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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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T업계에서 없어져야 할 일들
한국IBM과 한국HP. IT업계를 대표하는 이 두 기업이 몇 년 사이를 두고 '납품 비리'라는 사법적 소용돌이에 휘말렸다. 어느 사회, 어느 분야나 사람 사는 곳에 부조리가 없는 곳은 없다. 그렇게 생각하면 이 사건들도 그저 인간사에 있을 수 있는 흔한 일들 중의 하나로 치부해버릴 수도 있다. 그러나 그렇게 단순하게 지나쳐버릴 사안이 아닌 것 같다.






공교롭게도 최대 라이벌이자 합리적인 비즈니스 규범을 자랑한다는 두 기업이 사건의 중심에 서 있다는 사실이 아무래도 심상치 않다. 여러모로 IT업계에 미치는 파장이 클 것이라는 예상이다. 유사한 사례가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수십 년 동안 IT업계는 사법적으로 비교적 무풍지대나 다름없었다. 정확히 표현하자면 그다지 주목받을 만큼 대형사고를 낼만한 업종이 아니었다. 따라서 이번 사건은 IT업계가 더 이상 잔가지들이나 누릴 수 있는 치외법권적인 혜택을 받을 수 없게 됐음을 경고한다.

치열한 생존경쟁의 현장에서 빚어지는 갖가지 비즈니스적인 관행들은 관대하게 생각하면, 그야말로 '관행적인 수단'에 불과할 수도 있다. 하지만 사법적인 잣대를 엄격히 들이대면 관행이 곧바로 범죄행위로 직결될 수 있다. 결코 두 기업의 사건이 이런 이중 잣대의 테두리 안에 있다는 말은 아니다. 사법적 판단에 올려진 마당에 왈가왈부할 성질의 것은 아니지만, 이 두 사건을 계기로 IT업계가 뭔가 반성하고, 주의하고, 개선해야 할 것들이 있다는 얘기다.

우선 일선 영업전선에서 간혹 벌어지고 있는 부조리적인 행태는 일절 없어져야 한다. 혹시 밀실에서 은밀히 부정행위를 저지르고 '귀신이 아니고서야 누가 알 턱이 없다'고 생각하는 자가 있다면, 큰 오산이다. 시쳇말로 '이 바닥에서 잔뼈가 굵은 웬만한 사람들'이라면 제안서나 입찰과정을 보고 알건 다 안다. 솔직하게 말하자면 상당수가 한번쯤은 해본 바 있는 일들 아닌가? 물론 부정한 장면을 목격한 것도 아니고, 또한 그것조차도 뛰어난 영업력이라고 인정해주면서 유야무야되는 게 이 바닥 생리라면 생리였다. 그러나 사법당국의 가시권에 들어서면 상황이 달라진다. 부정행위가 밝혀지는 것은 시간문제일 뿐이다.

두 사건은 전반적으로 IT업계의 영업 행태가 사법당국의 가시권에 놓여 있음을 강하게 시사하고 있다. 사법당국이 주시하고 있기 때문에 부정행위를 하지 말라는 소리는 망언이다. 이유를 불문하고 '비리' 행위는 사회적으로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죄악이다. 더군다나 경제적 비리행위는 그 오염피해가 막대해 그 만큼 동정의 여지도 줄어든다. 이 시점에서 IT업계는 보다 크게 자성하고 비리 따위가 벌어지지 않도록 재발방지에 나서야 한다.

완벽한 재발방지책이 어디 있겠는가. 하지만 이왕 말이 나온 김에 부조리가 기생할 만한, 우리 IT업계에 있어서는 안 될 것들을 몇 대목 짚어보자. 먼저 두 사건의 발생지이기도 한 벤더와 영업 채널 간의 관계를 거론하지 않을 수 없다. 무엇보다도 벤더와 유통채널 간에 주고받는 물건 값에 대한 마진율을 손 봐야 할 것 같다.

