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 25일, 오늘은 17대 대통령이 취임하는 날이다. 지난 대선 때 누구를 지지했건 모든 국민들은 오늘 새 정부의 출범에 마음을 가다듬고 축하에 나설 것이다. 힘든 경제 상황을 타개하고자 국민들이 불러온 새 정부인 만큼 그 기대 또한 한껏 부풀어 올랐을 터이다.


백전호 논설주간





작은 정부와 친 기업 정책, 그리고 경제살리기라는 새 정부의 이념적 강권에 의해 합리적, 기술적, 전략적 고려를 덮어버리고 단 칼에 베어버린 정부조직 개편과 청소년 교육상 최악의 모델이 될지도 모를 우려를 뿌옇게 뿌리며 등장한 각료 후보들의 면모들을 보면서, 과연 이 정부에 어떤 기대를 걸어야 할지 당혹스럽기 그지없지만, 그래도 우리에게 주어진 5년이라는 운명을 낙담과 탄식 속에서 보낼 수야 없기에 애써 축하하지 않을 수 없으며, 몇가지 바라는 바를 요구하지 않을 수 없다.

기존 또는 예정된 정책사업 '중단 없어야'
이명박 정부의 IT정책은 정부조직이 제 자리를 잡아야 비로소 큰 그림이 그려질 것이다. 더군다나 그간 IT정책을 관장해온 정통부 기능이 산산조각나 타 부처로 이식돼야 하는 만큼 상당한 시일이 걸려야 할 것으로 보인다. 능력을 최우선시하는 새 정부의 인사 방침에 따라 IT관련 정책자들의 기상천외한 정책 아이디어가 쏟아져 나올지도 내심 기대된다. '새 술은 새 부대'식 정책 전환이 있을 것이고 이명박 정부의 경제철학에 부합하는 새판짜기 정책도 나올 것이다.

다 좋다. 하지만 이에 앞서 고려해야 할 것들이 있다. 이미 추진되고 있는 기존 정책들이 중단없이 진행돼야 한다. 국회의 문제이긴 하지만 벌써부터 전기통신사업법 개정안 등이 차질을 빚고 있다. IT업계는 그간 정통부가 벌여왔거나 예정해논 사업들이 중단되거나 뒤로 미뤄지는 것을 걱정하고 있다. 정부 정책에 기대어 투자해온 시간과 비용 등을 생각하면 해당 기업들로서는 이런 좌불안석이 없다.

IT가 우리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더 이상의 설명이 필요 없을 것이다. 국가 전체의 대동맥이자 모든 경제의 단위 요소에 까지 미치지 않은 곳이 없을 정도로, 인체로 말하면 피와 같은 존재다. 피가 잠시라도 멈추는 곳은 곧바로 괴사한다. 그렇지 않아도 위약해진 경제구조를 생각한다면 이처럼 괴사하는 부분이 없도록 새 정부 정책자들은 노심초사해야 한다. 새판짜기에 열중한 나머지 '망건 쓰다 장 파하고' 그나마 경쟁력 있는 요소들마저 싹둑 베어버리는 '선무당이 사람 잡는' 꼴이 되어서는 안 될 것이다. 다행히 기존 정책을 주도해온 실무 공직자들이 있으니 그들이 잘해줄 것으로 기대하는 바다.

제2의 부처이기주의를 경계해야
이왕 정책 실무자들에 대한 말이 나왔으니 각 부처로 더부살이 떠나는 구 정통부 공직자들에게도 한마디 당부를 하지 않을 수 없다. 오늘날 정통부가 해체된 데에 대한 회한과 원망은 이제 지워야 한다. 직장인으로서의 생활 터전에 대한 근심 또한 가질 필요가 없다. 본디 정통부를 위한 공직자가 아니라 국민을 위한 공직자였으니까, IT의 가치가 없어진 것이 아니라 더욱 중차대해지고 있으니까, 그리고 지난 20여 년 동안 쌓아온 IT경력이 자신의 위치를 날이 갈수록 공고히 해줄 테니까.

각 부처로 떠나는 정통부 직원들이 정신적으로 무장해야 할 일이 있다. IT인이라는 자긍심이다. 정통부라는 사관학교에서 명예로운 졸업장을 받고 각 현장으로 파견한, 위기에 처한 IT환경을 전화위복시켜 제2의 IT한국을 구축할, 특수 정예요원들임을 스스로 각인시켜야 한다.

그리고 다짐해야 한다. 각 부처에 소속되더라도 절대로 부처이기주의의 미혹에 빠지지 않을 것임을. 중복된 기능을 제거하고 효율을 높이기 위해 정통부를 해체시켰다고 하지만 머잖아 IT를 둘러싼 부처간 중복 경쟁은 또다시 재현될 게 분명하다.

