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보안 업체를 방문해 보면 한쪽 벽면을 빼곡히 채우고 있는 것이 있다. 다름아닌 '특허 등록증'이다. 그 동안 제품을 출시하기가 무섭게 특허 출원부터 하고 보자는 마구잡이식 국내 중소 보안업체들의 사업 행태를 고스란히 보여주는 대목이다. 이 같은 사업 절차가 통과의례처럼 굳어져 버린 까닭일까, 유독 보안업계에는 꼬리에 꼬리를 무는 특허 분쟁이 가실 날이 없다.

국내 보안 업계의 특허 분쟁이 끊이지 않는 가장 큰 이유는 어느 정도 기술력만 있으면 쉽게 만들 수 있을 정도로 보안업계 기술 장벽이 높지 않다는 데 있다. 실제로 시장에서 뜨는 기술로 지목되면 불과 반년 사이에 10여 개의 경쟁 장비가 등장하는 게 이 분야의 현실이다. 또 중소 보안 업체들은 특허를 내는데 급급한 나머지, 특정 영역에 대한 축소 범위의 특허들을 내다보니 결국 독자적인 기술을 제대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보안 업계 한 관계자는 "특허 절차를 밟다 보면 일부러 그러는 것은 아니겠지만, 경쟁업체에서 동일한 내용인데도 특허 제목을 전혀 다른 것처럼 포장해 검색도 안 되게 받아서, 나중에 특허 분쟁을 일으키게 되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보안업체들이 회사의 독자적인 기술력을 인정받기 위한 수단의 하나로 획득하고 있는 특허는, 후발 경쟁 업체들의 사업을 접게 하고 자사를 업계 독보적인 입지에 오르도록 하는 특효약이 되기도 하고, 잘못 처방했을 때 오히려 자신들의 등에 칼을 꼽는 극약이 되기도 한다.

지난해 말 퓨쳐시스템과 어울림정보기술 간 약 2년여에 걸친 특허 분쟁 끝에 재판부는 결국 퓨쳐시스템의 손을 들어줬다. 당초 어울림정보기술은 퓨쳐시스템의 VPN 솔루션 '시큐웨이게이트' 제품군이 자사의 '다중터널 VPN 게이트웨이를 이용한 데이터 전송장치' 특허를 침해했다고 주장하며 서울중앙지방법원에 생산 및 판매금지를 요구했었으나, 2006년 5월 특허청은 어울림정보기술의 관련 특허에 대해 "특허취소" 결정을 내렸고, 2007년 9월 대법원 민사2부는 "퓨쳐시스템의 시큐웨이게이트 제품군에 사용된 기술은 통상의 기술자가 공지의 기술로부터 용이하게 실시할 수 있는 것으로 이 경우 특허의 보호범위에 속하지 아니한다"며 상고기각 결정을 내렸다.

또한, 지난해부터 소프트런이 잉카인터넷을 상대로 패치관리시스템(PMS)의 에이전트 배포 기술을 침해했다 주장하며, 잉카인터넷을 상대로 특허침해금지 가처분소송을 비롯해 민사소송 등을 벌이고 있는가 하면, 엑스큐어넷이 자사의 핵심 기술을 도용(지적 재산권 침해)했다고 주장하며 웹방화벽 업체인 모니터랩을 상대로 형사 소송 중이다.

이처럼 어떤 업체는 특허를 무기로 경쟁사의 발목을 잡아 이득을 취하기도 하고, 또 어떤 업체는 경쟁사의 영업방해 및 명예훼손을 일삼으며 이득을 취해 오다 오히려 덜미를 잡혀 특허가 취소됨과 동시에 업체 이미지가 실추되기도 한다.

하지만 모든 업체들이 법정 공방을 벌이는 동안 적지 않은 시간과 돈, 인력을 낭비하는 것은 마찬가지다. 특허(特許)는 발명을 장려 보호 육성함으로써 기술의 진보 발전을 도모하고 국가산업의 발전에 기여하기 위한 제도이다. 보안 업체들 간 서로의 목을 조이는 특허가 아닌, 국내 보안 업계의 기술 발전을 위한 특허가 되기를 바란다.

저작권자 © 아이티데일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