제도적으로 융통성 있는 마진율 적용은 수주경쟁에서 이길 수 있는 가장 강력한 무기임에 틀림없다. 하지만 이 마진율은 벤더와 채널사이의 주종관계를 필요 이상으로 공고히 함으로써 비합리적인 수단이 되기도 한다. 보다 좋은 마진율을 얻기 위한 채널들의 비합리적인 영업행위가 종종 일어난다는 것이다. 적의 장수를 베라고 하사한 보검으로 자기집안의 소나 돼지 잡는 칼로 쓴다면 그 보검은 더 이상 보검이 아니다. 보검의 날이 무뎌지지 않도록 상시 보수 체제를 갖춰야 할 것이다.

너무나 박한 마진율에 대해서도 한마디 안 할 수 없다. 다 아는 바 요즘 하드웨어 분야에서는 너무나 빈약한 마진율 때문에 일선 채널들이 아우성이다. 10%는 아득한 옛말이고 5% 미만의 마진율이 자리 잡은 지 오래다. 각종 비즈니스 비용을 감안하면 채널들이 생존하는 것 자체가 용하다. 이 때문에 새로운 생존수단을 찾아 부가기술을 확보하려는 채널들의 바람직한 변화가 일고 있으니 이런 아이러니가 없다. 다국적 기업들의 제값받기 고수 정책과 일선 채널들의 적자경쟁 사이에 존재하는 이러한 갭은 이미 심각한 지경에 빠져 있다.

입에 담기조차 부끄러운 일이지만 합리적인 외국기업의 직원들에 대한 영업비 불허정책도 문제다. 훌륭한 그 제도가 IT업계를 선도하는 부분도 있지만, 일부 종사자들에 의해서 채널들을 곤혹스럽게 만들고 있으니, 그 폐해 또한 만만치 않다. 게다가 오만 방자한 태도까지 곁들이면, 그 행태는 영락없는 '악덕 마름'이다.

이런 관계는 SI업체와 하도급 업체 간에도 종종 일어난다. 아무런 하는 일도 없이 이름만 걸고 7%에서 많게는 10% 이상의 중간 마진율을 착취하는 SI업체들의 횡포는 이미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하도급 업체 직원들을 종 부리듯 하며 제안서를 작성하게 하거나 자료수집을 시키는 일 따위도 말 꺼내는 것이 새삼스런 일이다. 쉬쉬할 것도 없이 우리끼리는 다 아는 일들 일이지만, 최근 법조계에서는 이런 행위를 예의 주시하고 있다는 전언이다.

대체로 비리의 온상은 갑과 을이라는 관계에 놓여 있다. IT업계에 널려있는 각종 갑과 을의 관계라고 크게 다를 바 없다. 그러나 IT업계의 갑과 을은 단순히 물건을 사고파는, 일거리를 주고받는 일과성 관계가 아니다. 고도의 테크니컬 공동체로서 유기적인 관계를 맺고 있다. 어느 한 축이라도 무너져서는 완벽한 IT를 구현할 수 없다는 특수성을 지니고 있다. 그래서 IT업계는 소리내어 말하지는 않지만 첨단 업종이라는 자부심과 때로는 패밀리적인 끈끈한 정을 공유하고 있다. 이로 인해 빈번한 교류가 이뤄지는데, 자칫 이 교류의 모든 행위가 일종의 비리로 비쳐질까 두렵다.

이점 때문에 일련의 사건들을 바라보는 동종업계 종사자들의 마음은 착잡하기 그지없다. 모든 비즈니스적인 관행이 다 비리일 수는 없기 때문이다. 비리라고 몰아붙이기엔 다소 무리가 있는 사안들이 자칫 범죄행위로 몰리는 경우가 발생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번 사건을 계기로 IT업계는 이 점도 주의해야 한다. 예컨대 선진기술 습득을 위한 해외 컨퍼런스나 세미나에 경비를 부담하여 IT사용자들을 초청하는 행위는 어떨까? <마땅히 고객이 자비를 들여서 참석해야 한다. 실제로 그런 고객이 얼마나 있을까?> 이와 같은 고객과의 접점에 있어서 고려해야 할 사항들이 많다. 이제 없애야 할 것들은 과감히 버리고, 보다 치밀한 법률적인 검토 위에서 합법적인 비즈니스 행위를 해야 할 것임을 아울러 강조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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