정통부 출신들이여! IT패밀리를 형성하라
IT의 속성이 중복이다. IT란 시스템이다. 네트워크다. 융합 그 자체다. 우주다. 주변에 한없이 팽창하는 것이 IT이다. 이렇기 때문에 IT는 그 자체로서의 존재보다는 가시화된 주변 현상에 파묻히곤 한다. 단견의 비즈니스적 관점에서 보면 IT보다는 주변에서 열리는 열매가 더 달고 맛있다. 경제적 효과도 단기적이고 커 보인다. 'IT는 없고 융합만 있다'는 논리도 여기서 나온다. 정통부의 해체론도 여기에 기저를 두고 있을 것 같다. 하지만 '단물'이 다 빠지면 어디서 그 당원을 대줄지…. IT는 융합의 핵이다. 팽창의 동력이다. 소우주다. IT 그 자체를 갈고 닦아야 하며 튼튼한 구조를 항시 유지하고 있어야 한다. 이것이 정통부를 해체시켜서는 안 되는 이유이며, 또 다시 IT를 둘러싼 부처간 중복 경쟁이 일어날 것이란 예단의 원리이다.

따라서 각 부처로 스며든 정통부 요원들은 IT의 속성을 잊어서는 안 된다. 사실 IT가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기 시작하는 것은 이제 부터다. 그동안은 기반을 다져왔을 뿐이다. 달리 말하면 그만큼 한 건 올릴만한 일들이 많다는 것이다. IT가 그 어느 때보다도 부처 이기주의의 소용돌이에 휘말릴 가능성이 커졌다는 얘기이기도 하다. 그렇게 되면 우리나라는 영원히 IT 수입국이 될 것이며, 본격 도래할 정보화사회의 변방으로 밀려나게 될 것이다.

새 정부가 보여줄 가시적 성과도 중요하지만 어렵게 다져온 IT기반을 영속성 있게 가져가는 일을 IT공직자들이 놓쳐서는 안 된다. 그러기 위해서는 정통부 출신들의 'IT패밀리 의식'이 필요하다. 이해집단적인 패밀리가 아니라 IT공직자로서의 소명의식의 연대를 말한다. 스스로 부처이기주의에 함몰되어 자신들이 공들여 쌓아온 'IT한국'의 위상을 허물어뜨리는 우매한 역사의 주역이 되지 말라는 주문이다.

정홍식 전 정통부 차관이 저술한 <한국 IT정책 20년>에 보면, 그가 청와대 비서실을 떠나 정통부에 몸담게 되는 각오를 기술한 부분이 있어 눈길을 끈다. '공직자로서 IT라는 영역에 혼신의 힘을 다 쏟겠다'는 것이 당시 힘있는 여러 부처를 제쳐두고 체신부를 선택하게 된 그의 의지였다. 그는 그 후 정통부 설립에 있어 산파역을 담당했고, 청와대 근무시절부터 정통부 차관 시절(1998년)까지 20여 년 동안 한국 IT정책사에서 결코 빼놓을 수 없는 묵직한 일들을 주도해 왔다. 새 보금자리를 찾아가는 IT공직자들이 한번쯤 새겨둘 만한 일이라 생각된다.

IT 백년대계를 설계하라
어차피 장구한 역사를 5년 임기의 한 정부가 다 쓸 수는 없다. 그래봤자 역효과만 난다는 게 지난 역사의 교훈이기도 하다. 새 정부가 맡아야 할 IT임무는 무엇일까. 새 정부는 경제살리기와 선진국 진입을 목표로 하고 있다. IT분야에서는 융합을 통한 성장동력 끌어올리기에 치중할 것으로 보인다. 여기에는 아무래도 효율성, 즉 성과위주의 정책사업이 우선시 될 것으로 예상된다. 새 정부의 선택이 그렇다면 그렇게 해야 할 것이다. 왁자지껄한 시장이 필요한 때이기도 하다. 이점에서만 보면 새 정부의 IT정책은 단기적인 효과를 낼 것으로 보인다. 그만한 저력은 그동안 쌓아두었다고 봐도 무방하다.

그렇다 해도 IT를 역사적 관점에서 성찰하는 여유는 있어야 한다. 세계적으로 IT역사는 지금 중요한 전환점을 맞고 있다. 각설하고 완성된 정보화사회를 목전에 두고 있다는 것이다. 우리의 입장에서는 IT의 개별 요소들의 경쟁력을 재점검하고, 국가적 차원에서 IT전략을 재수립해야 하는 중차대한 시기에 놓여 있다. IT와 함께 맞이할 향후 100년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각 부처에서 맡은 바 임무를 다해내겠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조정자 역할이 있어야 할 것 같다. 그리고 우리는 우리의 IT인프라가 세계적으로 선두권을 형성하고 있지만 아직 경쟁이 끝난 상태가 아니라는 점, 더군다나 IT의 개별요소들을 냉정히 들여다보면, 경쟁력을 갖춘 게 사실 별로 없다는 점을 심각하게 인식해야 한다.

