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역대 정부들에 비하면 이명박 정부는 행복한 출범을 누리고 있다. 결코 쉽지 않은 과제이긴 하지만 '경제살리기'라는 단순명료한 국민의 염원이 힘을 모아주고 있기 때문이다.


백전호 논설주간





무엇보다도 팽팽한 대결구도로 우리의 근대사를 무겁게 짓눌러왔던 '보수'와 '진보'라는 이념적 접전이 소강상태에 들어선 것이 현 정부의 어깨를 가볍게 해주고 있다. 독재와 민주화, 재벌독점과 노동자간의 분배 등 고질적인 사회적 갈등이 미봉책이든, 일시적인 현상이든 일단 실용주의 노선에 흡수되는 양상을 보이는 것도 현 정부의 날렵한 행보를 거들어주고 있다.

이 정도면 '경제살리기'는 역대 어느 정부도 가져보지 보지 못한 '무소불위'의 통치력을 현 정부에 안겨주고 있는 셈이다. 인수위의 잦은 자충수와 내각들의 자격요건 때문에 실망스런 여론이 들끓고 있지만, '경제살리기'에 대한 국민들의 소망은 여전히 현 정부에 대한 흔들림 없는 지지대가 되고 있다. 미국발 경제악화 조짐조차도 절체절명의 위기의식을 불러일으키며 국민들의 '경제살리기'에 대한 일념(一念)을 재삼 고취시키고 있다.

무소불위의 통치력 '경제살리기'
어디 그 뿐인가? 돈을 쌓아두고도 마땅히 쓸 곳을 못 찾고 있다며 곳간 문을 굳게 닫아걸었던 재벌기업들이 마침내 친기업 정책의 이명박 정부에 화답하고 나섰다. 그다지 경기가 밝지만은 않은데도 소리내어 취업의 문을 넓혀주고 있는가 하면, 갖가지 투자의욕을 공표하고 있다. "누가 대통령이 되느냐에 따라 기업들의 투자태도가 달라질 것"이라는 이명박 대통령의 후보시절 호언이 그대로 맞아떨어지고 있는 셈이다. 기업들의 이런 태도에는 다소 눈치보기도 있고 생색내기식의 쇼맨십이 섞여있을 수 있다. 하지만 앞으로 기업들의 구미를 돋울만한 규제완화가 가시화되면 보다 역동적인 효과가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시기적으로도 기업들이 마냥 소극적인 투자 자세를 견지하고 있을 처지도 아니다.

더군다나 이 '경제살리기'라는 통치 이념은 이명박 정부의 반대세력들도 동참하지 않을 수 없는 시대정신으로 공고하게 자리잡고 있다. 이런 현실을 두고 예전의 개발독재시대를 떠올리며 시대를 거꾸로 가는 듯한,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비합리적인 결과라고 비통해 하는 사람들도 적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이것은 국민이 선택한 현실이다. 또한 생각을 조금만 달리하면 반대세력들도 진실로 이명박 정부가 '경제살리기'에 성공하기를 간절히 바랄 것이다.

차기집권을 위해서도 이명박 정부가 실패해주기를 바라는 것은 현명한 생각이 아니기 때문이다. 앞으로 5년 후 대선 쟁점은 '경제살리기'와는 전혀 다른 이슈가 떠오를 것이다. 예컨대 안으로는 보다 완숙된 민주화, 보다 합리적인 분배문제가 제기될 것이고, 밖으로는 초를 다투는 글로벌 국가경쟁에서 우리나라가 리더십을 발휘할 수 있도록 하는 능력을 요구할 것이다. 이것이 이명박 정부가 '경제살리기'에 반드시 성공해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것도 확실하게 성공해야 한다. 그렇게 되면 국민들은 도덕성과 능력을 겸비한 지도자를 맘 편하게 요구할 수 있을 것이다.

어쨌거나 이만하면 이 명박 정부는 천운과 시운을 다 타고 났다 해도 크게 틀리지 않을 듯 싶다. '경제살리기'가 녹록지 않다는 것은 분명하다. 또한 '경제살리기'가 현 정부만의 전매특허 용어만은 아니다. 지난 모든 정부들치고 '경제살리기'에 치중하지 않은 정부는 없었다. 하지만 이처럼 '경제살리기' 하나에 국민의 요구가 집중되는 경우는 처음 있는 일이다. 상대적으로 국정 운영이 훨씬 쉬워졌다는 것이다.

스스로 발목잡는 일만 없으면...
아직까지는 이명박 정부의 국정운영을 가로막는 큰 걸림돌은 없어 보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만일 걸림돌이 생긴다면 스스로 만들어내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 걸림돌이라는 게 무엇일까? 간단하다. '보수는 부패'라는 등식이 날개를 단다거나 노골적인 친 재벌기업 정책 일변도에 분배의 문제를 등한시 하는, 이른바 개발독재시대의 폐해가 다시 살아나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국민들의 염력이 담긴 '경제살리기' 통치력은 크게 훼손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우리나라는 최악의 비극적인 상황으로 추락하고 만다.

솔직히 이명박 정부는 맘만 먹으면 얼마든지 이런 걸림돌을 만들지 않을 수 있다. 그러기 위해 이명박 정부는 '경제살리기'와 무관한 정치적 함정에 빠져들어서는 것을 사전에 막아야 한다. 정치적 함정이란 비생산적 행위에 함몰하는 것을 말한다.

