공동영업을 위한 제휴를 체결하기도 했다. KB데이타시스템은 전산 선진화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는 베트남 농업은행에 아이매츠를 공급한 바 있으며, 십수억원 규모였다. 이 솔루션 영업을 일본까지 확대할 방침인 것이다.

일본 시장에 우리나라가 강할 수 있는 이유 중 하나는 가격경쟁력이다. 일본 물가에 비해 우리나라 솔루션이나 개발인력 비용이 비교적 저렴하다.

◆한국 개발 인력, 비싸도 통해=그러나 물가가 현저히 낮은 동남아 시장의 경우는 일본과는 달리 비용이 걸림돌이 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동남아 시장에서의 전망이 밝은 이유는 우리나라 인력들의 경쟁력 때문이다. 값싼 현지 인력들이 수년 걸려 개발할 일을 우리나라 인력들은 1년 만에 끝내버리기 때문에, 인건비가 비싸다 해도 투자대비효과가 매우 크다.

일례로, 국민은행과 싱가폴의 한 금융사가 지분 투자해 공동 인수했었던 인도네시아의 BII은행의 IT 프로젝트를 KB데이타시스템이 4단계에 거쳐 진행, 최근 마무리 지은 바 있다. KB데이타시스템은 국민은행의 선진화된 정보계 시스템을 BII은행에도 적용했는데, 인도네시아의 낙후된 금융 IT 환경에서 독보적인 선진시스템을 갖춘 은행으로 탈바꿈하게 된 것이다.

BII은행은 80억에 달하는, 자국 물가로서는 거대한 비용을 써야 했지만, 투자대비 효과 역시 크게 거두고 있다고 한다. 이 은행은 국민은행과 싱가폴 기업에 인수 된 후 급성장을 거듭해, 수배에 달하는 금액으로 말레이시아의 한 기업으로의 인수가 결정되기도 했다.
국민은행은 카자흐스탄의 BCC은행에도 지분 투자를 진행하고 있는데, 이 은행의 IT 선진화도 KB데이타시스템이 맡게 될 가능성이 크다.

◆대형 SI들은=이들 은행 전산자회사들과 중견 SI가 이렇게 해외진출에 적극성을 보이는 반면, 대형 SI들은 아직 물밑작업 중이다. 대형 SI들은 사실상 단일 솔루션이나 작은 단위의 프로젝트에 적극 나서기에는 수익성도 안 맞고, 전사적 SI 중심으로 사업해 온 전략에도 맞지 않기 때문에 당장 해외 사업을 하기에는 무리가 있다. 오히려 아직 차세대 열풍이 끝나지 않고 있는 국내 금융권이 이들에게는 황금 시장이다.

대형 SI들은 국내 금융권에서 차세대 프로젝트 주사업자를 맡아왔던 경력을 향후 해외 시장에서도 살려본다는 생각이다. 이들은 "국내에서도 우리가 주사업자를 맡게 되면 다양한 중소 SI 및 솔루션 공급 업체들도 서브로 들어가 윈윈게임이 될 수 있었던 모델을 향후 해외에도 적용할 것"이라는 생각이다. '선단형 수출'을 비즈니스 모델로 삼는다는 얘기다. 이 장기적인 전략을 위해 이들은 국내 차세대 프로젝트 베스트 프랙티스를 만드는 등 나름의 작업을 진행 중이다.

저작권자 © 아이티데일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