기본기를 다지자
100년 대계를 생각하면 기본기를 다지는데 소홀해서는 안 된다. 기본기의 첫 번째는 IT관련 기술개발이다. IT기술개발의 대다수는 지식경제부가 담당할 것으로 보이는데 솔직히 우려되는 대목이 많다. 시장중심적인 기술개발에 치중할 것이라는 점이 가장 걱정된다. 너무 상용기술에 치중하다 보면 당장 눈에 보이는 성과는 있을지 몰라도 미래를 기약하긴 힘들다. 일시적으로 세계 일류 상품을 생산해 낼 수 있지만, 새로운 성장동력을 끊임없이 배출해내기는 힘들다는 얘기다. IT융합을 말하지만 그 융합을 이끌만한 우리의 IT가 어디에 있는지 찾아보면 참담하다.

참여정부의 IT839 정책이 이미 이 같은 우를 범한 바 있다. 성격상 지식경제부가 이런 범주를 벗어날 것 같지가 않다. IT839 정책이 하드웨어에 치중했다면 새 정부는 소프트웨어에 더 주력한다는 정도의 변화가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이 정도의 인식변화로는 IT의 100년 대계를 내다볼 수 없다. 순수 IT관련 기술개발에 등한시 할 경우 우리는 얼마 못가 산업사회에서 선진국 따라잡기에 아등바등했던 경험을 되풀이 하는 처지에 놓일 수도 있다. IT가 모든 산업의 경쟁력을 좌우하고 그 비중이 30%를 넘게 차지한다는 사실은 누구나 알 것이다. 융합의 허우대가 아무리 화려하고 성장곡선을 높게 그린들 그 핵심인 IT에 소요되는 비용을 외부에 지불한다면 그야말로 빛 좋은 개살구가 아닐 수 없다.

기본기의 두 번째는 IT인력 양성이다. 지금 IT업계는 인력 고갈상태로 아우성이다. 기술인력을 말한다. 개발인력은 물론이요, 활용 요원들도 태부족이다. IT융합의 최대 걸림돌은 사실 인력부재일 수 있다. 융합은 차치하고라도 당장 기본적으로 IT를 구사할 인재들이 시급한 상황이다. 이에 대한 대책을 세우지 않고서는 IT융합이고 뭐고 논할 게재가 아니다. 소프트웨어 육성 정책을 강조하는 새 정부로서는 인력부재를 해결할 해법을 찾아야 소기의 목적을 달성할 수 있을 것이다.

세 번째 기본기는 IT업계의 구조를 건실하게 만드는 것이다. 우선 SI업체와 하도급 업체들 간의 공정한 거래구조를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소프트웨어 산업의 육성이나 IT인력 양성, 경쟁력 있는 IT중소기업 육성 등의 대 과제를 성공하기 위해서는 왜곡된 시장구조를 바로 잡는 게 급선무다. 제아무리 많은 수요를 뿌려준들, 심각하게 왜곡된 하도급 관행을 바로잡지 않는 한 IT업계의 발전은 없다. SI업체든 하도급 업체들이든 제 몫에 해당하는 대가를 가져갈 수 있도록 강력한 법적 제도를 만들어야 한다. 기술을 인정받고 기술인력의 노고를 제대로 대우받을 때 기술력이 있는 중소기업들이 살아남는다. IT선진국 사례에서 누누이 보았듯이 IT는 벤처나 중소기업에서 싹을 틔우고 자란다. 거꾸로 말하면 중소기업들을 핍박하는 것은 IT의 싹을 잘라버리는 행위라는 것이다. 아무리 뛰어난 기술도 대형 SI업체들의 수익에 기여하지 않는 한 써먹을 데가 없는 나라에서 기술인력이고 산업이고 융합이고 있을 수 없다.

새 정부가 경계해야 할 일
새 정부는 성장정책을 구사할 것이므로 시장을 넓히는 프로젝트성 요구는 굳이 하지 않아도 될 것 같다. 다만, 시장 확대가 대기업을 위한 시장으로 변질되는 것을 경계하지 않을 수 없다.

막강한 권한을 보유할 방송통신위원회의의 행보에도 미리 우려의 목소리를 내고 싶다. 무엇보다도 특혜시비가 일지 않도록 조심해야 할 것이다. 방송분야도 그렇고 특혜시비를 받기 딱 좋은 사업들이 즐비하게 늘어서 있어 그렇다. 이로 인해 국민들이 실망하는 일이 벌여져서는 정말이지 큰 일 난다.

많은 국민들이 새 정부의 정책기조에 대해 기대를 보내고 있다. 경제살리기에 기대는 심정이 하도 절실한 탓이다. 새 정부는 그러나 국민들의 기대심리 저 밑바닥에는 모험에 대한 두려움과 우려가 들끓고 있음을 명심해야 한다. 제발이지 성공한 정부로서 자리잡아 경제적인 선진국뿐만 아니라 의식적으로도 국민들이 자부심을 갖는 나라가 되기를 기원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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