비생산적인 정치적 행위의 대표적 사례는 보은정치이다. 우리는 역사를 통해 익히 보아왔듯이 보은정치가 스스로의 발목을 잡은 경우는 허다해도 성공한 경우는 찾기 힘들다. 본디 나랏일이라는 게 국민에게 봉사하는 것이지 권세와 부를 누리는 자리가 아니기 때문에 보은정치는 결국 문제를 일으키곤 하는 모양이다.

그렇다면 이명박 정부가 보은을 해야 할 세력이 있는 것인가. 이번 선거를 통해 태생적으로 이명박 정부는 비교적 자유로운 국정운영 폭을 갖고 있다고 보여진다. 우선 딱히 챙겨줘야 할 대상이 별로 없어 보인다. 노무현 정부가 지녔던 복잡다단한 과제와 의리정치, 그리고 적대세력에 비하면 이명박 정부는 그야말로 무풍지대를 달리고 있다. 외견상 그렇다. 그러나 내면을 들여다보면 우려되는 대목이 없지 않다. 일부에서 족벌언론이라고도 칭하는 보수언론과의 관계가 가장 문제가 될 것 같다.

방통위와 보수언론의 함정에 빠지지 말아야
보수언론은 이명박 정권 창출의 가장 큰 기여자라 할 수 있다. 오랜 노무현 정권과의 싸움을 통해 일찌감치 이명박 정부의 승리의 기반을 다져 놨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정권과 언론과의 관계 설정은 그 시대에 따라 다르다. 과거의 관계가 생존을 위한 몸부림, 또는 이념다툼식(사실상 감정싸움)의 비교적 방어적 형태를 띠었다면 이제는 상황이 다르다. 시대가 변한 것이다. 전통적 신문사들이 대변신을 꾀해야 하는 시기와 정권창출이 맞물림으로써 상당히 복잡한 구조에 접어들게 된 것이다.

그 복잡한 구조의 진원지는 아무래도 IT융합, 특히 방통융합의 대소용돌이가 예상되는 방통위가 될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그 가운데 보수언론들의 방송사업진출건이 도사리고 있다. 방통위는 업무의 특수성 때문에 앞으로 이명박 정부의 가장 큰 치적을 이뤄낼 수도 있으며, 반대로 가장 치명적인 아킬레스건으로 작용할 수도 있다. 구체적으로 방통융합이라는 시대적 과업에 전력을 쏟았을 때는 비교적 손쉽게 가시적 치적을 생산해내겠지만, 특혜성 시비를 몰고 다니는 각종 방송사업자나 통신사업자 선정에 휘말리게 된다면 걷잡을 수 없는 불신의 불구덩이를 파게 된다는 점을 지적하는 것이다.

불신의 구덩이를 파지 않기 위해서 방통위는 가장 먼저 보수언론들의 지상파 방송사업 진출을 사전에 예방하는 일에 나서야 한다. 하루빨리 방통융합 정책에 대한 미래지향적인 원칙과 설계를 그리는 데 모든 역량을 쏟는 것이 그 대책이다. 그래서 신문사가 지상파 방송을 보유하는 일 따위가 미래지향적인 방통융합의 모습이 아님을, 그런 식의 정책은 지양한다는 분명한 원칙을 먼저 공표해야 한다. 구시대적 특혜유혹의 싹을 자르고 모든 언론사들이 고급 상품의 컨텐츠를 생산할 수 있도록 진작시켜야 한다. 이러한 유도 정책이 성공해야 궁극적으로 방통융합 기술도 활짝 꽃을 피울 수 있을 것이다.

이런 점에서 볼 때 방통위 위원장에 대한 선임 건도 유연하게 대처하는 것이 여러모로 이로울 것이라는 생각이다. 또한 방통융합을 잘 이해하는 인사들로 상임위원들을 채울 수 있는 분위기를 조성하는 것이 절실하다. 그렇게 하는 것이 방통위를 정치적 함정에 빠뜨리지 않고 정권창출의 공신격인 언론과의 관계에서도 오히려 자유로울 수 있을 것이다. 무엇보다도 방통위는 규제기관이기도 하지만 우리나라의 향후 먹을거리를 담당할 아주 중요한 정책부서임을 명심해야 한다. 방통위가 보수언론의 먹을거리나 대주는 곳으로 전락해서는 말이 안 되는 일 아닌가.

결론적으로 이명박 정부는, 이명박 대통령이 당선되는데 기여한 자들에게 그 어떤 특혜를 주는 일을 가장 크게 경계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 대상으로 지금 당장 떠오르고 있는 곳이 언론이라는 것이다. '언론은 가까이 하지 말라, 그렇다고 멀리하지도 말라'는 속설이 있다. 노무현 정부가 너무 멀리해서 탈이었다면 이명박 정부는 너무 가까이 해서 문제가 될까 걱정된다.

이명박 정부는 국민이 불안해하는 일만 하지만 않으면 보수언론은 물론 그 누구도 쉽사리 시비를 걸 수가 없는, 그 이름을 후대에 널리 떨칠 수 있는, 역대 모든 정부가 부러워할 만한 천우신조의 기회를 잡고 있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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